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고개를 뒤로 젖히고 대통령들을 올려다보며 상념에 젖어 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아들과 황망히 그곳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더니 비는 더욱 거세졌다.
이런! 이제 ‘크레이지 호스’로 가야하는데 어쩌지?
비가 오더라도 가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크레이지 호스로 향했다. 비는 좀체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거세졌다. 얼마간 달려 마침내 크레이지 호스에 닿았을 때쯤 빗발이 가늘어졌다. 다행이다 싶어 차에서 내리기 무섭게 크레이지 호스를 올려다보았더니 인디언 추장의 거대한 얼굴 조각상이 얼핏 안개에 가려져 있었다.
‘Crazy Horse Memorial’
그런데, 이런!
안개로 가려진 저걸 보자고 여기까지?
어떻든 전시관 안으로 들어섰더니 러시모어와는 달리 그곳에는 크리이지 호스에 관한 역사가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쇼핑몰을 연상케 할 정도로 없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기념품 상점, 전시길, 식당, 카페, 심지어 인디언 대학까지 없는 것이 없는 듯 했다.
인디언의 영웅 조각상을 만드는 일은 그 자체로 거대한 기업이었다.
이곳은 예로부터 아메리카 인디언인 수족(Sioux)의 영토였다고 한다. 인근 러시모어 산에 백인 대통령의 조각상이 만들어지고 있을 즈음, 러시모어에서 27km 떨어진 이곳에 아메리카 원주민의 저항의 싱징으로 러시모어의 조각보다 규모가 더 크고 거대한 한 인디언의 영웅인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가 조각되기 시작했다.
러시모어의 대통령 조각상과 이곳 인디언 추장의 조각상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미국 역사로 보면 그 둘은 이주민과 원주민이라는 대척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자료에 따르면 ‘Crazy Horse’ 라는 인물은 리틀 빅혼에서 막강한 커스터 장군의 부대를 전멸시킨 ‘수’라는 부족의 추장으로 모든 인디언들의 지도자로 존경받았다고 한다. 커스터 장군의 이름은 이곳에서 5마일쯤 떨어진 곳에 금광이 발견된 마을 이름으로 지금도 남아있다.
크레이지 호스는 모든 인디언들의 지도자로 존경을 받았는데 1877년 휴전 중 안타깝게도 백인 군인에 의해 암살되었다고 한다.
인디언들은 그의 용맹과 인디언의 자존심과 그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크레이지 호스의 거대한 조각을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케빈 코스트너(Kevin Costner)가 주연을 맡고 감독까지 한 영화 〈늑대와 춤을(Dances with Wolves)〉(1990)에 나오는 인디언 종족이 바로 크레이지 호스의 수족이라고 한다. 물론 영화의 배경이자 촬영지도 이곳 사우스다코타의 블랙 힐스 대평원이라고 한다.
그에 관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시관의 영상을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 1939년 라코타족의 마지막 추장이었던 헨리 스탠딩 베어는 그들의 조상들이 살았던 땅에 마운트 러시모어 조각이 완성되는 것을 보고 만감이 교차하여, 당시 조각가였던 콜작 지올코우스키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용인즉, 미국 역사의 위대한 대통령들을 저렇게 온 세상에 고하였듯이, 한때 이 땅에 살았던 인디언들의 위대한 영웅도 백인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에 감동 받은 콜작은 자신의 일생을 이 크레이지 호스를 조각하는데 바치기로 했다. 처음에 콜작은 조각하기 좋은 바위가 있는 티턴에 조각을 하려 했으나, 인디언들은 그들의 성스러운 언덕인 블랙힐스에 그들의 영웅이 새겨지길 고집했다고 한다. 결국 콜작은 1948년부터 블랙힐스에 정착해 살면서 평생을 조각에 전념했다.
눈을 감을 때까지도 조각의 일부밖에는 완성시키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콜작이 정부나 그 어떤 이익단체의 후원도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사후 그의 가족들이 계속 이 사업을 가업으로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1998년에 크레이지 호스의 얼굴 부분이 완성되었고, 2007년에는 입구에 방문자 센터를 건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