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에 욥기를 필사하고 하늘에 띄우는 편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당신의 충실한 종 욥은 하루아침에 자신의 자식들을 모두 잃고 재산을 몽땅 날리는 날벼락 속에서도 당신께 부당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참담한 상황에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놀랍게도 '주님께서 주셨다가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였습니다.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욥이 발바닥에서 머리 꼭대기까지 퍼진 고약한 부스럼에 어찌할 줄 몰라 질그릇 조각으로 긁으며 몸부림치자, 그의 아내마저도 차라리 '하느님을 저주하고 죽어 버려요.'라며 악다구니를 퍼부어도 욥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좋은 것을 받는다면, 나쁜 것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소?' 하며 이 모든 일에도 제 입술로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이었습니다.
전능하신 주님!
당신은 어찌하여 이런 충실한 당신의 종에게 그다지도 심한 시련을 주셨습니까? 당신의 욥에 대한 사랑을 시기한 사탄의 유혹에 어찌 그리 쉽게 넘어가신 것입니까?
주님!
저의 이런 투정에 노여워하시 마십시오. 이제부터는 욥의 입에서도 저주가 새어나오기 시작하니까요.
'어찌하여 내가 태중에서 죽지 않았던가?'
'어찌하여 그분께서는 고생하는 이에게 빛을 주시고 영혼이 쓰라린 이에게 생명을 주시는가?'
이 아비규환의 와중에 욥을 찾아온 세 친구들이 욥을 위로한답시고 내뱉은 말은 또 얼마나 가증스럽고 가관인지요.
마치 자기가 하느님의 대리인이라도 되는 양 이 모두가 욥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인과응보라느니,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 어디 있느냐느니, 인간이 어찌 하느님의 뜻을 알겠냐느니 하면서 욥의 상처에 소금을 뿌려댑니다. 이들은 애초에 욥의 아픔에 대한 공감하고자 하는 마음 따위엔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입니다.
위로자이신 주님!
저 또한 어려움에 처한 친구들에게 어줍잖은 말로 위로하기보다는 먼저 그들에게 나도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하게 해 주소서.
극한의 고통 속에 몸도 마음도 모두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욥은 친구들이 쏟아낸 장광설로 정신이 혼미해질 만도 하건만, 오히려 '나를 바른 저울판에 달아 보시라지.'라며 자신의 무고함을 끝끝내 고수합니다.
허나 지금 욥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친구들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침묵만 하고 계시는 주님이야말로 그로 하여금 배신감에 치를 떨게 하는 장본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욥은 '이제는 전능하신 분께서 대답하실 차례!' 라며 당신께 대한 자신의 섭섭함을 굳이 숨기지 않는군요. 이는 어쩌면 당신께 대한 도전일 수도 있겠지요.
경외하올 주님!
욥의 저런 도전에 가까운 자신감이 당신에게는 가소롭게 보이실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욥의 저와 같은 순진한 마음에 너무나도 공감이 되고 짠한 마음입니다.
주님!
그가 모진 억울함과 분함 속에서도 당신을 피하거나 외면하면서 뒤에서 당신을 원망하지 않고, 당신 앞에 엎드려 당신의 말씀을 듣고자 했음을 부디 헤아려 주시옵소서.
저의 이런 기도와 관계 없이 주님께서는 드디어 욥에게 말씀하시는군요.
'지각없는 말로 내 뜻을 어둡게 하는 이 자는 누구인가?'
'너에게 물을 터이니 대답하여라.'
'내가 땅을 세울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
욥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는군요.
'저는 보잘것없는 몸, 당신께 무어라 대답하겠습니까?'
당신께서 또 물으십니다.
'네가 나의 공의마저 깨뜨리려느냐?'
욥은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고백합니다.
'저는 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음을, 당신께는 어떠한 계획도 불가능하지 않음을!'
어진 심판자이신 주님!
믿음은 어쩌면 당신의 침묵을 견디며 끝까지 버티어 당신의 응답을 들을 때까지 인내하는 끈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뜻에서, 욥은 온갖 고통과 수탈과 모멸의 기나긴 어둠의 구렁 속에서도 끝까지 참고 견디어 마침내 주님 당신의 응답을 들을 수 있었으니, 그는 누가 뭐라 해도 복된 당신의 종이었습니다.
그동안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 오다가 결국에는 제 눈으로 당신을 뵈옵고, 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먼지와 잿더미에 앉아 참회하는 욥에게 당신은 지난날보다 더 큰 복을 내리십니다. 참으로 공정하시고 어진 심판자이신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사랑하올 주님!
설마 욥과 같은 시련으로 저를 단련시키시려는 건 아니시겠지요? 당신도 아시다시피 저의 맷집은 겨우 하루살이 정도밖에 되지 않나이다. 그러니 설마 저는 아니겠지요?
그러고 보니 엊그제 마지막 만찬 때 당신을 팔아 넘긴 유다가 내뱉은 말 '저는 아니겠지요?'와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까요? 정말 소름 끼치도록 유다와 닮은 저의 말이 저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고 맙니다.
주님!
저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추신 : 주님! 당신이 욥의 친구들에게 내리신 심판이야말로 저의 속을 시원하게 뻥 뚫어 놓으셨습니다.^^
''너와 너의 두 친구에게 내 분노가 타오르니, 너희가 나의 종 욥처럼 나에게 올바른 것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님께서는 오늘 참으로 부활하셨나이다.
아멘!
2024. 3. 30 부활절에...
이종상 베드로 올림
첫댓글
소감문을 아주 잘 쓰셨네요! 다시 한번 부활 축하드립니다! ^^-
신부님, 휴가 잘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