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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약소부족의 일원이었던 테무진, 그는 숱한 위기를 극복하며 초원을 통합해 나간다. 1206년 드디어 통일에 성공한 그는 신으로부터 새로운 이름을 받는다.
신: 장생신의 말을 전하겠노라 모든 땅을 테무진과 그의 자손들에게 하사하겠다. 그는 이제 우리들의 칭기즈칸이다.
칭기즈칸: 大몽골국이 탄생했습니다. 이제 몽골의 모든 것을 그대들과 함께 나누리라.
해설: 훗날 아시아는 물론 러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공포에 떨게 만든 칭기즈칸이란 이름이 새롭게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최원정/KBS 아나운서: 328번째 역사저널 그날, 칭기즈칸이란 이름이 시작된 그날입니다.
최태성/한국사 강사: 저번 주에 정말 고난의 행군을 걸었던 칭기즈칸을 살펴 보았죠. 젊은 시절 칭기즈칸의 위기로는 ① 독살로 아버지를 여위게 되고 ② 약탈로 아내를 빼앗겼고 ③ 의형제였던 자무카와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벌여야 했던 그가 드디어 초원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시원/배우: 이거 정말 위인전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그대로 위인전에 실렸거든요. 근데~
최태성: 위인이니까
이시원: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에 산증인인 거 같애요.
이익주/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이때 칭기즈칸의 나이가 사실은 분명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언제 태어났는지를 몰라요. 공식적으로 1162년 설을 택하고 있어서 이때부터 따지면 칭기즈칸이 통일을 이룩한 1206년이 44살이 되는 해입니다.
최원정: 40대 기수론, 44세면 허준씨가 아마 딱 요나이일걸요. 만으로~
허준/방송인: 반갑다 친구야~ 너는 나라를 세웠고 나는 역사저널 그날에 나왔어.
----------------(2018 러시아 월드컵 대독일전(2018.6.27) 이광용 아나운서 (당시 44세)와 이영표 해설위원이 생중계 중이었다: 이광용: 세계 최강을 집어 삼켰습니다~ 눈물~, 이영표: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건 정말~16강이 문제가 아니고요------------------
이광용/아나운서: 44세의 나이에 러시아 월드컵에 가서~독일 전차군단을 무너뜨리고 온 이광용~서기 1206년은 단기로는 3539년 불기로는 1750년 이슬람력으로는 602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때 세계에서 먼저 유럽은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 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을 점령해 라틴 제국을 세우고 2년이 지난 시점이었고요. 중국은 송이 남송으로 밀리고 여진족이 세운 금이 화북지역을 장악하던 시기였습니다. 일본은 가마쿠라 막부시절이었구요. 우리의 고려는 희종 2년째였습니다.
최태성: 희종 2년은 좀 어럽다?
이광용: 그때가 언젠데~ 싶으지요? 우리 이익주 교수님만 빼고 그런데 표정보니까 잘 모르시는 거같애요. 제가 그래서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해 드리도록하겠습니다. 1170년 고려에서 무신정권이 일어나 정주부가 권력을 잡습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어요. 뒤이어 경대승에게 그 권력이 넘어가고요. 경대승은 서른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요. 그 권력은 또 이의민에게 넘어갑니다. 하지만 뒤이어 나타난 최충헌이 이의민을 죽이고 권력을 잡은 후에 최씨 무신정권이 10년째 이어지던 시기였습니다. 세계는 그때 초원에서 어마어마한 인물이 비상하고 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세계는 지금 칭기즈칸이라는 이름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럼 그 사이에 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요? 그 어마어마한 비밀 오늘 역사저널 그날에서 펼쳐집니다. 여러분, 책임지세요~책임지세요~
허준: 칭기즈칸도 본인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생각도 못했을 거에요. 내 후손들이 저렇게 까지 뻗어나갔을 것이라는 걸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애요.
최태성: 내가 역사에 심지어 교과서에 까지 나올까 하는 생각을 안했을거예요. 그렇지만 제가 교과서를 검색해 보니까 여기 지금 이렇게 나왔습니다. 칭기즈칸과 몽골의 팽창, 테무친은 쿠릴타이를 열어 세계의 지배자 라는 뜻의 칭기즈칸에 추대되었다(1206). 이렇게 역사 교과서에 등장을 했으니 이거는 곧 시험에도 나옵니다.
권용철/단국대 북방문화연구소: 여기서 세계의 지배자 라고 하는 칭기즈칸을 받아들였을 때는 칭기즈를 바다 라고 해석합니다. 즉 바다처럼 넓은 세계를 지배하는 지도자 이런 식이죠.
최태성: 초원사람들 한태 바다가 있는가요?
권용철: 초원에도 굉장히 넓은 호수가 있습니다.
이시원: 그런데 호수보다 더 넓은 바다란게 있다니 더 신기롭고 위대한 느낌이었을 것 같애요.
최원정: 독일 팝그룹 칭기즈칸이 있는데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칭기즈칸 그렇게 나오죠?
최태성: 교과서엔 칭기즈 칸~
최원정: 정확한 발음이 무언지 모국어로 좀~ 직접 확인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뭉흐나산(40)/엄마: 징기스한~징기스한, 안흐바야르(42)/아빠: 징기스간~, 징기스간~, 봄에르덴(16)/쌍둥이형: 징깃~산, 징깃~산, 봄바야르(16)/쌍둥이 동생: 징기스간~, 징기스간~~------
이시원: 칭기즈칸 네 글자가 아니고 징긎~한~
허준; 세글자에요. 징기산~
권용철: 칭기즈칸 이렇게 돼죠 [한/칸] 목에서 깊이 나오는 소리이기 때문에 이걸 칸이라고 쓸 수도 있고 한이라고 쓸 수도 있죠. 표기법이 다른 겁니다.
최원정: 뭐라고 발음하나요, 칭기즈~칸
칭기즈칸: 물이 흐르는 곳에서 빨래를 하지마라
누구든 물과 불씨에 오줌을 싸는 것을 엄금한다.
불과 탁자, 접시를 넘으면
장생신이 노여워할 거니 금하고~~
해설: 칭기즈칸은 유목민들 사이에 있었던 금기들을 바탕으로 그들의 법인 자사크[법령]를 정리한다.
칭기즈칸: 만부장, 천부장, 백부장들은 모두 다 자신의 군사들을 항상 열심히 훈련시켜 언제든 출정할 준비를 갖춰 밤이든 낮이든 출동명령이 내려지면 곧 바로 명령에 따라야 한다. 누구든 자신이 속한 천호와 백호, 십호를 떠나 다른 데로 갈 수 없다. 만약 이를 어기면 부족 앞에서 극형을 당할 것이다.
서기: 받아주는 자는요?
칭기즈칸: 역시 극형이다
최원정: 단호하죠, 진짜.
권용철: 실제로 자사크(Jasaq)라고 부르는 법령들을 보면 대부분이 극형, 사형 이런 얘기들이 많은데요. 지금 우리처럼 징역 몇 년 벌금 얼마 이런 식의 촘촘한 형량 규정이 아직은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최원정: 칭기즈칸이 법치주의를 확립한 지도자였네요.
권용철: 그리고 칭기즈칸 스스로도 자신이 만든 법을 굉장히 중시했고 그 다음에 칭기즈칸 본인에게 규정하는 것이 굉장히 엄격하게 적용을 했습니다. 그리고 죽기 전에는 내가 만든 법령을 바꾸지 말라고 유언까지 했고요.
이익주: 우리 한국사에서 고대국가 성립기의 율령반포가 저는 꼭 자사크가 그런 것 같애요. 여러개의 울루스(부족)를 모아서 하나의 국가를 만들었을 때 그 울루스들이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단 말이에요. 이런 이질적인 요소를 모아서 하나의 나라를 만들었을 때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법이 필요했을 거고 이 법이 칭기즈칸 때 자사크란 이름으로 이렇게 된 게 아닐까 하는 한국사를 통해 본 몽골사가 되는데요. 그거는 권 박사님이 그렇다고 해주셔야~
권용철: 그렇습니다.
최태성; 내용을 한번 보죠. 어떤 내용이 있느냐 하면 먼저 간통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거짓말을 한 자 다른 사람을 몰래 훔쳐본 자 남의 싸움에 개입하여 한쪽을 편드는 자 모두 사형에 처한다. 또 재미 있는 게 있는 데 요거는 제가 퀴즈로 한번 내보겠습니다. 술에 관한 내용이에요.
최원정: 왜 저를 보고 그러세요? (이시원을 향해) 이쪽 보세요.
이시원: 저희가 풀어 보겠습니다.
최태성: (칭기즈칸의 법) 만약 술을 끊을 수 없으면 한 달에 몇 번만 마셔라. 그 이상 마시면 처벌이다.
최원정: 그걸 법으로 정했다고요?
이시원: 인간적으로 한 달이 4주니까 한 주에 한 번은 봐주지 않았을까요 4번~?
허준: 술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하루는 걸러~ 전날 많이 마시면 오늘은 걸르는 경향이 있어서 월 15회~?
최원정: 한 25일?
허준: 주말에는 술 먹지 마 인간적으로 일요일에는 금주
최태성: 좋습니다. 정답은~ (이익주 교수를 향해) 교수님이 발표해 주시죠. 과연 칭기즈칸은 월 몇 번 음주를 허용했을까?
이익주: 답은 세번~
허준: 한 달에 세번 마시라구~
이익주: 굉장히 중요한 조항이라서 제가 원문을 읽어드릴게요. 만약 음주를 막을 방법이 없다면 한 달에 세번 크게 취하는 것은 무방할 것이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막을 방법이 없다면~
최원정: 크게 취하는 건 괜찮구나.
이익주: 더 이어집니다. 두 번은 취하면 더 좋고 한번만 취하다면 물론 더 좋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사람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일동: 폭소
이시원: 맞네요.
이익주: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다면 크게 써야 할 겁니다.
일동: 어~하~
이익주: 이게 뭐냐 하면 사람이 술을 안마신다는 것을 생각도 못하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이 조항을 읽으면서 내가 그때 태어났으면 크게 쓰였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이걸 읽었습니다.
이시원: 그래도 제가 제일 가깝게 맞추었네요. 저 술 사주세요.
최원정: 너무 재밋다. 일상생활에 관련된 법도 많지만 군사에 관한 법도 많다고 합니다. 잠시 후에 최고의 군사전문가를 모시고 함께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동안만 기다려주시고요. 이제 칭기즈칸이 초원의 부족들을 통일하고 법을 다듬으면서 군사력을 키운 이유, 어디에 있을까요?
권용철: 유목민들은 풀을 찾아 이동을 하면서 말, 염소, 양 등 동물을 키우면서 삽니다. 그러다 보니 늘 물자부족현상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니 많은 것을 빼앗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과장을 덧붙이자면 유목민들의 진짜 생업이 약탈이 아닌가 그래서 초원의 이런 습성 관습을 잘 알았던 칭기즈칸이 힘을 키워가면서 자신의 절대적인 권위를 확립해 나갔던 것입니다.
이익주: 여기에 더해서 금 나라에 대해서는 몽골이 어떤 원한 같은 게 있었어요. 직접적으로는 칭기즈칸의 증조부부터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형제들까지 금으로부터 피해를 입어요. 그래서 집안의 복수이기도 하고 몽골 울루스의 복수이기도 하고 여기에 더하기 풍부한 물자를 공급받을 수 있는 것 이 두 가지 이유가 겹쳐지면서 당연히 금을 공격할 생각을 가장 먼저 하게 돼죠 (집안의 복수+몽골 울루스의 복수+풍부한 물자확보).
최원정: 이렇게 전쟁 중에 나서게 되는데 칭기즈칸 군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뭐죠?
이시원: 말이죠, 말!
최원정: 세상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칭기즈칸, 기병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알려주실 분이 지금 비밀의 방에 계십니다.
-------------한정수/배우: 센베츠카노(안녕하세요)----------------------
최태성: 몽골출신이세요?
한정수: 제가 사실 몽골에서 살아본 적도 있고요.
최태성: 오케이~ 오케이~
한정수: 사실 제가 일주일 밖에 지내진 않았지만~
최원정: 일주일을 몽골에서 살았다고 하기에는~
한정수: 오랜 시간을 있진 않았지만 일주일을 짧고 굵게 지내면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올 수 있었습니다. 게르(ger)에서 몽골인들과 같이 먹고 자고~ 소 젖도 짜보고~
최태성: 거기서 말도 타 보셨어요?
한정수: 물론 타봤죠. 대부분의 사극에서 말을 탔는데 몽골 말은 완전히 달라요.
------동영상: 사극에서 배우 한정수의 모습/몽골에서 배우 한정수의 모습/비교체험 극과극-----
한정수: 저 말은 사실 누가 타도 멋이 없습니다. 정말 말을 잘 타는 분도 멋이 있을 수가 없어요.
이시원: (한정수 태운) 말도 힘들었을 것 같애요.
한정수: (186cm 장신) 약간 걱정을 했는데 말들이 워낙 힘이 좋고 단단한 동물들이라서~
허준: 몽골 말의 지구력이 유럽의 말보다 훨씬 좋아요.
한정수: 최곱니다. 대마와 몽골말의 차이는 대마들은 타면 2박자 다닥~다닥~다닥~다닥~그런데 몽골말들은 당당당당당당당당~제가 나담 축제 때 말을 봤는데 왕복 75km 되는 거리를 전속력으로 달려요(나담 축제-매년 7월 몽골의 독립기념일과 칭기즈칸의 건국을 기념하는 몽골 최대의 민속축제, 씨름, 말경주 활쏘기 대회 등 개최).
권용철: 유목민들은 말을 다루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요. 심지어 모린치 라고 부르는 말을 전담하는 직책도 존재했습니다. 모린이 몽골말로 말이란 뜻이고요, 치는 ~하는 사람 이란 뜻의 접미사입니다.
최원정: 우리 갑바치, 양아치 할 때 그 치예요?
권용철: 그 치입니다. 장사치~ 이치 저치 할 때 그 치입니다. (치-사람을 낮잡아 일컫는 말, 고려말은 원나라의 영향을 받음). 그리고 심지어 자사크의 법령조항을 보면 말을 훔친 자는 한 마리당 아홉 마리를 변상해야 한다. 만약 변상할 말이 없으면 아들을 내주어야 한다. 아들이 없으면 양처럼 본인이 도살될 것이다.
최재성: 또 사형이야?
권용철: 결국은 그렇게 됩니다.
최태성: 칭기즈칸은 당시 말 훈련을 혹독하게 시켰대요. 얼마나 말 훈련이 잘 되어 있느냐 하면 말들이 자기 구역이 있어야 되는데 뭉쳐 있으면 힘들어 한대요. 그런데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도록 조용히 있도록 만들어 놨고 기수나 기병이 올라타거나 내릴 때 어떤 동요도 없고 있으나 없으나 도망가지 않고 기병을 기다릴 수 있다고 해요.
허준: 몽골 말은 재갈을 안물리고 그냥 탈 수 있대요. 말이 그만큼 훈련이 잘 되어 있죠.
이시원: 보물이네요. 진짜 말은 최고의 장갑차 같은 거잖아요.
-------------한정수: 그러면 제가 간단한 퀴즈를~ 몽골 초원에서 전쟁을 하든 무엇을 하든 가장 부족한 게 무얼까요?-------------
이시원 & 최태성: 물
최원정: 죄송해요, 너무 금방 맞춰죠.
한정수: 제가 죄송합니다. 네, 물이 맞습니다. 저도 일주일 동안 있었는데 한 번도 씻지 않았어요.
------------동영상: (수도꼭지가 달린 물통을 나무에 매달아 놓고 물을 쓸려면 수도 꼭지를 눌러서 조금씩 나오는 말을 손바닥에 받아서 세수를 함). 이거 하나로 며칠 동안을 생활합니다. 겨우 세수 정도 할 정도~이것도 그나마도 제가 손님이니까 특별 대우를 한 겁니다------------
이시원: 저렇게 사람도 물을 아끼게 하는데 말한테는 거의 물을 안주었을 것 같애요.
한성주: 말 네댓 마리가 먹을 수 있는 양의 얕은 우물을 파서 물을 먹이는데 이것도 동물들이 사료를 주거나 물을 주거나 한꺼번에 달려와서 막 무가내로 먹잖아요. 그런데 몽골 말들은 우물을 파주면 순서를 기다립니다.
이시원: 줄도 설 줄 알아요?
한정수: 네, 자기 순서가 되면 마시고~ 그렇게 훈련이 완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권용철: 몽골 사람들은 말에 대해서 굉장히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말의 눈만 봐도 얘가 어디가 아프구나 하는 것까지 알 수 있다고 할 정도라고 합니다. 전쟁을 할 때는 물이 또 부족하니까 수분이나 영양분의 공급을 받기 위해서 말의 혈관을 바늘 같은 것으로 톡 찔러 가지고 거기서 피가 나오면 그 피를 마셨다고 합니다.
한정수: 지금까지는 최강의 말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았으니까 이번엔 기수에 대해서 한번 말해 보겠습니다. 게르에 옆집이 있어요. 옆집에 한 3km 떨어진 게르가 있는데 거기에 테무진 이라는 아이가 있었어요. 칭기즈칸과 이름이 같은~ 그런데 그 친구가 말도 너무 잘 타고~
----------------(동영상) 테무진(10)/칭기즈칸의 이름과 동일: 3살때부터 말을 탐----------------
---------------(동영상) 테무진: 나담 축제 말 경주대회에 참가한 테무진 제일 선두에서 말을 달림/한정수: 달려, 테무진-------------------
이시원: 보통 몇 살 때부터 말을 타나요?
한정수: 테무진이란 아이의 집에 아이가 5명 정도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어린 아이가 3살 정도 되었는데~ 근데 그 아이가 잘못 걸어요. 그런데 말을 타더라고요.
이시원: 3살 때부터 말을 타면 나중엔 말 위에서 공중제비도 돌겠네요?
한정수: 실제로 그럽니다. 공주제비 까지는 아닌데 아이들이 말을~ 몽골 아이들은 말을 그냥 저희 강아지 다루듯이 해요. 강아지와 노는 것처럼~
최태성: 몽골에 일주일 다녀 오셨는데 거의 일년 산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최원정: 덕분에 진짜 몽골 말에 대한 생생한 지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끝 인사를 부탁 드립니다.
한정수: 벌써 끝 인사를~ 한정수의 내가 직접 가봐서 아는 몽골 이야기~여기까지였습니다.
해설: 실크 로드 교역의 중심지였던 사마르칸트, 13세기 이 지역을 중심으로 자리했던 호라즘 왕국, 이슬람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고 수준 높은 문명을 자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칭기즈칸이 출현하기 전까지만 이었다.
무함마드사리프 카딜나아조프/카라칼팍대 역사학부 교수: 호라즘 왕국은 의학, 언어, 문화, 신학, 제도학 등이 발달해 있었다. 하지만 몽골이 침략하면서 이런 문화는 파괴되어 사라졌다. 150만의 주민이 살았던 이 광대한 영토가 재로 변한 것이다. 그 시대는 없었던 것처럼 유적이 사라진 것이다.
해설: 칭기즈칸의 군대가 넓은 영토에서 번영을 이루었던 호라즘 왕국을 초토화시키는 데는 불과 2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허준: 왕조의 후손인 거 같은데 굉장히 화가 나 있어요. 칭기즈칸만 없었으면~
권용철: 호라즘 또는 호래즘이라고도 우리가 부릅니다. (호라즘(1077~1231)-사마르칸트 중심으로 동서무역을 독점, 번영했으나 칭기즈칸 군에 패하여 멸망). 우리가 중앙 아시아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사실 일찍부터 페르시아 튀르크 문화의 중요한 거점 중에서 하나였던 곳입니다. (페르시아-이란 고지대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고대제국), (튀르크-민족의 명칭, 중앙 아시아 일대에서 활약했던 민족으로, 셀주크 튀르크와 오스만 튀르크 등의 제국을 건립). 여러 학문 다양한 문화가 발전했던 터전이었기 때문에 호라즘 왕조가 있던 일대는 세계사의 전개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지역입니다.
이시원: 아까 몽골의 주적은 금인데, 왜 갑자기 호라즘을 공격하는 거죠?
최태성: 그러면 당시 국제정세를 한번 보겠습니다. 여기 몽골이구요, 제가 준비한 게 있습니다. (중앙 아시아와 극동지역 지도등장). 고려가 있고 일본이 있고, 금(여진) 나라가 있고, 아래에 서하(탕구트)와 서요 (카라키타이)가 있구요. 옆쪽에 아라비아 반도가 있고 옆에 호라즘이 있고 호라즘은 이란 이라든지 요즘 많이 얘기 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이런 지역을 거의 걸치고 있는 그 제국이 바로 호라즘이었다.
이시원: 갑자기 동아시아(금나라)에서 훅~ 서쪽(이란 이라크 지역)으로 이동한 느낌이에요. 저는 저쪽 서하(몽골 아래) 쯤에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허준: 정말 쓸데없는 얘긴데 몽골을 거꾸로 읽으면? 룬움 이예요. (몽골 쪽에서 동남 아시아 쪽을 봤을 때).
이익주: 제가 있는 쪽에서 지도를 보면 이것이 그 당시 몽골 사람들이 본 세계입니다. 몽골 영토에서 앞을 보면 양 옆을 보면서 영토를 넓혀 가는 건데 실제로 몽골사람들이 左하면 고려 쪽이에요. 右하면 중앙 아시아와 호라즘 지역을 가리키게 됩니다. 그래서 최태성 선생님 쪽에서 본 지도가 농경정주민이 본 세계이고 그와 거꾸로 본 유목민이 본 세계가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다는 이런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이시원: 우리가 전에는 중국중심의 세계관에 갇혀 있었던 거네요.
이익주: 중국중심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작은 사례가 있어요. 서하는 탕구트(Tangut) 족이 세운 나라인데 대하 라고 불렀어요. (서하/탕구트어 (1038~1227)-탕구트 족이 세운 나라, 흰색의 크고 높은 나라 라는 뜻의 국명으로 한자로는 대하(大夏)이지만, 송(宋)에서 서하(西夏)라 부름). 그런데 이게 중국 남송 사람들이 볼 때 우리 서쪽에 있으니까 서하~
이시원: 한 나라의 이름을 그렇게~
이익주: 아예 대하라고 하던가 아니면 大가 접두사로 생각해서 夏라고 부르는게 맞는데 우리는 그냥 무의식 중에 중국식을 따라서 西夏 라고 사용~ 너무 오래된 것이라 당장 西夏 라는 말을 쓰지 말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사용하자.
이시원; 눈이 번쩍 띄어지네요.
허준: 교수님, 얘기하면서 너무 많이 와닿은게 지도를 거꾸로 본 것만으로 어떤 건 이해가 너무 손쉽게 되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게 우리 아이들한테는 지도를 여러 방향으로 보면서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권용철: 몽골이 저쪽 남송을 부를 때 남송이라고 부르지는 않해요. 만쯔(오랑캐, 야만)라고 부릅니다. 만쯔 라는 말은 어디서 왔느냐면 蠻, 野蠻~
최태성: 서로 야만이라고 불렀네.
권용철: 이쪽 정주민 사람들은 몽골 사람들을 맨날 동물 가죽만 입고 동물 고기만 먹는 야만인들이야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면 몽골 사람들은 정주민은 맨날 풀만 뜯어 먹는 풀벌레들이야 그렇게 서로 시작이 달라요.
최태성: 그러면 몽골 주변의 나라들은 몽골의 공격을 받을 것 아녜요. 그런데 아까 교수님도 말씀 하셨죠. 몽골이 원한을 가진 나라가 있다. 바로 금나라~ 그러면 몽골이 금을 먼저 치는 게 우선일 것 아네요. 금을 먼저 치지 않습니다. 어디를 치느냐 하면 바로 西夏입니다.
최원정: 후방을 조심해라.
최태성; 그렇죠, 서하를 먼저 정리하고 이후에 바로 금을 치게되고 이후에 서요와 호라즘 쪽으로나가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최원정: 두 손 잡을까봐
최태성: 그렇죠, 드디어 때가 됐습니다. 칭기즈칸 문제의 특별 방법~예고해 드린대로 특별 군사전문가를 소개해 드리죠.
--------------특별 군사전문가라면서요, 이광용/아나운서: 특급군사 전문가 설마 저는 아니겠죠~ 그 분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해 주십시오------------------
--------------화살과녁이 등장하고 첫번째 화살 하나가 6점 과녁에 꽂히다. 박금수 파이팅! 두번째 화살은 7점 과녁에 꽂히다. 세번째 화살은 말을 타고 달려가면서 8점 과녁에 꽂히다, 쏠 때마다 점수 상승~박금수 파이팅! 세발 합계 21점으로 아쉽게 예선 탈락한 박금수 선수와 인터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광용: 아, 그런데 달리는 말 위에서 활쏘기 어려운 걸 하신 거잖아요 대단하십니다.
박금수/무기 및 전략전술 전문가: 사실 이건 우리 국궁의 활인데요. 몽골의 활도 거의 비슷한 각궁을 썼던 것입니다. (몽골의 활은 각궁-나무, 쇠뿔 등 다른 성질의 재료를 결합한 활). 우리 양궁은 손가락으로 시위를 잡고 시위를 입술까지 당겨서 고정을 시키죠. 이걸 앵커링 이라고 합니다. (앵커링(anchoring)-당긴 활 시위를 고정하는 동작). 몽골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그렇고 손가락이 아니라 엄지 손가락으로 당깁니다. 자, 보십시오. 손가락보다 엄지손가락이 더 뒤에 있죠. 더 많이 당길 수 있어요. 기본적으로 당기는 양도 활이 귀 뒤 여기까지 당기는 거죠. 여기서 고정을 시켜야 되기 때문에 조금 더 예민하고 활이 좀 어렵습니다. 칭기즈칸은 사람과 전쟁하지 않을 때는 동물과 하라! 평상시에도 사냥훈련을 강조했던 겁니다. 이러한 사냥이 결국에는 실제전투와도 유사한 그런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건데요.
이익주: 일반적으로 옛날에 황제의 사냥 또는 우리나라의 국왕의 사냥은 취미라기 보다는 군사훈련의 성격이 강해요. 그래서 특별히 칭기즈칸이 사냥을 강조한 것도 사실이지만 본래 사냥은 그런 의미가 있다는 것이죠. 칭기즈칸이 사냥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한 경우가 있어요. 전투에 태만한 병사 또 사냥에 짐승을 놓친 병사 자사크(사형)~
일동: 아이구~ 아이구~
이시원: 사냥감 놓친 것은 적군을 놓친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의미네요.
이익주: 그렇죠, 그래서 사냥을 전투와 동일시 하고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고 이걸 통해서 실전훈련을 하는 거죠. 그래서 포위하고 쫓고 일사분란하게 격파하는 전술이 훗날 호라즘 침공때 그대로 선보입니다.
-------------이광용: 칭기즈칸의 법령에서 천호 백호 십호 이런 단어들이 등장했잖아요. 이게 몽골의 핵심적인 군사제도인 천호제의 용어입니다. 칭기즈칸이 정비한 강력한 중앙집권적 조직이었습니다------------
-------박금수: (큰 흰 칠판 등장) 여기 10명 있어요. 자기들 끼리 친한 사람들이 있었겠지요. 이들을 데려다가 일렬로 세웁니다. 다~ 모여~ 10명중에 한 명을 십호장으로 삼았던 것이죠. 이런 십호에 곱하기 10, 열개가 모이면, (이광용 아나를 향해) 어떻게 될까요? 혹시 100? 그렇죠~ 100호가 되는 겁니다. 이 100호가 10개가 더 있으면 그럼 어떻게 될까요? (역시 이광용 아나가 자신을 향해) 설마 저한테? 그렇죠, 어떻게 돼죠? 열개? 이광용: 아이구 이거 좀 어려운데~ 1000? -------
박금수: 정답입니다. 이렇게 이광용 아나운서도 너무 잘 알아요. 쉬운 거죠. 천호제의 장점은 명령을 받은 내가 열명에게만 전달하면 돼요. 모든 사람이 10명 한테만 전달하면 위에서 아래까지 일사분란하게 명령이 하달되는 피라미드식 조직입니다. 이러한 체계는 오늘날 군대에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사단~(이광용이 박금수에게 거수경례) 충성! (박금수가 이광용에게 거수경례) 충성! 이러한 일사분란한 피라미드식 체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익주: 이렇게 십진법 단위로 부대를 편성한 이런 방법은 훨씬 이전부터 유목민 사이에서 늘 있던 일입니다. 그런데 왜 칭기즈칸 때 와서 위력을 발휘하느냐? 이 천호 단위집단의 지휘관, 이 사람들을 누구로 임명하느냐에 달라지는 거에요. 혈연관계를 없애고 자기에게 충성한 사람, 능력있는 사람 위주로 지휘관을 임명을 한 것입니다.
권용철: 그러다보니 노예출신인 천호장들도 존재했었고 이 얘기는 뭐냐하면 노예라도 내가 전쟁을 잘해서 공을 세우면 신분상승이 가능하다 라는 이야기가 돼죠. 또 그러한 바탕이 있기 때문에 더욱 강력한 전투력이 만들어지는 배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칭기즈칸의 신의 한 수).
최태성: 목숨 걸고 싸워야 되겠네~ 위로 올라 갈수 있는 유일한 사다리가 전쟁이니까.
이시원: 아주 강력한 군대가 탄생하는 배경인 것 같애요.
이익주: 또 한 가지 이야기할 게 있는데 천호 한 사람한테서 그 아들들을, 백호 한 사람한테서 아들들을 전부 모아요. 이걸 친위대를 조직합니다 (케식(Keshik)-천호장, 백호장 등 귀족의 아들들을 모아 구성된 칭기즈칸의 친위대, 밤낮으로 왕실 가족을 호위). 이걸 케식이라고 하는데 칭기즈칸 자신의 군대가 되는 거예요.
최태성: 인질도 되겠는데~
이시원: 미리 교육도 시킬 것 같애요.
이익주: 두 가지 의미가 다 있어요. 인질 겸 칭기즈칸의 평소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엘리트 집단을 만드는 것인데 고려의 왕자가 몽골에 인질로 갔다고 하는게 케식의 일원이 되기 위해 간 거에요.
이광용: 천호제의 조직력이 강할 수 밖에 없었던 어마어마한 특징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박금주: 연대책임, 만약에 이 십호에서 한 명이라도 도망자나 탈영자가 나오면 나머지 인원은 어떻게 될까요? 모두 처형합니다. 그리고 전투 중에 상대방에게 붙잡힐 수도 있잖아요. 포로가 된 전우를 두고 오면 전원 자사크(처형)입니다. 그리고 전투 중에 전사자가 생기고 부상자가 생기면 반드시 시신이라도 수습해서 돌아와야만 이들이 살 수가 있는 것이죠. 이러한 군율은 한편으로는 전우와 함께 끝까지 싸워야 하는 원동력이 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광용: 하지만 칭기즈칸 부대도 약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공성전(攻城戰)과 수전(水戰)이었습니다.
박금수: 칭기즈칸이 제일 먼저 공격했던 서하, 서하지역은 축성술이 발달했죠. 높은 방호벽으로 둘러쌓여 있었던 것입니다. 말은 달려도 성을 넘을 수는 없잖아요. 어떻게 했을까요? 일단은 성은 있어요. 막 둘러 쌉니다. 공격을 하죠. 그런데 성이란 게 결국은 인구밀집지역이죠.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 반드시 강이 흘러요. 주변의 강을 파요~ 한쪽으로 흐르는 거예요. 침수시켜 버려요.
이광용: 水攻이네요.
박금수: 그렇죠, 그런 와중에도 계속 공격을 퍼붓습니다. 언제 까지~ 항복할 때까지~
이광용: 몽골군은 특히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상대는 그냥 초토화시켜 버렸습니다. 서하를 점령한 뒤에는 모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죽여 버렸습니다. 그런데 예외가 있었어요. 그게 누구?
박금수: 기술자들이었습니다. 기술 있는 사람들, 쓸모가 있는 사람들은 살려주었던 것입니다. 의사, 천문학자, 성직자, 가수 등 전문가는 우대~
이광용: 그래서 사람은 기술을 배워야 한다.
박금수: 칭기즈칸은 이러한 기술자들을 동원해 가지고 필요한 전쟁물자를 만들게 했습니다. 서하의 기술자들이 만들어낸 것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이광용: 바로~ 짜잔~
박금수: 투석기(投石器)죠. 포라고도 하는데요. 돌을 날려서 성을 무너뜨리거나 성 위에 있는 수병들을 와해시키는 거죠. 다음은? 이게 이름이 뭐였죠?
이시원; 사다리 차? 공성탑?
박금수: 운제(雲梯), 구름 雲자, 사다리 梯 자를 써서 이렇게 성벽 위로 올리는 공성무기들~ 어쨋던 점령지에서 기술자들을 빼내어서 자신들이 부족한 것을 채워서 나갈 수 있었던 것이죠. 그렇게 해서 1209년 서하를 점령합니다. 그리고 애초에 목표를 했던 금과의 전투를 1211년에 전투를 시작하고요. 1215년에 금 나라의 수도인 중도(베이징)를 점령합니다.
이광용: 맥아더 장군이 얘기를 했습니다. 인류의 모든 전쟁기록을 없애고 칭기즈칸 전쟁사만 남겨 놓으면 거기서 우리는 모든 군사적 교재를 얻을 수 있다. 왜 그랬는지 이제 여러분 충분히 아시겠죠. 지금까지 박금수~ 이광용~이었습니다.
최원정: 전쟁을 하면 할수록 강해지는 캐릭터와 유사한데요.
허준: 게임도 그런게 있거든요. 자기보다 약한 적을 잡으면 경험치가 오르지 않지만 근데 자기와 비슷 비슷한 동급의 적을 잡으면 경험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몽골이 호라즘 쪽으로 가면서 배웠던 것들이 게속해서 퀀텀 점프(Quantum jump)를 시키는 그런 배움의 과정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퀀텀 점프(Quantum jump)-물리학 용어로,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현상).
이익주: 정말 싸움의 신이에요. 여러가지 잘 싸우는 기술은 다 가지고 있는데 심리전, 선전전 이런 것도 잘 합니다. 칭기즈칸은 항복하면 평화를 보장하지만 저항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신만이 아신다. 사실은 신과 나만 안다. 이런 이야기죠. 철저하게 적을 파괴하고 살육하고 이 소문이 퍼져나가게 되면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싸울 의지를 상실하게 돼요.
이시원: 그런데 왜 호라즘은 그 소문을 못들었나요? 왜 항복하지 않고 싸울려고 한 걸까요?
허준: 예전에 신라의 달밤이란 영화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이런 대사 나옵니다. 옛 성현 말씀에 똥개도 제 집에서 80은 먹고가! 내가 여기서 태어나고 여기서 자랐어. 호라즘은 굉장히 독특한 지형이고 기후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보이지도 않는 저 먼 곳에서 싸움 좀 한다고 여길 들어온다구~
최태성: 여기가 지금 자연적으로도 굉장히 험한 곳이에요. 천산산맥도 있어요. 겨울이면 영하 50도 까지 떨어지고 사막도 있고 남북을 가로지르는 긴 강도 있어요. 여기를 설마 관통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는 거죠.
해설: 칭기즈칸은 정복과정에서 만난 상인들을 통해 교역의 필요성을 느낀다. 칭기즈칸은 상인들을 호라즘의 술탄에게 보낸다. 그러나 상인들의 물건을 탐낸 국경도시 호라즘 오트라르 성의 성주가 상인들을 첩자로 몰아 죽여 버린다. 분노한 칭기즈칸은 호라즘 정벌을 결심한다.
칭기즈칸: 난 결심했다. 이젠 호라즘의 술탄이 피를 흘려야 한다.
최태성: 사실 이 당시만 해도 몽골이 나라를 정벌하고 여길 정리 했잖아요. 정리하고 서방측하고는 정벌보다는 교역, 언제까지 싸울 수만 없잖아요. 그래서 자신들이 필요한 것을 교역을 통해서 얻을 생각이었거든요.
이익주: 이 죽은 상인들이 마침 칭기즈칸으로부터 통행의 안전을 보장받았던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칭기즈칸 입장에서 볼 때에는 나의 권위가 호라즘의 작은 도시에서 무참히 깨졌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굉장히 분노했을텐데 그래도 일단 참고, 사신을 보내서 항의하고 그 성장을 잡아보내라고 요구를 하는데 호라즘 쪽에서 말을 따르지를 않아요. 오히려 몽골 사신들을 또 죽입니다.
최원정: 잘못 건드린 거야. 분명히 이 사람들은 배신과 복수로 담금질이 되어 있는 부족인데 굉장히 큰 실수를 한 거네요.
권용철: 그런데 몽골이 상인들을 통해서 정보를 수집하기도 하고 첩자로도 이용을 하기도 했기 때문에 사실 오트라르 성주의 의심이 정당한 측면이 있기는 합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전쟁 명분이 필요했던 칭기즈칸이 상인들을 첩자로 보냈다. 이런 주장도 있습니다. 어쨌던 이제 충돌을 하게 되는 상항에서 칭기즈칸이 직접 대군을 이끌고 출병을 하구요. 특히 칭기즈칸의 아들들이 정복전쟁을 직접 경험하고 군사들을 지휘하게 되었다는 것은 칭기즈칸이 사망한 이후에도 계속 몽골제국이 확장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발판이 되었죠.
이익주: 우리가 전쟁을 할수록 강해진다. 이런 이야기를 했잖아요. 뭔가 배운다는 건데 이것보다 더 쉬운 방법이 있어요. 자기가 점령지에서 군대를 징발하는 거에요. 그러면 이 군대는 공성전도 잘하고 수전도 잘하고 가는 동안 군대가 더 커지고~
이시원: 다양한 전술을 쓸 수가 있고~
최태성; 게다가 큰 도시를 칠 때 작은 도시들, 계속 싸우겠다는 도시가 있다면 작은 도시에 있는 사람들을 최전방에 세워요. 앞에서 쏟아지는 무기를 다 흡수하도록 만드는 거예요. 그러면서 옆에 해자가 있으면 해자에다 쓸어뜨리는 거예요. 산자들도 해자를 메꾸는 거예요. 그러고는 그 위를 밟고 그냥 가버리는 거예요. 엄청난 빠른 속도로 이런 식으로 밀고 들어가니까 당하는 사람들은 이게 뭐야 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을 거 같애요.
이시원: 정말 정복군주 라는 게 두가지 평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거 같애요. 아~ 이 성공이 대단하기는 한대, 한편으로는 너무 무자비하고 잔인해요.
이익주: 칭기즈칸은 평생을 전쟁터에서 삽니다. 모두 자기가 일으킨 전쟁이에요. 이 전쟁에서 그런 끔찍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수만은 사람이 죽고 수많은 도시와 문화가 파괴됩니다.
이익주: 우리가 칭기즈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그 리더쉽을 높이 평가하기도 하지만 이 파괴, 살육 이런 이미지를 잊으면 안돼요. 오트라르성도 반년이 안되어 함락이 됩니다. 그 엄청난 몽골의 군사력에 버티지 못하고~ (동영상).
해설: 마침내 오트라르성이 함락되고 칭기즈칸 앞에 성주가 잡혀 온다.
성주: 뭣하려는 거냐?
칭기즈칸: 금은 보화를 보면 눈이 뒤집히지않았느냐 수은을 네 눈 속에다 부어 넣겠다.
성주: 안돼! 안돼!
해설: 칭기즈칸은 오트라르 성주의 눈과 귀에 펄펄 끓는 수은을 퍼부어 처참하게 살해한다.
군인: 우리 재물을 빼앗을 때는 틀림없이 눈뜨고 있었을 텐데~
성주: 으~악~
칭기즈칸: 시체를 끌어가서 버려라
권용철: 칭기즈칸의 이런 잔인한 일화가 많이 있죠. 죽이는 방법 중에서도 입에 계속 돌을 채워 넣어서 숨 막혀서 죽게 되는 그런 방법도 있었고~
이시원: 그런데 살짝 변호를 하자면 저렇게 본보기를 보여준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거든요.
권용철: 저도 칭기즈칸을 약간 변호하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만 칭기즈칸이 잔인했던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역사상 칭기즈칸만 잔인했는지 그거는 우리가 좀 생각해 볼 여지가 있겠죠.
최태성; 전근대사회의 전쟁에서 이런 모습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지금보면 굉장히 야만적인~
최원정; 어떻게 보면 변호하기가 힘든 것 같애요.
이시원: 아무리 성공한 정복자라도 이런 오점을 남기지말라고 역사공부를 하는 것 같애요.
최태성: 어쨋거나 오트라르성 함락 이후에도 몽골의 호라즘 공격은 계속됩니다. 무함마드 왕이 사마르칸트를 지킬려고 무려 11만 군대를 모읍니다. 그리고 코끼리 스무마리를 갑옷을 입혀서 숨겨서 출전을 시킵니다. 무함마드로서는 사생결단을 하는 거죠.
허준; 철갑기병 같은 경우는 탱크처럼 밀고 들어가는데 코끼리가 밀고 들어오면 이건 방법이 없어요.
이시원: 코끼리가 굉장히 예민한 동물이잖아요.
최태성; 몽골군은 코끼리를 공격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코끼리가 난리가 나고 아수라장이 된 거예요. 전열이 흩으러져 가지고 몽골군이 공격을 해서 결국은 혼란한 틈을 타 호라즘의 왕은 도망가 버리죠.
권용철: 결국은 성문이 열리게 되고 몽골군들은 성내를 마음껏 약탈하는 상황이 되었죠. 사마르칸트는 초토화 됩니다.
이익주: 이렇게 저항하는 사람들에게는 용서가 없다. 사냥할 땐 끝까지 쫓아간다. 이런 원칙이 있잖아요. 그래서 이때 도망간 술탄 무함마드도 끝까지 쫓아가고(카스피해), 또 한가지는 그의 아들 잘랄 웃딘을 끝까지 쫓아 갑니다(인도). 전쟁이 이런 식으로 확대가 되기 때문에 이 전쟁은 끝이 없는 전쟁이에요. 되는대로 계속 확전을 하는 전쟁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몽골제국 주변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전쟁의 위험에 떨게 돼죠.
이시원: 이 주위 나라들은 제발 우리 쪽으로 도망오지 마 이런 심정이었을 거 같애요.
허준: 내쪽으로 오지 마오~
최원정: 쇠라는 뜻의 테무진에서 위대한 지도자란 뜻의 칭기즈칸 (1206년에 얻은 새이름), 뭔가 그 생각이 들었거든요. 운명이 이름 따라 간다. 오늘 아무튼 칭기즈칸, 몽골제국의 시작이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너무나 큰 스케일이고 가슴이 벌렁벌렁하는 순간이 너무 많았어요.
이시원; 역사를 배우면서 칭기즈칸, 그 정도로 훌륭한 칭호를 얻고 업적을 얻을려면 그 이면에 또 다른 면이 있구나. 이런 면을 알게 된 거같습니다.
권용철: 이제 우리는 몽골제국과 세계화, 이것을 쉽게 언급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제 오늘 살펴봤지만 실제 그 과정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들어가 있다라는 것을 오늘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익주: 우리가 지금 칭기즈칸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수백년 뒤에 전세계 사람들이 이름을 기억할 사람, 이런 사람을 우리가 모여 앉아서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몰랐던 것 딱 한가지를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 사람의 미래죠. 이것 때문에 생기는 착각이 하나 있다는 겁니다. 그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전체 모습으로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역사를 공부할 때는 시간 별로 그 시간에 어떤 모습이었을까. 과거의 눈이 하나 필요하고 그 다음에 요즘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현재의 눈이 필요하고 두개의 눈으로 역사를 봐야 된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최원정; 칭기즈칸이란 이름 앞에 쓰러진 나라들도 달리 애기하면 그의 이름 아래서 통합된 유라시아 대륙의 역사를 우리가 지금 들여다 보고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다음 시간에 그 이야기 이어가도록 하죠. 끝. (KBS 역사저널 그날, 칭기즈칸의 나라, 몽골제국 [제2편] 테무진, 칭기즈칸이 되다에서 정리).
① 약소부족의 일원이었던 테무진, 그는 숱한 위기를 극복하며 초원을 통합해 나간다. 1206년 드디어 통일에 성공한 그는 신으로부터 새로운 이름을 받는다. 장생신의 말을 전하겠노라 모든 땅을 테무진과 그의 자손들에게 하사하겠다. 그는 이제 우리들의 칭기즈칸이다. 칭기즈칸: 大몽골국이 탄생했습니다. 이제 몽골의 모든 것을 그대들과 함께 나누리라. 훗날 아시아는 물론 러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공포에 떨게 만든 칭기즈칸이란 이름이 새롭게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젊은 시절 칭기즈칸의 위기로는, ⓐ 독살로 아버지를 여위었고, ⓑ 약탈로 아내를 빼앗겼고, ⓒ 의형제였던 자무카와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벌여야 했다. 그가 드디어 초원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이때 1206년 그의 나이 44살이 되는 해이다. 그때 유럽은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 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을 점령해 라틴 제국을 세우고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중국은 송이 남송으로 밀리고 여진족이 세운 금이 화북지역을 장악하던 시기였다. 일본은 가마쿠라 막부시절이었고, 우리의 고려는 희종 2년째였다.
② 고려는 1170년 무신정권이 일어나 정주부에서 뒤이어 경대승에게로 뒤이어 이의민에게로 그리고 최충헌이 이의민을 죽이고 권력을 잡은 후 최씨 무신정권이 10년째 이어지던 시기였다. 세계는 그때 초원에서 어마어마한 인물이 비상하고 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2021년 세계는 지금 칭기즈칸이라는 이름을 누구나 알고 있다.
③ 칭기즈칸은 유목민들 사이에 있었던 금기들을 바탕으로 그들의 법인 자사크[법령]를 정리한다.
물이 흐르는 곳에서 빨래를 하지마라/누구든 물과 불씨에 오줌을 싸는 것을 엄금한다/불과 탁자, 접시를 넘으면/장생신이 노여워할 거니 금하고~~칭기즈칸: 만부장, 천부장, 백부장들은 모두 다 자신의 군사들을 항상 열심히 훈련시켜 언제든 출정할 준비를 갖춰 밤이든 낮이든 출동명령이 내려지면 곧 바로 명령에 따라야 한다. 누구든 자신이 속한 천호와 백호, 십호를 떠나 다른 데로 갈 수 없다. 만약 이를 어기면 부족 앞에서 극형을 당할 것이다. 실제로 자사크(Jasaq)라고 부르는 법령들을 보면 대부분이 극형, 사형 이런 얘기들이 많다. 지금 우리처럼 징역 몇 년 벌금 얼마 이런 식의 촘촘한 형량 규정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칭기즈칸 스스로도 자신이 만든 법을 중시했고 칭기즈칸 본인에게 엄격하게 적용을 했다. 죽기 전에는 내가 만든 법령을 바꾸지 말라고 유언까지 했다.
④ 여러개의 울루스(부족)를 모아서 하나의 국가를 만들었을 때 그 울루스들이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몽골제국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칭기즈칸은 자사크란 법을 만들었다. 어떤 내용이 있느냐 하면 간통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거짓말을 한 자 다른 사람을 몰래 훔쳐본 자 남의 싸움에 개입하여 한쪽을 편드는 자 모두 사형에 처한다. 술에 관한 내용이다. (칭기즈칸의 법) 만약 술을 끊을 수 없으면 한 달에 세번만 마셔라. 만약 음주를 막을 방법이 없다면 한 달에 세번 크게 취하는 것은 무방할 것이다 만약 막을 방법이 없다면, 크게 취하는 건 괜찮다. 두번은 취하면 더 좋고 한번만 취하다면 물론 더 좋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사람이 술을 안마신다는 것을 생각도 못하였다.
⑤ 유목민들은 말 다루는 걸 중요하게 여겼다. 모린치 라고 부르는 말을 전담하는 직책도 존재했다. 자사크의 법령조항을 보면 말을 훔친 자는 한 마리당 아홉 마리를 변상해야 한다. 만약 변상할 말이 없으면 아들을 내주어야 한다. 아들이 없으면 양처럼 본인이 도살될 것이다. 칭기즈칸은 당시 말 훈련을 혹독하게 시켰다. 얼마나 말 훈련이 잘 되어 있는지 말들이 자기 구역이 있어야 되는데 뭉쳐 있으면 힘들어 한다. 그런데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고 조용히 있도록 만들어 놨고 기수나 기병이 올라타거나 내릴 때 어떤 동요도 없고 있으나 없으나 도망가지 않고 기병을 기다렸다. 몽골 말은 재갈을 안물리고 그냥 탈 수 있단다. 말이 그만큼 훈련이 잘 되어 있었다.
⑥ 말 너댓 마리가 먹을 수 있는 양의 얕은 우물을 파서 물을 먹이는데, 동물들은 사료를 주거나 물을 주거나 하면 한꺼번에 달려와서 막 무가내로 먹는다. 그런데 몽골 말들은 우물을 파주면 순서를 기다린다. 줄도 설 줄 안다. 그렇게 훈련이 완벽하게 되었다. 몽골 사람들은 말에 대해서 굉장히 잘 알고 있다. 심지어 말의 눈만 봐도 말이 어디가 아픈지를 알 수 있다고,
⑦ 13세기 실크 로드 교역의 중심지였던 사마르칸트, 이 지역을 중심에 호라즘(1077~1231) 왕국은 이슬람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고 수준 높은 문명을 자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칭기즈칸이 출현하기 전까지만 이었다. 호라즘 왕국은 의학, 언어, 문화, 신학, 제도학 등이 발달해 있었다고. 하지만 몽골이 침략하면서 이런 문화는 파괴되어 사라졌다. 150만의 주민이 살았던 이 광대한 영토가 재로 변한 것이다. 그 시대는 없었던 것처럼 유적이 사라진 것이다. 칭기즈칸의 군대가 번영을 이루었던 호라즘 왕국을 초토화시키는 데는 불과 2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호라즘 왕국이 있던 일대는 이라크,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말한다.
⑧ 몽골은 금 나라에 대해서 원한이 있었다. 직접적으로는 칭기즈칸의 증조부부터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형제들까지 금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다. 집안의 복수이기도 하고 몽골 울루스의 복수이기도 하고 여기에 더하기 풍부한 물자를 공급받을 수 있는 이유가 겹쳐지면서 당연히 금을 먼저 공격할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데 금을 먼저 치지 않고 바로 西夏를 공격한다. 서하를 먼저 정리하고 이후에 금을 치고 이후에 서요와 호라즘 쪽으로 나갔다.
⑨ 칭기즈칸은 사람과 전쟁하지 않을 때는 동물과 하라고 평상시에 사냥훈련을 강조했다. 이러한 사냥이 결국에는 실제전투와도 유사한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칭기즈칸이 사냥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하였다. 전투에 태만한 병사 또 사냥에 짐승을 놓친 병사 자사크(사형)다, 사냥감 놓친 것은 적군을 놓친 것과 마찬가지다. 사냥을 전투와 동일시 하고 중요하게 생각했고 이걸 통해서 실전훈련을 하였다. 그래서 포위하고 쫓고 일사분란하게 격파하는 전술이 훗날 호라즘 침공때 그대로 선보였다.
⑩ 몽골의 천호제는 핵심적인 군사제도다. 칭기즈칸의 강력한 중앙집권적 조직이었다. 여기 병사10명이 있다. 10명중에 한 명을 십호장으로 삼았다. 십호가 열개 모이면 100호가 된다, 한 명 백호장을 세운다. 100호가 10개 있으면 천호, 천호장을 세운다, 천호제의 장점은 명령을 받은 내가 열명에게만 전달하면 된다. 모든 사람이 10명 한테만 전달하면 위에서 아래까지 일사분란하게 명령이 하달되는 피라미드식 조직이다. 이런 체계는 오늘날 군대에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사단에 일사분란한 피라미드식 체계와 같다. 이게 칭기즈칸 때 와서 위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천호 단위집단의 지휘관, 이 사람들을 누구로 임명하느냐에 달라지는 거다. 칭기즈칸은 혈연관계를 없애고 자기에게 충성한 사람, 능력있는 사람 위주로 지휘관을 임명을 하였다. 그러다보니 노예출신 천호장들도 존재했다. 노예라도 전쟁을 잘해서 공을 세우면 신분상승이 되었다. 그러한 바탕이 있기 때문에 강력한 전투력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칭기즈칸의 신의 한 수). 누구나 목숨 걸고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아주 강력한 군대가 탄생하는 배경이 되었다. 또 천호와 백호 사람들한테서 아들들을 전부 모아서 친위대를 조직했다. 이걸 케식이라고 하는데 불렀다. 케식은 인질도 되고 교육도 시켜서 칭기즈칸의 평소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엘리트 집단을 만드는 것인데 고려의 왕자는 몽골에 인질로 가서 케식의 일원이 되었다.
⑪ 천호제의 조직력이 강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바로 연대책임, 만약에 이 십호에서 한 명이라도 도망자나 탈영자가 나오면 나머지 인원은 모두 처형이다. 전투 중에 포로가 된 전우를 두고 오면 전원 자사크(처형)이다. 전투 중에 전사자가 생기고 부상자가 생기면 반드시 시신이라도 수습해서 돌아와야 살 수 있다. 이러한 군율은 한편으로는 전우와 함께 끝까지 싸워야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몽골군은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상대는 초토화시켜 버렸다. 서하를 점령한 뒤에는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죽여 버렸다. 예외가 있었다. 기술자들이었다. 의사, 천문학자, 성직자, 가수 등 전문가들은 살려주었다.. 칭기즈칸은 이러한 기술자들을 동원해 가지고 필요한 전쟁물자를 만들게 했다. 칭기즈칸은 점령지에서 기술자들을 빼내어서 자신들이 부족한 것을 채워서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1209년 서하를 점령하고 1211년에 금과의 전투를 시작하고 1215년에 금 나라의 수도인 중도(베이징)를 점령한다. 맥아더 장군이 말했다. 인류의 모든 전쟁기록을 없애고 칭기즈칸 전쟁사만 남겨 놓으면 거기서 우리는 모든 군사적 교재를 얻을 수 있다고.
⑫ 칭기즈칸 군대는 전쟁을 하면 할수록 강해진다. 자기보다 약한 적을 잡으면 경험치가 오르지 않지만 자기와 동급의 적을 잡으면 경험치가 대폭 상승한다. 몽골이 호라즘 쪽으로 가면서 배웠던 것들이 게속해서 퀀텀 점프(Quantum jump)를 시키는 배움의 과정이었다. 칭기즈칸은 싸움의 신이다. 여러가지 잘 싸우는 기술은 다 가지고 있었는데 심리전, 선전전도 잘 했다. 칭기즈칸은 항복하면 평화를 보장하지만 저항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신만이 아신다. 사실은 신과 나만 안다. 철저하게 적을 파괴하고 살육하고 이 소문이 퍼져나가게 되면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싸울 의지를 상실한다. 그런데 왜 호라즘은 항복하지 않고 싸울려고 하였나. 호라즘은 굉장히 독특한 지형과 기후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보이지도 않는 저 먼 곳에서 싸움 좀 한다고 여길 들어온다구 너무 우습게 봤다. 호라즘은 자연적으로도 굉장히 험한 곳이다. 천산산맥도 있다. 겨울이면 영하 50도 까지 떨어지고 사막도 있고 남북을 가로지르는 긴 강도 있다. 칭기즈칸이라도 설마 여기를 관통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⑬ 칭기즈칸은 정복과정에서 만난 상인들을 통해 교역의 필요성을 느꼈고 상인들을 호라즘의 술탄에게 보냈다. 그러나 상인들의 물건을 탐낸 국경도시 호라즘 오트라르 성의 성주가 상인들을 첩자로 몰아 죽여 버렸다. 분노한 칭기즈칸은 호라즘 정벌을 결심한다. 이젠 호라즘의 술탄이 피를 흘려야 한다. 사실 몽골은 서방측하고는 정벌보다는 교역을 통해서 필요한 물품을 얻을 생각이었다. 죽은 상인들은 칭기즈칸으로부터 통행의 안전을 보장받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칭기즈칸 입장에서 볼 때에는 나의 권위가 호라즘의 작은 도시에서 무참히 깨졌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굉장히 분노했을텐데 그래도 일단 참고, 사신을 보내서 항의하고 그 성장을 잡아보내라고 요구를 하는데 호라즘 쪽에서 말을 따르지를 않고 오히려 몽골 사신들을 또 죽였다. 칭기즈칸이 직접 대군을 이끌고 출병을 한다. 특히 칭기즈칸의 아들들이 정복전쟁을 직접 경험하고 군사들을 지휘하게 되었다는 것은 칭기즈칸이 사망한 이후에도 계속 몽골제국이 확장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우리가 전쟁을 할수록 강해진다는 이야기를 한다. 뭔가 배운다는 건데 점령지에서 군대를 징발하는 거다. 그러면 이 군대는 공성전도 잘하고 수전도 잘하고 가는 동안 군대가 더 커진다.
⑭ 칭기즈칸은 평생을 전쟁터에서 살았다. 모두 자기가 일으킨 전쟁이다. 전쟁터에서 수만은 사람이 죽고 수많은 도시와 문화가 파괴되었다. 우리가 칭기즈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그 리더쉽을 높이 평가하기도 하지만 이 파괴, 살육 이런 이미지를 잊으면 안된다. 오트라르성도 반년이 안되어 함락이 된다. 그 엄청난 몽골의 군사력에 버티지를 못하였다. 칭기즈칸이 잔인했던 건 분명하다. 역사상 칭기즈칸만 잔인했는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변호하기는 힘들 것 같다.
⑮ 오트라르성 함락 이후에도 몽골의 호라즘 공격은 계속되었다. 무함마드 왕이 사마르칸트를 지킬려고 무려 11만 군대를 모았다. 몽골군이 공격하였다. 전열이 흩으러져 혼란한 틈을 타 호라즘 왕은 도망갔다. 성문이 열리고 몽골군들은 성내를 마음껏 약탈하는 상황이 되었고 사마르칸트는 초토화 되었다. 저항하는 사람들에게는 용서가 없다. 사냥할 땐 끝까지 쫓아간다. 이런 원칙이 있다. 이때 도망간 술탄 무함마드도 끝까지 쫓아갔고(카스피해), 또 그의 아들 잘랄 웃딘을 끝까지 쫓아 갔다(인도). 전쟁이 이런 식으로 확대가 되기 때문에 몽골제국 주변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전쟁의 위험에 떨게 되었다. 쇠라는 뜻의 테무진에서 위대한 지도자란 뜻의 칭기즈칸, 운명이 이름 따라 간다. 칭기즈칸, 몽골제국의 시작은 너무나 큰 스케일이고 가슴 떨리는 순간이 많았다. 훌륭한 칭호를 얻고 업적을 얻을려면 그 이면에 또 다른 면이 있었다. 우리는 몽골제국과 세계화를 쉽게 언급을 하는데 실제 그 과정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들어가 있었다. 칭기즈칸이란 이름 앞에 쓰러진 나라들도 그의 이름 아래서 통합된 유라시아 대륙의 역사를 우리가 지금 들여다 보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