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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과 그 적들
구조론과 강단학계의 기성질서는 서로 다른 사유체계와 문법기반 위에 서 있으므로 대화가 불통이다.
외부인이 구조론 비판은 불가능하다. 숫자를 모르는 원시인이 수학을 비판할 수는 없다. 구조론을 비판하려면 구조론을 배워야 한다.
아쉬운 사람이 샘을 파는 법이다. 구조론이 갑이다. 당연히 구조론은 갑질한다. 바보들과는 대화하지 않는 방법으로.
짐승이 짐승 취급을 받는 이유는 말을 못하기 때문이다. 개가 사람과 똑같이 말하면 사람대접을 해준다. 외계인은 인간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전제로 외계 생물체가 아닌 외계인으로 대접받는다.
언어가 권력이다. 구조론은 새로운 언어다.
구조론은 무오류다. 구조론은 어떤 둘을 연결하는 순서와 방향의 관계를 정리할 뿐 어떤 사실에 개입하지 않는다. 모든 오류는 개입에 의한 오염 때문에 일어난다.
1이나 2는 숫자일 뿐 수학이 아니다. 1이 1이면 2는 2라는게 수학이다. 구조론은 1이나 2를 건드리지 않는다. 사과인지 호박인지 관심이 없다. 구조론은 주어와 술어의 순서와 방향만 따진다. 1이 2보다 순서로 앞선다는 사실을 따질 뿐 과연 그게 1이 맞는지는 상관없다.
구조론에 와서 엉뚱한 소리 하는 사람의 본심은 그게 동물의 서열정리 본능이다. 수학자가 원시인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고? 그건 정치다. 구조론은 정치에 관심없다.
과학자의 방법은? 물리력 행사다. 원시인을 때려죽이면 된다. 압도적인 물리력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다. 결국 전쟁이다. 대화는 불가능하다. 실망할 필요없다. 종교계와 과학의 관계도 이와 같이 애매하다.
왜 끝장토론으로 환빠들을 박살내고 종교와 주술을 지구에서 삭제하지 않을까? 초딩 때는 박정희의 미신타파에 흥분해서 교회와, 사찰과, 무속을 쳐부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공산당이다. 중학교 2학년까지는 자생적 공산주의자였다.
내 인생의 목적은 신의 증명이다. 나는 신을 발견했고 나의 인생은 신과의 대결이다. 신이 세상을 너무 좆같이 만들어서 내 앞에 전시하기 쪽팔리는 상황이라면 내가 이긴 게임이다. 지구촌 인간들에 대해서는 진작에 환멸이다.
내 인생의 슬픔은 이런 문제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를 비슷하게라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의 관심은 행복, 사랑, 성공 따위 유치찬란하다. 그런 것은 열등의식을 들키는 것이다.
원자설의 오류, 만유인력의 오류, 진화론의 오류의 공통점은 결과측 주목.. 연역과 귀납, 의하여와 위하여 문제
원자설의 오류, 인력의 오류, 진화론의 오류는 3초에 알아챈다. 말이 필요하랴? 언어감각과 안 맞다. 문법과 틀리면 틀린 것이다. 나는 옳고 그름을 문법과 호응시켜 판단하는 기술을 터득했다. 언어적으로 어색하면 틀렸다.
‘위하여’는 어색하다. 전제와 진술의 순서가 뒤집혔다는거 모르겠냐? 진술을 전제로 삼는 문법이 어디있냐? 모든 '위하여'는 결과를 원인과 바꿔치기하는 순환논증의 오류, 후건긍정의 오류, 전건부정의 오류다.
밥을 먹는 이유가 뭐지? 그야 똥을 쌌기 때문이지. 아하! 그렇구나. 똥을 샀기 때문에 밥을 먹는구나. 인류의 수준은 대략 이 정도다. 이게 잘못된 논법인 것을 아는 인간이 지구에는 0명에 근접해 있다.
나는 어떤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 3초 안에 판단하는 방법을 터득했고 지금까지 잘 써먹고 있다. 원자설, 인력, 진화론이 다 틀린 것은 아니고 부분적으로 틀렸다. 사실이 틀린게 아니고 진행의 방향이 틀렸다.
원자설이 주어를 맡고 구조설이 동사를 맡는다. 인력은 닫힌계 개념이 전제된다. 진화론은 진화의 엔진을 드러내야 한다.
베게너의 대륙이동설과 유사하다. 대륙이 이동한 사실은 맞다. 그런데 왜 이동했는지 베게너는 설명을 못했다. 그렇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다. 대륙을 이동시키는 동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맨틀의 대류다.
생물이 진화한 것은 맞지만 자연선택설은 답이 아니다. 베게너가 말한 태양과 달의 조석력 엔진은 정답이 아니다. 구체적인 엔진을 말하기 전까지는 잠정적 합의에 그쳐야 한다. 다윈은 진화의 엔진을 말하지 못했다. 당시 DNA가 발견되지 않았다. DNA가 진화의 엔진인데 다윈이 진화의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
입자의 엔진, 원자의 엔진, 인력의 엔진을 말하지 않았으므로 뉴턴의 인력개념, 아인슈타인과 양자역학은 잠정적 합의에 그쳐야 한다.
시공간이 휘어진 것은 결과측이고 원인측에서 휘어지게 하는 엔진을 아인슈타인은 말하지 못했다. 인력의 엔진은 파동의 밸런스의 복원력이다.
인력을 설명하려면 장의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닫힌계 안에서 파동의 간섭이 축과 대칭의 밸런스 구조를 만들고 이때 대칭에서 축으로 이동하는 것이 더 안정된 포지션이 된다. 인력을 설명하려면 축 가까이 가는게 이득이라는 점을 납득시켜야 한다. 물질이 닫힌계 안에서 중심부로 떠밀리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중심에 가까운 쪽이 이겨서다.
어떤 둘 사이에는 무조건 둘의 중심에 있는게 안정된다. 왜? 흔들어대기 때문이다. 진공의 고유한 진동 때문에, 물질이 파동이기 때문에 간섭하여 계를 형성하고 안정된 계의 중심이 주변부를 이겨서 인력이 형성된다. 인력의 본질은 파동의 미는 힘이다.
된장찌개를 끓여놓으면 식으면서 가운데로 모이는 것은 입자들이 브라운 운동이 찌개 벽과 충돌하여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벽과 충돌한 척력이 가운데로 모이는 인력으로 나타난다.
활을 발견하기 전에 화살을 안다고 하면 안 된다. 뉴턴과, 아인슈타인과, 다윈이 본 것은 과녁에 박힌 화살이지 화살을 과녁에 날려보내는 활이 아니었다. 변화의 엔진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변화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다.
비인간과 대화하지 않는다. 신과의 대화로 충분하다. 신이 없는 세상은 살아줄 이유가 없다. 내가 사는 이유는 신이 이겼기 때문이다. 신이 먼저 약속을 지켜보였다. 나는 미래를 예견했고 예견은 지금까지 맞아왔다. 신의 각본을 봤다. 그것은 신이 나의 핸디캡에 대해 적절히 대응했다는 증거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다. 열살 이후 내 인생은 보너스다. 구조론을 알아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누구 좋으라고? 인간들 좋으라고? 인간들은 진리를 가질 자격이 없다.
상대성이론을 이해한 사람이 지구에 열명도 안 된다는 말이 돌았다. 가짜뉴스다. 상대성이론이 틀렸는데 뭘 이해해? 물론 다 틀린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인슈타인이 가짜뉴스를 바로잡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인슈타인은 즐겼다. 구조론은 즐긴다.
환빠, 종교빠, 무신론빠들이 드글거리는 세상에 구조론은 과분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언어와 문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을 과학자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망신당하는 것은 과학자들이다.
진리와의 조우
너무 일찍 진리를 알아버렸다. 세상과의 간극은 크다. 말귀를 알아듣는 자가 있을까? 인간 중에는 없을지라도 신은 안다. 작가는 주인공의 마음을 안다. 그렇다면 게임이다. 주인공이 갑자기 애드립을 치면 감독은 어떻게 수습할까? 신이 이겼고 내가 졌다. 나의 돌발행동을 신은 적절히 수습했다.
나는 미래를 예견했고 예언은 이루어졌다. 방랑하다가 사회로 복귀한 이유는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 존엄의 증명이다.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미래를 알고 대비하기 때문이다. 원인과 결과가 호응하기 때문이다. 환경의 간섭에 맞서 나의 미래를 능동적으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수동적 존재라면 거기서 탈출하는게 이기는 것이다. 환경의 억압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죽는 것이다. 인간이 능동적인 존재라면 자기 미래를 디자인하는 방법으로 이길 수 있다. 인간은 환경을 이길 수 없지만 미래를 이길 수 있다. 미래를 이기려면 예견이 맞아져야 한다. 맞았다. 돌아왔다.
- 환경의 억압을 이길 수 없다.
- 예견으로 미래를 이길 수 있다.
신이 할 일을 했다면 나도 장단을 맞춰야 한다. 랠리가 길게 이어지고 관객이 일제히 탄성을 지르면 공을 네트 너머로 넘겨야 한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일당의 예정된 몰락을. 그것은 미리 정해져 있었다. 그것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지형의 문제다.
순수 대 오염
주는 자 – 받는 자
입구 – 출구
원인 – 결과
갑 – 을
긍정 – 부정
능동 – 수동
주인 – 노예
파동 – 입자
진리 – 오염
어른 - 어린이
절대성 – 상대성
구조론을 알면 세상이 만만해 보인다. 도구를 쥐면 당당해진다. 구조론은 세상이라는 도구의 설명서다. 우리는 도구의 손잡이를 다룬다. 핸들을 잡지 바퀴를 잡지 않는다. 핸들만 깨끗하면 그만이지 바퀴에 뭐가 묻었는지는 신경쓰지 않는다. 세상은 양면이 있지만 우리는 좋은 면을 담당한다.
인간들이 순수한 진리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염된 것, 끝난 것, 배설된 것에 집착하는 이유는 보상을 받으려고 하는 어린이의 학습본능 때문이다. 우리는 출구에, 결과에, 받는 것에, 부정에, 수동에, 노예에, 입자에, 상대성에 관심이 있다. 그것은 오염되어 있다. 그게 다 어린이의 학습본능 때문이다.
오염 1. 이겨먹으려는 동물의 서열본능을 극복해야 한다.
오염 2. 보상받으려는 어린이의 학습본능을 극복해야 한다.
구조론의 법칙들
법칙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긍정주의, 능동주의다. 공략법을 찾으려는 심리다. 법칙이 없기를 바라는 생각은 부정주의, 수동주의다. 도망갈 구멍을 찾으려는 심리다. 강자는 능동적인 긍정주의가 되고 약자는 수동적인 부정주의가 된다.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에너지다. 에너지는 흥분하게 하는 것이다. 에너지를 결정하는 것은 호르몬이다. 호르몬을 결정하는 것은 무의식이다. 환경 안에서 자신이 강자라고 여기면 좋은 호르몬이 나오고 약자라고 여기면 나쁜 호르몬이 나온다.
상황의 법칙
머피의 법칙 뺨치는게 상황의 법칙이다. 압력이 걸린 닫힌 집단 속에서 누가 그것을 할 수 있고 그것을 막는 제대로 된 안전장치가 없으면 그 일은 이미 일어나 있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물리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닫힌계 안에는 압력이 걸려 있다. 수압이 걸린 수도관에서 물이 새듯이 계 내부의 압력은 어떻게든 조직의 약한 고리를 찾아내고 만다. 약한 고리를 찾아낼때까지 내부의 압력은 점차 증가한다.
만약 누가 그것을 할 수 있는데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오히려 그것이 집단의 리스크가 된다. 범죄를 저지를 수 있으면 범죄를 저질러야 범죄를 막는 안전장치가 만들어진다. 집단의 허술한 구멍은 낱낱이 드러내야 한다.
그 판에서 누가 호구인지 모르겠으면 당신이 바로 호구라는 말이 있다. 같은 원리다.
머피의 법칙 "잘못될 수 있는 일은 반드시 잘못된다." 아직 잘못되지 않았다면 계에 걸린 압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음속을 돌파하려고 하면 어딘가 고장난다. 아직 고장나지 않았다면 음속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속도를 점점 높이다보면 반드시 어디선가 고장난다.
아직 당신이 털리지 않았다면 타짜들이 판을 설계 중이기 때문이다. 판은 점점 커지기 마련이고 당신은 결국 털리게 되어 있다.
극단의 법칙
극단적인 수를 대입해보면 사건의 방향성이 드러난다. 11명이 뛰는 축구시합에서 골이 더 많이 터지게 하려면 선수의 수를 늘려야 할까, 아니면 줄여야 할까? 줄여야 한다.
극단적으로 수를 늘리고 줄여서 100명이 뛰는 축구시합과 1명이 뛰는 축구시합을 비교하면 된다. 1명이 뛰는 축구는 패널티킥이다. 이 법칙은 놀라울 정도로 맞는다.
주사위 던지기 확률에서 대수의 법칙과 같다. 애매한 것은 미지수에 극단적으로 큰 숫자나 작은 숫자를 넣어보면 된다. 법칙이 안 맞는 것은 노이즈 때문이다. 노이즈를 줄이면 명백해진다. 자명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노이즈는 어중간한 부분에 개입한다. 시작과 끝은 노이즈가 없다.
입으로 먹는 것과 똥으로 싸는 것은 명백하고 중간의 소화과정은 애매하다. 애매한 것은 명백하게 만들면 된다. 중간을 배제하고 입구와 출구를 비교하면 명백해진다.
라고한다의 법칙
말이 안 되는 문장 뒤에 '~라고한다'를 붙이면 말이 된다. 이는 객관화 시키는 것이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다. 과연 그럴까? 거북이가 토끼를 이기는 것으로 한다. 왜냐하면 교사의 직업이 그것이니깐.
라고한다 뒤에 왜냐하면을 붙이면 더욱 명백해진다. 지구는 평평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상대방을 약올리는게 목적이니까.
언어는 전제와 진술의 연결인데 보통 전제를 숨긴다. 그 경우 말하는 사람의 입장이 끼어들어 왜곡된다. 매개자에 의한 오염이다. 과학가의 언어는 관찰자의 개입을 배제하고 닫힌계 내부의 자체 메커니즘에 의해 규명되어야 한다. 에너지가 외부에서 유입되면 안 된다.
라고한다는 더 큰 단위의 닫힌계 안에서 숨은 전제를 찾는 것이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서 애매한 부분은 정부와 학교의 관계라는 더 큰 사건단위 안에서 명백해진다. 월급 받는 교사는 월급 주는 정부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니까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다고 말해야 한다.
짜장면이 맛있다. -> 짜장면이 맛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지가 짬뽕을 먹으려고.
메커니즘의 법칙
대칭된 A의 변화와 B의 변화를 통일하는 축 C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차원을 이동시켜 더 높은 차원에서 보면 그 차원에서는 변하지 않는 C가 변하며 그 변화는 일정한 방향성이 있다. C는 계에 걸린 압력 형태로 존재하며 압력은 항상 증대한다. 그것이 방향성이다.
바퀴는 앞으로도 구르고 뒤로도 구른다. 그러나 바퀴축은 돌지 않는다. 그러나 바퀴축도 돈다. 바퀴축을 돌리는 엔진은 돌지 않는다. 엔진이 역회전 하여 동력을 마이너스로 생산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양이 변할 때 운동은 변하지 않고, 운동이 변할 때 힘은 변하지 않고, 힘이 변할 때 입자는 변하지 않고, 입자가 변할 때 질은 변하지 않는다. 궁극적인 엔진은 질이다. 질은 압력이 걸려 있고 압력은 항상 증대한다.
수돗물을 보내는 수원지의 수압은 항상 증대한다. 비가 오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연료통에 연료는 항상 증대한다. 연료를 도로 빼가며 자동차를 거꾸로 운행하는 일은 없다. 밥은 항상 먹는다. 입으로 밥을 빼는 오버이트는 인체가 고장난 것이다. 항상 들어갈 뿐 나오지 않는다.
만약 역주행이 가능하다면 어떻게 될까? 성범죄자는 말한다. 내가 가해하여 네게 플러스 한 만큼 내가 도로 빼가면 되잖아. 가해자가 때린 만큼 피해자도 가해자를 구타하면 원상복구가 될까? 천만에. 한번 일어난 일은 절대 복구되지 않는다. 범죄자 처벌은 제 2의 범죄를 막는게 목적이지 피해의 원상회복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의하여의 법칙
'의하여'는 사건의 원인측이고 '위하여'는 사건의 결과측이다. 결과측 중심으로 기술된 모든 진술은 잘못된 것이다. 원인측을 중심으로 사건을 기술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위하여는 과학가의 언어가 아니다. 과학자의 언어는 에너지의 일방향성을 따라가야 한다.
무언가를 위하여 어떻게 한다는 말은 무언가에 의하여 어떻게 한 사실을 은폐할 때 쓰는 말이다. 혹은 그 의하여가 성립되는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적당히 둘러대는 말이다. 의하여는 상부구조다. 원인은 상부구조에 있다. 원인과 결과는 같은 차원에 존재할 수 없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은 결과다. 물이 높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원인이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은 지구의 중력 때문이고 물이 높은 곳으로 증발하는 이유는 태양 때문이다. 태양은 지구의 밖에 있다. 원인은 결과의 바깥에 있다. 활은 화살 밖에 있다.
원인과 결과를 통일하는 더 높은 단위의 사건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더 높은 차원의 닫힌계를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사건은 닫힌계 내부에서 자발성에 의해 일어난다.
우산의 법칙
부채, 우산, 젓가락, 망치와 같은 단순한 것은 더 복잡해질 수 없다. 천년이 지나도 더 복잡한 우산은 발명되지 않는다. 무언가를 더하면 오히려 불편하다. 인간도 출발점에서는 똑같다. 비교판단은 도달점에서 일어난다. 모든 비교는 환경에 오염된 정도의 비교다.
에서 으로의 법칙
언어는 전제와 진술의 대칭이다. 사건의 원인과 결과, 시작과 종결, 출발점과 도달점이 대칭될 때 한 방향으로 가는 일방향성이 드러나야 한다. A에서 이탈하여 B로 가야 한다. 화살은 활에서 이탈하여 과녁으로 간다. 제자리로 돌아오면 그것은 사건이 아니다.
돌고 있는 팽이는 회전상태로 머무르는 것이다. 태양을 도는 지구는 태양주변 타원궤도에 정지해 있다. 지구는 태양에 붙잡혀 있다. 태양 내부에 지구의 질량과 같은 질량이 맞대응하고 있으며 둘은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지구가 이탈하면 태양이 흔들린다.
불의 법칙
불을 지르기는 쉽고 끄기는 어렵다. 원인측 대응은 쉽고 결과측 대응은 어렵다. 에너지의 방향성 때문이다. 눈덩이 효과와 같다. 정상에서 대응하기는 쉽고 기슭에서는 대응하기는 어렵다. 눈덩이가 기슭까지 굴러내려오면 작은 조각들이 사방에 퍼져서 대응할 수 없게 된다.
공격수는 빌드업의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하고 수비수는 첫 단추부터 잘 막아야 한다. 바늘도둑일 때 때려잡아야 한다. 소도둑이 되면 곤란하다.
“지금 낭비하는 1분 1초가 나중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손실이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지금 진격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위험에 빠지게 된다.”[발터 모델]
사건 초기의 1초가 나중의 하루보다 중요하다. 초기조건의 민감성과 같다. 작은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 막으려면 작을 때 미리 막아야 한다.
마이너스의 법칙
아닌 것을 배제하면 남는 것이 정답이다. 귀류법과 같다. 정답을 찾지 말고 오답을 걸러내라. 헛간에서 바늘을 잃었다면 테슬라처럼 자석으로 바늘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에디슨처럼 대형 선풍기로 지푸라기를 날려버려라. 사실은 에디슨이 옳고 테슬라가 틀렸다. 많은 경우 시행착오의 법칙이 먹힌다. 올바른 길을 찾기보다 틀린 길을 배제하는게 정확하다.
사소한 일은 옳은 길을 찾으면 된다. 그러나 중요한 일은 틀린 길을 제거해야 한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보다 나쁜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동전을 잃었다면 확률이 높은 곳을 수색하면 된다. 그러나 보물을 찾을 때는 확률이 낮은 곳을 차례로 배제하는게 과학적이다.
확률이 높은 곳부터 찾으면 찾는 과정에 온통 뒤집어놔서 시간이 갈수록 찾기가 어렵게 된다. 확률이 낮은 곳부터 배제하면 갈수록 찾기가 쉬워지고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개가 냄새로 길을 찾는 배회법도 같다. 냄새가 있는 쪽을 찾는게 아니라 냄새가 끊어지는 쪽에서 방향을 틀어 냄새가 있는 범위 안에 머무른다.
중요한 승부일수록 묘수를 두기 보다는 실수를 줄여야 한다. 나의 실수를 줄이고 상대의 약점을 추궁하면 된다. 어느 쪽이든 마이너스 요소에서 승부가 난다. 나의 불안요소를 차단하고 적의 불안요소를 추궁하라. 나의 장점을 어필하면 적에게 정보를 제공하여 적을 이롭게 한다.
전력차가 크게 날 때나 중요하지 않은 싸움에서는 장점의 강조가 적을 미리 포기하게 하므로 지름길이 되지만 전력차가 작거나 중요한 싸움에서는 그러한 흔들기 수법이 먹히지 않는다.
시행착오의 법칙
인공지능의 강화학습은 시행착오를 이용한다. 인간은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을 통해 전진하는 동물이다. 정답을 찾지 말고 오답을 걸러라. 갈림길에서 틀린 길과 바른 길이 있다면 틀린 길을 먼저 갔다가 방향전환해서 바른 길로 틀어라.
이러다가 안해도 되는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일도 있다. 나쁜 것을 먼저 먹어보고 나중 좋은 것을 먹으면 이미 입맛에 가소성이 적용되어 맛이 없게 느껴진다. 맛있는 것부터 먹어야 하는 상황이 있다. 아끼다가 똥 된다.
우주 안에 플러스는 원래 없다. 플러스는 결맞음이고 마이너스는 결어긋남이다. 방향전환은 결어긋남이다. 무슨 의견을 주장할 때는 일단 NO를 해야 한다. 의심하고 부정하고 회의해야 한다. 긍정하면 질문이 필요없다. 발언권을 뺏긴다.
일이 잘 될 때 – 왜 잘되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언젠가 파토가 난다.
일이 잘못될 때 – 왜 안되는지 알게 된다. 그러므로 문제가 해결된다.
아시아는 공자가 올바른 길을 알려주는 바람에 동선이 줄어들어 망했다. 북유럽의 사회주의도 옳은 길 찾다가 환경과의 접점을 상실하여 망했다. 물리적인 환경의 장악이 우선이고 동선의 확대가 우선이다. 행동반경을 넓혀야 한다. 상호작용 증대가 정답이다.
집단의 의사결정 법칙
집단은 결정하기 쉬운 것을 결정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게 제일 쉽다. 공산당 집회가 그렇다. 가장 합의하기 쉬운 것은 지도자에게 위임하고 토달지 않는 것이다. 토론을 열심히 하지만 결론은 언제나 복지부동이다.
카이사르가 원로원 숫자를 늘리는 이유는 합의하기 어렵게 만들려는 것이다. 기존에 합의한 것을 유지하게 된다. 중국 전인대 대의원 숫자가 3천명이면 회의진행이 불가능하다. 쿠릴타이나 화백회의는 7명이 적당하다. 옵저버 빼고 핵심 참가자는 적은 숫자의 홀수라야 한다. 냉수리비에는 7명의 차칠왕등이 기록되어 있다.
대개 옳고 그름에는 관심이 없다. 집단의 동의를 구하는데 진을 뺀다. 아프리카 추장이 늘 하는 일이다. 합의를 끌어내려면 회의를 하루종일 해서 밥을 굶기면 된다. 의사결정이 힘들게 하는 방법으로 미리 정해놓은 각본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인지부조화 행동이다. 물리적으로 실행가능한 범위의 액션에 맞추어 판단을 끌어낸다. 올바른 판단은 실행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없으므로 그 안은 일단 제쳐 놓는다.
개인의 의사결정 법칙
인간은 그냥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게 보통이다. 어떤 인간이 어떤 일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유일하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가능하냐가 관건이다. 의도나 목적 따위는 없고 그냥 그것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한다. 일단 시간을 끌면서 상대의 반응을 보고 거기에 따라 대응하면 되기 때문이다.
야망, 야욕, 흉계, 음모 같은 관념적, 추상적, 심리적 요인은 대개 지어낸 거짓이다. 그냥 뭐라도 해야겠는데 할줄 아는게 그거라서 그 짓을 한 것이다. 일단 저질러놓고 정당화를 위해 이유를 만들어낸다.
자신의 결정은 중요하지 않고 상대의 반응을 끌어내는게 중요하다. 일단 상대를 약올려야 한다. 상대를 화나게 해야 한다. 사람을 격동시켜야 한다. 그러다보면 무슨 좋은 수가 나오겠지. 시빗거리를 아무거나 마구잡이로 던져본다. 액션을 계속 연결해 가는게 중요하다. 역시 인지부조화 행동이다.
여우가 잘 익은 포도를 먹는 이유는 팔이 덩굴에 닿았기 때문이고 신포도를 먹지 않는 이유는 팔이 덩굴에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석열도 재판에 이길 생각은 전혀 없고 이미 윤어게인 조직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냥 조직관리가 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므로 그것을 한다.
도박판에서 돈을 따지 못하면 도박의 속임수를 배워서 다른 사람을 속이면 된다. 자신이 사이비종교에 속으면 자기도 피해자를 끌어와서 속이면 된다. 문제의 해결에는 관심이 없고 피해를 떠넘길 대상만 찾으면 된다. 각종 음모론도 마찬가지다. 사실규명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자기보다 어수룩한 자를 찾아내면 된다. 사건의 기세를 이어가면 된다. 폭탄이 내 손에서만 터지지 않으면 된다.
마이크 잡기 법칙
스톡홀름 신드롬은 일단 발언권을 얻으려고 한다. 관종이 되는 이유다. 자신에게 역할을 주려고 한다. 나간 사람 몫은 있어도 자는 사람 몫은 없다. 역사의 순간에는 역사의 현장을 지켜야 한다. 자신을 흥분시키는 쪽으로 결정한다.
인지부조화, 스톡홀름증후군, 계급배반투표, 사이비 종교, 다단계 상술, 도박중독, 정치적 프레임, 군중심리, 각종 포비아, 음모론은 팽팽한 긴장 속에 머무르려고 하기 때문이다. 호르몬이 나오기 때문이다.
집단의 상호작용을 증대시켜 집단 내부에 권력을 만들고 권력의 흐름 속에 머무르려고 한다. 동물의 서열본능 때문이다. 진실은 인간을 을로 만든다. 자신이 갑이 되려면 이분법 프레임을 만들어 교착시켜야 한다. 선은 악으로 막고, 진보는 보수로 막고, 진리는 거짓으로 막고, 의리는 패거리로 막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발언권을 얻고 마이크를 잡는다. 소인배의 권력행동이다.
스톡홀름 피해자가 경찰이나 시민이 원하는 행동을 하면? 자신이 을이 된다. 억지 연극을 강요당하게 된다. 집단 무의식의 압박이다. 범인들을 규탄하는 성명서에 이름을 써야 한다. 집단이 시키는대로 연기를 해야 한다. 수동적 존재가 된다. 권력의 프레임에 갇힌다. 을이 되기 싫으면 일단 태클을 걸어 집단의 움직임을 교착시켜야 한다.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이겨먹기의 법칙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는 이겨먹으려는 것이다. 상대를 게임 속에 가두어 옴쭉달싹 못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이겨먹는다. 상대방의 행동을 자신이 통제하게 된다. 이는 소인배의 권력행동이다.
인간이 이런 짓을 하는 이유는 집단의 무의식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가만 있으면 본의 아니게 집단이 원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집단이 가세하면 호르몬이 나오고 흥분한다. 흥분하면 무의식 형태로 대본이 주어진다.
반대로 상대방을 게임에 가두면 자신이 대본을 쓸 수 있다. 무의식을 조종하여 상대방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다. 상대는 지지 않으려고 하다가 낚이게 된다.
이 제품이 너무 비싸서 임자가 정해져 있으므로 그 고객에게는 권할 수 없다고 말하면 고객은 오기가 발동하여 지갑을 연다. 인간은 이겨먹으려다가 낚인다. 바둑의 사석작전과 같다. 눈앞의 확정된 작은 이득을 내주고 대신 아직 확정되지 않은 큰 잇점을 차지한다.
일방향성의 법칙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을 담을 수 없다. 차원은 방향성이 있다. 언제나 전체에서 부분으로 간다. 그 역은 없다. 엎어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다.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
로또의 법칙
사지 않은 로또는 당첨되지 않는다. 옳은가 그른가 판단보다 하는가 하지 않는가 판단이 중요하다. 안 되는 일도 일단 하다보면 뒷패가 붙어 되는 일로 바뀐다. 원전은 인공지능 때문에 뒷패가 붙었다. 일단 일을 저지르고 보는게 이득인 경우가 많다.
아편전쟁은 영국 의회에서 271대 262의 근소한 표차로 통과되었다. 영국인들은 그것이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뒷패가 궁금해서 일단 질러본 것이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일은 일단 하는게 맞다. 하던 것은 적당한 시기에 멈출 수 있지만 안하던 것은 새로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한번 떠난 산업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전쟁이 일어나면 일단 전쟁터 근처에서 얼쩡거려야 한다. 역사의 순간에는 역사의 현장을 지켜야 한다. 좋은 불이든 나쁜 불이든 일단 불을 붙일 준비는 해야 한다. 나쁜 불이면 끄고 좋은 불이면 옮겨붙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