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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벌치기 아저씨 "누가 늙었다 하는가"[고창사람들] 국내 '최고령' 양봉업자 이판수씨
09.10.29 14:33l최종 업데이트 09.10.30 08:06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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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난방용 연탄값을 번다고 품팔이를 나갔다가 잔머리 같은 것은 전혀 모르는, 그저 한 인간으로 솔직하게 씩씩하게 당당하게 우렁차게 사는 한 남자를 지난주 우연히 발견했다. 그렇다. 그는 남자다. 남자일 뿐이다. 아니 사람일 뿐이다. 나이? 그런 건 무관하다. 그렇다고 아주 무관할 수만도 없다. 어떻게 불러야 하나? 속물에게는 언제나 이런 것들이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아저씨라고 할까요. 할아버지라고 할까요?"
"허헛 참, 물을 걸 물어봐야 답을 하지."
"역시 아저씨가 좋겠지요?"
"아 물을 걸 물어보라니께."
▲ 집을 중심으로 벌통이 마치 호위병처럼 늘어서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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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는 양봉업자 가운데선 최고령급
아저씨는 작다. 키도 작고 체구도 작고 발도 작고 모든 것이 작다. 먹는 것도 적어서 담배도 안 피고 술도 잘 안 하고 밥도 같이 일하는 사람의 절반 정도밖에 안 먹고 심지어는 욕망의 크기조차도 없는 것처럼 작다. 모든 것이 작거나 적지만, 목소리는 우렁차고 쩡쩡하며, 흰머리는 많고 나이 또한 많다. 많지만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삼십대 젊은이들 뺨치기에 많다고 보기도 애매하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발생한다. 도대체 나이란 무엇일까?
어쨌든 벌치기 아저씨 이판수(84)씨는 주민등록상 나이로만 보자면 대한민국 '최고령' 양봉업자다. 무장면 진무루(鎭茂樓)에서 북동쪽으로 오백여 미터 지점에 터를 잡고 살아온 아저씨는 양봉업자들 협회가 있어 모임에 나가서 보면 나이가 많아야 육십대 중후반이고 칠십대도 거의 없단다. 사오십대 젊은이들도 벌통 팔십여 군이면 벅차다고 하는데 아저씨는 무려 사백여 군을 혼자서 관리한다. 꿀을 따거나 이동을 할 때 두세 명 일손을 빌리는 것 외에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한다.
"알면 쉬워. 모르니께 어렵지. 어려우니께 사람 손이 많이 들고, 그래서 성공했네 실패했네 이런 자다가 봉창 긁는 소리가 나오는 거지. 그러면 어떻게 아느냐. 봐야지 봐야 해. 꾸준히 봐야 해."
꾸준히 보면 안다. 그래서 어려운 일도 쉬워진다. 아저씨는 이 말을 몇 번이나 강조한다. 모르면서도 아는 척 건방을 떨기 때문에 실패한다고, 생물을 다루는 자가 생물의 속성도 모르면서 그저 돈, 돈 돈노래만 불러대기 때문에 돈도 잃고 생물도 잃고 삶의 의욕마저 잃게 된다고 주장한다.
▲ 자 봐 봐. 이것이 프로폴리스라는 것이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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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들의 잔인한 '실용주의'
양봉은 기본적으로 벌의 노고를 빼앗는 착취사업이다. 같은 착취사업이라도 양돈이나 양만과 같은 양식사업과는 또 다르다. 양식은 많은 자본을 투자해서 먹이를 주고 그 대가로 그들의 고기를 처분하는 권리를 스스로 획득하지만 양봉은 그것조차도 아니다. 소나 돼지, 물고기들은 인간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고 판판 놀면서 살이나 찌면 되지만 벌들은 얻어먹는 것도 없이 죽어라고 생명의 단축까지 감수해가며 일을 한다.
참고로 일벌의 평균 수명은 노는 날이 월등 많은 늦은 가을에서 이듬해 봄까지는 삼 개월 이상 오 개월까지 살아간다. 그것이 꽃피는 봄날이 되면 사십여 일 안팎으로 급격히 떨어진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꽃을 찾아다니고 저녁에는 낮에 물어온 것들을 예순 번 이상 씹었다가 뱉어내서 꿀을 만드는 고된 노동을 반복하는 동안 수명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것이다. 겨우내 먹고 살겠다고, 아니 후손을 먹여 살리겠다고 그렇게 수명단축까지 감수해가며 저장해둔 그들의 값진 식량을 인간은 압수하고 값싼 설탕을 내준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양봉은 착취사업인 한편 속임수 사업이기도 하다.
이러한 속임수가 가능한 것은 벌들의 철저한 실용주의 정책과도 무관하지 않다. 자기들이 고생해서 모아놓은 꿀이 없어졌는데도 그것을 되찾아오겠다고 나서는 것이 아니라 꿩 대신 닭이라고 설탕이 있으니 그것으로 꿀을 대신한다. 이익이 없는 것이면 가차없이 내치지만, 조금이라도 이익이 된다면 그것이 설령 가짜라 해도 받아들인다. 받아들인 가짜가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다른 동네로 날아가서 다른 집의 다른 가짜를 훔쳐오기도 한다.
동료가 병이 들어 휘청거리면 두 번 살펴볼 필요도 없다는 듯 물어서 밖으로 내다버린다. 버려진 녀석이 안간힘을 다해 집으로 들어가고자 하면 문지기들이 달려들어 숨통을 끊어 버린다. 미국의 의료정책을 연상하게도 하는 벌들의 이러한 실용주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 채취 시기를 기다리는 프로폴리스망. 기온이 영도 가까이 내려가면 아주 딱딱하게 굳어진다. 그것을 털어내서 녹인 뒤에 숙성시켜서 소분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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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벌은 평생에 걸쳐 단 한 번 교미를 하고 수백 수천 만 개의 알을 낳는다. 정자를 뱃속에 넣고 다니면서 끝없이 복제 활용을 하는데 길게는 오 년을 넘기도 한다. 그러나 삼 년을 넘어서면 체력이 저하되면서 산란율이 떨어진다. 생산력이 떨어진 여왕은 더 이상 일벌들이 먹여 살려야 할 왕이 아니다.
일벌들은 구왕을 폐하고 새로운 왕을 만들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날렵한 구왕은 몇몇 추종자를 데리고 분봉을 나가기도 하지만, 민첩하지 못한 여왕은 일벌들에 의해 잔혹한 죽임을 당한다. 그야말로 벌떼처럼 달려들어 왕의 신체 여기저기를 물어뜯고 올라타서 짓눌러댄다. 왕은 애처롭게도 삐이, 삐이 소리나 겨우 질러대며 죽어라고 도망이나 치다가 결국은 죽는 것 외에 아무 다른 방법이 없다.
구왕이 젊어서 무슨 일을 얼마나 많이 했건 일벌들에게는 아무 조건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오늘 당장 무슨 일을 얼마나 할 수 있는가를 따질 뿐이다. 철저하고도 완벽한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벌들의 이러한 철학에서 볼 때 복지는 다만 소비사업일 뿐이다. 생산이 전제되지 않는 투자는 미친 짓이기에 고려할 가치조차 없다는 논리가 되는 것이다. 복지예산을 대폭 삭감 내지 동결시키는 이명박 정부에서 굳이 실용주의를 주창해야만 하는 고뇌의 진상이 밝혀지는 대목이라고나 할까.
▲ 숙성중인 프로폴리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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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 내 새끼 죽일 일 있간디"
어쨌든 벌들의 이러한 실용주의 정책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한편 부채질하기도 한다. 꿀벌이 생산하는 것은 벌꿀만이 아니다. 로열젤리는 오래 전부터 알려져 왔다지만 화분이나 프로폴리스가 대체의학은 물론 건강식품으로도 각광을 받게 되면서 양봉업계에 자본이 뛰어들기 시작했다. 자본은 자본 특유의 견고한 논리가 있는 까닭에 거침이나 주저함이 없다. 다이옥신 같은 맹독성 농약이 함유된 약품으로 해충구제를 하는 것도 결코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품질검사에 걸려 암유발 물질이 함유되었다는 등의 공식적인 발표가 나오면 그는 "재수없이 걸렸다"는 푸념과 함께 망한다.
"아 그놈의 것이, 처음부터 많은 돈을 벌겠다고 눈이 벌개져서 덤비니께, 응? 적게도 못 벌고 손해나 보고 하는 것이지, 처음부터 적당히 적게 벌겠다고 시작해봐. 절대로 손해보는 일은 없으니께. 자다가 떡 얻어먹는다고 운이 좋아서 많이 벌게 되는 경우는 생겨도 손해보는 경우란 별로 없는 것이여, 적게 벌겠다고 생각하믄."
"아저씨는 농약 같은 것 안 쓰시나요?"
"내가 뭘라고 그런 것을 쓸 것이여. 내 새끼 내가 죽일 일 있간디. 나는 농사짓는 논에도 농약 안 쳐. 논에서 벌들이 물도 먹고 새끼들 물을 길어다주기도 하는디 어찌케 농약을 쓸 것이여."
아저씨는 딸이 일곱이다. 아들도 셋이다. 십남매를 무탈하게 키워 도시로 진출시켰다. 수확하는 꿀벌제품 절반을 자식들에게 보낸다. 보낸 그것을 자식들이 아는 사람에게 팔아서 이익을 얻든 공으로 나눠주고 인심을 얻든 거기까지는 신경쓰지 않는다. 나머지 절반은 여기저기 선물도 하고 인맥을 활용해서 처분한다. 누군가 맹독성 농약을 사용하다 적발돼서 양봉업계에 커다란 타격이 온다 해도 그는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그렇다 해도 아저씨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머릿속이 뒤집힐 정도로 화가 난다.
"나쁘제. 그럼, 나쁘고 말고, 돈으로 돈 벌자는 것인디, 그것이 돈 놓고 돈 먹자는 노름꾼 심뽀 아니냐 이거여. 생물이란 양심으로, 상식으로 해야 뭐가 돼도 제대로 되는 것이지, 그렇게 억지로 해서는 도통 뭐가 되지를 않는 것이지. 뭔가 되는 것처럼 보여도 안 된 것이나 마찬가지랑게."
그렇다면 아저씨는 해충구제를 어떻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아저씨의 답변은 놀라울 정도로 허무하다. 벌이 병들면 진드기 같은 아주 기초적인 처방만 하고 그 다음은 그대로 내버려 둔단다. 하는 일이란 겨우 지켜보는 것 정도. 그렇게 지켜보노라면 죽을 놈은 죽고 살 놈은 살고 자연스럽게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정도가 심할 때는 벌이 아예 떼죽음을 당하는 수도 있다. 그럴 때면 일단 꿀이든 로열젤리든 채취를 중단하고 번식에만 심혈을 기울인다. 벌의 번식력은 엄청난 것이어서 단 한 통으로도 일 년에 오십여 통을 만들 수도 있다.
"그래 봐야 일 년이여, 그럼, 일 년만 아무 다른 생각 없이 벌만 쳐다보며 애기 젖 주듯이 해봐. 다음해 훨씬 많은 보답으로 돌아올 것이니께. 아 뭐 세월이 좀 먹간디. 하루 이틀 살다가 죽기로 약속한 것도 아니고 잉? 아 그런디 사람들이 너무 바빠. 마음만 바빠서 요리 힐끗 저리 힐끗, 정신 못 차리고 싸돌아대기만 하니께 될 일도 안 되는 것이제. 이런 버르장머리도 내가 가만히 생각해본께 높은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만든 것 같더라고. 먼 일을 한다고 했다가 안 한다고 했다고, 똥 못 싸는 강아지 새끼마냥 촐랑거려 싸니 잉? 백성들이야 뭐 쳐다보는 데가 거기밖에 없는디, 에이 참, 갈수록 재미없어, 세상이. 그리서 나는 밖에도 잘 안 나가."
"그럼 노인회관 같은 데도 안 다니시나요?"
"노인회관? 아, 거기사 가끔 가기는 가지. 나도 명색이 뭐라냐 그 노인인디, 불알친구도 있고 하니께. 가기는 가지만, 내가 앉아 있을 만한 자리는 별로 없어. 한다는 것이 만날 화투치는 것이 일인디. 그래 기냥 막걸리나 몇 병 사주고 와 버리제."
아저씨는 매사에 자신만만하고 당당하지만, 유일하게 더듬거리는 대목이 있다. 왜 어떤 이유로 양봉을 시작하게 되었느냐는 질문 앞에서 그는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고 말투도 어눌해진다.
▲ 이 스쿠터는 원래 자동차매매업을 하는 아들이 일반교통수단용으로 사준 것이다. 아저씨는 여기에 트레일러를 특별제작해서 장착했다. 여기에 쌀도 싣고 벌통도 싣고 짐이라면 거의 모든 것을 싣고 다니는데 힘이 좋아서 논바닥에서도 씽씽 달리고 경사면도 거뜬거뜬 올라다닌다. 게다가 속도는 경운기가 흉내를 낼 수도 없는 정도여서, 아저씨가 이것을 타고 달릴 때 보면 아슬아슬하면서도 호쾌한 기분이 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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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짐씨들이 장 보러 나오게 되면서 말이지..."
"내가 뭐냐 그 생선 장사를 했는디, 자전거로 생선을 받아서 싣고 잉? 해리장 무장장이야 말할 것도 없고, 고창장에, 흥덕장, 아 심지어는 장성장까지 다녔어. 백리도 넘는 길을, 요새 같이 반반한 길도 아니고 자갈이 울룩불룩 튀어나오는 길을 새벽바람에 갔다가 저녁바람에 돌아오는 거여. 그 장사라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어렵제. 어렵고도 쉽제. 알랑가 모르겄지만 그런 맛이 있어, 장사라는 것이. 아 그란디 그, 뭐냐 그 아짐씨들이 장을 보러 나오게 되면서 말이지, 허헛 참."
이 대목에서 아저씨는 얼굴을 붉힌다. 말도 잘 못하고 버벅거린다. 한참을 듣고, 한참을 해석한 뒤에서야 겨우 당시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러니까 아저씨의 얘기인즉, 과거에는 장에 볼 일이 있을 때 남자들이 주로 나섰다. 일꾼을 사서 일을 할 때 반찬거리를 사러 가도 남자가 나섰고, 제사가 돌아와 제수용품을 사러 갈 때도 남자가 나섰다. 여자들은 길이 멀어 힘에 부치기도 하지만 으슥한 길이 많아 위험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여염집 아낙이 갖춰야 할 당시의 덕목 같은 것들, 이를테면 담장 밖으로 목소리가 나가서는 안 된다든가 하는 고래의 풍습 때문에 여자들은 가능한 한 대문 밖으로 나가지를 않았고, 나간다 해봐야 우물가나 빨래터 혹은 새참을 내가는 마을 앞 들판 정도였을 뿐 시장에서 장보는 여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고 풍습도 변하면서 시장의 판도에도 변화가 왔다. 남자들 일색이던 시장 손님에 여자의 얼굴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반반이 되고, 그것은 다시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많은 상황으로 진화했다. 더불어 아저씨의 장사에도 변화가 왔다. 본전치기나 겨우 하는 날이 많아졌고, 어떤 날은 아예 크게 손해를 보기도 했다.
"아 그 아짐씨들이 떼로 몰려와서 뭐라고 뭐라고 막 해대면 내 정신이 하나도 없어져설랑, 하 그것 참 내가 말이지. 깎아달래면 깎아주고 외상 달래면 외상 주고,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름서 외상을 주니 말이여, 잉?"
여자 앞에만 서면 머릿속이 하얘져서 도무지 무슨 계산을 해볼 수가 없었다는 얘기이다. 남자 손님 앞에서는 안 팔면 안 팔지 깎아줄 수 없다고 배짱을 부리다가도 여자 손님만 오면 뭉텅뭉텅 깎아주고 덤까지 줘버리고 나중에 후회하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더라는 것이다. 돌아서서 살펴보면 아무 실속도 없는 바람기 비슷한 것이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아이고, 이 장사 더 하다가는 없는 자갈밭 팔아먹겠다, 해서 장사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벌농사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오며 가며 봐온 양봉이 제법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당시로서는 큰돈을 들여 벌통을 스물네 군이나 사들였다. 그것을 일 년이 채 안 되어 모두 잃어버렸다. 알 수도 없는 병으로 죽거나 죽지 않은 것들은 스스로 집을 나가버린 것이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밤에 잠도 못 자고 뒤척거리기를 얼마나 하다가 다시 나섰다. 경험이 스승이더라도 이번에는 욕심을 모두 버리고 달랑 한 군만 사서 마당에 두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들여다 보았다. 그러기를 일 년, 또 일 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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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통 앞의 논들이 모두 아저씨 소유. 벌들이 이 논에서 물을 먹기 때문에 논농사도 농약을 치지 않고 한다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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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에 맨질맨질하고 냄새도 그럴싸하면 최고인 줄 알아"
"이 년 동안 꿀 같은 것은 생각도 안 했지. 그냥 보기만 했어. 처음에는 보면서도 못 봤지 뭘. 모르면서 보니까 보면서도 모르는 거여. 안 보이는 거여. 아 그란디 어느 날 떡 하니 보이더라고. 아아, 요것이 요것이고 조것은 또 조것이로구나. 누가 내게 말로 백 마디 아니 천 마디를 했어도 몰랐을 것을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것이제. 그 세월이 삼십 년, 아니지, 더 되지. 글씨, 얼만가, 모르겠네. 하여튼 삼십 년은 훨씬 넘었어."
그것이 아마 집중일 것이다. 세월과는 무관하게, 세월이야 흐르건 말건, 몇 년 몇 월 며칠 따위는 달력에 박힌 글자로나 가끔 쳐다보며, 돈을 목적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돈도 이미 잊어버린 채로, 보고 또 보고, 애정이라는 단어조차도 부끄럽고 아까워 함부로 쓰지 못할 정도로 애정이 깊어졌을 때, 그때부터 예전에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는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런 눈으로 보는 꽃은 꽃도 그냥 꽃이 아니다. 같은 수종의 같은 꽃이라도 토질과 기후와 지형에 따라 색깔과 모양 그리고 크기가 다르다. 어떤 꽃은 꿀에 수분 함량이 삼십 퍼센트 이상 되는 것도 있는 반면 어떤 꽃은 십오 퍼센트 내외인 것도 있다. 어떤 지형의 어떤 꽃에서 어떤 품질의 꿀이 나오는가는 오직 경험에 의한 감으로만 알 수 있다.
간단한 예로 경상북도 산악지형의 아카시아는 꽃이 아주 뽀얗게 흰색을 띤 반면 전라도 특히 고창 지역은 토질이 비옥해서 꽃에 약간 붉은 빛이 감돈다. 따라서 꿀을 채취하면 산악지역의 것은 보기에도 시리게 맑은 빛은 띤다. 반면에 붉은 빛이 감도는 꽃에서 채취한 것은 꿀도 역시 붉은 빛을 띤다. 이러한 원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분명히 아카시아에서 채취한 것인데도 잡꿀이라 해서 가격을 깎아버린다.
벌은 성질이 특이해서 이 꽃 저 꽃 넘나들지를 않는다. 아침에 일을 나가서 처음 만난 꽃을 그날 하루 내내 찾아다닌다. 때문에 아카시아 꽃이 한참 필 무렵이면 다른 꽃은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붉은 빛을 띤 것은 잡꿀이라고, 그것이 상식이라고 우긴다. 그런데 잡꿀이 낮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향기가 불분명해서이고 둘째는 색깔이 불투명해서이다. 보기에 좋고 향기도 좋다는 것, 단지 그것뿐이다.
그렇다면 성능 면에서는 어떨까. 보기에 좋은 아카시아가 보기에 그리 좋지 않은 잡꿀에 비해 월등 좋은 것일까. 꿀이란 어차피 무엇인가 약리작용이 있다고 믿기에 설탕보다 수십 배나 비싼데도 선택하는 소위 건강식품 가운데 대표적인 품목이라 할 만하다. 잡꿀은 그야말로 이꽃 저꽃 온갖 잡꽃들의 정수가 모여서 이루어낸 명실상부한 잡꿀이다. 잡꽃에는 당연히 이런저런 온갖 약초들도 포함되는 것이니 약초들의 집합이라 해도 그리 틀리지 않다. 반면에 아카시아꿀은 향기가 좋고 보기에도 뽀얗게 맑아서 괜찮은 그저 아카시아꽃들의 모임일 뿐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이것을 따지지 않는다.
"세상이 갈수록 그렇게 되더만. 보기에 맨질맨질하고 냄새도 그럴싸하면 그것이 최고라고 생각해 버리는겨. 사람이 어째서 사람한테 사기를 당하는 줄 아는가? 사기꾼은 거짓말을 해도 살살 긁어주믄서 하거든. 그래서 거짓말도 거짓말 같지가 않고, 어떤 때는 거짓말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속아주고 싶은 맘이 생기기도 하고, 요런 것 아니겠어? 속고 나서야 어매 속았네, 해 보지만 어쩔겨. 버스는 가 부렀는디. 요새 텔레비전을 보믄 기나 고둥이나 죄다들 행복, 행복 해쌌더라고. 그놈의 소리 듣고 있으믄 금방 행복해질 것 같제? 헤헷, 참말로, 자다가 일어나서 웃다가 복창 터져 죽을 일이제."
아저씨는 말 끝에 죽는다고 웃어댄다. 거진 오 분여를 혼자서 그렇게 마구 웃어댄다. 웃음소리는 크고 통쾌스럽기도 하지만,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드러나 버린 뭔가 허망함 같은 것을 감추지는 못한다.
▲ 추수한 지가 겨우 엊그제인데 벌써 자가 도정기를 이용해 쌀을 만들어냈다. 이제 곧 서울에 있는 아들이며 딸이며 친척들 이름으로 택배발송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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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이것저것 재산도 꽤 되는 것 같다. 집은 허름하지만 논이 스무 마지기에 밭도 제법 있다. 그러나 농사는 부업일 뿐이다. 이러한 수익을 아저씨는 이때까지 모두 자식들 꽁무니에 밀어넣었다.
딸들은 일곱이나 되지만 모두 제 앞가림을 한다. 아들도 장남은 중고자동차 매매업을 하면서 남부럽지 않다. 막내아들은 목사님을 하겠다고 해서 팔 년여 동안이나 대학 학자금을 대주었는데 목사 안수를 받고서도 개척교회를 한다고 쌀이며 부식이며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아버지가 대주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 있는 한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다.
하다 보니 이제는 뭔가 좀 정리를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잘못 되어 간다는 느낌도 들고 해서 밤이면 심사가 제법 복잡하게 얽혀진단다.
"재산이랄 것도 없지만서도, 하여튼 재산은 재산인디, 이것을 짝짝 찢어서 자식들한테 노놔준다는 것도 뭔가 얼척없는 짓 같고, 잉? 안 그려?"
자식들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다른 활용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일까. 그저 앞에 사람이 있으니 한 번 해보는 말씀이겠지만, 어쨌든 나로서는 함부로 뭐라고 의견을 보태고 나설 만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이러한 고민도 행복일 수 있다는, 없는 사람은 이런 고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나 그저 막연하게 해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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