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회 4월 새벽 특별 집회 2017.4.7(금)
-오늘의 말씀-
뽕 나무라도 올라가라
04/28금(金)눅 19:1-11
인간은 누구나 이 땅에서 구도자(求道者)의 삶을 살아갑니다. 어느 누구나 다 자신의 길을 찾고 있지만 세상과 사단에 붙들려 욕망과 죄악의 포로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언젠가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길을 찾게 됩니다. 단 자신의 욕망 때문에 구도를 놓칠 뿐입니다. 그 길이 예수님이심을 깨닫는 것이 축복입니다. 이 세상의 물은 마시면 마실수록 욕망의 포로가 됩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물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샘물이 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
삭개오는 약점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키가 작고 용모도 수려하지 못해 세상의 힘으로 욕망을 채우고 약점을 극복하려고 나름대로 구원의 길을 찾았습니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고 권력을 얻었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세상 사람들의 질시와 목마름을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축복은 그가 주님에게 관심을 갖고 영적인 눈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누구도 내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주님을 만날 때 문제가 해결됩니다. “삭개오라 이름 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눅 19:2-3)
삭개오가 주님께 나가는 길에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는 키가 작아 사람들 때문에 주님께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른이라는 것, 권력자이지만 놀라운 결단을 합니다. 그는 주님을 보려고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볼 때 자기 포기, 십자가 체험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포기할 때 주님과 인격적인 만남이 일어납니다. 인격적인 만남이란 주님과 사상적인 교류가 일어난 것입니다. 내 문제를 알고 있는 그 분을 만난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눅 19:5-6)
예수님은 여리고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오직 삭개오를 만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삭개오와 주님의 인격적 만남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삭개오에게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삭개오 개인적인 문제 해답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이제 삭개오는 구원의 삶, 새로운 피조물, 주님과 연합된 삶, 인생의 해답을 찾은 삶이 시작 됩니다. 주님과 연합될 때 인생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제 내 개인의 삶이 없어지고 주님의 삶만 남게 됩니다. 주님이 나를 아신다는 것을 내가 알 수 있습니다.
주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가진 삭개오에게 주신 축복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삭개오는 예수 구원의 생명을 얻었습니다.
삭개오는 이제 예수님 족보에 들어온 것입니다. 마귀 생명에서 예수 생명으로 생명이 바뀌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9)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다는 것은 주님과 같은 생명의 계열로 들어온 것입니다. 여기에 구원이 있고 주님과 연합의 삶이 이루어집니다. 구원이란 생명이 교체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명이 긍정의 생명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병든 생명은 병든 인생이 됩니다. 건강한 생명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삭개오는 예수 그리스도로 생명으로 바뀐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 1:1)
세상에서 참 자유와 사랑의 삶을 살게 됩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 19:8) 세상의 것들에 대해 포로 되었던 자가 물질의 참 자유와 사랑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제 자신만 사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웃을 생각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삭개오는 주님과 연합된 삶을 살아갑니다. 그는 사람을 구원하는 통로가 되어 축복을 받게 됩니다. 즉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누구든 주님을 만나면 전도자가 됩니다.
And...
이스라엘에서 뽕나무는 사람들이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큰 아름드리나무입니다. 삭개오는 어른이요, 세리장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고위관리입니다. 그런 사람이 주님을 만나려고 뽕나무에 올라간 것은 자기 십자가를 체험한 것입니다. 자기 포기는 생명 교체입니다. 마귀 생명에서 예수 생명으로 바뀐 것입니다. 내가 죽고 예수가 나타나는 십자가 체험입니다.
뽕나무에 올라간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까? 하는 체면을 버린 것입니다. 즉 보여 지는 것에서 자유 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아를 포기한 것입니다. 인간은 절대절망을 느끼기 전에는 절대로 자신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대해 절망을 느낄 때 비로소 자신의 궁극적 문제를 찾게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내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내 삶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주님은 자신에 대해 절망하는 자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런 사람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주님을 만나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 중심으로 살았던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의 생명이 바뀌어야 합니다. 생명이 바뀔 때 구원을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 생명으로 살아갈 때 삶에서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환경은 내가 죽는 무대입니다. 삭개오처럼 뽕나무에 올라갈 때 구원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마시게 됩니다. 지금의 환경은 주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루스가 벧엘이 되는 곳입니다. 내 힘으로 살아 왔다면 이제는 주님과 연합하여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 힘으로 살면 결과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내 삶을 살아간다면 결과에서 자유 하므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뽕나무에 올라감으로 날마다 삶에서 구원을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