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차서 쌀'을먹어보셨습니까? 포복졸도 장가계의 한글 간판들
지난여름 중국의 절경으로 알려진 장가계(張家界)를 아내와 함께 다녀왔다. 명불허전이란 말이 실감 날 정도로 그 절경이 우리를 감탄하게 했다. 지상에 이런 산과 계곡이 있다는 것이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정말 구름에 휘감긴 산록에서 신선이 튀어 나올 것 같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러나 이 천연의 아름다움에 사람의 손이 너무 가해져서 본래의 모습이 훼손된 감을 감출 수 없었다.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다리를 놓고 길을 닦은 것이 구경하기는 좋지만 자연 본래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만든 아쉬움이 있었다. 그뿐 아니라 관광객을 위한 안내 표지판이 지나칠 만큼 많이 붙어 있었다. 특히 한국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모든 상점 간판이나 안내문에는 친절하게도 한글을 병기해서 편리하기는 했다. 그런데 그 한글 간판이 보는 이를 웃기게 만드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니었다. 몇 년 전 같은 중국 명승지인 황산(黃山)에 갔을 때도 안내문이나 간판의 오자나 오역을 더러 발견한 일이 있었다. 예를 들면 한국 식당의 이름에 ‘한라식당’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韓羅’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주인에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북쪽에는 백두산, 남쪽에는 한라산’이 있지 않느냐고 했다 그렇다면 ‘漢拏’라고 썼어야 옳다. 그러나 장가계의 엉터리 안내간판은 이 정도의 오자가 아니었다, 포복졸도 할 번역어가 많았다.
장가계 천문산에 있는 영화 '아바타'의 캐릭터. '아바타'의 배경이 이 산이라고 주장한다. 사진을 직을 때는 돈을 내야한다.
하기야 영문 관광 안내간판의 오자나 오류는 서울에도 2천 5백 개나 된다니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서울의 오류 간판은 대부분이 뜻을 전혀 알 수 없는 오류라기보다는 스펠링이나 방향의 잘못 표기가 대분이다. 하지만 장가계의 한글 간판의 오자나 오류는 배꼽을 잡고 웃게 만드는 것이 많았다. 더구나 국립공원 같은 곳의 공식 안내 간판도 도무지 뜻을 알 수 없는 오자나 오역이 많았다. 장가계 관광 첫날 천문산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관광객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벼서 긴 시간 줄을 서야 했다. 길이 7천 미터가 넘는 세계 최장의 이 케이블카는 관광의 명물임이 틀림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 보이듯 엄청난 관광객이 모여 있었다. 정리하는 안내 요원들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입구 벽에 커다란 경고판이 붙어 있었다. 한글과 영문으로 쓰인 글씨가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붐비하지는 마십시오’
도대체 무슨 말일까? 뒤에 작은 글씨로 쓰인 영문 표기를 보니 질서를 지키고 조심하라는 뜻이었다. 아마도 붐비는 곳이니 조심하라는 뜻 같았다. 한국말이 서툰 자장면집 주인의 ‘자장면 먹어해’라는 말을 연상하게 했다.
이 정도는 약과다. 해발 1천5백 미터의 천문산 정상에 있는 천문산사(天門山寺)라는 절 입구에 갔을 때였다. 화려하고 웅장한 사찰 앞에는 아주 오래 된 듯한 스낵 식당이 있었다. 그런데 식당 앞에 높이 걸린 커다란 안내 간판 메뉴에서 아주 희한한 음식 이름을 발견했다.
인스턴트 국수 옥수수 핫도그 달걀 숨이차서 쌀 맥주 포도주
다른 메뉴는 다 알겠는데 ‘숨이차서 쌀’이라는 음식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메뉴 간판을 유심이 살펴보니 영문표기가 있었다. 영문 표기에는 ‘puffed rice'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모바일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보았으나 그런 메뉴는 없었다.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가격표에서 ’per cup'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그러니까 ‘숨이차서 쌀’을 컵에 담아서 파는 듯했다. 한영사전에서 ‘puff’를 검색해 보았더니 비슷한 음식은 없었다. 단어 설명은 ’훅 불다‘ ’부풀리다’ ‘자화자찬’ ‘분첩을 바르다 ’등의 단어기 나오다가 뒷부분에 ‘숨이 차서 헐떡이다’라는 해석이 있었다. 그렇다면 ‘숨이 차서 헐떡이는’ 음식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혹시 팝콘 즉 팝 라이스, 튀긴 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튀밥은 영어로 ‘popped rice’라고 한영사전에 나와 있다. 아마도 이 단어의 스펠을 잘못알고 사전을 찾다가 ‘숨이 차서’라는 어휘가 나오니까 그렇게 쓴 것 아닌가 하고 추리할 수가 있었다. 한참 궁리를 하고 식당에 들어가 ‘숨이차서 쌀’을 주문했더니 추리한대로 팝콘 봉지에 튀밥을 담아 주었다. 우리는 너무 우스워서 웃다가 숨이 차고 사레가 들려 튀밥을 ‘훅 불어내고’ 말았다. 음식점 메뉴에는 그 외에도 ‘입맛까지 살주는 구수한 향기’등 모를 말이 많다. 음식점 입구의 도어에는 ‘끌다(拉)’라는 표시도 있다. ‘당기다’는 표현을 그렇게 했다. 천문산의 명소 중에 귀곡잔도(鬼谷棧道)라는 곳이 있었다. 수백 미터 높이의 바위 절벽 허리에 다리를 놓아 관광 코스로 만든 곳이었다. 좁고 긴 길의 바닥의 일부는 유리로 되어 있어서 발밑의 아슬아슬한 절경을 스릴 있게 즐기게 해 놓았다. 정말 귀신이나 걸어 다닐 법한 길이었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절경을 훼손한 인공물의 모습이 좋아보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자연 훼손은 ‘백룡(白龍) 엘리베이터’에서도 느낄 수 있다. 3백 미터나 되는 깎아지른 절벽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놓고 타고 내려가는 유료 코스다. 그런데 그 높은 절벽의 절경을 엘리베이터라는 인공 구조물이 가려 버려서 볼 수가 없었다. 이튿날 우리는 역시 장가계 명소 가운데 하나인 대협곡 관광길에 올랐다. 이곳도 자연은 관광객의 편의라는 명분에 심히 훼손되어 있었다. 4백 미터가 넘는 좁디좁은 협곡에 무려 830개의 계단을 만들어 경관을 전혀 볼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그 끝부분에는 미끄럼 길을 만들어 마대를 엉덩이에 깔고 바닥까지 내려가는 코스도 있었다. 마치 눈 덮인 산위에서 시멘트 푸대를 깔고 눈썰매를 타는 것과 비슷했다. 바닥에 내려가서 마대를 반납하고 나서 다시 괴상한 안내 간판을 만났다.
‘활용단어참조’ (慢道迭照片)
도대체 무슨 뜻일까? 중국어로 쓰인 것을 보아도 알 수가 없었다. 간판 아래로 갔더니 어느새 찍었는지 우리가 마대를 타고 내려오는 사진을 찍어서 프린트해서 팔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만도(천천히 내려온 길)로 내려온 사람 사진 있습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장가계 시내로 들어와 묵고 있는 호텔 인근에 산책을 나갔다가 도무지 알 수 없는 간판을 다시 만났다.
‘에있다 간이 음식점’ (湘西大排?)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중국 글씨는 ‘상서(지명) 포장마차’라고 한다. 이외에도 각종 식당 안이나 공공장소의 안내문에는 쓴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안내문이나 간판이 너무나 많았다. 한국 사람의 중국 관광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중국 관광 당국은 엄청난 돈과 인력을 들여 자연 경관을 개발하는 것도 좋지만, 이런 세심한 것에 신경을 좀 써야 할 것 같다.
필자 이상우 ; 소설가이며 언론인. <화조 밤에 죽다> <악녀 두 번 살다> <안개도시> <신의 불꽃> 등 200여 편의 추리 소설을 발표, 제3회 한국 추리문학 대상을 수상했다. 또한 <대왕 세종> <정조 대왕 이산>등을 발표, 역사 소설가로도 활약하고 있다. <도둑질에도 철학이 있다>, <권력은 짧고 언론은 영원하다>등 언론 비사를 비롯한 많은 저서도 펴냈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일간스포츠, 굿데이 등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회장을 역임했다.
<홈즈네 집 - 이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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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홈즈네 집 원문보기 글쓴이: 신의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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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정말 웃기며 한편 섭섭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