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권씨(安東 權氏)의 시조인 권행(權幸)의 본래 이름은 김행(金幸)이다. 930년 왕건의 고려군이 견훤의 백제군과 대치하자 김선평(金宣平), 장정필(張貞弼)과 함께 고창군(高昌郡) 병산에서 후백제군을 격파하고 고려 창업에 큰 공을 세웠다. 태조는 그의 전공을 치하하며 “정세를 밝게 판단하고 권도를 잘 취하였다(能炳幾達權)”라며 권(權)씨 성을 하사하고 태사(太師)의 작위를 제수하였다. 시조 권행의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천등산 능골에 있다. 권행, 김선평, 장정필 세 사람은 고려 창업의 공으로 ‘삼한벽상아부공신 삼중대광태사’(三韓壁上亞父功臣 三重大匡太師)를 제수받았으며 983년(성종 2) 이 세 명을 기리기 위해 현재의 안동시 북문동에 삼태사묘(三太師廟)를 세웠다.
부호장(副戶長)을 지낸 권중시(權仲時)의 아들 권수평(權守平)은 고려 고종 때 추밀원부사를 역임하였고,[1] 권수평의 증손인 권부(權溥)와 그의 아들 5형제가 모두 군(君)에 봉해졌다.[2]
경상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지금의 안동 지역에 있던 부족국가 창녕국(昌寧國)을 비롯한 구령국(驅令國)·소라국(召羅國) 등은 초기 신라의 속국으로 되어 있다가, 그 후 신라의 고타야군(古陀耶郡)으로 고쳐졌다.757년(경덕왕 16)에 고창군(古昌郡)으로 고쳐졌고, 930년(태조 13)에는 안동부(安東府)로 개칭 승격되었다. 시대에 따라 지명이 바뀌고 승격과 강등을 거듭하다가, 1895년(고종 32)에 23관찰부제에 따라 경상도 동북부 17개군을 관할하는 관찰부(觀察府)가 설치되었으며, 이듬해에 13도제(道制)에 따라 경상북도의 안동군(郡)으로 개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