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 『원미동 사람들』
1. 양귀자의 연작 소설 <원미동 사람들>은 1980년대 서울과 인접한 신흥도시의 시대적 변화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개성있는 사람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그것은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변모되는 도시화의 과정이기도 하며, 대도시 서울의 집중 속에서 만들어지는 변경을 통해 주류 사회에 진입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험난하고 치열한 생존투쟁에 대한 기록이기도 한 것이다. 실제 부천 원미동에서 거주한 경험이 녹아있는 이 작품에 대하여 작가는 말한다. “원미동은 마구 헝클어져 나뒹구는 욕망의 실꾸러미로 싸여진 동네이다. 그 한 쪽 끝을 따라가다 보면, 각각의 복잡한 관계가 개인의 차원을 이미 벗어나 깊은 역사성을 띠고 있음을 깨닫게 하고 있었다.”
2. 원미동은 농촌에서 생계를 위해 올라왔거나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거주지이다. 서울에서의 생존이 힘겨운 사람들의 집합처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에서 전세를 전전하던 회사원이 부천 원미동에 집을 구입하고 이사할 때에도 결코 만족스런 기분을 가질 수 없다. 원미동으로 가는 길은 “여기저기에 제멋대로 세워진 연립주택과 시세없는 상가주택들이 옛날의 논밭자리 위에 흩어져 있고 멀리 공단 쪽의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풍경으로 각인되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이 경험하는 원미동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그 곳에서 오래 거주하던 농민의 심정 또한 복잡하다. 도시화의 변화 속에 비싼 땅값을 얻어 물질적으로 부유해졌지만 과거의 일상을 잃어버린 농민은 변화의 흐름을 흔쾌히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씨뿌린 땅에서 거두어들이는 수확이 아닌 담에야 어찌 땅 팔아서 그 돈으로 쌀 사고 채소 사며 살 수 있을 것인가. 농사꾼 주제로는 평생 만져볼 엄두도 못내는 큰돈이 굴러들어왔어도 쉽게 생긴 내력만큼 씀씀이도 허망하기 짝이 없구나”
3. 삶의 물질적 여유를 갖지 못한 원미동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빵‘이었다. 그들의 갖고 있던 꿈이나 인간적인 욕망은 언제나 생계에 대한 압박 속에서 무너지고 변모되었다. 작은 슈퍼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새롭게 개점한 상점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것은 뻔한 판매량을 나눠가질 때 초래하는 어려움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생계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압박과 폭력은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장면이다. 타인을 관용할 수 없는 물질적 조건이 인간적 여유까지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상점경쟁에서 발생하는 이익에만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들의 싸움에는 거리를 둘 뿐이다. 어쩌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 모른다. ”어느 쪽으로 가나 한쪽의 눈총이 뒤통수에 달라붙어 있기는 마찬가지겠지만 섣불리 굴었다간 괜히 이웃 간에 정말 날 것이고 하여간 난처한 일이었다.“
4. 생활의 어려움은 노동자의 삶 속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노동의 댓가를 받지 못하고 고생하는 일용노동자의 한탄과 지하실 공장에서 생활하는 젊은 노동자의 모습은 숨겨져 있지만 고통받고 있던 당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이다. 월세가 싸다는 이유로 계약한 지하실방은 화장실이 없으며 그 곳에 살고있는 젊은이의 가장 큰 고민은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는 것이다. 주인집은 약속과는 달리 문을 개방해주지 않고 있으며 동네 집들도 차츰 문을 단속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비워있는 공간에서 해결해야 하는 비참함은 인간의 존엄까지 무너뜨리는 슬픈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적은 돈이라도 빨리 모아 현재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월급이 많아지면 적금을 하나 들 수도 있었다. 적금을 못넣더라도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고향의 어머니에게 약값 쯤은 더 얹어 우송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무엇보다도 지하실방을 떠나서 좀더 나은 방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적어도 마음놓고 사용할 수 있는 변소가 있는 곳으로.”
5. 노동자의 고통은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다. 그렇기에 월급을 받지못한 노동자는 사장의 집으로 찾아가서 항의하는 것이 다이며, 지하실 공장의 젊은 노동자 또한 파업참여에 주저하는 것이다. 현실의 고통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분명 시대적 착취와 구조적 억압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지만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그것은 명확하게 파악되기 어렵다. 월급을 올려주지 못하는 사장 또한 노동자 출신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출입을 거부한 주인여자도 첩으로 살아가는 여자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고통의 실제적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사회학적 시각으로 본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 아닌 일상에서의 대립은 어쩌면 이처럼 평범하고 찌질한 사람들 사이의 갈등으로 보여지고 있을 뿐이다.
6. 80년대의 시대적 모습을 개인적 아픔과 낭만적인 감성으로 접근하는 것은 어쩌면 시대의 고통을 은폐시키는 형태로 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원미동 사람들의 모습은 결코 왜곡된 현실이 아니며 실제로 진행되고 쉽게 만날 수 있었던 80년대의 시대적 풍경일 뿐이다.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증오 그리고 타협과 거부의 움직임은 때론 봉합되고 때론 충돌하면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이러한 평범한 사람들의 정직하고 솔직한 모습에서 어떤 ‘희망’을 발견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비록 충돌하고 갈등을 겪는 사람들이지만 그것은 결코 근본적인 악행의 결과가 아니라 자신을 삶을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욕심이었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월급을 받지 못한 일용노동자는 자신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에 정직하였으며, 지하실에 살고 있는 젊은이는 주인집 여자의 사정을 이해하였고, 깡패들의 폭행을 막는 마을 사람들, 오랫동안 술판을 떠돌던 찻집 주인여자를 연민으로 바라보는 한 남자 모두가 개인적인 방식으로 타인에 대한 자신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시선은 구조적 변화에 앞선 개인이 가져할 타인에 대한 존중과 인간적 따뜻함의 우선됨을 말하는 것이다.
7.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이야기는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이어지는 언어의 관계 속에서 생성되며 그것은 인간이 지닌 오해와 불신의 단단함을 붕괴시키는 역할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타인들의 시선이 짐승으로 느껴져 세상과 괴리하는 것도, 폐쇄된 공간 속에서 분노하는 것도, 평범한 사람들을 악마화하면서 선동하는 것도, 근본적으로 인간 사이의 관계를 개선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서로에게 애정을 갖고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어떤 변화의 흐름도 살만한 세상으로 탈바꿈할 수 없다. 인간의 대한 존중은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형성된다. 타인의 이야기의 귀를 기울이고, 나의 언어를 전달하면서 인간적 관계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그것을 노래하는 방울새을 통해 표현한다. “방울같은 목소리로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만 그것은 방울새로 불려진다. 노래하지 않고 있는 방울새는 단지 잿빛 깃털을 가진 한 마리의 날 것에 불과하였다.” 작가의 그려낸 ‘원미동 사람들’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의 이웃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를 소통시키는 공간이었다. 우리가 만나고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만들고 이해하기 위한 시작이었다. 인간에 대한 이해는 비록 시대적 환경 속에서 약간의 외형적 차이를 보일 수는 있을지라도 <원미동 사람들>에서 보여준 인간에 대한 진지한 애정은 시대와 상관없는 근본적인 우리들의 시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때론 비판적 시선도 필요하겠지만, 우선은 인간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첫댓글 - 이제 '과거는 아름답다!' 소설로 읽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존이 최우선이었던 그 가난을 겪어온 세대들에게도 그럴까? 다함께 겪는 가난이었지만 각자가 겪는 가난은 그저 지긋지긋한 기억만 남길지도 모른다. 시간은 지났지만 오늘날에도 그 가난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