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일기
-남해살이 3년-
김금조
세상 밖으로 사라지고 싶던
일그러져 사위어 가는 젊음이
20대의 끝자락에 만난 바다는
바라만 보아도 좋았다
남해 대교가 세워 진 이듬해
1974년 3월 2일 인사 발령장 들고
난생 처음 남해섬에 발을 디뎠지
여닫이문을 활짝 열면
저 멀리 옥빛 잔잔한 물결
하늘빛을 닮은 바다물빛을 보며
오갔던 출근길
선생님 비키시다
선생님 오이서 왔는가
명령어인가 반말인가
색다른 사투리에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망울
*100m에 34초, 세계 신기록 보유의 육상선수가
운동장을 거닐고 있으면
첨지 같은 남해 토박이 선생님은
또 날궂이하네 하고 비아냥거렸다
하숙집 할머니 새벽 저자 보러 가실 때
회복기의 나는 국사봉에 올라 아침 바다를 보았지
어스름 깃들 때 좁고 긴 마루에 모여 앉은
동네 아낙네들 삼 삼기에 여념이 없고
해풍과 햇볕에 잘 태운 구리 빛 억센 아버지는
여섯 살 배기 어린 아들에게
장난감 같은 지게를 메게 하여 부자 동행하였지
치자꽃 향기 바람결에 코끝을 간질이는 오월의 밤
외지인들은 삼삼오오 떼 지어
봉우 뱃머리를 지나 폭풍의 언덕으로 쏘다녔다.
우체국에서 마주친 젊은이
풀이 잘 선 하얀 모시 고의적삼이
던진 뜨거운 시선
나의 때늦은 사랑이 점화됐던 붉은 장미
기적처럼 섬광처럼 일어나던 감미로운 사랑의 예감
바다도 하늘도 너무 맑아 눈이 시린 날은
엉엉 울고 싶었다.
여수 가는 엔젤호는 바다 안개에 갇혀
바다 한 복판에서 가만히 떠 있기만 했지.
맹꽁이 울고 반딧불이 전설을 나르는 밤엔
허만 멜빌의 모비딕(백경)을 읽었다.
남해살이 3년
들어 갈 때 울고 나올 때 운다는
아버지의 말씀처럼 나도 그랬지.
주1 註 1 : * 100m에 34초, 세계 신기록 보유의 육상선수
출처 : 대교大橋 제2호(남해 설천중학교 교지-1975년 2월 발행)
116page 교사 프로필<김금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