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1일 토요일
고등어
김미순
우리 둘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평소 붙어다녀서 절친이라고 할 수 있다. 형호는 기계과고 나는 토목과다. 우리 둘 다 공부에는 소질이 없고 출석만 채우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나는 환경부장까지 했다. 교실 청소는 물론 교실 밖 계단은 물론 화단 구석까지 쓰레기가 안 보이게 솔선수범해서 주었다. 특히 애들이 담배를 몰래 피우고 꽁초를 숨겨놓은 곳도 말끔히 청소했다.
. 내가 졸업하고 환경공무원으로 취직한 계기도 학교에서 환경상을 타서이다. 토목과를 나와서 취직을 하자니 모래가마니만 날리다보니 별로 직업으로 안 땅겼다. 두 번의 고배를 마셨으나 세 번째 합격했다. 실기로 쌀 가마를 무사히 날렸을 때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셨다. 최종 합격을 했을 때 어머니는 단골들에게 제일 싼 손수건을 안겼다. 홀몸으로 두 아들을 키우느라 매일매일이 구렁텅이였으나 이제 큰 아들이 밥벌이를 하니 아침에 조금 늦게 나가도 될 듯 싶었다. 나도 공무원이 되었으니 만고 땡이다. 새벽 여섯 시부터 오후 세 시까지만 근무하면 집에서 그동안 엄마가 했던 집안일도 하고 다음 꿈인 공인중개사 시험 공부도 하면 좋겠다. 공인중개사가 되어 지금까지 월세살이를 하는 원통함을 씻고 싶다, 그리고 동생은 꼭 대학을 보내려 한다.
동생은 말이 없고 성실하고 공부도 잘한다. 내가 공부를 못해서 엄마 속을 썩이니까 동생은 악착같이 공부해서 엄마를 기쁜게 했다. 전교 10등 안에 들었고 엄미는그때마다 단골들에게 5천원 어치 미역줄기를 주곤 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에 빠지지 않고 그런 일을 치르니 사람들은 부러움과 질투심을 표했다. 대놓고 말하지 못해도
" 거덜나겠네."
" 공부 잘하는 아들은 나라에 바친다네. 유학 가서 외국살이 한다네"
그래도 엄마는 즐겁고 행복한 날이다. 곧 있으면 적은 평수의 아파트라도 알아보려고 한다.
내가 2년이나 환경공무원 시험에 몰두할 때 내 절친 형호는 차 부품을 만드는 하청업체에 취직했다. 우리 엄마 자리 가까운 곳에 형호 엄마가 생선 장사를 해서 어머니들 때문에 우리는 더 친해졌다. 맞은 편에 대형마트가 있어 공산품이나 육고기, 문구, 과자를 사느라 엄마들은 케셔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마트에 들어가는 고객들을 싼 값으로 불러모으는 게 우리 엄마들의 전략이다.
형호가 취직했을 때 형호의 아버지는 휠체어를 타고 와서 분식집에서 단팥빵을 돌렸다. 뇌출혈로 왼쪽이 마비되어 요양병원에 있는 아버지는 수협공판장에서 경매꾼이었다. 솔직히 적은 갑부인 형호집이 나는 항상 부러웠다. 하청업체지만 페이도 셌고 출퇴근 시간도 정확해서 성실하게 근무하면 머지않아 돈 천은 모을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취업성공률 몇 프로라고 프랑을 걸려고 공부 못 해도 어떻게든 취직을 시켜줬기에 취업이 빨랐다.
그러나 내가 공무원이 된 그해 형호는 회사를 그만 두었다. 새끼손가락을 잃고 회사에서 천 만을 받고 깨끗이 물러났다. 그래서 형호는 어머니들이 좋아히는 대형마트의 짐꾼으로 취직했다. 무척 고된 일이다. 손님들이 오기 전에 상품을 전시해 놓아야 하고 유통기한이 지난 물건들을 처리하는 일도 큰 일이었다. 특히 쌀 포대나 술 꾸러미는 무겁기도 해서 3층까지 좁은 리어카로 엘리베이터 안에 손님들 눈치보며 왔다갔다 했다. 내가 근무가 끝나면 가끔 형호에게 부름을 받곤했다. 죽이 잘 맞아 직원들은 형제인 줄 알았다. 거의 11시가 되어야 끝나는데 그때 우리는 유통기한이 거의 임박한 물품을 골라 가져가곤 했다.
그런데 형호가 식품부에서 고등어를 두 개 넣었다. 2층에 켸셔가 새로 들어왔는데 정말 예쁘다는 것이다. 오늘 야간 근무인데 그 애가 누구 고등어를 받는지 내기 하자는 것이다. 나도 얼른 호기심이 생겼다. 얼마나 예쁜지 형호가 왜 마음을 빼앗길 만했는지 나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나도 정신을 빼앗길 만한 미모였다. 작은 얼굴에 뽀송뽀송한 보조개, 큰 눈이 나를 삼켜버릴 것 같았다.
" 잘 먹을께요"
케셔는 우리 둘이 내민 고등어를 냉큼 다 받았다. 그날 그 케셔가 퇴근할 때 우리는 버스정류장까지 배웅했다. 이름은 지선이고 작년에 고등학교 졸업한 삐약이였다. 내년에 수능을 봐서 전문대학이라도 가는 게 꿈이란다. 우리는 얼굴도 예쁘고 인생의 꿈도 예쁜 지선이를 친동생처럼 돌보고 쉬는 때 돈가스도 사주고 유원지에서 아이스크림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둘 다 다른 감정은 없었다. 대학을 꿈꾸는 애는 우리에게는 먼 수준이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지선이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벌써 2년이 지나고 동생은 서울로 대학을 갔다. 최고 대학은 아니지만 2등급 대학에 갔다. 장학금까지 받았으니 엄마는 작은 프랑이라도 달자고 난리였다. 나는 적금을 헐어 동생에게 원룸을 얻어 주었다. 월세 70만원이나 내야 했다. 다음 달부터는 내 적금을 줄여야 한다.
동생은 방학 때도 집에 안 내려오고 열심히 공부했다. 장학금을 받아도 나와 엄마에게 한 푼도 주지 않았다.
그런데 겨울방학이 시작되었을 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동생이 대형마트의 계장으로 온다는 것이다. 학교는 휴학하고 우선 돈을 벌어야 한다고~~ 먹여 살려야 할 여자가 생겼다는 것이다.
나는 형호에게 황당한 소식을 전하고 푸드코트에서 김밥을 먹고 있었다. 요즘 애들이 정말 현실적이야. 그러나저러나 먹여 살려야 할 사람이 누굴까?ㆍ
형호는 필시 여자일 거라고 장담했다. 그날도 형호랑 나는 푸드코트에서 어묵을 먹으며 섟두리를 했다. 그런데 수능 공부를 하겠다던 지선이, 작년에 서울로 떠난 지선이가 어떤 남자의 손을 잡고 나타났다. 치즈돈가스를 시키고 남자는 칼국수를 시켰다. 뱃속의 아이가 치즈돈가스를 좋아힐나나? 호호거리며 맛있게 먹었다.
뒷좌석에 앉은 우리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푸드코트를 벗어났다.
이게 무슨 일!
저녁에 동생이 여자를 데리고 왔다. 어머니는 무척 반기며 아가씨의 이름을 몰었다.
나는 지선이를 보고 놀란 눈으로 지선이와 동생을 번갈이 보았다.
" 어머니, 어머니도 아시잖아요. 지선씨, 2층 케셔"
동생은 아주 놀란 눈으로 지선씨를 보았다.
" 정수씨가 당신 형이었어요?"
지선이가 동생을 보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