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리 삼층석탑을 본 후 12시 쯤 김제로 점심식사를 하려고 출발했다.
한 30여분 거리인 김제시장에 있는 곰돌이네에서 시레기새우탕을 먹으러고 했으나, 이날이 휴무일이었다.
농협 로컬푸드를 먹으러고도 했으나, 여기도 쉬고해서 결국 전주 콩뿌리콩나물국밥(6,000원)으로 첫 식사를 했다.
김제시 한 건물에 붙어있는 김종진 문화재청장 취임 축하 현수막이다.
취임 한 지 거의 두 달이 다 되었는데도 싱싱하게 붙어있다.
김제시민들이 정말 기분 좋으셨는가 보다.~~
아리랑 문학마을 홍보관이다. 휴일이라 닫혀있다.
추석연휴라서 인지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었다.
다행히 날씨가 흐려서 괞찮았지만 평소에는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제 죽산면 화초로에 있는 아리랑 문학마을 수탁기관들(관공서)이다.
조정래작가의 아리랑 소설이 이곳 김제평야를 무대로 하고 있고,
한 시대의 역사, 우리 조부모 세대의 힘든 삶을 엿볼수 있는 현장이라는 생각에 방문했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잠깐 업무를 할 때 김제시가 좋은 테마를 잡았는데,
보다 적극적인 노력과 이이디어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가졌던 곳이라 모니터링 차원에서 찾았다.
아리랑 문학마을은 조그마하지만 다소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하동 '토지' 촬영세트장은 엄청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데, 이곳 '소설아리랑'의 주무대에는 왜 사람들이 안올까?
좀 더 콘텐츠와 시설들의 보완이 필요한 듯하다.
이곳에 왔다가도 금산사나 벽골재 쪽으로 관광코스를 옮길것 같다.
쉬는 날이라 죽산 우체국도 닫혀있다. 이런 날 쉬다니 아쉽다.~~, 이래서 홍보가 될까?
축산 정미소이다. 안에는 어떤 콘텐츠가 꾸며져 있는지 볼 수 가 없다.
김제의 맛있는 쌀로 지은 밥을 먹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 갓 도정한 쌀로 먹으면 더 맛있을 듯 하다.
죽산주재소 건물이다. 감옥체험을 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는지 궁금했다?
축산면사무소 건물이다.
'소설 아리랑'에서 지삼출과 손판석이 살았다는 내촌마을이다.
지삼출의 헛간과 닭장 등
<지삼출>
지삼출은 머슴출신으로 감골댁 남편과 동학 농민군으로 투쟁했던 빈농출신으로 강직하고 굴하지 않는 성격이며,
격동의 시대를 꿋꿋하게 산 인물이다.
감골댁과는 서로 가족처럼 의지함 살아간다
방영근의 하와이 이민금을 장철문이 속여 떼어먹자 그를 폭행하고는 경부선 철도 공사장의 강제노역에 끌려간다.
풀려나온 뒤에는 송수익을 따라 의병활동을 하며 의병이 헤체되자 군산에서 부두 노동자로 일하다가
수국이의 일로 방대근과 함께 백남일을 폭행하고 만주로 이주한다.
송수익을 평생 옆에서 모시고 독립군으로 살며 해방을 갈망하는 독립투사의 초상이다.
<손판석>
지삼출과 함께 의병 활동 중에 붙잡혀 신작로 공사장에서 노역하다 탈출하여 군산 부두의 노동자로 변신한다.
중국인 노동자들과 부두 일자리를 두고 싸우다 다리 불구가 되자
지삼출 등과 함께 만주로 떠나지 못하고 군산에 남는다.
서무룡의 중재로 쌀 창고 십장으로 일하게 되지만, 공허의 독립군 연락책으로 계속 활동하며
보름이를 낙미쓸이로 취업시켜 주는 도움을 준다
<감골댁>
동학군이었던 남편의 병 구환으로 진 빛 때문에 맏아들이 하와이로 팔려가며,
빼어난 미모 때문에 두 딸이 지주 및 일본 앞잡이에게 수모를 당하는 등 수난을 겪는다.
남편과 같이 동학군이었던 지삼출네와는 한 가족처럼 지내며 셋째 딸 수국이의 일로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한다.
그러나 간도 대학살 경신참변 시(1920년) 일본군에 피살된다. 뼈저린 가난 속에도 가족을 지키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야 한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은 어머니의 위대함과 민족정신의 상징으로 승화되어 있다.
*감골댁 집 마당에는 두 그루의 대봉감나무가 많은 감을 달고 있다.
지삼출, 손판석, 감골댁의 안내판 이야기만 읽어도 '소설아리랑'이 읽고 싶어진다.
중앙광장과 저 멀리 감골댁이 살고있는 외리마을 전경이다.
안중근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역으로 가는 입구이다.
양쪽으로 주목이 정렬해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나중에 아리랑 문학마을이 잘 꾸며지고 나면 야간 조명들도 하면 좋을 것 같다.
하얼빈 역은 정말 제대로 지어진 건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이곳에 시설물을 짓는다면 이러한 근대적인 형태의 건물들을 시대적 배경에 맞도록 지었으면 좋겠다.
만주로 이민한 사람들이 살던 가옥이라고 한다.
부엌에는 솥이 두 개 걸려있고 방은 흙 바닥에 거적을 깔았다.
지붕과 벽채는 갈대들로 엮어서 막았는데, 만주의 한 겨울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이민자는 과거든 현재든 서럽다 ㅠㅠ
김제 벽골제 맞은편에 있는 조정래 아리랑 문학관이다.
문학마을과는 약 5km 정도 떨어져 있다.
왜 따로 있는지는 나는 아직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