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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등경 [104] - 12.무진의보살품 (2)무진의보살품 -방등대집경제28권
그 때 샤리푸트라는 무진의보살에게 말하였다. "착하도다. 선남자여, 그대가 이미 보살의 인바라밀의 다할 수 없음을 말하였으니, 이제 다시 보살의 정진바라밀을 말씀하시오. 보살이 얻는 바 정진이란 어떤 것입니까?" "보살은 여덟 가지 일을 원만히 갖추어 정진을 수행하되 다할 수 없나니, 그 여덟 가지란 큰 장엄을 내되 다함이 없고, 용진을 쌓고 모으되 다할 수 없고 , 모든 착함을 수행하되 다할 수 없고 , 중생을 교화하되 다할 수 없고, 도의 공덕을 돕되 다할 수 없고, 위없는 지혜를 돕되 다할 수 없고 , 불법을 돕되 다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것이 보살의 다함 없는 장엄이냐 하며, 모든 생사에 마음이 지치거나 게으르지 않고 어느 겁수 동안에 마땅히 불도를 성취한다고 계산하지 않으므로, 약간의 겁수에서 장엄을 짓기도 하고, 약간의 겁수에서 장엄을 짓지 않기도 하는지라, 보살이 장엄함에 그 겪는 겁수는 헤아릴 수 없나니, 오늘부터 생사에 이르름과 같이 , 하루 낮, 하룻 밤을 바탕삼아 이러한 서른 날(日)을 한 달로, 열 두달을 한 해로 삼아서, 이 백천만세 동안에 한결같이 도심을 내고 한결같이 부처님을 보는지라. 이와 같이 발심하여 보는 여러 부처님은 항하 모래의 수와 같으므로 그 부처님 계신 곳에서 바야흐로 모든 중생의 심행을 알며 또 이와 같이 모든 중생의 심행을 알고서도 퇴물하지 않나니, 이것을 이르되 게으르지 않는 장엄, 다함이 없는 장엄이라 합니다. 언제든지 이와 같이 부처님을 보고 발심하여 다른 중생의 마음 행하는 때를 알고 항상 계바라밀과 진바라밀과 반야바라밀을 닦아 원만히 갖추고 모든 보리돕는 법을 닦고 상호와 10력, 4무애,18불공법을 갖추어 닦고 모든 불법을 갖추어 닦음으로써 이것을 이르되 게으르지 않은 장엄, 다함이 없는 장엄이라 합니다. 만약에 보살로서 이러한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고 겁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이 보살은 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인 줄을 알지니, 이것을 이르되 보살의 장엄 다함이 없는 것이라 합니다. 어떤 것이 보살의 용진 다함 없는 것이냐 하면, 만약 삼천대천세계 가운데 가득찬 왕성한 불에서라도 부처님을 보려고 하기 때문에 이 불 속을 따라 지나가며 법을 듣고 중생을 교화하여 착한 법에 편히 머물게 하기 때문에 또 이 불 속을 따라 지나간다면 이를 이르되 보살의 용진 다함 없음이라 하리니, 무슨 인연으로 용진이라 하는가 하면,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하기 때문이며, 다른 사람을 고요하게 하기 때문이며 다른 사람을 조복하기 때문이며, 다른 사람을 멸진하게 하기 때문이며, 항상 게으르지 않고 굳고 물러나지 않아서 마음을 대비(大悲)속에 편히 머물러 언제나 부지런히 정진함은 중생을 위하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용진이라 하며, 보살이 다닐 때에 걸음 걸음 마음을 모으되 다 보리를 향함은 항상 중생을 관찰하여 교화하기 때문에 비록 이러한 관찰을 하여도 번뇌를 일으키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의 용진 다함이 없음이라 합니다. 어떤 것이 보살의 수습 다함 없는 것이냐 하면, 발기하는 모든 착한 마음은 항상 보리를 원하므로 이것을 보살의 수습이 다함 없다 함이라.왜 그러냐 하면 모든 착한 뿌리로써 무상보리에 회향하기를 처음부터 다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리자여, 마치 하늘의 비 한 방울의 물이 큰 바다 속에 떨어지매, 그 한 방울 물이 비록 적기는 하지만, 마침내 멸진하지 않는 것처럼, 보살의 착한 뿌리가 보리에 원향(願向)함도 그러하여 멸진함이 없습니다. 착한 뿌리를 수습함이란, 이른바 바른 회향으로 착한 뿌리를 수습하며, 중생을 옹호하기 위해서 이며, 중생의 모든 필요함에 따르기 때문이며, 모든 지혜를 성취하기 때문에 착한 뿌리르 수습함이니 이것을 보살의 수습 다함 없음이라 합니다. 어떤 것이 보살의 교화 다함 없는 것이냐 하면, 중생의 성품은 헤아릴 수 없으므로 보살이 그 가운데에서 응당 헤아리지 않습니다. 만약 하루 동안에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중생을 교화한다고 말하면, 이러한 계수로서 한량 없고 헤아릴 수 없고 칭량할 수 없는 겁수에 이르기까지 중생을 교화함에는 이와 같이 교화된 중생의 수를 칭량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다 하겠지만, 중생의 부분에 있어 아직 배분, 천분, 백천만분에 서 내지 산수로서나 비유로써 알 수 있는 중생을 교화하지 못하리니, 왜냐하면 , 이 중생의 성품이 한량 없고 그지없고 칙량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보살로서 이런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고 겁내지 않고 두려워 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이 보살은 정진을 부지런히 닦는 이라고 알지니, 이것을 보살의 교화 다함 없음이라 합니다. 어떤 것이 보살의 도 돕는 것의 다함 없음이냐 하면, 보살이 닦는 바 도 돕는 공덕은 한량 없고 그지없으므로 보살이 그 가운데에서 응당 한량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하면, 모든 중생의 공덕으로써 과거.미래, 현재의 것이나 성문, 연각의 모든 공덕은 부처님에 있어서는 한 털구멍의 공덕을 성취함이라. 이러한 낱낱 털구멍의 공덕으로부터 내지 온갖 털구멍의 공덕을 모아 성취하여서 처음 여래의 한 수형호를 성취하며, 낱낱 수형호로부터 내지 모든 수형호의 공덕을 모아 성취하여서 여래의 한 모양을 성취하며, 이러한 낱낱 모양으로부터 내지 30상을 모아 이러한 30상의 백 배 공덕으로써 처음 여래 눈섭 사이 백호상을 성취하고 내지 백호의 모양을 배로 닦는 백천 공덕으로 처음 여래의 볼 수 없는 정수리 모양을 성취하나니, 이것을 보살의 도 돕는 공덕 다함 없음이라 합니다. 어떤 것이 보살의 지혜 돕는 것의 다함없음이냐 하면, 보살이 닦는 바 지혜 돕는 것이란 한량 없고 그지없으므로 보살이 그 가운데에서 응당 수를 한정하지 않습니다. 만약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이 한 신행으로써 지혜를 성취하더라도 이러한 신행을 한 법행으로 성취한 지혜에 비교한다면 백분,천분.백천분, 백천만분에서 내지 산수로서나 비유로써 미칠 수 없으며, 삼천대천세계의 중생이 다 법행이 되더라도 한 8인이 성취한 지혜에 비교한다면 백분,백천분,백천만분에서 내지 산수로서나 비유로써 미칠 수 없습니다.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이 다 8인의 지혜가 되더라도 한 수다원이 성취한 지혜에 비교한다면 백분.천분.백천분.백천만분에서 내지 산수로서나 비유로써 미칠 수 없으며,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이 다 수다원의 지혜가 되더라도 한 사다함이 성취한 지혜에 비교한다면 백분.천분,백천분.백천만분에서 내지 산수로서나 비유로써 미칠 수 없으며,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이 다 사다함의 지혜가 되더라도 한 아나함이 성취한 지혜에 비교한다면 백분,천분.백천분,백천만분에서 내지 산수로서나 비유로써 미칠 수 없습니다.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이 다 아나함의 지혜가 되더라도 한 아라한이 성취한 지혜에 비교한다면 백분,천분, 백천분, 백천만분에서 내지 산수로서나 비유로써 미칠 수 없으며,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이 다 아라한의 지혜가 되더라도 한 연각이 성취한 지혜에 비교한다면 백분,천분,백천분.백천만분에서 내지 산수로서나 비유로써 미칠 수 없으며,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이 다 연각의 지혜를 성취하더라도 한 백 겁 동안 보살의 성취한 지헤에 비교한다면 백분,천분.백천분.백천만분에서 내지 산수로서나 비유로써 미칠 수 없으며,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이 다 백 겁 동안 보살의 성취한 지혜가 되더라도 한 참음을 얻은 보살의 지혜 성취함에 비교한다면 백분,천분.백천분,백천만분에서 내지 산수로서나 비유로써 미칠 수 없습니다.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이 다 참음을 얻은 보살의 성취한 지혜가 되더라도 한 물러나지 않는 보살이 성취한 지헤에 비교한다면 백분,천분.백천분.백천만분에서 내지 산수로서나 비유로써 미칠 수 없으며,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이 다 물러나지 않는 보살의 지혜를 얻더라도 일생을 지난 뒤 부처님 지위에 후보될 보살이 성취한 지혜에 비교한다면, 백분,천분,백천분,백천만분에서 내지 산수로서나 비유로써 미칠 수 없으며 한량 없고 그지없는 세계의 중생이 다 부처님 지위에 후보될 자가 성취한 지혜와 같게 되더라도 한 여래의 시처(是處), 비처(非處)의 지혜에 비교한다면 백분,천분,백천분,백천만분에서 내지 산수로서나 비유로써 미칠 수 없습니다. 일괄하여 말하자면, 여래의 모든 힘과 두려움 없음과 같지 않은 법도 그러하나니, 만약에 보살이 이런 말을 듣고서 놀라지 않고 겁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이 보살은 정진을 부지런히 행하는 사람인 줄을 알지니, 이것을 이르되 보살이 지혜 돕는 것의 다함 없음이라 합니다. 어떤 것이 보살의 슬기 돕는 것으 다함 없음이냐 하면,, 모든 중생의 심행(心行)은 다할 수 없으므로 보살은 그 가운데에서 응당 계수(計數)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에 3세 중생의 모든 심행을 어떤 사람이 한 생각 중에서 이러한 삼세 중생의 모든 심행을 갖춘다면 이러한 생각생각에서 다 이와 같은 모든 심행을 갖추게 되어 한 사람의 심중에 갖추는 심행과 같이 모든 한량 없고 그지없는 중생도 다 그러하리며, 만약에 과거, 미래.현재 중생의 모든 탐욕과 음식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온갖 번뇌를 어떤 사람이 한 생각 중에서 이러한 삼세 중생의 모든 번뇌를 갖춘다면 이러한 생각생각도 마땅히 그와 같이 온갖 한량 없고 그지 없는 번뇌를 갖추게 되어 한 사람 심중에 갖춘 온갖 번뇌와 같이 모든 한량 없고 그지없는 중생도 다 그러합니다. 보살이 그 중에서 지혜의 광명을 내매, 한 생각의 광명에는 아무런 티끌과 가림이 없어 과거 .미래,현재 중생의 번뇌와 모든 마음의 반연하는 경계와 나고 머물고 사라지는 모양을 남김없이 다 비추나니, 이 보살은 모든 중생의 삼세에 서로 응하는 번뇌를 다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사리자여, 마치 허공이 덮어주지 않는 곳이 없는 것처럼, 보살의 지혜 광명도 그와 같아서 비추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만약에 보살이 이런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고 겁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이 보살은 정진을 부지런히 행하는 사람인 줄 알지니, 이것을 이르되 보살의 슬기 돕는 것의 다함 없음이라 합니다. 어떤 것이 보살의 불법 돕는 것을 닦는 일 다함 없음이냐 하면 , 보살이 행하는 바 불법 돕는 것의 닦는 일은 한량 없고 그지없으므로 보살은 그 가운데에서 응당 헤아리지 않습니다. 처음 발심할 때로부터 도량에 앉을 때까지 그 중간에서 6바라밀을 수행하여 원만히 갖추고 모든 조도법(助道法)을 수행하여 원만히 갖춤으로써 이와 같이 발심하여 수행한 모든 착한 뿌리는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이 다 불법을 돕는지라. 이를 이르되 보살의 수행은 불법을 돕는 것이 다함 없다 하고, 보살의 여덟 가지 일 수행은 그 정진이 다함 없다고 합니다. 또 사리자여, 보살의 정진도 다 할 수 없습니다. 몸의 착한 업이거나 입의 착한 업이거나 뜻의 착한 업에 항상 부지런히 중지하지 않나니, 왜 그러냐 하면 , 보살이 정진하는 일은 언제나 몸과 입과 뜻과 더불어 서로 응함으로써 몸과 입의 정진함이 다 마음을 연유한다 하지만, 마음을 증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보살의 마음 정진이냐 하면, 이른바 마음의 처음과 마음의 끝이니, 마음의 처음이란 처음 발심하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보리심이 적멸하기 때문이며 마음의 처음이란 모든 중생에게 대비를 일으키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나와 남이 없기 때문이며, 마음의 처음이란 모든 중생을 거둬주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모든 법을 갖지 않기 때문이며, 마음의 처음이란 생사를 싫어하지 않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3계가 없기 때문이며, 마음의 처음이란 온갖 것을 버리기 때문이고 , 마음의 끝이란 갈봄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처음이란 계를 받아 지니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계를 지니지 않기 때문이며, 마음의 처음이란 참음을 수행하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성냄과 싸움이 없기 때문이며, 마음의 처음이란 모든 착함을 발심 수행하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홀로 난잡하지 않기 때문이며, 마음이 처음이란 선정을 닦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이며, 마음의 처음이란 많이 들어도 싫어함이 없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잘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처음이란 수습하여 묻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법에 말이 없기 때문이며, 마음의 처음이란 지혜를 구하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희론을 끊기 때문이며, 마음의 처음이란 다섯 신통을 갖추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누진(漏盡)을 갖추기 때문이며, 마음의 처음이란 염처(念處)를 내기 때문이고 , 마음의 끝이란 염하되 생각함이 없기 때문이며, 마음의 처음이란 정근(正勤)을 내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착함과 착하지 않음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처음이란 여의분(여의분)을 내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보득(報得)을 갖추기 때문이며, 마음의 처음이란 모든 감관(根)의 방편을 내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모든 감관의 법을 관찰하기 때문이며, 마음의 처음이란 모든 지혜를 모으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지혜가 헐지 않기 때문이며, 마음의 처음이란 보리 돕는 갈래(調菩提分)을 내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모든 깨달음의 방편을 잘 분별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처음이란 도 돕는 법을 구하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진취(進趣)함이 없기 때문이며, 마음의 처음이란 적멸을 구하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영원히 적멸하기 때문이며, 마음의 처음이란 슬기를 발기하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법을 잘 알기 때문이며, 마음의 처음이란 인을 깨달아 알기 때문이고 , 마음의 끝이란 인을 잘 알기 때문이며, 마음의 처음이란 다른데를 따라 듣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모든 법에 방일함이 없기 때문이며, 마음의 처음이란 장엄한 꾸밈을 내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성스럽게 잠잠하기 때문이며, 마음의 처음이란 三해탈을 행하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조작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