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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최순희
또 물을 쏟았다. 그러나 걸레를 빨리 찾을 수가 없다. 더듬더듬하다 보니 어느새 물은 온 바닥에 퍼졌는지 미끄럽다. 잘못하면 미끄러질 판이다. 겨우 걸레를 찾아 방바닥의 물을 닦았다. 침침해지는 시야보다 가슴속이 더 꽉 막혀온다. 성난 파도가 그립다. 산 같은 파도가 세상의 모든 것을 통째로 집어삼킬 듯 달려들던 그 파도가 지금 자신을 데려가며 여한이 없을 것 같다. 이 꼴로 살아야 하나? 대체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숙희가 차려놓은 점심을 찾아 먹으려다 물병을 쏟은 것이다. 벽에 몸을 기대고 심호흡을 해도 다시 울화가 치민다. 복장이 차올랐다. 식탁 위의 밥그릇들을 와르르 밀어버리고 싶다. 아침도 걸렸건만 시장치도 않다. 밥은 먹어서 뭣해. 무얼 하느냐고. 할 게 없다. 이렇게 방구석에 처박힌 지도 얼마나 됐는지 모른다. 생각하기조차 싫다.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 그래 지금 꿈속에서 이렇게 괴로운 거야. 자꾸만 지금의 자신이 자기 자신이 아닌 것 같다, 자신은 저 먼바다에 몸을 맡기고 끝없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향수에 젖던 마도로스가 아닌가. 나는 바다에 있어야 하는데 왜 여기 있는가. 그래 나도 한때는 행복한 시절이 있었지. 신기루 같은 행복이었지.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면 가족을 그리며 다닌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시절이었지. 설사 속고 살은 세월일지라도.
“술, 술! 술밖에 없어!”
23살에 탄 배가 50이 넘도록 바다에서 살았다. 조리장이었다. 상선이었기에 집에는 2년 아니면 3년에 올 수 있었다. 집에는 자주 못 왔지만, 배가 동남아 쪽에 들어와 정박하여 머물 때는 아내 난영이 싱가포르나 일본, 태국에 비행기로 날아와 일주일 혹은 열흘 정도 같이 지내다 갔다. 신혼이 따로 없었다. 주변 동료들에 눈총을 받을 정도로 잉꼬부부였다. 봉급이야 아예 집으로 다 갔지만 하역 수당이나 상륙비 등도 모아두었다 아내 만날 때 선물 사주고 구경 다니고 맛있는 음식 사 먹고 하였다. 결혼하고부터 진실로 사랑한 아내였다. 남편과 떨어져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며 기다림의 세월을 살아온 아내이기에 더 애틋하게 사랑했다. 갑자기 왼쪽 눈의 백내장이 심해져 휴직을 하고 아내가 알며 많이 걱정할까 전화를 않고 귀국 비행기를 탔다. 눈 수술도 하고 좀 쉬어야겠다고 작정했다. 삼 년 만의 귀국이라 가슴이 뛰었다. 가족들과 만남의 기쁨과 느긋한 휴식의 편안함을 그렸다. 구인호가 설레는 마음으로 자신의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는 없었다. 집안이 썰렁하고 어딘지 찬 기운이 돌았다. 싱크대엔 빈 그릇들이 뒹굴고, 휴지통엔 먹고 난 사발 라면이 포개진 채 어질러져 있었다. 깔끔한 아내인데 일이 있어 집을 비웠나. 아내의 휴대폰은 꺼져있었다. 그러나 일이 있어 밖에 나가겠지 하고 기다렸다. 저녁 무렵에 중3 문희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아빠를 보고 깜짝 놀란다. 딸을 껴안았다. 문희를 보자 마음이 놓였다.
“문희야! 엄마는? 엄마 어디 가셨니?”
“예 아빠 저기, 엄마는 저기 엄마 친구들하고 놀러 갔어.”
“그래. 언제 오신다던?”
“내일쯤 올 거예요.”
문희의 대답에 뭔가 좀 켕기는 듯해도 딸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러나 그 한 가닥 믿음은 큰딸 숙희를 만나고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고 2학년 숙희가 조금 늦게 왔다.
“아빠! 엄마 믿지 마세요. 우리 엄마 아니에요!”
“뭐라고?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니?”
“엄마 바람났어요. 아빠에게 말도 못 하고 내가 얼마나 방황했는지 알아요? 엄마가 미웠고 엄마 딸인 내가 싫어 죽고 싶었다고요! 내가 중3 때 학교도 안 가고 반항해 보았지만 소용없었어요.”
“뭐, 뭐라고?”
“아빠에게 말하려다 그래도 엄마가 정신 차려 돌아오려나 싶어서… 아빠, 나 죽으려고도 해 봤어요! 엄마가 너무 미워서.”
흥분하여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숙희 입을 그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이가 뭘 잘못 먹었나? 저 아이가 왜 저런 말을 하지?
“숙희야, 네 뭘 잘못 알고 말하는 거지?”
“아빠! 내가 왜 없는 말 하겠어! 엄만 만날 나가고 밥도 우리가 챙겨 먹어요.”
도마 위에 오른 펄쩍펄쩍 튀는 커다란 생선 머리를 탁 내리친다. 선혈이 쏟아진다. 내장을 빼낸다. 생선 머리가 아직 헐떡인다. 꼬리가 도마를 철썩 때린다. 시퍼렇게 날 선 식칼로 생선을 한순간에 토막토막 낸다. 붉은 생선 살이 터질 듯 탱탱하다. 아! 이건 생선이 아니야. 내 인생이 토막 나고 있어. 내 인생이 지금 토막토막 잘리고 있어. 그 험한 파도를 뚫고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아니지 숙희가 잘못 알고 있어. 아이가 크게 오해하고 있어. 빨리 아내를 만나야 해.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지. 내 아내만은 그럴 리가 없지. 그래 애들 엄마를 만나면 실꾸리 풀리듯 다 풀리겠지. 아내를 놀래주려고 말없이 귀국한 결과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아내의 휴대폰은 계속 꺼져있었다. 해가 지고 어두워도 난영은 돌아오지 않았다. 설마 하던 우려가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더구나 눈앞에 사람이 없고 쉬이 찾을 수도 없는 현실에 말할 수 없이 불안하고 비참해져 갔다. 딸들은 그의 눈치만 살폈다. 침침한 왼쪽 눈보다 가슴이 온통 캄캄해져 갔다. 볼일로 나갔으려니 했는데. 아, 사람이 미치는 것도 순식간의 일이로구나. 구인호가 귀국하고 이틀 뒤 아내가 나타났다. 아내는 그 모습 그대로이다. 언제나 그리워한 아내이다. 순간 반가움에 아내의 손부터 덥석 잡고 싶었지만 냉정해지려 안간힘을 썼다. 아내가 자신에게 안기며 당신 언제 왔냐고, 친구들과 놀러 갔다고 말하며 그냥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자신은 아내를 밀어낼 수 없다. 사랑하니까. 두려움이 엄습한다. 제발 내 곁에 있어주라. 숙희가 잘못 알고 있다고 말해주라. 당신이 없으면 난 아무것도 없어. 모든 게 무의미할 뿐이지. 내 삶은 비었어. 그는 이틀 동안 술로 버티며 식사를 전폐한 탓에 두 눈은 움푹 들어가고 얼굴은 창백해졌다. 세상을 다 태울 것 같은 분노와 원망, 허탈과 상심으로 자신을 활활 태우고 있었다.
“당신 나한테 할 말 있지? 들어줄게 말해 봐.”
“······.”
“어디 말해 봐. 아니지? 숙희가 오해한 거지. 당신 잘못 아니지?”
난영은 얼굴을 피하며 대답이 없다. 그는 난영의 어깨를 부여잡고 애절하게 흔들었다.
“난영아 제발 정신 차려! 우리 애들 숙희 문희는 생각 안 해?”
“걔들은 다 컸잖아요.”
인호는 자신도 모르게 난영의 따귀를 때리고야 말았다. 손찌검은 생전 처음이다.
“너 완전히 미쳤구나. 빌어도 뭣한데, 그 오랜 세월 나를 속이고···.”
그는 완전히 이성을 잃고 말았다. 난영을 때리기 시작했다. 머리고 등이고 팔이고 닥치는 대로 마구 때렸다. 당장 죽이고 싶었다. 아내를 죽인 벌로 한평생감옥에 살더라도 후회하지 않으리라. 몸을 동그랗게 말아 매를 맞던 난영이 벌떡 일어나며 매몰차게 소리쳤다.
“난 당신이 싫어! 죽어도 당신하곤 살기 싫단 말이야!”
“뭐 뭐라고 죽어도 뭐라고 했어?”
“난 사랑하는 사람과 살 테야.”
“사랑? 그럼 내가 당신에게 한 것은 사랑이 아니고 뭔데?”
“그것이 무슨 사랑이야. 끝없이 기다리게 지치게 하고서. 징그러워.”
“어떻게 그런 말을, 그걸 말이라고 지껄여?”
아내는 이제껏 그가 알고 있던 아내 난영이 아니다. 참으로 낯선 여자다. 난영을 때리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끝장을 보는구나.
“뭐라고 죽어도 내가 싫다고? 죽어도, 당신 이제껏 말 않고 어찌 살았냐?”
“그 사람은 나를 위해 무어든 다 해준단 말이야. 나는 공주처럼 대접받고 있어.”
“뭣 공주! 이 여편네가 완전히 돌았구나!”
끓어오르는 분노에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는 그를 피해 난영은 머뭇거리는 기색도 없이 잽싸게 현관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구인호는 멍하니 자신이 무언가 크게 잘못 살았구나 싶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곧 용광로보다 더 뜨거운 분노가 치밀었다. 비수처럼 가슴에 박힌 그 말만 자꾸만 들린다.
“난 당신이 싫어! 죽어도 당신하곤 살기 싫단 말이야!”
그 오랜 세월 망망대해 바다를 밤낮으로 바라보며 그리움의 세월을 보냈는데, 아이들을 위해 아내와의 행복한 노후를 그리며 버티고 살아왔는데. 아! 이렇게 갑자기 집에 오지 않았다면, 상선에서 내리지 않았다면 아내는 도대체 언제까지 자신을 하얗게 속이며 살려 했던가. 어떻게 그렇게 오랜 세월을 감쪽같이 속인 것일까. 부르르 진저리가 쳐졌다. 뭐 죽어도, 죽어도 싫다고, 말인가 똥인가. 죽어도 싫어, 그래 당장 찾아 죽여주마. 나는 이제껏 너를 위해 살았는데 그 소원 하나 못 들어줄까. 눈에 불을 켜고 아내의 남자를 찾았다. 남자는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얼핏 보기에는 호인같이 생긴 중년의 사내였다. 정말 단번에 죽이고 싶었다. 미국처럼 총을 소지하고 있었다면 그 자리에서 쏘았다. 아, 그러고 보니 어딘지 본 듯한 느낌이 왔다. 그래 그자다. 그자. 현재 사는 아파트를 소개해 준 남자다. 그때 참 친절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면 이 인간들이 그때부터 눈이 맞아 지랄한 걸까? 아파트 사서 이사한 지가 십 년이 넘었는데.
“내 아내 어딨어? 내놔! 내 아내 내놓으란 말이야!”
“모르오. 정말 어디 있는지 모르오.”
“그걸 말이라고 지껄여?”
“할 말이 없소. 처분만 바랄 뿐이요.”
“처분? 남의 가정을 작살을 내고, 개만도 못한 인간 내가 죽여주마!”
남자의 멱살을 확 끌어 잡았다. 손에 독기를 채우고서 두 뺨을 후려쳤다. 남자는 키대로 쿵 넘어졌다. 발길로 사정없이 걷어찼다. 남자의 가슴을 구둣발로 밟으려는데 누군가 그의 몸을 밀쳐냈다. 그는 야수가 되어 달려들었다. 피를 부르는 욕구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놈이 한 마리 큰 생선으로 보였다. 당장 토막토막 내고 싶어 눈이 뒤집혔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부동산이 맞아 죽을 짓 했네. 금슬 좋은 부부더니 불륜관계였나. 서방질한 년 본서방에게 잡히면 죽겠다. 부동산간판 내려야겠네.
이성을 잃고 미치다시피 한 그가 품속에 날카로운 잭나이프를 준비하고 다시 남자를 찾아갔을 때 부동산은 이미 문을 닫았고 임시휴업 안내장만 붙어 있었다. 안내장을 찢어버리고 간판에 나이프를 꽂았다.
“내가 끝까지 찾아 너희 연놈을 같이 죽여 한 구덩이에 파묻지. 각오하고 있어!”
난영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낯선 여자가 찾았다. 나이가 쉰은 넘어보아는 활달해 보이는 여자였다. 그네는 말문 트인 사람처럼 가슴에 맺힌 한을 쏟아놓았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기다린 줄 아시오? 어떤 배냇병신인지 구경하려고. 그리고 당신 마누라 단속 좀 잘하라며 면박 주려고. 아니면 더러운 연놈 보란 듯이 우리도 바람 확 질러버리자 하려고, 별의별 생각 다 했지요. 속아도 어떻게 그렇게 홀랑 속아요. 벌써 몇 년인데. 그쪽은 이제 눈이 확 뒤집히지요. 나는 이제 끝났어요. 무슨 놈의 계집이 찰거머리보다 더 질깁디다. 나한테 옷도 뜯기고 머리칼도 뽑히고 해도 소용이 없데요. 더러운 년! 사내한테 미친년! 가장이 배를 타 외로워 바람났으면 조금 재미보다 말지 새끼 보기 부끄럽지도 않은지, 밤낮없이 붙어서 지랄을 하니 짐승이고 인간말종이지.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에는 저들 좋아하라고 이혼 안 해 준다고 맹세했는데, 내가 이혼 도장 찍었어요. 그 인간들 더럽고 역겨워 구역질이 울컥울컥 올라오는데 내가 죽겠더라고요. 사람이든 짐승이든 썩어가는 것들은 냄새가 좀 지독해요. 내 자식들이 아비 죽어도 안 본대요. 어휴, 그 꼴 안 보니 내가 살겠더라고요, 나 잘살고 있어요. 생활력도 있어요. 보세요. 아직 저녁때가 아닌데 지금도 홀에 손님 많잖아요. 남의 가정 결딴내고 남편 속이며 등골 빼먹는 더러운 년, 언제까지 죽자 살자 하는지 구경이나 하죠. 뭐 옛날 말에 남의 눈에 눈물 내면 제 눈엔 피눈물 난다고 했지요. 제 눈이 안경이라고 나 참 본서방이 열 배는 더 낫건만 복에 겨워 염병 지랄하네. 그보다 살림 챙겨 보시죠. 기둥뿌리가 다 뽑혔지 뭐가 남았을까."
그 여자의 말이 사실이었다. 집에는 돈 한 푼 없었다. 공동명의로 되어있던 33평 아파트도 벌써 일억이나 대출받은 뒤였다.
죽지 못해 산다더니 바로 자신인 것 같다. 아내가 집을 나갔을 뿐인데 왜 자신의 삶이 태풍에 날려간 듯 흔적이 없을까. 언젠가 본 아랍의 끝없는 모래바람사막에 혼자 남겨진 이 절망감은? 아이들이 있는데, 아이들이 있어 다행이라는 마음도 없었다. 그냥 자신의 인생이 끝장났다고 여겨졌다. 딸들은 내가 없어도 살겠지. 무능한 아빠라고 비웃겠지. 애들 보기도 너무 부끄럽다. 나가려 해도 갈 데가 없다. 생 소주를 들이부어선지 눈이 더 침침해져 갔다. 눈이 멀어 행려병자처럼 거리를 돌아다니다 낯선 길에서 그만 죽어버리겠지. 여동생 인희가 내려와 결단을 내렸다. 난영이 집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아버린 사는 아파트를 처분하여 사금고의 대출금을 갚고 20평짜리 빌라를 사서 이사를 했다. 그는 그 아파트가 뱀 구멍처럼 끔찍했다. 아이들도 찬성했다. 작아도 방이 세 개였다.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인희가 강력하게 주장해서 퇴직금 대부분을 연금으로 돌리고 숙희와 문희에게 고등학교 졸업까지만 학비를 대줄 수 있다고 선언했다.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고교 졸업하고 취직할 거예요. 저는 공부는 별로라 이담에 하고 싶을 때 할래요. 요즘은 평생교육이잖아요. 숙희가 진학하고 싶다면 제가 도울게요. 아빠는 건강이나 챙기세요. 아빠 눈이 걱정이에요. 우리가 정말 미안해, 엄마 못 지켜서.”
아이들은 뜻밖에 성숙해져 있었다. 그는 이사하는 와중에도 남의 일처럼 꼼짝을 않았다. 될 대로 되라지. 세상만사가 귀찮았다. 식사를 전폐하고 독한 매일 술만 마신 탓인지 오른쪽 눈까지 침침해져 갔다. 소경이 되며 어떠랴 하고 있는데 딸들의 성화에 못 견디어 안과병원에 갔다.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두 눈 다 이상이 있다고 하였다. 종합병원에 가라고 소견서를 써주었다. 종합병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술은 하겠지만 상태가 안 좋아 지속적인 치료를 받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절망에 절망이 덮쳤지만 아내의 일을 알았을 때보다 덤덤했다. 눈 수술만은 진작 받지 않았던 게 잠깐 후회되었지만 그러다 무슨 애착에 이러나 싶었다. 자신의 처참한 인생 끝자락이 훤히 보였다. 죽었으면 죽었지 구차하게 살고 싶지 않다. 애들에게 짐이 되긴 싫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바다가 아닌 뭍에서는 적응이 어려운 낙오자가 아닌가. 바보 등신! 난영을 사랑했던 만큼 저주가 퍼부어졌다. 어차피 끝난 내 인생 너를 용서하면 사람이 아니지. 죽음, 억울해서도 혼자는 못 죽지. 나 혼자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회칼을 갈기 시작했다. 시퍼렇게 날을 세웠다. 수십 년 세월 함께한 장인의 주방 칼이다. 그는 자신이 필히 살인을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처참하게 난영을 살해하는 장면이 자꾸만 떠올랐다. 난영은 어디로 숨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숨어라. 얼마든지 숨어라. 이 세상 끝까지 뒤져 내가 너를 찾을 것이다. 천천히 찾아서 아주 천천히 죽여주마.
눈 수술을 하고 병원에 다녀도 나이지지 않았다. 수술한 눈도 안 한 눈도 부옇게 기분 나쁘게 시야를 가린다. 밤새도록 뜬눈으로 뒤척인 아침이나 미친 듯이 술을 퍼마신 날이면 더 심했다. 울화가 치밀수록 눈은 나빠져 갔다. 숙희가 학교 가면서 항상 아빠의 식사를 챙겨놓고 갔지만, 그는 하루에 한 끼 식사도 하지 않았다. 술을 마셔 취하여 자고 깨어나면 또 마시고 알코올만이 위로가 되었다. 딸들이 보다못해
“아빠 제발 술 좀 그만 드세요!”
하고 눈물로 간청하여 자제하려 애썼지만 이미 통제가 안 되었다. 지금 그의 곁에는 술밖에 없었다. 술은 자신을 위로하는 단 하나의 친구였다. 오늘 또 인희가 내려왔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천지에 하나뿐인 혈육이다. 대구에 사는데 오빠 집이 풍파가 나고 보니 애가 타서 지금 열 번도 더 부산에 내려왔다.
“오빠 이러다 정말 일 나겠어요. 왜 이래요. 정말 불쌍한 애들 만들고 싶어요?”
“그래 난 삶에 미련 없다. 아등바등 살고 싶지가 않아. 그 연놈만 죽이면 끝이야.”
“평생 함께할 부부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도 아니면 살아남아 원수를 갚던지.”
“갚고말고. 나 죽기 전에. 내 인생은 끝났어. 천지를 다 집어삼킬 듯한 바다 태풍 만나면 살려달라고 천지신명께 빌었는데 차라리 그때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오빠 너무 하시우. 애들은요?”
“부모 복 없으니 저들 복대로 살겠지. 너도 이젠 오지 마라. 내가 네 말 듣겠니.”
“오빠!”
구인호는 끝내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버렸다. 인희가 주방 서랍에서 시퍼렇게 날이 선 회칼을 발견하고 놀라 치워버렸다. 주방엔 가위만 남겼다. 인희가 그 후 다섯 번을 더 걸음 하여 오빠를 설득시켜 옛 친구가 간병인으로 일하는 ‘너싱홈’에 억지로 입원시켰다. 그는 동생에게 들들 시달리다 못해 그곳에 딱 한 달만 있기로 약속하였다. 인희로서는 우선 오빠를 살리고 볼 일이었다. 빈속에 곡기라도 이어야 했다. 문밖출입 안 하고 밥 한 끼 제대로 안 먹고 술로만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그대로 두면 제풀에 생명이 꺼질 것만 같았다. 애들도 찬성이었다. 너싱홈요양원에 들어오고 이틀간만 윤 원장이 그를 봐주었다. 아니 내버려 두었다. 밤이고 낮이고 누워만 있고 식사도 거절하고 들어 올 때 몰래 갖고 온 소주만 마신다고 옥미향 간병인을 통해 상세히 듣고 있다. 사흘째부터 윤 원장은 그를 강제로 일어나게 하고 식사 시중을 손수 들기 시작했다. 숟가락에 밥을 떠서 그가 입을 벌릴 때까지 버티었다. 꼴이 가관이었다.
“여긴 몸 아픈 노인들이 오는 요양원이요. 당신은 노인도 아니라 아니 받아주려 했는데 하도 사정해서, 식사만 하게 봐 달래서 입실시켰는데 이게 뭡니까? 우리 너싱홈에 굶어 죽은 환자 나오면 여기 문 닫아야 하거든요. 겨우 마음 붙이고 지내시는 노인네들 어디로 보낼 거예요? 그리고 구인호씨 당신 나와 동갑입디다. 여자인 나도 이렇게 열심히 뛰는데, 여기 환자분들 당신보다 대개 스무 살은 더 자셨어요. 겨우 쉰 된 나이에 웬 상늙은이 행세를 합니까? 긴 인생 살아오면서 모진 풍파 안 겪은 사람 있어요? 곡절 없는 사람 있는 줄 아세요? 살면서 꽃길만 걸어온 사람 있으면 나한테 데리고 와 봐요 구경 좀 하게.”
윤 원장이 혈압이 오르는지 음성이 한 옥타브 올라간다. 미향 간병인이 얼른 숟가락을 받아든다.
“원장님, 사람이 입맛 없으면 한 끼 건널 수도 있지요.”
“그래도 생명 부지할 만치는 억지로라도 먹어야지. 사람 허파 뒤집어지게."
“예 예 잘 알겠습니다. 원장님 허파 안 뒤집어지게 제가 대신 먹지요 먹어.”
미향의 너스레에 윤 원장도 마음이 풀려 방을 나갔다.
“식사 잘 하셨어요?”
당번이 아니면 일요일은 항상 봉사 가고 월요일에 출근한 미향이 그의 방을 찾아왔다. 그는 돌아누워 대답하지 않았다. 미향이 다가와 그의 안색을 살피더니 손을 뻗어 이마를 짚는다. 이 여자가 왜 이래! 그는 숨이 턱 멎는듯했다. 미향의 체취가 풍긴다.
“열은 없네요. 자 일어나세요. 식사하셔야죠.”
“나중에 먹을 테니 두고 가세요.”
“안돼요. 원장님이 식사한 식판 가져오라 하셔요. 그리고 내일부터 식탁에 나와 식사하시래요.”
미향은 억지로 그를 일으켰다. 숟가락에 밥을 뜨고 김치를 올려 그의 입으로 디밀었다. 점심 식판도 미향이 들고 왔다. 생글생글 웃는다. 친구인 인희의 간곡한 당부를 받아서인지 미향은 성의를 다해 그를 보살피는 듯했다.
“조금 드시지만 그래도 얼굴이 좋아지셨어요. 희망이 보여요.”
“희망?"
그는 너무도 생경하게 들리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낯설고 생소했다. 그게 뭐지?
“그럼요 아직 반평생밖에 못 사셨잖아요.”
이 여자가 무슨 황당한 소리를, 내 인생은 벌써 거덜이 났소. 미향은 그에게 블록 한 통 주고 갔다. 전함모형 블록이었다. 그는 그것을 팽개쳤다가 나중에 답답함을 견디지 못해 블록을 끼워 맞추기 시작하였다. 미향은 간혹 비행기며 우주선이며 로봇 인간 같은 블록을 안겨주었다. 그는 침침한 눈으로 부수다 맞추다 일없이 주물럭거렸다. 숙희와 문희도 종종 다녀갔다. 오늘도 미향에게 이끌려‘천사의 마을’로 향했다. 벌써 한 달이 넘었나. 일요일만 되면 미향에게 끌려갔다. 처음엔 바람 쉬러 나가자 하기에 거절 못 해 따라나섰는데 그곳엔 할 일이 태산이었다. 돌봐야 하는 어린아이에서부터 수족이 불편한 장애아들까지 식구가 많아 널린 게 일이었다. 빨간색 마티즈가 서자 아이들이 달려 나왔다.
“아줌마!”
애들이 그녀를 둘러쌌다. 준비해온 간식들을 애들에게 들려 옮기게 했다. 미향은 그를 그곳에 데려다 놓기가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가 멀뚱히 서 있으며
“좀 도와주시렵니까?”
하는 친근한 목소리가 나타나 그를 데려간다. 시력이 안 좋은 그에게 말린 빨래 개키는 일이 주어졌다. 타월이 한가득이다. 그리고 그곳엔 다른 자원봉사자들도 와서 이일 저일 돕고 있었다. 이곳에 오면 구인호의 지옥 같은 마음은 우선멈춤이 되었다.
오늘도 오 노인은 아내를 찾아왔다. 일주일에 두 번은 꼭 다녀간다. 오 노인이 오면 그의 아내 김두례는 아주 착한 환자가 된다. 오 노인이 떠먹여 주는 밥을 오목 오목 잘도 받아먹는다. 남편의 팔에 의지하여 실내에서 걷기운동도 한다. 노인은 관절염과 치매 환자 아내를 7년간이나 보살폈다고 했다. 4남매 자식들은 각지에 흩어져 다들 바쁘게 사는지라 병든 아내의 간호는 노인 몫이었다. 오랜 세월 치매 환자 돌봄에 오 노인은 결국 과로와 영양부족 고열로 쓰러져 입원하게 되었다. 아내를 돌볼 자식도 사람도 없었다. 자식들은 오 노인이 병이 나아도 무리라는 의논에 환자를 이곳 너싱 홈에 입원시켰다. 처음에 환자는 식사를 전폐하고 영감님만 찾았다. 오직 영감밖에 몰랐다.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소리쳐 울기만 했다. 영감님이 입원하였대도 소용이 없었다. 거칠게 앙탈만 부렸다. 달래어 겨우 입에 밥알이라도 넣어주면 다 뱉어 버렸다. 그렇게 애를 먹이던 환자가 오 노인이 퇴원하여 간식이라도 사 갖고 와서 부부가 마주 앉아 먹으면 순한 양이 되어 이빨 빠진 잇몸이 다 드러나게 환히 웃었다. 얼굴도 씻어주고 머리도 빗겨주고 양말도 영감님이 신겨주면 벗어던지지 않았다. 오 노인은 갈 때면 마누라 굽은 등을 몇 번이나 쓰다듬고 손을 토닥여주고 저승꽃 떡칠이 된 볼에 뽀뽀하고 갔다. 모두 입을 모았다.
“저게 옳은 부부여. 요즘 세상에 저런 사랑 있으려나?”
“저런 영감님은 도시락 들고 다녀도 못 찾을 거구먼.”
“영감님은 나이보다 젊게 보이고 할머니는 이십 년은 더 늙어 보이고, 처음에는 한참 아래 동생으로 봤다니까. 두례 할머니 남편 복 하나는 타고났네그려!”
구인호는 오 노인을 보면서 참 많은 상념에 잠겼다. 사랑, 저런 것이 진실한 사랑이련가. 생이 다할 때까지 아내를 사랑해주고 위해주는 것. 나는 난영에게 무엇이었나? 어떤 존재였었나? 기다림에 지친 아내의 외로움을 얼마나 이해하여 주었던가. 생활비를 보낸다는 것만으로 의무를 다한 듯, 내 아내만은 언제까지고 변함없이 나를 기다린다고 자부하지 않았던가. 가끔 동료들 부인들에 험한 소문이 들려도 남의 일로만 알았지. 아니 나쁜 여자야. 그 오랜 세월을 하얗게 나를 속인 나쁜 년이지. 외로워 못 살겠다고 말을 했으면 배에서 내릴 수도 있었잖아. 뭍에서 아파트 경비를 해도 했었겠지. 독사 같은 년, 내가 죽이고 말거야.
오늘도 미향을 따라 천사의 마을에 다녀왔다. 그도 이젠 일요일만 되며 기다리게 되었다. 못난 자신이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는 게 작은 위안이 되었다. 몸이 불편한 아이들의 시중을 들고 목욕을 시키는 등의 일들이 그의 마음을 가라앉혀주었다. 문득 자신의 눈이 나아 식재료를 준비해서 한 번이라도 저 애들에게 맛있는 식사를 차려줄 수 있었으면 하다 실소했다. 아직도 심장에 꽂힌 생채기가 너울 파도처럼 요동을 치는데. 인희는 가끔 다녀가면서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된다고 오빠가 들리게 중얼거렸다. 숙희 엄마 그 남자가 폐암 걸렸다는 말은 슬쩍하고 지나갔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말도 안 된다. 미향은 나를 동정하고 있는 거야. 인희 당부 때문에 나를 돌보는 게 아닌가. 한 달만 있겠다고 선언하고 이곳에 온 지 벌써 3개월이 넘었다. 그는 이곳을 선뜻 떠나지 못하고 있다. 미향 때문에. 그녀의 신상도 인희의 흘림으로 조금 알게 됐다. 폭력 남편을 만나 매 맞는 여자였다. 온갖 노력에도 남편의 못된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이혼은 어림도 없고 하나뿐인 딸자식을 데리고 친구들 집에라도 숨으면 남자는 그녀의 친정에 가서 행패를 부렸다. 십 년을 죽지 못해 살았다. 몹시도 무덥던 어느 여름날 밤, 남자는 음주운전 상태에서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다 트럭과 승용차 등 이중삼중 충돌로 현장에서 즉사하였다. 구인호는 고민에 빠졌다. 이 나이에, 내 처지에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러나 어쩌랴, 가슴이 뜨겁게 타오르는 것을. 마지막 불꽃이라서 이렇게 뜨거울까. 누군가 말했었지. 사랑과 기침은 숨길 수 없다고. 그는 또다시 식사를 제대로 못 하고 열병을 앓기 시작했다. 의식 속에서 무의식 속에서도 오직 미향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미향의 걱정이 깊어갔다. 남자가 식사도 거절하고 죽은 듯이 누워만 있다. 잘 따라다니던 일요봉사도 빠지고 있다. 무엇보다 근래 와서 자신을 피하는 게 꼭 철부지 소년이 시위하는 듯하다. 미향도 힘이 빠졌다. 환자들의 기저귀를 갈아도 전에 없이 힘이 부쳤다. 연연하고 싹싹한 말소리도 줄어들었다. 윤 원장이 둘의 관계를 제일 먼저 눈치채었다. 재미있고 고소해서 모르는 척 내버려 두었다. 그래 대가를 치러야지. 세상에 공짜는 없어. 저 나이에 사랑, 저렇듯 가슴앓이하고 말도 못 하는 뜨거운 사랑을 하다니, 더 많이 아파하고 더 많이 그리워하라고 해. 미향이 어제저녁도 아침도 거른 그의 점심을 들고 들어왔다. 며칠 사이에 구인호의 얼굴은 정말 나빠져 있었다. 수염까지 깎지 않아 더욱 해쓱해 보였다. 미우면서도 가슴이 아린다. 사람이 들어가도 꿈적도 하지 않는다.
“일어나지도 않고 정말 식사 안 하실 거예요?”
“······.”
“왜요? 굶어 죽으려고요? 그럼 우리 같이 죽읍시다. 나도 살기 싫거든요.”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미향씨가 왜?”
미향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는 너무 놀라 뒤로 물러났다. 미향이 밥 한술을 떠서 그 위에 생선 한 점을 얹어 그의 코앞에 디밀었다.
“이 밥 안 먹으면 나 다신 못 볼 거여요. 선택하세요.”
미향이 눈물로 떠주는 그 밥을 어찌 거절하랴. 덥석 받은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미향이 얼른 물을 건네준다. 김치를 얹어 내미는 밥을 또 받아먹었다.
“고마워요. 우리 천천히 같이 갈래요?”
미향이 젖은 목소리로 조그맣게 말하고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와락 여자를 끌어안았다. 여자 몸이다. 여자 내음이 전신을 휘감았다. 미향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가슴으로 흐느꼈다. 그의 가슴은 용광로같이 끓어올라 터질 것 같았다. 숨도 쉴 수가 없었다. 환자 방이 햇살로 가득했다. 먹지 않아도 정말 배가 부른데 어쩌랴.
‘고맙소. 맹세는 하지 않으리다. 내게 남은 삶이 있다면 그대를 위해 살고 싶소.’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숙희야! 문희야! 착하고 용감한 우리 딸들 만나봐야지. 안개처럼 흐릿하게 보이던 사물들이 제법 뚜렷하게 보였다. 눈앞을 가로막고 있던 부연 허물이 조금 걷히는 듯했다. 너무 기뻐 울음이 터지려는 것을 참았다. 일시적인 현상인가 싶기도 하고 이러다 다시 또 가려 질려나 두려움이 밀려왔다. 제일보고 싶은 사람이 미향이었다. 미향은 시골 삼촌 별세로 며칠 출근하지 못했다. 오늘 아침 그녀가 출근하여 이층으로 올라왔을 때, 아 그녀의 얼굴을 처음으로 밝게 보았다. 큰 키도 아닌 보통의 키, 갸름한 얼굴, 그다지 예쁜 얼굴도 그다지 모난 얼굴도 아닌 평범한 그 얼굴에 자꾸만 눈이 시렸다. 그러나 하나도 낯설어 보이지 않는 얼굴이다. 보고 싶은 사람아! 나 그대 보이네! 하고 소리치며 미향을 끌어안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그녀 앞에 다가섰다.
“어머 웬일이세요? 머리도 감고 면도까지 깨끗이 하셨네. 어디 나가게요?”
“아니요. 그대 기다리고 있었소.”
미향의 손을 꽉 잡았다. 미향의 손은 따뜻한 사람의 손이다. 그 손을 잡고 베란다로 나갔다. 미향은 조금 긴 머리를 묶고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어디 많이 아프세요? 왜 이래요?”
“미향씨, 나 그대 잘 보이오!”
“예? 뭐라구요?”
“그대 얼굴이, 눈도, 코도, 이마 입술 머리카락까지도 뚜렷이 보인다는 말이오!”
“어머머 세상에, 세상에 정말, 정말로 내 얼굴이 잘 보여요?”
“그렇다니까. 정말 잘 보이오!”
미향은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도 미향을 부둥켜안았다. 사람들이 거실에 나와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윤 원장도 와 있었다. 미향이 소리쳤다.
“원장님! 여러분들! 우리 인호씨 눈 떴어요. 보인데요 잘 보인데요!”
“우와!”
박수가 터졌다. 다들 내 일처럼 기뻐했다. 윤 원장이 그들 손을 잡았다.
“구인호씨 정말 축하합니다. 대단한 인간 승리군요. 돌아가신 박춘자 님이 저세상에서 정말 기뻐하시겠습니다. 구인호씨 밝은 빛 봐야 한다고 아드님한테 사정하시더니 세상에!”
“벌써 석 달도 넘게 이 안과에서 무료로 치료해주고 계십니다. 이성수 원장님이 꼭 낫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시더니 저 이렇게 눈 뗬어요!”
“이 원장님 먼저 찾아뵈어요. 박춘자 할머니 계신 봉안당 가서 눈 떴다고 말씀드려야죠.”
미향은 눈물을 글썽이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윤 원장은 그들을 포옹하고 등을 다독여주었다. 복자 할머니가 소리 질렀다.
“어매 은제 둘이 신접살림 차릴 일만 남아부렸네. 하이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부지런히 생업에 종사하여 불편한 사람들 정말 조금씩이라도 도우며 살겠습니다. 미향씨 따라 봉사도 할 겁니다. 우리 숙희. 문희, 미향씨 딸 정아, 아끼고 사랑하겠습니다. 나중에 죽을 때 더 사랑하지 않은 걸 후회하지 않게 사랑하렵니다. 원장님 여러분 고맙습니다!”
미향은 그의 등 뒤에 얼굴을 묻고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첫댓글 최작가님! 옥고를 올려 주셔 감사합니다.
이은집 드림
회장님 감사합니다!
다망하실터인데도, 건행하시기를 빕니다!
최순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