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竹菴公(啓文) 遺稿[죽암공(계문) 유고]
죽암공은 휘는 계문(1865~1951)은 방촌에서 출생, 1951년에 향년 8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자는 창여(昌汝)이며, 호는 죽암(竹菴)이다. 그의 죽암사고(竹菴私稿)에 수록된 작품으로는 시(詩) 204수와 유기(遊記) 금강산유상록(金剛山遊賞錄)이 있다. 죽암공과 교유한 시우(詩友)들의 작품 23수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유고집)
■ 老松(노송)
蒼髥枯榾老風煙 잿빛 수염 앙상한 등걸에 늘 풍진(風塵)이 몰아치면
獨立亭亭太古年 홀로 서서 꼿꼿이 오랜 세월 견디었다
秦皇封爵云何世 진시황이 벼슬을 내리던 때가 언제련가?
餘蔭兒孫滿四邊 조상의 음덕으로 자손들이 그득하리라
■ 別章 (이별의 노래)
庭園雪積竹愈豪 뜨락에 눈이 쌓일수록 대나무는 기상을 드러내고
洞壑雲收山更高 깊은 골짜기의 구름이 걷히니 산이 더욱 높아진다
佚宕斯間多別味 삶의 굴레를 벗는 곳에서는 색다른 일도 많았네
其何歸路各分臯 어이해 돌아가는 길엔 저마다 다른 고개를 넘는가
■ 遊永慕齋(유영모재)
步上高樓緩踏靑 걸어 높은 누각에 올라 느긋이 들놀이를 즐기나니
人間何處又名亭 세상 어디에 이만한 정자가 또 있을까!
雲林如畵兼泉石 운림은 그림 같고 아름다운 산수도 갖추었는데
數日靈區俗夢醒 여러 날 신령스런 꿈이 속된 꿈을 깨운다
※ 운림(雲林) : 은거 숨어 사는 곳
■ 餞春(잔춘, 봄을 보냄)
擧盃共坐落花天 술잔 들고 꽃 지는 하늘 아래 함께 앉았는데
草滿新阡水滿川 새로 일군 이랑엔 풀이 가득하고 내는 물이 넘친다
未挽東皇敀去軾 동황을 만류할 수 없지만 가는 수레 붙잡아 보는데
悠悠此恨古今年 끝나지 않는 이 슬픔은 옛날부터 늘 그랬었더라
※ 동황(東皇) : 봄의 신(神)
■ 桂陽自井邑來留雨中戱作
(정읍에 사는 계영이 찾아와 머물 때, 놀이 삼아 지음)
遠客頻來情益多 멀리 사는 손님은 자주 올수록 정이 두터워지는데
夕陽牕外竹風斜 해지는 창밖에는 대나무가 바람에 기운다
稻熟前村饒秋興 벼 익는 앞마을에는 가을 기쁨이 넉넉한데
霖連山麓歇樵歌 장맛비 산기슭에 연이으니 나무꾼의 노래가 그쳤다
吾惟安土故鄕里 나는 본거지에 편히 남아 고향마을에 있는데
子是由貧異境家 그대는 가난으로 타향 남의 집에 있구려
伊今逢席莫敀去 이제 자리를 같이 했으니 서둘러 가지는 마시지요
白髮餘年知幾何 백발이 성성한데 남은 해가 얼마나 될지 알겠소!
■ 卽事 (즉흥시)
綠陰多處卽帷坮 녹음 우거진 곳이 바로 휘장 두른 누대인지라
自是遊人常往來 가만두어도 유람객들이 늘 오고 간다
白石千層山勢壯 호깨나무 천 겹으로 우거지고 산세 웅장한데
平郊十里海門開 성 밖 너른 들 십리 너머에 바닷 문이 열린다
閑中日月永如年 한가히 지내니 하루 한 달이 한 해처럼 오래인데
高臥層欄但聽泉 여러 층 난간에 높게 누워 샘물소리에 귀 기울인다
蟄伏窮何所樂農 숨어 엎드려 곤궁해도 어디에서나 농사를 즐기나니
談朝村夕野人傳 아침을 이야기하는 시골 저녁을 촌로가 전해준다
■ 咏竹 (대나무를 노래함)
數莖叢竹綠成坮 몇 그루 무리지은 대나무는 파랗게 정자되었고
時有淸風故舊來 이따금 맑은 바람이 불면 오랜 벗들이 찾아온다
庭畔逍遙閑步立 뜨락 모퉁이를 거닐다 한가히 걸음을 세우는데
歲寒高節爽神開 날이 꺾이지 않는 절개가 정신을 상쾌히 틔운다
■ 除夕 (己未年長川齋) [제석(기미년장천재)]
守歲年年同此心 그믐을 지킬 때는 해마다 늘 이런 마음이니
無塵淸話夜將深 티끌 없이 맑은 이야기로 밤이 깊어간다.
送舊神方傾椒酒 묵은해를 보내는 비방은 산초 술을 기울인 것이고
來春消息向陽林 다가오는 봄소식은 산자락을 향한다
白髮老仙競不睡 백발의 신선은 끝내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靑衣少輩拜相尋 푸른 옷의 젊은 무리는 세배하러 찾아다니는 구나
今夕莫言知音少 오늘 저녁에는 知音이 드물다고 탓하지 않을지니
山水中間自在琴 산수에 묻혀 마음가는대로 거문고를 뜯는다
※ 산초술 : 설에는 어른에게 이 술을 올려 장수를 축원했다
(144-096일차 연재에서 계속)
첫댓글 (144-095일차 연재)
(장흥위씨 천년세고선집, 圓山 위정철 저)
95일차에는 '죽암공(계문)의 유고'가 밴드에 게재됩니다.
(98일차까지 이어집니다)
[본문내용- 죽암공 유고]
/ 무곡
소소한 일상을 표현한 죽암공의 격조 높은 시세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곡
대나무애 대한 노래가 인상적이네요./ 벽천
죽암공의 유고글이 98일차까지 이어집니다. 근대와 현대를 살다가신 선조로서 그 필체가 보통 예리하지 않다는 평이라고 합니다./ 벽천
죽암공의 시가 200여 수가 넘으니 꽤 많은 시를 남기셨네요. 모두 향토색이 짙은 한시로 보입니다./ 벽천
자연에서 숨쉬며
자연을 노래하고
자연을 즐기는 모습이 너무 좋습니다./ 소계
素溪 위국량 님
나이가 들면 정치의 유학보다 무위자연의 도교로 가까워지는가 봅니다. 죽암공께서 노래한 자연이 바로 한시의 주제네요./ 벽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