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과 감상”
요즘은 웬만해서 감동을 받지 않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대중매체들도 어떻게 해서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보려고 애를 씁니다.
여기서 ‘감동받는 것’과 ‘감상적인 것’을
같은 의미로 보지는 말아야 합니다.
유진 피터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상(sentiment)은 실제로 인간관계로 연결되지 않는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 감상이란 허울뿐인 자비심에 불과하다.
감상은 마치 남을 돌보는 마음처럼 보이고 또 자비심으로
발전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감상은 슬픈 영화를 보면 눈물을 흘리게는 하지만
실제로 병든 친구를 찾아가는 일과는 연결되지 않는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배 중에 감격적인 찬양을 드리고,
기도회에 참여하여 뜨거운 눈물을 쏟고,
또는 목사의 설교 중에 자기 생각에 꼭 맞는 말씀이 들려져
마음이 흡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에 종종 “은혜 받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때 ‘은혜 받았다’는 말들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만일 감상적인 생각이 든 것으로 은혜 받았다고 생각한다면
이 은혜는 우리의 영혼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뿐더러,
다른 영혼에게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내밀게 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진정한 은혜가 임하면 마음의 동기에 변화가 생기고,
자신의 잘못이 구체적으로 깨달아지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하여 끊을 것은 끊고,
다시 붙들 것은 붙드는 의지적인 결단과 행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우리의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바꾸어놓고,
그래서 변화된 삶으로 이어질 때 그것이 바로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은혜는 감성적인 터치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선포되어질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진리가 강단에서 이성에만 호소하는
논리적인 설교를 통해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진리는 선포되어지는 말씀을 듣는 것은 물론이요,
진심으로 찬양을 드릴 때에도, 주님과 깊이 있게 대화하는 기도 중에도,
그리고 세계역사에 임재 하셔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서도,
그리고 무엇보다 삶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명해내는
성도들 모습을 통해서 선포되어진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깊이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통해 복음의 감동이 전해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