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부터 1991년 권일수 각본, 감독의 <전국구>를 상영하고 권일수 감독을 모셔 시네토크를 가졌다.
그는 소년기 때부터 배우를 동경하였고 8살 때부터 당수도를 익히며 무술배우의 꿈을 키웠다. 중학생 때에는 학교대표선수로 출전해 반탐급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그가 감명깊게 본 영화는 아란 랏드 주연의 <셰인>이었는데 대구의 미군홍보관에서 <O.K목장의 결투>, 뚝섬 가설극장에서 본 김승호 주연의 <마부> 등을 보며 배우로의 꿈을 키웠다.
그는 다니던 도장의 관장 추천으로 정창화 감독의 <황혼의 검객>에 단역으로 출연하였는데 '아니 누구냐?"가 첫 대사이고 유일한 대사였다고 한다. 이마저도 "누구냐?"로 줄었으나 그마저도 제대로 못해 감독에 야단을 맞았다고 한다. 그때 받은 100원짜리 지폐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현대극회 회원이 되어 연기 수련을 하였는데 제1회 대한민국 연극제 참가작 <딸꾹질>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임권택 감독의 <풍운의 검객>,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등에 출연하며 차츰 연기자로 자리잡았다. 한 때는 박노식 배우의 대역배우로 함께 다니며 출연하기도 했다. 그뒤 이두용 감독의 연출부로 연출 수업을 받으며 출연을 겸했다.
1973년 이소룡의 등장으로 대한민국에 무술영화 붐이 시작되었다. 그는 신문에 난 액션배우 모집 광고를 보고 이두용 감독을 만나게 된다. 당시 이두용 감독은 전국의 무술유단자 600여 명을 노량진의 도장에서 심사를 해 그중 권일수, 황정리, 권영문 등을 캐스팅해 태권액션영화를 만들었다.
첫 무술감독작은 이혁수 감독, 상관영봉 출연의 <소림사 흑표>였다. 그리고 1982~3년에 한국의 무술영화 붐이 하락하며 현대물 액션영화가 등장한다.
1975년 <무장해제> 출연 후 황정리 배우는 오사원 감독에게 스카웃 되어 홍콩으로 간다. 황정리 배우는 3년 간 빅토리아 해변에서 운동하며 3단 발차기를 연마했는데 결국 <사형도수>, <취권>으로 인기를 얻었다. 그의 초청으로 권 감독도 1982년 경 홍콩으로 가 2년여 활동하게 된다.
귀국 후 그는 KBS의 김연진 국장이 초청해 드라마 무술감독을 시작한다. 그는13등급을 받았는데 파우처 2장을 받아 다른 사람의 두 배 출연료를 받았다. 그외 야외출연료까지 받으니 수입은 영화할 때보다 한결 윤택해졌다고 한다. 그러던 중 문종금 배우가 제작하는 <전국구>의 감독을 제의해와 1990년10월 계약을 하게되는데 당시 일하던 mbc의 정문수 국장은 "mbc 무술감독 스크린에 도전하다"라는 광고까지 내주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당시 2억 원을 들여 제작해 18만 명이 들 정도로 흥행에 성공하여 시리즈로 제작되었다. 이어 찍은 두 편의 영화가 <신혼여행 대소동>과 <무인도의 남과 여>이다. 이 두 편은 흥행에 참패하며 그는 4년간 슬럼프를 겪기도 한다. 2007년 <고추불패>를 감독하고 최근 시사회를 가졌던 영화 <맞짱>을 감독한다. 이 영화는 차룡 감독작으로 알려졌지마 그가 감독한 영화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13억 원이 들어간 <맞짱>은 제작자와 차룡 감독과 송사가 얽혀 제작 후 창고에 있다가 10여 년이 지난 올해 IPTV를 통해 개봉되었다.
권 감독은 2013년 선라이즈 영화사를 창립하고 현재 <소년 김두한>을 준비 중이다.
2부에서는 유국치 시나리오 작가를 모셔 그의 영화인생에 대해 들었다. 그는 이소룡과 동갑인 1940년 생이다. 한국전쟁은 소년 유국치에게 부모와 생이별로 유난히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에 전쟁고아가 되어 전후 혼란기를 보내게 된다. 한국전쟁의 아픔은 그가 작가의 길로 접어든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는 영화배우를 지망해 7촌 아저씨인 이서구 작가의 소개로 영화계에 입문한다. 김성민 감독을 만나 홍은원 감독의 <홀어머니>에 출연하고 조수생활을 하였다. 당시 신성일의 출연료가 15만 원, 김운하의 출연료는 25만 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1969년 <개구장이 도령님>의 작가로 데뷔하기까지 파란만장한 그의 이야기 자체가 영화 소재이다. 유 작가는 <개구장이 도령님>의 고료로 3만 원을 받았으나 흥행에 성공하여 10만 원을 보너스로 받았다고 한다.
<개구장이 도령님>은 박문수 감독의 데뷔작인 동시에 은퇴작이기도 하다. 영화계를 뒤로 하고 돈 벌기 위해 부동산 사업으로 전업했다고 한다.
그는 양영김 촬영감독의 감독 데뷔작인 <못잊을 당신>에 250만 원을 투자해 공동제작한다. 주인공인 김지미 배우의 출연료는 20만 원이었다. 투자비는 동생이 월남전에 참전하여 송금한 돈이었다. 그토록 영화제작에 강한 집념을 보였던 그이다.
그는 만학도로 서울예전에 입학했다. 한인수 탈렌트가 동기생이다. 방송작가협회 김운경 이사장은 그를 선배로 깍듯이 모신다고 한다.
1970년에는 이태원에서 최초로 플레이보이 디스코텍을 개업했다. 외국인 전용 클럽인데 태평극장 옆에 위치했다. 그런 사업을 하면서 집필을 동시에 해낸 특이한 경력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동대문 옆에 스탠드바를 개업해 전인권, 장우, 주현미 등이 출연했다.
1983년에는 <바보스러운 여자> 시나리오를 집필했는데 대양영화사에서 제작되었다. 하휘룡 감독작으로 유인촌이 출연하였다. 이후 각 방송사에서 드라마 대본을 집필하였다. 특히 EBS의 개국드라마로 이승복 어린이를 그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집필했다. 그는 EBS에서 300여 편, KBS에서 50여 편을 집필했다.
그는 2016년 <킬더맨>을 제작하고자 오디션을 거쳐 유민, 지성우 배우를 캐스팅하고 투자자를 찾고있다. <킬더맨>은 사회고발 격정멜로 액션영화로 그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박병두 작가가 각색하고 내가 수차례 각색한 시나리오이다. 그러나 다양성영화 제작의 기회가 없는 요즈음의 극장가이다.
그가 집필한 또 한 편의 시나리오 <일확천금>은 김현철을 소재로 집필한 내용으로 유흥업소와 깡패 사이를 그린 사회고발 시나리오로 <킬더맨>에 이은 차기작이기도 하다.
이공희 감독이 참석하여 자신의 연출작 <기억의 소리>의 제작 노하우를 들려주었다. 지자체의 투자와 자신의 투자로 제작을 하여 현재 IPTV 등에서 방영되어 어느 정도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다음 달 정인엽 감독을 발제할 예정이다.
3부에서는 진용옥 경희대 명예교수를 모셔 "안응칠 장군 뼈대찾기와 남기신 뜻 이어가기"를 주제로 강연을 들었다.
5시 반에 행사를 마치고 양재동 카라 카페로 자리를 옮겨 송년회를 가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