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컬리는 무료 배송의 기회를 이용하라 내게 문자로 유혹을 한다. 나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꾸덕꾸덕 고소한 맛이 일품인 두유 3개, 햇살 아래서 마구 퍼먹으며 비하감을 해소할 수 있는 큰 병 요거트 한 개, 한살림에서 공급 중단 중인 양파 소 자 한 망, 오렌지주스 한 병, 대추 토마토 500그램을 넣는다. 29,830원, 40,000원이 넘지 않았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오늘은 무료 배송 쿠폰을 쓸 수 있는 날이니까. 아, 아보카도 명란 비빔밥에 넣을 아보카도를 잊었군. 컬리는 이게 문제다. 내일 새벽에 보자는 다정한 정산 끝 알람을 들으면 사고 싶은 것을 추가할 수가 없다. 이런 기능은 개선 안 되나. 그러면 컬리를 더 사랑할 수 있는데. 나는 아보카도 한 개를 씨만 빼고 갈라 우유와 함께 분쇄한 뒤 올리고당을 넣은 아보카도 우유를 마시며 쩝쩝거린다. 내일 새벽부터 아침을 어떻게 해 먹을까. 살을 빼야 하니 점심은 아보카도 명란 밥으로 간단히 먹어야겠어.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오후 4시, 시완이가 올 시간이 가까워온다. 서둘러 밥을 짓고, 컬리에서 사다 둔 멸치를 볶아 올리고당과 참기름 소스에 비벼 내놓는다. 이제 가야겠다.
나의 애마, 스파크 이 녀석, 혼잣말을 하며 차에 올라 자동화된 몸짓으로 벨트를 매고 사이드미러를 밀고 라디오를 켠다. 이 시간엔 외국 오페라나 뮤지컬 넘버가 나와야 한다. 그래야 완이가 서운해하지 않는 적정 시간에 도착하는 것이다. 마침 ‘메모리’(캣츠 뮤지컬 넘버)가 흐르길래 나도 아는 것처럼 입을 움직거리며 즐겁게 주행하던 그 순간, “빠아아아앙!” 분명 내가 우회전해서 갈 수 있는 신호였다. 좌회전하는 차가 없음을 확인하고 우회전을 하던 길이었는데 오토바이와 부딪힐 뻔했다. “와,” 바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습관처럼 백미러를 보았다. 또 다른 배달 오토바이가 따라오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운전석 기준으로 내 오른쪽은 인도, 내 왼쪽에는 나와 부딪힐 뻔했던 오토바이, 내 뒤로도 나를 부지런히 따라오는 오토바이가 있는 것이다. 경차 타는 아줌마를 조롱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사과도 없이 멀어지는 것도 짜증이 나서 이렇게 말했다. “하여튼 양아치들이야.” 아들을 안아 차에 태울 때도 벨트를 더 단단히 조였다. “좀 갑갑해도 손잡이 잡고도 있어. 오늘은 더 위험한 것 같아.”라며 주의도 주었다. 아들은 당연히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내 옆으로 지나가는 다른 오토바이를 보며 손을 흔든다. “와! 나도 타고 싶어요!“ 나는 일갈한다. “저런 거 타고 다니는 사람 되면 안 돼. 내가 아까 얼마나 위험했는지 알아?”
일상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무심함에 대해 예리하게 짚어낸 <폭력의 진부함>의 저자, 이라영은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내가 양아치라고 욕했던 운전자들은 아마 시간과 다투는 중이었을 것이다. 분류, 기다리기 등에 필요한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배달 건수로만 수수료를 지급하는 ‘개인 사업자’는 2007년(1200원)보다 낮아진 수수료(800원)를 벌충하면서도 이윤을 내기 위해 그야말로 미친 듯이 달릴 수밖에 없다. 아마 나와 부딪힐 뻔했던 오토바이 1번, 나를 잡아먹을 듯 쫓아오던 오토바이 2번 모두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계속 건수를 올리기 위해 무리수를 두었을 것이다. 이라영의 표현에 따르면 “교통 법규를 다 지키면서 8시간 근무하면 하루에 20건도 못 받는다고 한다. 그러면 최저임금도 안 된다. 이렇게 일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시간 압박 때문이다.”(57쪽)라고 한다. 예정된 시간에 맞추어 고객의 원성을 사지 않기 위해 그들은 도로에서 목숨을 걸고 일하는 것이다. 게다가 배달대행사를 통해 배달 업무를 하는 ‘라이더’들은 직접 고용이 되지 않고 대행업체를 통해서만 사업자와 연결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업장에서는 이들이 내는 사고, 보험 처리 문제에 신경쓰지 않는다. 노동력은 사용하지만 그들이 겪는 위험은 외주화하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무슨 배달이 43분이 걸려? 다른 곳에서 주문해야겠다.”라고 말하는 것이 이들의 사고를 부추긴다는 것을, 이라영의 글을 읽고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배달이 느린 것 말고는 다 좋아요.”라고 평점을 남겼던 것도 떠올랐다. 그게 어디 있더라. 지우고 싶은데 어느 플랫폼에 남겼는지 알 수가 없어 지울 수가 없다. ‘서비스 질의 향상’을 돕는 소비자의 역할을 자임했는데 사실은 노동자이면서 노동자의 지위를 얻지 못하는 자들을 무시무시하게 압박해왔던 것이다.
“엄마, 오늘 치킨 시켜 먹을까아?” 남편이 늦게 온다고 먼저 먹으라고 하니, 은이가 봄바람처럼 살랑살랑하게 묻는다. <말을 부수는 말>을 읽고 있으니 선뜻 그러자는 말이 나오질 않는다. 또 배민과 쿠팡이츠를 들락날락하며 배송비를 아낀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이 너무 볼품없을 것이다. 고작 몇 백원 아끼자고 사람을 도로에서 질주하게 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자각했다. 치킨을 가지러 가자니 아직 집에서 혼자 있을 줄 모르는 애들 둘을 데리고 식당까지 갈 생각을 하니 그저 착잡하다. 너희들을 데리고 가느니 나는 롤러코스터를 타며 자장면 먹기를 택하겠다고. “빨리 오는 거 시키면 되잖아. 그러면 되잖아.” 내가 고민하는 사이, 애들은 내게 섬뜩한 말을 한다. 빨리 오는 것을 시키면 된다는 저 말은 배달 플랫폼 노동자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보고 배운 것이 아닐까? 오토바이가 아무 데서나 훅훅 등장하는 것을 욕하면서 치킨을 시켜놓고 “빨리 올 거야. 조금만 기다리면 돼.”라고 말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 모순을 넘어서 사람을 사람 대접하지 않았던 못된 태도가 두 아이에게도 전염된 것 같아 씁쓸하다. “오늘 치킨 먹지 말고 집에 있는 거 먹자. 계란말이 해 줄게. 응?” 두 아이는 눈물을 터뜨린다. 완이는 온 몸을 덜덜 터는 신공을 보여준다. 매우 못마땅하다는 뜻이다. 그래도 안 돼. 내가 <말을 부수는 말>을 읽었거든.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상, 전처럼 살면 안 돼. 이라영이 절절히 표현한 일상적 말의 폭력성을 내가 함께 느꼈다면 나도 이전과 결별해야 해. 나는 ‘무엇을 복제할 것인가.’(362쪽) 나와 라이더의 시간을 동등히 여기겠다는, 그의 안전이 나의 안전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동등하게 인지하는 작가의 마음을 복제하겠다.
첫댓글 저도 읽는 중이라… 주황님 본문은 안 보고 있어요 . 셀프 스포일러가 될까 봐서요. 책 읽은후 댓글 예정 ~ . 행복한 주말 되세요 ( 글쓰기 과제가 없다 ) 음하하
숱하게 "빨리 올 거야. 조금만 기다리면 돼" 그 말을 애들 앞에서 내뱉었던 저를 돌아봤어요. 거리의 질주를 부추긴 말이 되지는 않았는지..마침 뒷 부분이네요. 찬찬히 읽어보고 주황님의 마음을 복제해볼께요.
(362쪽을 펼쳐봤어요. 48쪽에 꽂혀있는 저 책갈피를 어쩌죠^^; )
글 재밌어요. 우리집도 한살림. 머핀과 콩콩빵 좋아해요.캣츠 메모리 좋아해요. 슬퍼요. 오후에 만나요 ^^ 벚꽃이 떨어진 자리에 연두색 새순이 돋아나고 있어요. 저처럼 연한 연두색 새순이 ㅋㅋ. 꽃은 떨어지고 있지만 . 팝콘 알맹이 처럼 남아 있는 그 모습도 예쁘네요. 꽃길을 만들어준 끝까지 노력하는 벚꽃이 아름답네요. / 운전할때 만나는 오토바이는 너무 위험해요. 이해도 되지만 깜짝깜짝 놀랄떼면 저도 좋은 말이 잘 안나온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