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청마문학상 수상자 자선시>
코다
-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온 엽서
하재연
공간의 구조를 빌려 와보자.
선형의 시간이 우리를 가로막을 수 없도록.
입술 말고도
가진 손가락이 아주 많았다.
그 속의 나는.
들었으므로 대답해야 하는 언어를 버리면,
태어나지 않은 나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왜 사랑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걸까.
그런데 한 나라의 말을 버리는 법에 대해
배웠어야 할 텐데.
돌아온 엽서 속의 사람은
반복되는 나의 종결부를
무한처럼 치고 있었다.
기억해내기 위해서.
그래야 하니까.
검은건반 흰건반, 검은 손가락, 흰 손가락.
시간과 순간,
사이의 끝이 구부러지고
사진틀에 걸려 있던 격자형 빛 우물에서
발생하는 음악의 무늬가 퍼져나간다.
꿈은 깨지고,
우리에게서 유리된 꿈이 빛의 태엽을 돌린다.
말 못 할 심정으로
생경하고 기하학적인 음악이
실현되고 있었다.
◆
관동군으로 징집되었던 엄마의 아버지에게서,
백일을 맞은 딸에게 온 마지막 소식은
분실된 블라디보스토크발 엽서에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엄마에게서 비롯된 어떤 날의 일기, 올리버 색스《목소리를 보았네》,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그리고 아버지를 잃을 나와 친구들에게 : 이어지는 마디를 분실하지 않기 위하여.
- 《 통영문학상 수상작품집 》. 2026. 통영문학상운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