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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원문글과 사진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십시요.ㅠㅠ
https://blog.naver.com/ktusjye/221272805639
딸아이가 일본에서 정착을 하게 되었다.
배치받은 곳이 나고야라
휴가를 얻어 일본행을 한다.
4월 27일부터 5월 5일까지 8박 9일,
짧은 기간은 아니지만
세간살이 모두를 장만해야 하니 많이 바쁠듯하다.
도착 첫날,
다행히 우체국 EMS로 보낸 짐이 와있어 이불 몇 채가 있긴 했지만
바닥난방이 안되는지라 춥게 잔 탓인지 몸살을 얻었다.
둘째 날, 셋째 날은 어찌어찌 버티고 쇼핑을 따라다녔지만
넷째 날은 편히 쉬기로 한다.
아들내미와 집에 가만있자니 좀이 쑤신다.
전 날 쇼핑 다니며 바깥에서 잠시 들여다보니
이맘때 꽃이 보기 좋았던 이사야 오도리 정원까지 가려고 나선 길이
아이치현청으로 이어지는 공원길을 따라 나고야 성까지 다녀왔다.
몸이 완쾌되지 않아 잔기침과 콧물이 나지만
열도 없고 나아지는 것 같아 5월 3일은 욕심을 낸다.
집을 나선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Shinhori River를 따라 한동안 걷는다
구글 지도에는 'River'라고 나오지만
규모가 넓지 않은 '川' 수준이다.
천에 연해 바로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밀물과 썰물에 따라 높이가 달라지긴 하지만
바다가 머지않아 큰 위험은 없어 보인다.
건물만 빽빽하던 천변이
하류로 내려가니 녹지가 보인다.
'신궁 동공원'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빠지자
물소리가 들린다.
벽면으로 떨어지는 물소리가 시원한 느낌은
날씨보다는 잰걸음에 오른 열기 때문이다.
아쓰다신궁 나지막한 석축을 따라 걷는다.
경내 안내도를 본다.
안내도에 쓰인 한문을 보며 위치를 짐작해본다.
우람한 규모의 동문이 보인다.
동문 너머 울창한 고목 그늘에
넓은 길이 짙다 못해 어둡다.
스마트폰 카메라 'F'값이 좋아 사진상으로는 밝아 보이지만
실제로 밝은 곳에서 들어서면 어둡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배고픔은 모든 것들을 초월한다.
신성한 곳에서도 먹을 것을 찾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다.
연륜을 허투루 먹지 않은 나무가
추위를 이길 지혜를 찾았는가?
이끼 같은 풀이 털처럼 고목을 온통 덮고 있다
경내를 흐르는 개울 건너 아치형 다리가 보인다.
막상 앞에 당도하니 출입을 막아놓았다.
풀숲 나뭇잎 사이,
'안경지비'라는 석상이 우습게 생겼다,
경내 곳곳에 신사가 조성되어있다.
일본은 사흘간의 황금연휴를 맞았다.
5월 3일 헌법의 날과, 4, 5일 미도리의 날,
6일이 일요일이다.
긴 연휴를 맞아 이곳 아쓰다신궁에도
많은 관람객들이 몰려들었다.
정문인 남문이다.
별궁이다.
마시는 물이 아닌 씻는 우물이다.
'별궁 팔검고'다.
규모가 본궁에 비하면 왜소하다.
별궁 신사다.
기원하는 모습이 경건하다.
'보물전'이다.
유료입장이라 잠깐 들렀다 나온다.
아쓰다신궁, 신검의 본원지
2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애쓰다 신궁은
이세 대신궁 다음으로 가장 숭상을 받는 신사입니다.
궁은 전설의 엑스칼리버와 비교되곤 하는
구사나기 노 쓰루기 신검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 검은 일본의 삼종신기에 속하기도 합니다.
소장된 신검은 한 번도 전시된 적이 없지만,
중요 문화유산과 국보로 지정된 성스러운 의복, 필사본, 가면, 거울, 가구 및 다양한 칼과 검을 포함한
6,000여 점 이상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기도 한 아쓰다신궁의 보물 전시관에는
방대하고 인상적인 사무라이 검 컬렉션이 회전 디스플레이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쓰다신궁에는 매년 9백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하며,
70가지 이상의 축제와 의식이 열립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신년 기도를 위해 밀집하는 1월 초는
신궁이 가장 붐비는 시기입니다.
아쓰다신궁의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신궁은 특별하고 성스러운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고대 문화와 평화로움을 느껴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 사무라이들이 수호하는 사무라이의 수호자
아쓰다신궁의 고목과 작은 신사 사이에는 전통 기와로 만들어진 크고 견고한 담이 있습니다.
노부나가베는 아이치현 출신 장군 오다 노부나가가 1560년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2,500명의 병력만으로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병력 25,000명을 상대로 1 대 10의 수적 열세를 딛고 승리한 후,
그의 지시로 건설된 아쓰다신궁을 감싸고 있는 방호벽입니다.
노부나가는 전투에 임하기 전 아쓰다신사에서 기도를 올렸고,
승리에 대한 보답으로 '노부나가의 담'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현재는 아쉽게도 2차 세계대전의 폭격으로 인해 원본의 일부만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출처 : https://www.aichi-now.jp/ko/spots/detail/10/>
입구에 전시된 장도가 혹시 전설의 신검일까?
궁금하지만 물어볼 사람도,
들려주는 대답을 알아들을 수도 없으니
벙어리 냉가슴만 앓는다.
경내 화장실이 내부 시설물처럼 어울린다.
차실이 있는 '남인지', 연못이다
신성한 띠를 두른 거목이
신궁 역사를 무언으로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본궁으로 들어선다.
특이한 모습이 보인다.
본궁 오른쪽 신락전과 옆 건물에
어린 아기를 안은 부부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사진사가 있다.
그 주위에 아이의 조부모로 보이는 사람들도 보인다.
정확한 설명은 들을 수 없어도
아기의 수복과 큰 위인이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어떤 의식을 진행하는듯하다.
모서리 쪽 몇 군데 책상에는 까만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은 넘어 보이는 남녀가 사진기를 앞에 두고 손님을 기다린다.
본궁이 보인다.
본궁 앞, 출입을 통제하는 나지막한 목책 너머로
내부를 들여다본다.
지붕너머 또 내실이 첩첩이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본궁 왼쪽 건물에는 전통혼례를 올리는 모습이 보인다.
연출이 아닌 실제 행사로 보인다.
본궁 왼쪽으로 길이 열려있다.
본궁 뒤로 돌아간다.
본궁의 후문이다.
반대쪽으로 돌아나가는 길이
본궁 앞쪽 혼잡에 비하면 한적하다 못해 고즈넉하다.
아래쪽 개천이 흘러드는 곳에 석물이 있는데
한 가족이 바가지에 물을 떠 끼얹듯 뿌린다.
옆 함에는 의식을 하기 전에 시주를 한다.
이곳에도 신성한 띠를 두른 고목이 서있다.
신궁을 둘러보고 나온다.
이번에는 신호리강을 품는 야마사키 강을 따라 올라간다.
신궁 맞은편에 납골당이 보인다.
주거용 건물들이 즐비한 곳에 납골당이라니
산자에게는 불편한 일이지만
사자들에게는 경외하는 신궁 옆에서 영생을 얻으니 그만일 것 같다.
야마사키강 쪽으로 방향을 잡고 들어가니
'열전신궁공원'이 보인다.
안내도 아래 오른쪽으로 고분이 있다.
산 위쪽이 위치상으로 고분이 있는 곳이다.
잠깐 들러볼 요량으로 산을 따라 돌아보지만
입구를 찾을 수 없다.
신궁을 나서니 요란한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고분이 있는 곳 옆에 야구장이 있어
그곳에서 들리는 응원소리라 짐작했다.
꽤 규모가 큰 경기가 벌어지는 모양이다,
도로에 청색과 빨간색 선이 겹쳐져있다.
주차선 같기도 하고 궁금증은 이는데
해결할 길이 없다.
많은 관객이 들어차 열기가 고조되고 있으리라
기대하며 들여다본 경기장과 관람석은 썰렁하다.
하지만 조금도 기세가 줄지 않는 함성소리는 여전하다.
'일부러 스피커를 켜놓고
큰 시합에 참가하는 훈련을 하는 걸까?'
야구장을 나와 강변으로 내려서는데
드디어 함성소리의 정체가 모습을 나타낸다.
헌법의 날이라 정당이나 종교단체 등에서 가두행진을 하는듯한데
차량 상태나 뜻 모를 함성, 차량에 적힌 구호가
극우단체의 행렬인 듯 섬찟하다.
강폭이 신호리 강보다 배는 더 넓다.
강변에 설치된 주차장이 위험스러워 보인다.
뒤쪽에 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앞쪽 홈에 바퀴가 닿으며 주차 위치를 확인할 수 있을듯하다.
나고야항으로 흘러들어가는,
도심을 직선으로 가로지르는 또 다른 강과
통수되는 곳 수문이다.
두 번째 목적지 '노리다케의 숲'이다.
노리다케는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고급 도자기를 생산하는 브랜드다.
1904년 창업 당시 사용하던 부지와 건물에
박물관과, 전시장, 체험관 등 문화시설과
분수광장, 굴뚝 광장 등 쉼터로 조성해 놓았다.
황금연휴를 맞아 관람을 하거나
가족단위로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짧은 구간 조성해놓은 개울은
아이들 세상이 되었다.
다소 따스해진 날씨와 햇살에
개울에 뛰어든 아이들은 마냥 신났다.
분수광장의 중심, 분수대다.
뒤로 보이는 빨간 벽돌 건물이
1904년 창업 당시 신축하여
1975년까지 공장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신사는 어느 곳에나 조성되어있다.
판매시설인 '라이프스타일 숍'에 전시된
자기류 제품들이 화려하다.
그만큼 고가의 제품이다.
노리다케의 상징이라는 굴뚝 여덟 개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벽돌로 쌓인 본모습이 더 의미가 있을듯한데
파란 덩굴식물이 점령하고 있다.
경축일을 의미하는 것인지
항상 나부끼는 것인지
일본식 문양이 굴뚝 위에 연결되어 바람이 나부낀다.
오른쪽 아래 적벽돌 쌓여있는 곳이
초창기 사용하던 가마터다.
'가마벽'이라고 명명된 벽이다.
공장 건설 당시 기초로 사용된 옛 기와 덩어리를 캐내
옹벽제로 사용하였다.
'노리다케의 숲 기금'에 찬성한 사람들의 이름을
접시에 새겨 벽면에 전시해놓았다.
현재 사용하지는 않지만
단독 가마를 온전히 보존해놓았다.
도심에 잘 조성된 공원이 있고
편하게 찾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유료 공간인 '크래프트센터'다.
식기 제작 과정 견학과
접시, 머그컵 등에 그림을 입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체험코너가 있다.
노리다케의 숲을 나와 동쪽으로 향한다.
며칠 전 들렀다가
옆지기와 다시 찾으려 했던 나고야 성으로 가는 길이다.
아무래도 다시 찾을 여유가 없을 듯하여
혼자서라도 입장해야겠다.
삼거리에 육교가 보인다.
육교 중간에 서니 나고야 성의 상징,
천수각 지붕이 온전히 드러난다.
나고야 성 조각공원이다.
가토 기요마사, 가등청정 동상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으로
임진왜란에 제2군 사령관,
정유재란에는 제1군 사령관으로 참전하였다.
우리 민족에게는 철천지 원수이지만
일본에서는 추앙받는 인물이다.
'능락당'이다.
영문표기가 'Theater'로 뒤어있어
공연시설, 극장으로 짐작된다.
나고야 성의 바깥 해자다.
예전에는 깊은 물이 흐르는 수로가
외부인의 접근을 막았었으리라.
나고야 성은 1612년,
에도 막부의 장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축성한 성이다.
1867년 막부가 쓰러질 때까지
도쿠가와 3대 가문의 하나인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의 거성으로 영화를 누렸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5년 공습으로 대부분 소실되었지만,
1959년 철근 콘크리트로 현재의 나고야 성이 재건되었다.
지하 1층에서 7층의 천수각으로 재건되었으며,
축성 때부터 현재까지 남아 있는 3개 스미 야구라(隅櫓)와
오모 테니 노먼(表二の門), 니노 마루 테이엔(二の丸庭園),
금으로 만든 한 쌍의 사치호코가 특징이다.
사치호코는 천수각 용마루에 장식되어 있는 장식 기와인데,
얼굴은 호랑이와 비슷하고 등에는 가시가 돋친 상상의 물고기다.
사치호코는 축성 때 84% 순금을 사용하여
그 소문이 전국으로 퍼졌으나,
아쉽게도 나고야 성과 함께 공습으로 사라졌다.
이후 나고야 성 재건과 함께 복원되었는데,
암수 한 쌍에 들어간 황금이 약 89kg에 달했다.
성의 1층부터 5층까지 방문자에게 개방되며 박물관으로 꾸며 있다.
박물관에는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의 유물 등
나고야 성과 나고야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출처 : http://m.terms.naver.com/entry.nhn? docId=963739&cid=42864&categoryId=50859>
오백엔 입장료를 내고 성 안으로 들어간다.
순금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천수각 용마루 장식 '사치호코'다.
상상의 물고기로
얼굴은 호랑이와 비슷하고 등에는 가시가 돋아있다.
모형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긴 연휴의 하루,
관람객이 아주 많다.
천수각과 어전이 있는 혼마루를
또 다른 해자가 가로막고 있다.
천수각으로 가는 길이다.
방문객이 워낙 많아 이백여 미터 이상 줄을 서있다.
천수각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다.
결코 접근할 수 없을 듯 천혜의 요새다.
관람인원이 제한적이라
줄은 금방 줄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 간격을 좁히다
천수각 내부에 들어선다.
천정 쪽은 예전 모습이 아닌듯하다.
하지만 벽면은 견고하고 투박한 외벽과 같은 모습이다.
천수각으로 들어서는 철문이
무게를 못 이겼는지, 아니면 세월을 못 이겼는지 휘어졌다.
입구 안쪽으로도 사치호코 모형이 전시되어있다.
내부에서 사용하던 목간통이다.
혼마루 고텐(본환 어전)에 장식되었던
벽화와 창호 등이 전시되어있다.
천수각 맨 위, 7층에 올라 사방을 조망한다.
천수각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여전히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만든 줄이 길다.
2018년 6월 8일까지
복원하여 공개 예정인 혼마루 고텐(어전)이다.
한 달여만 더 늦었다면
어전 내부도 볼 수 있었을 텐데 다소 아쉽다.
10년 여에 걸친 고증과 복원으로
모습은 산뜻하지만 옛스러움은 없다.
혼마루로 들어가는 다리에서 해자를 내려본다.
바닥에 깔린 돌들이 보인다.
혼마루를 나와 성 끝에서 해자를 내려본다.
꽤 넓은 수로에 물이 가득 차있다.
다실이다.
다다미방이 연이어 미로처럼 이어진다.
후면 마루다.
뒤뜰이 성주의 공간답지 않게 아담하다.
나고야 성 망루 중 북서망루가 일반에 공개되어있다.
잠시 올라볼 생각에 찾아가 본다.
길지 않은 줄이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뒤에 섰지만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관리인 통제에 따라 나온 인원만큼 입장한다.
관리인의 설명에 현지인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크게 웃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도 알아들을 수도 없으니 답답하다.
주의 안내문에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조명이 자연광이라 어둡다는 내용과
연로하신 분이나 체력이 약한 사람은 주의하라는 정도만 추측한다.
흐리던 하늘이 멀리 파란 모습을 드러낸다.
삼십분 가까이 기다렸다 들어선다.
실내화로 갈아 신고 나누어주는 비닐봉지에 신고 온 신발을 담아
내부에 들어선다.
1층 창문에는 나무로 칸막이를 쳐놓아
온전한 바깥 모습을 볼 수 없다.
또 다른 실내화로 갈아 신고
건물 맨 위층에 올라선다.
다시 한 번 창 너머 세상을 사진에 담는다.
해자 너머 백성들이 살던 거리가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건물 일부는 그 당시 양식을 간직하고 있다.
성내에 가토 기요마사의 동상이 서있다.
니노 마루 정원과 다정(茶亭)이다.
동산으로 오르는 계단이 보여
주위를 돌아보지만 계단으로 향하는 길이 없다.
가장자리에서 다시 해자 건너편
명성공원을 건너다본다.
저곳까지 둘러보고 싶지만
기다리느라 허비한 시간이 너무 많았다.
정원에 조성해놓은 돌 장식이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성 가장자리로 난 둘레길이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잊힌 양 쓸쓸하다.
조금만 안으로 들어서면
복작이는 사람들 발길에 바닥이 매끈한데
이곳은 풀이 이끼처럼 푸릇하다.
나고야 성 입장권이다.
노리다케의 숲 한국어 안내장이다.
해외여행은 설렘보다
언제나 걱정과 답답함이 앞선다.
여행을 취미로 하고 즐기지만
그 근간은 이해와 융화가 소통이다.
언어의 장벽은 나에게 너무 높다.
새로운 장소를 찾아가면
새로운 것들을 보고 알아가고 이해하며
보람과 성취감을 느낀다.
때로는 설명문을 보고
주민, 전문가, 관리인에게 궁금한 것들을
묻고 해소해나간다.
벙어리처럼 그저 현상만 보는 것이
아무리 아름답고 예쁘고 특이하고 신기한 것이더라도
사진으로만 담아놓고
다음에 꺼내보는 것만으로는 내게 의미가 없다.
딸아이 일본 정착이
내게 일본어 공부 동기를 부여한다.
열심히 공부하여 국내처럼 편하게
일본 구석구석을 돌안 다닐 날을 기대해본다.
산길샘 앱으로 확인한 여정이
총 소요시간 7시간 13분,
총 거리가 28.21킬로미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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