2021. 06. 07
한국 미술시장이 변화하고 있다. 거시경제 환경과 자산 가격의 변화가 미술시장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 새로운 세대의 미술에 대한 기호도 변화의 요인이다. 기술의 발전도 새로운 미술 시장 등장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새로운 미술 시장의 등장은 새로운 작가의 등장을 의미한다. 이 변화의 끝은 무엇일까?
올해 2월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2020 미술시장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의 미술 작품 거래 총액은 전년 대비 7.5% 감소했다. 하지만 올해 3월 서울 화랑미술제는 사상 최고 매출을 기록했고, 4월 부산 국제화랑아트페어도 성황리에 끝났다. 1000만원 안팎의 그림은 작품이 없어 팔지 못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신고가를 갱신한 유명 작가의 작품도 속출했다. 이런 현상을 이해하려면 세계 경제와 자산시장의 변화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미술시장은 2006~2007년이 정점이었다. 미술시장은 2008년 미국 주택시장 붕괴로 시작된 금융 위기로 혹독한 시기를 겪었다. 가격은 하락했고 거래는 얼어붙었다. 하지만 세계 경제는 금융 위기로부터 회복을 시작해 지난해 봄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를 덮치기 전까지 좋은 시기를 보냈다. 주식을 포함한 자산시장도 오랜 기간 가격 상승을 누렸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발생한 약세장도 짧게 끝났다. 주식시장은 반등에 성공해 새로운 고점을 썼다.
미국의 부동산 가격은 2007년 고점보다 더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소득은 늘었고, 주택 재고는 적고, 대출 연체율은 낮은 건강한 상승이다. 한국의 부동산 가격도 크게 올랐다. 주택 가격을 잡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오히려 주택 가격을 폭등시켰다. 이제 서울 아파트의 중위 가격은 10억원에 육박한다. 10억원 짜리 집에 사는 사람과 20억원 짜리 집에 사는 사람은 인테리어에 쓰는 돈의 규모가 다르다. 이때 찾게 되는 것이 그림이다. 그림은 궁극의 인테리어이기 때문이다.
자산 시장이 뜨거워지면 그림이 투자 수단으로 각광을 받는다. 한국의 블루칩 작가들의 그림 값은 계속 새로운 고점을 쓰고 있다. 중저가 그림 시장도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젊은 세대가 그림을 소비하기 시작하면서 더는 부자들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아트페어가 성황을 이루고 시장의 문턱도 낮춘다. 젊은이들은 그림을 사고 소셜미디어에 포스팅한다. 미술계 전체가 소셜미디어로 관객을 확보하고 그림을 판다.
한계도 있다. 미술 시장은 프라이머리 마켓과 세컨더리 마켓으로 나뉜다. 프라이머리 마켓은 갤러리와 작가의 세계다. 그림이 팔리면 갤러리와 작가는 수입을 5대 5로 나눈다. 세컨더리 마켓은 프라이머리 마켓에서 산 그림을 거래하는 시장이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플랫폼에 10~15%의 수수료를 낸다.
최근 시장의 호황은 세컨더리 마켓의 호황이었다. 기술의 발전이 시도하는 혁신도 아직은 세컨더리 마켓에 집중돼 있다. 수수료 마진을 놓고 싸우는 전투다.
궁극의 혁신은 프라이머리 마켓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본다. 아트페어가 성황을 이루는 이유는 이곳 밖에 중저가 그림을 믿고 살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가상현실과 블록체인 기술이 보편화하고 주식처럼 인터넷 플랫폼에서 그림을 거래할 수 있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소비자가 원하는 다양한 가격대의 프라이머리 마켓이 탄생할 것이다. 그런 상황은 소비자에게만 유용한 것이 아니다. 작가가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우주가 열리게 된다. 상당수 작가가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림의 진위를 두고 싸울 일도 없어진다. 혁신은 작가와 구매자, 미술계를 윈-윈으로 이끌 수 있다. 과연 누가 그 우주를 먼저 열 것인가.
김동조 / 벨로서티인베서터 대표·리셋 코리아 자문위원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