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Foro Romano(로마 포럼)
포로 로마노
(가) 개요
나는 벽돌로 된 (로마시를) 받아서 대리석으로 된 (로마시를) 떠나노라.
아우구스투스(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포로 로마노(이탈리아어: Foro Romano, 라틴어: Forum Romanum, 영어: Roman Forum)는 이탈리아 로마시 제1구 몬티(Monti)동에 위치한 유적으로, 고대 로마 시대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이다. 포로 로마노는 로마 구도심 한복판에 자리하여 이 곳을 중심으로 로마 도심이 뻗어나갔으며, 이 곳에서 로마 공화정 시기의 개선식, 공공 연설, 선거 발표, 즉위식 등 국가의 중대사가 열렸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포로 로마노에 대대적인 개축 작업을 실시하였으며, 제정 시기에도 트라야누스 황제가 포룸을 짓는 등 몇백 년간 로마 제국의 정치적 상징으로 남았다. 전성기에는 제국 전역에서 가장 호화로운 장소이자 로마 문명의 핵심이었고, 수백만 명이 이곳을 찾았다.
다만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마지막으로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거친 이후, 로마 제국이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으로 나뉘고 로마가 속한 서로마 제국이 붕괴하기 시작하면서 포로 로마노도 쇠락해갔다. 야만족들의 침입으로 한때 장려했던 신전과 포룸들은 무너져 내렸고, 로마 시민들은 자신들의 주택을 보수하기 위하여 포룸의 석재를 떼어갔다. 게다가 가톨릭 교회에서도 성당을 짓기 위하여 포룸의 대리석 기둥들과 장식물 등을 대거 떼어가면서 포로 로마노는 현재와 같은 폐허로 전락하였다.
(나) 이름
'포로 로마노'(Foro Romano)는 현대 이탈리아어 지명으로, 라틴어로는 '포룸 로마눔'(Forum Romanum)이라고 부른다. 고대 군항이던 타란툼이 현대 이탈리아 지명으로는 타란토이고 네아폴리스는 나폴리인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이 '포룸'이라는 단어는 영단어 '포럼'(forum)의 어원이기도 하다.
(다) 모습
트라야누스 황제 시기이자 포로 로마노의 최고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복원한 그림이다. 맨 위의 황금빛 지붕 건물은 최고신 유피테르를 모시는 유피테르 신전으로, 로마에서 가장 높은 언덕인 카피톨리누스 언덕 위에 있었다. 현재는 로마 시청사가 이 곳에 세워져 있다. 카피톨리누스 언덕 바로 아래쪽, 색색의 석재 기둥들이 세워져 있는 직사각형의 광장과 이를 둘러싼 건물들이 바로 포로 로마노로, 당시 로마 권력의 심장부였다. 한편 그림 오른쪽 밑에 있는 거대한 건물군들은 '황제들의 포룸'(Fori Imperiali)라고 불리며, 포로 로마노와 인접해 있기는 해도 엄연히 다른 구역이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네르바, 트라야누스 등 로마 최고의 권력자들이 이 곳에 연이어 포룸들을 지었으며, 공공 회의장이나 정부 청사 등으로 쓰였다. 다만 20세기 초에 베니토 무솔리니가 로마 제국의 부활을 외치며 이 황제들의 포룸 유적지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는(...) 도로를 만들어버렸기에 현재는 모습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참고로 이 도로를 '비아 사크라', 즉 신성한 도로라고 부른다.
4. 역사[편집]
원래 포로 로마노가 세워진 자리는 습한 저지대로, 물이 고여있어 사람들이 살기 힘든 지역이었다. 다만 기원전 7세기 경 대규모의 간척 사업이 진행되면서 물이 빠져나갔고, 이후 인구가 증가하면서 점차 로마 도심의 한복판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특히 포로 로마노는 당시 로마를 양분하던 로물루스와 티투스 타티우스의 세력이 만나는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로 인하여 두 세력이 서로 교류하기 위하여 포로 로마노에서 만나면서 더더욱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포로 로마노는 점차 거대한 시장판으로 변모해갔고, 인구 유동성이 로마에서 가장 높은 지역으로 떠올랐다. 정치인들은 당연스레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포로 로마노에서 연설, 선거운동, 재판 등을 열었고, 이에 따라 점차 포로 로마노는 정치적 중심지가 되기 시작한다. 로마 왕정 시기에 로마의 왕들은 포룸에 행정 건물들을 다수 지었으며, 2대 왕 누마 폼필리우스는 이 곳에 베스타를 모시는 신전을 지어 베스타를 모시는 여사제들을 거주하도록 하였다. 왕정이 몰락한 이후인 로마 공화정 시기에도 포로 로마노는 여전히 정치의 중심지로 남았다. 사투르누스 신전과 카스토르와 폴룩스 신전, 콩코르디아 신전 등이 이때 세워졌고, 술라는 포룸 한복판을 대리석 판석으로 포장하였다. 기원전 78년에는 공공 기록관이 들어섰고, 기원전 44년에는 암살당한 카이사르의 시신을 이 곳에서 장례를 치렀다.
카이사르의 뒤를 이어 즉위한 아우구스투스는 포로 로마노에 대대적인 개축 공사를 실시하면서 제국의 중심에 맞게 변모시켰다. 그는 아우구스투스 개선문과 율리우스 신전 등을 지었으며, 베스타 신전 등을 보수하기도 했다. 이후 로마 제국 시기에 역대 황제들의 대관식이 바로 이 곳에서 열렸으며, 중요한 정치 행사나 개선식에 포로 로마노가 사용되었다. 다만 네 황제의 해에는 늙은 황제 갈바가 이 곳에서 암살당했으며, 오토 황제도 이 곳에서 친위대에게 목숨을 잃기도 했다. 트라야누스 황제는 포룸 뒤쪽에 거대한 트라야누스 포룸을 지었고, 이후 행정 업무는 대부분 트라야누스 포룸으로 이전되었다. 203년에는 현재까지도 남아 있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개선문이 파르티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새로 들어섰으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시기에도 새 바실리카나 포룸들이 연이어 지어지면서 로마 제국 전역에서 가장 호화롭고 번성한 곳이라는 영예를 몇 백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누릴 수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절에는 포로 로마노에 마지막 리모델링 공사가 이루어지면서 그때까지만 해도 나름 건재했던 로마의 위상을 과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