넙치
김유석
감정부터 버려야 한다. 물속 같은 세상
나는 태생이 좌우대칭의 어엿한 어족이었으나 감정이 생기면서부터 서서히 퇴화하기 시작했다.
먹이와 먹잇감의 사슬로부터 막연한 두려움이 생기고
두려움을 견디려 무리를 짓고 무리 사이 경쟁이 생겨나고, 필경
도태되어야 하는 자아를 연민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뒤틀리는 몸, 생각을 버려야 한다.
감정에 끌리는 생각은 자학과 같아
생각이 많으면 색깔이 변하고 입이 틀어지고
눈이 한쪽으로 쏠리며 좌우 균형이 사라지고
납작한 위아래만 남아
위만 보이는 눈으로
배때기 허옇게 닳도록 바닥을 문지르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 또한 생존의 한 방식
조류와 수압에 시달려
거죽만 남듯
최대한 납작해지다가, 장난처럼
반半으로 몸을 접고 그 반을 다시 반으로, 그 반의 반을 또 반으로 접어 나가면
튀튀한 얼룩이 빠지고
눈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은비늘 돋는 치어의 품새를 되찾을지도 모른다. 그때
기억만 버리면 된다.
ㅡ 지평선 시동인 제8집 『그냥 가만히, 가만히 그렇게』(리토피아, 2023)
첫댓글 김유석 시인은 김제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시는 시인입니다. 전북 일보와 서울 신문 신춘문예 당선 그리소 동시도 신춘문예 당선 작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