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예술
Technique and Art 技术与艺术
예술은 기술인가 기술이 아닌가? 원래 예술과 기술은 (분화되지 않는) 하나다. 서양, 동양을 포함한 모든 지역에서 예술(Art, 藝術)은 ‘무엇을 만드는 탁월한 기술과 기술을 통한 미적 결과물’이었다. 그렇지만 예술과 기술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먼저 예술의 어원과 기술의 개념을 살펴보자. 예술(Art, 藝術)은 여러 가지 자료, 방법, 사조 등을 바탕으로 감상과 참여의 대상이 되면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인간의 활동과 그 작품이고, 기술(Technique, 技術)은 과학적 이론을 실제에 적용하여 인간 생활에 쓸모 있도록 무엇을 실행하는 수단이다. 예술과 기술이 하나였다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유용성과 미적 감각이 아름답게 조화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예술은 기술의 기능이 필요한 것이고 기술은 예술의 아름다움이 필요한 것이다. 기술과 예술이 하나였던 이유는 인류 초기의 생존 환경과 관련이 있다.
도구를 사용하는 인류를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약 233만 년~140만 년)라고 한다. 호모 하빌리스는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약 190만 년~7만 년)로 진화한 이후 손이 자유로워져 더 정교하고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도구를 제작할 줄 알고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인 호모 파베르(Homo Faber)가 되었다. 초기 인류가 생존과 생활에 필요한 것을 만들 때 쓸모인 유용성 또는 효용성을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 인류는 쓸모 있는 도구를 만들 때 아름다움을 가미하게 되었다. 그리고 생활에서도 실용성과 미학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고대 인류는 실용성, 유용성, 효용성을 기술로 구현했다. 초기 인류에게는 기술이 예술이고 예술이 기술이었다. 고대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 피라미드, 룩소르의 고대 건축, 아테네의 원형극장, 한국의 불상, 전설 속의 성배(Holy Grail), 잠든 미라, 무덤의 장신구 등은 모두 실용적 기술이면서 아름다운 예술이다.
예술과 기술의 개념을 살펴보면 두 개념의 어원이 약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술(art)은 인도유럽공통조어 ‘~에 적합한’인 h₂er-가 어원이다. 여기서 고대 그리스어 ‘적당함’인 아르티(ἄρτι, árti)가 되었고 라틴어 명사형 아르스(ars)와 아르템(artem)이 되었다가 영어를 비롯한 서구어에서 아트(art)로 바뀌었다. 그러니까 예술은 원래 ‘적당하게 무엇을 하는 기술’이라는 의미였다. 아트(art) 안에 기술과 예술의 두 가지 의미가 들어있다. 한편 기술의 또 다른 어원 테크네(τέχνη, tékhnē)는 ‘생산하다, 만들다’라는 뜻이다. 테크네는 고대 그리스어 기술, 기예, 기능, 공예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테크네의 어원은 인도유럽공통조어 ‘생산하다, 만들다’인 tetḱ-다. 테크(tetḱ)와 연관되는 것은 목수를 의미하는 tetḱō다. 따라서 tetḱ는 (목수가 목재를 가지고 무엇을 만드는 것처럼) 기능적으로 무엇을 만드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테크네는 설득의 기술, 제작의 기술, 연주의 기술, 치료의 기술을 비롯하여 통치, 운동, 모방, 시창작, 조각, 산수, 사냥, 요리, 건축, 직조, 조선 등의 기술 또는 기예였다. 처음에 테크네는 손을 이용한 기술이었다가 손과 몸을 이용한 목적 수행 기술로 바뀐 다음, (탁월하고 훌륭한 덕을 실현하기 위한) 지식과 기술로 바뀌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술[테크네]을 가진 사람을 덕과 지혜가 있는 인간으로 보았다. 그러니까 아트는 무엇을 만들 때 적합한 기술을 강조하는 개념이고 테크네는 기술의 탁월함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이처럼 어원과 의미가 약간 다르지만 아트와 테크네는 목적을 가지고 훌륭한 제품을 만든다는 지향점은 같았다. 그리고 서양과 동양을 포함한 모든 지역에서 예술(藝術)은 ‘무엇을 만드는 훌륭한 기술과 그 미적인 결과물’이었다.
근대에 들어 순수예술이 (공예)예술에서 분화했다. 그것은 르네상스와 휴머니즘을 거치고 바퇴(C. Batteux), 칸트(I. Kant) 등의 미학이론이 등장하면서 순수예술의 가치와 의미가 새롭게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순수예술은 창의성과 상상력을 위주로 하는 고급예술(high art), 대예술(Greater art), 주류예술(Major art), 예술을 위한 예술, 비응용예술/비실용예술, 무목적의 목적(Purposiveness without Purpose), 특별한 사람들의 유미주의 예술로 개념이 정립되었다. 근대 이후 예술은 순수예술을 중심으로 하면서 비순수예술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한편 기술 테크네는 현대어에서 테크닉(technique)으로 번역되어 유사한 개념으로 쓰인다. 기술의 방법론을 강조한 테크놀로지(technology)는 실제적 목적을 위해 공학에 적용한 방법론이다. 현대사회에도 여전히 예술작품을 창작하거나 예술 행위를 할 때 예술적 기술(Artistic technique)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예술과 기술은 상호의존적이다.(김승환)
*참고문헌 Aristoteles, Aristotelis Metaphysica, edited by Werner Jaeger, Oxford Classical Texts, (Oxford University Press, 1957). 981a24-30.
*참조 <공예>, <기술>, <기술[하이데거]>, <대예술과 소예술[모리스]>, <르네상스>, <무목적의 목적>, <미학>, <순수예술>, <예술>, <유미주의>, <장식미술>, <테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