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상은 구독자 sanglee7526님의 요청에 의하여 제작하였으며
임진왜란의 자료가 워낙 방대하여 어떻게 정리를 할까 고민하다가 류성룡의 징비록 그리고 황현필선생님의 임진왜란을 참고했으며
전투장면은 많이 뺏고 “일본군이 왜 처음에는 그렇게 빨리 뚫었고, 왜 결국 7년이나 걸려 철수했는가?”를 중심 질문으로 잡았습니다.
이과정에서 AI의 도움도 받았음을 말합니다.
“임진왜란 1592~1598, 7년 전쟁의 핵심 타임라인
1592년 4월 14일.
부산 앞바다에 일본군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뒤,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 조선을 침략한 것입니다.
일본군의 목표는 단순히 조선의 영토를 빼앗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을 통과해 명나라까지 진출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은 이때, 일본군의 침략을 제대로 막아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전쟁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무려 7년 동안 계속됩니다.
오늘은 이 긴 전쟁을
「뚫으려는 자, 막으려는 자」
라는 흐름으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1592년 4월 14일일본군, 부산을 뚫다
첫 공격은 부산진에서 시작됩니다.
부산진 첨사 정발은 일본군의 대규모 침공에 맞서 싸웠지만 부산진은 함락됩니다.
동래에서도 송상현이 끝까지 항전했지만 결국 동래성이 무너집니다.
일본군은 부산을 시작으로 빠르게 북상합니다.
당시 일본군은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전투 경험이 풍부했고,
특히 조총을 대규모로 운용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조선의 중앙군은 제대로 훈련되지 않았고,
전쟁을 예상한 실질적인 준비도 부족했습니다.
류성룡은 훗날 『징비록』에서
왜란 초기 조선이 무너진 원인을 군사 준비의 부족과 지휘체계의 문제 등에서 찾았습니다.
1592년 4월~5월조선의 방어선이 무너지다
조선은 이일과 신립 등을 보내 일본군을 막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상주에서 이일의 군대가 패하고,
충주 탄금대에서는 신립의 기병대가 일본군과 맞붙었지만 크게 패합니다.
그리고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북상합니다.
4월 말에는 선조가 한양을 떠나 피란길에 오르고,
5월에는 한양마저 일본군에게 점령됩니다.
조선의 수도가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무너진 것입니다.
이때까지만 보면
일본군이 조선을 완전히 뚫어버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전쟁의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의병과 수군입니다.
첫 번째 반격이순신의 바다
육지에서 조선군이 연이어 패하고 있을 때,
남쪽 바다에서는 전혀 다른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전라좌수사 이순신.
그는 일본군이 육지에서 아무리 빠르게 진격하더라도
바다를 장악하지 못하면 보급에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순신의 수군은 옥포를 비롯한 여러 해전에서 일본 수군을 공격합니다.
그리고 1592년 7월,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인 전투가 벌어집니다.
바로 한산도대첩입니다.
이순신은 이억기, 원균의 수군과 연합해 일본 수군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하고,
학익진을 펼쳐 일본 수군의 주력을 크게 무너뜨립니다.
한산도대첩은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의 주력을 격파한 전투였습니다.
이때부터 일본군의 진격은 이전처럼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보급이기 때문입니다.
육지에서 아무리 앞으로 나가도
뒤에서 식량과 무기와 병력이 계속 따라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길을 조선 수군이 위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두 번째 반격의병이 일어나다
전국 각지에서도 사람들이 일어났습니다.
관군만이 싸운 것이 아닙니다.
곽재우,
조헌,
고경명,
김천일 등 많은 의병장이 각 지역에서 의병을 조직했습니다.
산과 들,
고향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스스로 무기를 들었습니다.
일본군이 조선 땅을 빠르게 뚫고 들어왔다면,
조선에서는
곳곳에서 그 길을 막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1592년 겨울일본군, 평양에서 멈추다
일본군은 평양까지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조선군은 다시 반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명나라의 지원군도 조선에 들어옵니다.
1593년 1월,
조명연합군은 평양성을 공격해 탈환합니다.
일본군은 남쪽으로 물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1593년 2월 12일행주대첩
일본군은 다시 서울 지역으로 진격하려 했습니다.
그때 권율이 이끄는 조선군이 행주산성에서 일본군을 맞습니다.
행주산성의 조선군은 숫적으로 열세였지만,
치열하게 싸워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냅니다.
이 전투가 바로
행주대첩입니다.
평양성 탈환,
한산도대첩,
행주대첩.
1592년의 일방적인 침공에서
전쟁의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1593년 이후전쟁은 '싸움'에서 '협상'으로
일본군은 계속해서 싸우기 어려워졌고,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 강화 협상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협상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유리한 조건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협상은 결렬됩니다.
1597년다시 뚫으려는 자, 그리고 1597년. 일본군이 다시 조선을 침략합니다.
이것이 정유재란입니다.
일본은 약 14만의 대군을 동원했습니다.
이번에는 조선 수군에도 큰 위기가 찾아옵니다.
이순신이 조정의 명령을 둘러싼 문제로 파직되고,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됩니다.
그리고 1597년 7월,
칠천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크게 패합니다.
조선 수군의 주력이 사실상 무너진 것입니다.
일본군은 다시 조선을 뚫고 들어옵니다.
남원성이 함락되고,
전라도 지역도 큰 피해를 입습니다.
그런데 다시 이순신이 돌아옵니다.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됩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전선은 고작 13척.
일본 수군은 훨씬 많은 함선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순신은
울돌목으로 알려진 명량의 좁은 물길을 이용합니다.
1597년 9월 16일명량해전
13척의 조선 수군과
압도적으로 많은 일본 수군.
하지만 이순신은 물살과 지형을 이용해 일본 수군을 공격합니다.
그리고 조선 수군은 일본군의 진격을 막아냅니다.
이 전투가 명량해전입니다.
1597년의 전쟁에서 가장 극적인 반전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다시 한 번,
바다가 일본군의 보급과 진격을 가로막기 시작합니다.
1598년마지막까지 막아내다
전쟁은 이제 7년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은 일본군을 압박하고,
일본군은 점점 철수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1598년 8월,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합니다.
일본군의 조선 철수 명령이 내려집니다.
하지만 철수하는 일본군을 그냥 보내줄 수는 없었습니다.
1598년 12월노량해전
이순신과 명나라 수군이 연합해
철수하려는 일본 수군을 공격합니다.
이 전투가 노량해전입니다. 전투는 치열했습니다.
그리고 이순신은 전투 중 적의 탄환에 맞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로 전해지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전투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본군은 조선에서 철수합니다.
1592년 시작된 전쟁은 1598년 마침내 끝납니다.
7년 전쟁이 남긴 것 임진왜란은 단순히
조선과 일본이 싸운 전쟁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일본군은 빠르게 조선을 뚫고 들어왔습니다.
조선의 수도 한양까지 짧은 시간에 점령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전쟁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수군이 바다를 막고,
의병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관군이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명나라의 군대가 참전하면서
일본군의 진격은 멈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일본군은 조선에서 철수했습니다.
그렇다면 류성룡은 이 전쟁을 어떻게 보았을까요?
류성룡이 『징비록』을 남긴 이유는
전쟁에서 누가 이겼는지를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왜 조선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졌는지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난 일을 징계로 삼고 후환을 경계하자는 뜻에서
책의 이름을 징비록이라고 붙였습니다.
'징비'라는 말도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마지막
임진왜란 7년.
처음에는
뚫으려는 자가 너무 강했습니다.
조선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뚫리지 않는 곳이 있었습니다.
바다에서,
산성에서,
그리고 이름 없이 일어난 백성들의 자리에서였습니다.
그래서 임진왜란의 역사는
한쪽이 처음부터 강해서 이긴 이야기도 아니고,
한쪽이 처음부터 약해서 진 이야기만도 아닙니다.
준비하지 않은 나라가 얼마나 빠르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리고
한번 무너진 나라가 어떻게 다시 버티고 일어서는지를 보여주는 7년의 기록입니다.
1592년,
부산에서 시작된 침략.
1593년,
평양성과 행주에서 시작된 반격.
1597년,
정유재란으로 다시 시작된 침략.
그리고 1598년,
노량에서 끝난 마지막 전투.
뚫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그 7년의 기록이 바로
임진왜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