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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사도들이 예수께로 모여와서,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일을 다 보고하였다.
31.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거기에는 오고가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32. 그래서 그들은 배를 타고, 따로 외딴 곳으로 떠나갔다.
33. 그런데 많은 사람이 보고서, 그들인 줄 알고, 여러 성읍에서 길을 따라 그 곳으로 함께 달려가서, 그들보다 먼저 그 곳에 이르렀다.
34.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으므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마가복음6:30-34)
30 The apostles returned and met with Jesus, and told him all they had done and taught. 31 There were so many people coming and going that Jesus and his disciples didn't even have time to eat. So he said to them, “Let us go off by ourselves to some place where we will be alone and you can rest a while.” 32 So they started out in a boat by themselves to a lonely place.
33 Many people, however, saw them leave and knew at once who they were; so they went from all the towns and ran ahead by land and arrived at the place ahead of Jesus and his disciples. 34 When Jesus got out of the boat, he saw this large crowd, and his heart was filled with pity for them, because they were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So he began to teach them many things.
전도를 했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돌아와서 전도 보고를 했습니다.
30. 사도들이 예수께로 모여와서,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일을 다 보고하였다.
30 The apostles returned and met with Jesus, and told him all they had done and taught.
물론 이 전도 보고를 받기 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셨습니다.
7. 그리고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셔서 그들을 둘씩 둘씩 보내기 시작하셨는데, 그들에게 악한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다.(막6:7)
그런데 성경은 전도의 파송과 전도의 보고 사이에 전도와는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전도 파송과 보고 사이에 헤롯 왕궁 이야기가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습니다.(막6:14-29)
헤롯의 궁정에 험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헤롯의 생일 잔치가 벌여졌는데 그의 의붓딸이 춤을 추었습니다.
그것을 본 왕이 그 소녀에게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맹세한 것입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음악에 맞추어 스텝을 밟고 껴안던 춤판이 딱 멈춘 것입니다.
춤추던 소녀는 요한의 목을 접시에 담아 들고 왕궁의 카펫트 위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 녀의 하얀 춤옷 가슴팍에 붉은 피가 범벅이었습니다.
손에 들린 접시의 무게는 그 녀에게 감당하기 버거운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담긴 요한의 목에서 흐른 피가 그 녀의 손가락으로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이 왕은 당시 하나님 백성의 목자장인 셈입니다.
그렇게 주어진 권력인데 그 권력으로 춤판 벌이고 술 마시고 있었습니다.
얼큰하게 취해서 분위기를 맞추다가 선지자를 죽였습니다.
그 당시에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들의 낡은 옷은 땀 냄새에 절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주제는 술판 춤판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당시 왕과 제사장이 들먹이던 바로 그 하나님의 나라의 현실을 눈앞에서 보게 했습니다.
귀신은 여지없이 쫓겨갔습니다.
사람들은 질병에서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러자 일어난 일입니다.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밥을 챙겨 먹을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다 보니 예수님과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쫓겨 다니며 쉬기 위해 결사적이었습니다.
배를 타고 호수를 가로질러 도망할 처지였습니다.
홀로 있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호수 반대편으로 가서 배에서 내렸을 때였습니다.
사람들이 먼저 알고 호수를 뺑 돌아 달려와서 모여 있었습니다.
죽기 살기로 새 목자를 찾은 것입니다.
거기에는 장정만 5,000에 이르렀으니 한 20,000명이 대 이동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광경을 보시더니 슬퍼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 내 백성들에게 목자가 없다.”
34.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으므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4 When Jesus got out of the boat, he saw this large crowd, and his heart was filled with pity for them, because they were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So he began to teach them many things.
헤롯을 목자로 두었는데 이 사람은 성적으로 문란했습니다.
어떻게 제 동생의 마누라로 자신의 마누라를 삼나!
그가 하는 일은 잔치를 벌이고 무도회나 즐기는 일입니다.
그러더니 자신의 잘못을 지적한 요한을 죽인 것입니다.
지금 성경은 두 목자를 비교하는 중입니다.
옛 목자는 왕궁 무도회장에 있었습니다.
거기에 어린 소녀가 등장했습니다.
춤사위마다 눈처럼 흰옷이 향기처럼 날렸습니다.
그런 그 녀의 손에 선지자의 목이 들려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목자는 광야에 있었습니다.
어린 목동이 예수님 앞에 등장했는데 그의 옷에서는 소똥 염소똥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그의 손에는 자신이 먹을 한 끼의 도시락이 들려있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께 바쳤을 때 5,000명의 장정이 그 도시락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30. 사도들이 예수께로 모여와서,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일을 다 보고하였다.
30 The apostles returned and met with Jesus, and told him all they had done and taught.
학교 윤리 시간이었는지 교회 수련회였는지 선생님은 빈 종이를 나누어 준 후에 앞으로 자기 일생 계획표를 써내라고 했습니다.
내 재능에 따라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고려해서 내가 일류대학교 졸업하고 좋은 전공을 내가 정해야 내가 잘 먹고 살고.......
그런데 예수님의 계획표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죄인을 염두에 두셨습니다.
죄인들이 죄를 용서받을 수 있고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얻도록 그들을 위해서 주님께서 처절한 십자가를 감당하실 계획을 짜신 것입니다.
죄인들을 위해서 내가 실컷 매를 맞아야 하는데 몇 살에 그 일을 하셔야 하는지
내가 죽임을 당해야 하는데 어디에서 그 일을 당하셔야 하는지 주님은 윤리 시간에 그 계획표를 짜신 것입니다.
이런 계획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내 계획표에는 내 출세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주제였습니다.
남들이 나를 알아줄 그런 출세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계획표에는 남의 죄가 문제였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계획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진지한 삶도 있구나!
그 동안 우리는 모든 사람이 내 방식으로 사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도대체 나의 계획서와는 같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주님의 계획서는 주님의 설명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일일이 설명해 주시지 않으면 도무지 알 수 없는 삶의 방식!
그 삶에 대한 그 가르침이 사람의 영원한 생명을 이릅니다.
주님은 그 복음을 사람들에게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 복음을 전하도록 파송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이란 하나님의 설명 없이 이해 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7. 그리고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셔서 그들을 둘씩 둘씩 보내기 시작하셨는데, 그들에게 악한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다.(막6:7)
이제 돌아와서 전도 보고를 했습니다.
30. 사도들이 예수께로 모여와서,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일을 다 보고하였다.
30 The apostles returned and met with Jesus, and told him all they had done and taught.
제자들은 모든 일들을 예수님께 보고 해야 했습니다.
보고를 안 하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보고는 필수였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었던 것은 모조리 이 땅의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땅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생소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나라를 전한다면서 엉뚱한 짓을 하지 않았는지 엉뚱한 말을 하지 않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또 모든 사람이 이렇게 가르침을 받은 기준으로 살다가 검증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준으로.......
그러니까 제멋대로 말과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검증받아야 한다면 그 검증의 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검증을 위한 기준들을 주님을 통해 가르침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수렴하는 일이 모든 사람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최후의 검증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귀히 여기는 사람은 복을 이미 받은 것입니다.
행위와 가르침의 기준을 계속 성경의 말씀에서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오로지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시1:2)
이런 가르침을 받을 때 신앙인들이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가장 위협하는 일이 있습니다.
많은 신앙인이 이 경우에 아주 혼란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가르친다는 엉터리 목자들 때문입니다.
목회자들이 자신의 설교나 행위를 절대화하는 경우입니다.
목회자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오직 이 경우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그 내용이 성경에 일치되는 경우입니다.
방언을 해대고 예언을 해대도 앉은뱅이가 말 한 마디에 벌떡 일어나도 성경에 없는 말을 하면 그 설교는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 더한 기적을 일으켰다면 그 사람은 더한 사탄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따라다니면서 말을 들을 대상이 아닙니다.
경계할 대상입니다.
직통 계시 운운하며 성경의 말씀을 능가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이단들입니다.
부패한 목사들은 제 성질을 내면서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진노인 양 하고 제 욕심과 제 생각나는 대로 말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며 엄포를 놓습니다.
그것이 선으로 위장하고 기적을 동반해도 성경에 일치되지 않으면 의지적으로 거부해야 할 사탄의 말입니다.
11. 베뢰아의 유대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 사람들보다 더 고결한 사람들이어서, 아주 기꺼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행17:11)
베뢰아 사람들은 설교를 기꺼이 들어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베뢰아 사람들의 특징은 베드로 아니면 바울의 설교라도 그것을 간단히 수용하는 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집에 가서는 그 전해 들은 말씀이 성경 말씀과 일치하는지 조사를 했습니다.
1시간 설교를 들었다면 2시간 성경을 펴고 그 설교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그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방치하는 무책임한 사람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성경은 절대적 척도입니다.
그렇게 해야 진정한 목자의 음성을 식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자기 양을 다 불러낸 다음에, 그는 앞서서 가고, 양들은 뒤따라 간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5. 양들은 절대로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않고, 그런 사람을 보면 도리어 달아난다. 양들은 낯선 사람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요10:4,5)
빤쓰 목사를 따라다니는 사람은 자신 안에 빤쓰의 내용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빤쓰 목사를 말하기 전에 빤쓰 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빤쓰 목사야 그 짓거리로 밥벌이한다지만 빤스 교인들은 헌금까지 해가면서 왜 그를 따라서 심판대로 가려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전도 보고에서 두 가지를 검증하신 것입니다.
첫째는 그들이 한 일입니다.
둘째 그들이 가르친 내용입니다.
무슨 일을 했는가 그리고 무엇을 가르쳤는가?
누가가 누가복음을 기록했는데 그의 두 번째 책인 사도행전 첫머리 첫절에서 그의 첫째 책 누가복음이 무엇을 다루었는지 언급합니다.
1. 데오빌로님, 나는 첫째 책에서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모든 일을 다루었습니다.(행1:1)
1Dear Theophilus: In my first book I wrote about all the things that Jesus did and taught from the time he began his work
그는 누가복음에서 그가 다룬 것이 두 가지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행하심과 둘째로 그 분의 가르치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전도에서 돌아온 제자들을 검증한 바로 그 내용입니다.
그 일과 가르침에는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가?
가르침을 제대로 했지만 행실이 따르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외식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행동은 고사하고 엉뚱한 가르침을 가르쳤다면 그는 완전히 돌팔이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달내 교회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찾아오신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본문(마가복음6:30-31)의 내용을 누가복음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 가르침의 주제가 무엇이었나 주의해서 봅시다.
11. 그러나 무리는 그것을 알고서, 그를 따라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맞이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해 주시고, 또 병 고침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고쳐 주셨다.(눅9:11)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보고를 들으셨다는 말씀 대신에 주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가르침의 주제를 주의하셔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가르칠 내용 오직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들으려고 달내 교회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것인가?
주님은 제자들을 전도 보내실 때 그들에게 이런 주의를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주의를 주신 내용은 참 특별했습니다.
도대체 일이 가르침과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8. 그리고 그들에게 명하시기를 길을 떠날 때에는, 지팡이 하나 밖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고, 빵이나 자루도 지니지 말고, 전대에 동전도 넣어 가지 말고,
9. 다만 신발은 신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
10.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 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 있어라.(막6:8-10)
예수님께서도 세상 이야기를 하신 것입니다.
지팡이 빵자루 전대 동전 신발 옷........
그런데 하시는 말씀이 최소한의 것조차 챙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아주 구체적이며 노골적으로 이것을 버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하려면 너부터 하나님의 나라 논리를 적용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한다고 하면서 세상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너희가 사람들에게 가는 것은 세상 것을 주러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주로 가는 것입니다.
다른 일 말고 세상 것을 다 버리는 일부터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나에게 돈도 있고 또 하나님의 나라도 있는데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내게는 한 가지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6. 베드로가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하고,(행3:6)
그러니까 예수님의 전도 방식은 돈 많이 들고 가야 전도된다는 요즈음의 전도 방식과는 정반대입니다.
그렇게 가르침과 일관성 있는 행동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 백성들도 모두 그 경험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 모세와 각 지파에서 두 명씩 대표자들로 그 광야의 경험을 하게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이라면 모두 40년 광야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사막 가운데 있었을 때 나는 저 땅 이만 평을 점령해서 만석꾼으로 성공하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보고 거지로 살라는 말이냐고 따지는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제가 하는 말은 그 말이 아닙니다.
그 히브리인들이 그 광야에서 잠들기 전 기도하는 모습을 생각해 봅시다.
“오늘 쌀도 없고 옷도 신발도 없는 광야에 살았는데 풍성하게 먹었습니다.
하지만 내일은 꼼짝없이 굶게 생겼군요.
하나님.”
그렇게 해와 달이 뜨고 지더니 애급에서 나온 지 40년이 흐른 것입니다.
눈앞을 보니 약속의 땅이 놓여있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우리가 풍성하게 먹고 마시게 될지 저는 그것까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광야에서처럼 하나님의 손에 자신을 내맡기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막 생활을 하다가 그들이 예측 밖의 일들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임재 현실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전대에 돈도 없이 빵 자루도 없이 옷은 단벌로 나섰더니 주의 이름을 대면 귀신들이 복종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 안에서 전적 타자이신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현실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들이 세상 보장을 모조리 버렸을 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17. 일흔두 사람이 기쁨에 넘쳐 돌아와 보고하기를 "주님, 주님의 이름을 대면, 귀신들까지도 우리에게 복종합니다" 하였다.
1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이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
19. 보아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세력을 누를 권세를 주었으니,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눅10:17-19)
그 때 그들은 상상도 못 한 나를 경험한 것입니다.
네 입에서 말이 튀어나오는 동시에 하늘에서 사탄이 떨어지는 것을 본 것입니다.
그 때 내 입을 한 번 다시 만져 봤습니다.
그것은 내 입인데 내 입이 아니었습니다.
전혀 새로운 나였습니다.
31.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거기에는 오고가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31 There were so many people coming and going that Jesus and his disciples didn't even have time to eat. So he said to them, “Let us go off by ourselves to some place where we will be alone and you can rest a while.”
사람들에게 전도하도록 많은 사람에게 제자를 보내셨던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들이 전도를 마치고 돌아오니 이제 주님은 그들을 사람이란 찾아 볼 수 없는 곳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들을 외딴 곳으로 보내셨습니다.
사람은 그림자도 없는 곳입니다.
자신만 홀로 있는 곳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쉬기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입장은 강경하셨는데 우리 모두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가자는 것입니다.
그들을 피하셨습니다.
사람들만큼 어려운 상대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어려운 상대가 있습니다.
나를 지치지도 않고 따라다니는 존재입니다.
세상 끝까지 나를 따라오면서 나를 쓰러뜨리려는 미친 상대입니다.
그러면 사탄이다 할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고 나라는 상대입니다.
더욱이 홀로 있을 때 자신이라는 대상을 감당하는 일이 불가능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주제입니다.
성경은 이 상대가 어려운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롬3:23)
죄인에게 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죄인이란 홀로 놔두면 죄만 범하는 존재라는 것을 이릅니다.
홀로 놔두면 여지없이 죄의 오물에 뒹굴고 다니는데 그에게 무슨 쉼이 있겠습니까!
죄인에게 정해진 코스입니다.
죄를 범한 다음 가인과 같이 두려움에 쫓겨 다닐 것입니다.
13. 가인이 주께 말씀드렸다. "이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 무겁습니다.
14. 오늘 이 땅에서 저를 쫓아내시니, 하나님을 뵙지도 못하고, 이 땅 위에서 쉬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를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창4:13,14)
미국의 한 대형 마트에서 도난 사고가 잦았습니다.
그래서 마트 사장이 마트 벽면에다 수없이 많은 사람 눈들을 그려 놓은 것입니다.
그랬더니 도난 사고가 확 줄었답니다.
그 눈알들이 그려지기 전에는 이 도둑질을 나만 보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남의 눈을 의식하자 범죄가 확 줄어든 것입니다.
인간은 홀로라고 생각했을 때 거기에서 틀림없이 죄짓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가장 결정적인 심판은 그 짓거리 하도록 사람을 그대로 놔두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통제를 풀어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자 난리가 났습니다.
28.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하게, 타락한 마음 자리에 내버려 두셨습니다.
29. 사람들은 온갖 불의와 악행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 차 있으며, 시기와 살의와 분쟁과 사기와 적의로 가득 차 있으며, 수군거리는 자요,
30. 중상하는 자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 불손한 자요, 오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꾸미는 모략꾼이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신의가 없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입니다.(롬1:28-31)
이런 자신을 고쳐 놓아야 하는 것이 천국길입니다.
그것이 고쳐져야 하나님의 나라에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누구나 홀로 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주님은 바로 홀로 되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가지셨는데 하나님과 함께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35. 아주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일어나서 외딴 곳으로 나가셔서, 거기에서 기도하고 계셨다.(막1:35)
우리야 자신을 감당할 길이 없어서 하나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인으로써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홀로 계셨던 것입니다.
의인은 그런 내용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이 사람들을 제대로 상대할 수 있습니다.
즉 전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두 대상을 상대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입니다.
주님도 최후의 순간에 겟세마네에서 자신을 감당하셔야 했습니다.
외딴 곳으로 가라 아무 상대가 없는 곳에서 너는 자신을 상대하라!
그런 의미에서 쉼이란 노동을 위한 충전의 기회가 아닙니다.
쉼 자체가 인간의 필수 요건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6일 동안 일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7일에 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7일째도 계속 창조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쉬셨습니다.
실은 하나님께서 쉼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기계를 보십시오.
그것이 고장이 안 나면 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쉴새 없이 그것을 돌릴 것입니다.
사람이 내일 노동을 위해 고장 안 나도록 쉬어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생각입니다.
사람의 존재 목적이 노동이 아닙니다.
다시 이르지만 쉰다는 것은 재충전의 의미가 아닙니다.
쉼은 인간임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인정 행위입니다.
코로나를 통해 중요한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마스크 쓰고 나갈 수도 없게 되자 사람들의 생산 행위가 멈춘 것입니다.
그러자 숨통이 트인 물이 맑게 흐르고 공기가 맑아졌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쉬라고 해도 쉬는 법이 없습니다.
그것은 죄인들의 속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40년 동안 사막에서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일 안 하는 훈련입니다.
농사도 그만하고
옷은 그만 만들고
아파트 안 짓고
도로 그만 만들고
원자력 발전소 그만 짓고.......
60만이 모조리 굶어 죽을 줄로 알았습니다.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반대입니다.
쉼이 없는 인간의 활동으로 지구가 종말을 향해 달리고 있는 현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쉬라고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그 날을 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주의를 주어도 그들은 쉴 의사가 없었습니다.
죄인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일 안 하는 것입니다.
죄인은 제 것을 제가 못 챙기면 그 사람은 죽고 만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그 생각에 사로잡혀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이신다는 생각은 할 겨를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사람들은 안식일에도 일하는 방식을 교묘하게 만들어 냈습니다.
실은 안식일에 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을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더 어려운 종교적인 일을 만든 것입니다.
그 일을 잔인하게 실천한 것입니다.
종교적 성취 행위입니다.
안식일이 되면 그 날 병자를 치료할 수 있어도 치료해서는 안 되는 안식일용 일을 만든 것입니다.
병자들을 잔인하게 대하는 일입니다.
너는 그 고통을 그대로 참고 견뎌내라!
유대인들은 이런 종교적인 일을 자랑하다가 주님과 심하게 부딪힌 것입니다.
3. 예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4.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그들은 잠잠하였다.
5. 예수께서 노하셔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들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시면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 사람이 손을 내미니, 그의 손이 회복되었다.
6.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바깥으로 나가서, 곧바로 헤롯당원들과 함께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였다.(막3:3-6)
정신병원에 가면 실 한 올을 풀었다가 다시 묶었다가 또 다시 풀고 의미 없는 반복 동작을 하는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그 헛된 일이 그 사람에게는 결코 헛된 일이 아닙니다.
그 일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얻기 때문입니다.
죄인은 일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을 견디지 못합니다.
죄인이 창조하는 일들은 모조리 죄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진정한 소망은 우리가 의인이 되는 일입니다.
그 일은 의인이신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의 일에 관한 한 하나님을 믿기만 하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의인이신 하나님께서만 일하시도록!
그런데 일하지 않고 믿음으로 사는 일이 죄인에게는 불가능합니다.
성령 하나님이 도우셔야 그 일이 가능합니다.
32. 그래서 그들은 배를 타고, 따로 외딴 곳으로 떠나갔다.
32 So they started out in a boat by themselves to a lonely place.
주님은 그들의 쉼을 위해서 배까지 동원하셨습니다.
주님도 그러셨습니다.
주님은 몸이 견뎌 내실만 하신 지 보아가시며 혹은 기분이 내키시는 대로 홀로 계셨던 것이 아닙니다.
35. 아주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일어나서 외딴 곳으로 나가셔서, 거기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36. 그 때에 시몬과 그의 일행이 예수를 찾아 나섰다.
37. 그들은 예수를 만나자 "모두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막1:35-37)
주님은 제자들이 깨기라도 할까 보아서 살그머니 아주 이른 새벽 외딴 곳을 찾으셨습니다.
그 곳은 주님만 아시는 곳이라서 제자들도 찾아 헤매야 찾을 수 있는 곳입니다.
사람들에게 방해받지 않도록 사람들이 모르는 곳입니다.
물론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만남이 죽고 삶을 결정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숨으시고 사람들은 홀로 계신 주님은 찾아 나선 것입니다.
야이로의 딸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호수를 뺑 돌아서 환자를 들고 뛰어갔던 것입니다.
예수님 역시 홀로 하나님을 만나느냐 아니냐가 주님의 생명을 가르는 일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무리를 피해 도망 다니시며 홀로 있는 시간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교회가 부활절을 맞았서 계란 돌리고 꽃을 돌리고 선물을 안겨주는 이런 호객행위를 할 것이 아닙니다.
2,000년 전 예수님과 제자들은 그런 행위를 하신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냈을 때 작은 마을은 뒤집어졌던 것입니다.
지금도 여러분은 복음을 전한다면서 붕어빵 굽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고구마도 삶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나면 지구 반대편에서 비행기를 타고 여러분을 찾아서 날아올 것입니다.
문제는 교회가 생명력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사람들의 영적 필요를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33. 그런데 많은 사람이 보고서, 그들인 줄 알고, 여러 성읍에서 길을 따라 그 곳으로 함께 달려가서, 그들보다 먼저 그 곳에 이르렀다.
33 Many people, however, saw them leave and knew at once who they were; so they went from all the towns and ran ahead by land and arrived at the place ahead of Jesus and his disciples.
주님은 사람들에게 제자들이 지금 몹시 피곤하니 쉴 시간을 달라고 조용히 타이르신 것이 아닙니다.
자리 좀 피해달라고 부탁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그 말이 통하지도 않을 것을 미리 아신 것입니다.
그래서 배를 타고 호수를 가로지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허사가 된 것입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행로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만남에 생명이 걸려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주님과 제자가 무슨 일을 할지 어디에서 배를 정박한 후에 내릴지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함양까지가 26km라는데 그 사람들이 호수를 돌아서 달려간 거리는 30km를 넘습니다.
그들은 호수를 뺑 둘러서 거기까지 달려온 것입니다.
병자를 눕혀서 들것을 들고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눈먼 사람은 손을 잡고
절뚝거리는 사람은 지팡이를 짚고
지붕을 뚫어서 환자를 달아 내릴지도 모르니 망치도 챙기고.......
그렇게 모인 사람의 수가 남자 장정만 5,000명이었던 것입니다.
여자 어린이 노인까지 합해서 2만여 명 되었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이 사람들을 피해 다니느라고 배를 빌려올 지경이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현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처음 설교를 하실 때에 일입니다.
그 분의 말씀에 귀신들이 튀어나갔습니다.
27.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이게 어찌된 일이냐? 권위 있는 새로운 가르침이다! 그가 악한 귀신들에게 명하시니, 그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면서 서로 물었다.
28. 그리하여 예수의 소문이 곧 갈릴리 주위의 온 지역에 두루 퍼졌다.(막1:27,28)
이 예수님의 소문은 이스라엘을 넘어서 이방 땅에까지 퍼졌습니다.
그들의 영적 필요 때문에 들것에 사람을 싣고 호수 반 바퀴를 달려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현대인들에게는 그런 영적인 필요(needs)가 훨씬 적다는 말입니까?
왜 교회에 사람이 없나?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것은 똑 같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옛적의 마을보다 번쩍 번쩍 거리는 현대 도시가 사람을 더 불안에 빠뜨릴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이 더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다만 교회가 붕어빵이나 굽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교회에서는 짜장면이나 끓이고.......
34.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으므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4 When Jesus got out of the boat, he saw this large crowd, and his heart was filled with pity for them, because they were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So he began to teach them many things.
제가 제주에 있을 때 봉성 옆에 이시돌 목장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 때까지 눈앞에서 양들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양을 기르는 목장 하는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온 것입니다.
그 식구들과 양을 구경하러 갔습니다.
너른 벌판에 양들이 뛰노는 것은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함께 손잡고 걷던 그 친구의 아들이 양들을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뒤집혀서 허우적거리는 양이 한 마리 있었습니다.
겨우 초등학교 1,2학년의 아이가 약간 의지해주니 그 양이 벌떡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양은 거북이처럼 뒤집히면 제 힘으로 일어나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이런 바보가........
뒤집히면 일어나지 못하고 도움이 없으면 그대로 말라 죽고 말 것입니다.
그런 양에게 목자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바보 같은 양들을 두고 베드로에게 세 번의 당부를 하셨을 것입니다.
내 양을 먹이라!
하나님의 백성은 뒤집히면 제 힘으로는 일어나지도 못하는 그런 존재들이었습니다.
물론 당장에 이스라엘에 목자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자칭 목자라는 사람들이 춤판이나 벌이고 술판이나 벌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목숨을 걸고 내기를 하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목자로 오신 것입니다.
목자로 오신 주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목자 없음을 보시고 가장 먼저 하신 일은 그들을 여러 가지로 가르치신 일입니다.
34.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4 because they were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So he began to teach them many things.
먼 거리를 갈 경우 차에 올라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습니다.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넣는 일입니다.
엔진을 켜고 달리고 보는 것이 아닙니다.
갈 방향을 정확히 잡는 것이 우선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로 정확히 방향을 잡는 일이 우선입니다.
엔진을 켜는 것은 다음 일입니다.
네비게이션을 켠 다음에는 길을 살필 반사경이 제 위치에 있나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안전 벨트를 매고 엔진을 켜는 것입니다.
엔진을 켜는 것은 맨 나중 순서입니다.
처음에 할 일은 방향을 가르치는 지적인 문제입니다.
그리고 네비게이션 보는 일을 집에 도착하는 그 때까지 계속되는 것입니다.
아주 이성적인 작업입니다.
드럼을 두들겨 패대며 이성을 마비시키는 일이 아닙니다.
주님은 당시의 목자를 자칭하는 사람들과 대립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잘못 잡은 방향성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공생애의 초기입니다.
실은 그 성전은 나름대로 잘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 엔진을 끄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성전에 들어가시더니 당시 목자들이 하나님의 집의 본질을 바꾸어 놓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
13. 유대 사람의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는데,
14. 성전 뜰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환전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상을 둘러 엎으셨다.
16. 비둘기 파는 사람에게는 "이것을 거둬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다.(요2:13-16)
당시 목자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통해 돈 빼돌렸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런 경제적인 부정행위를 지적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결정적인 지적입니다.
당시의 목자들이 하나님의 집의 본질을 장사하는 집으로 변질시켰다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설교(preaching) 기도(praying) 또 주차장(parking lot)이 3p가 교회 부흥의 관건이라고 대형 마트 사장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장사의 논리가 통할 수 없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나라의 것을 주신 다음에 그것을 카트에 담고 계산대에 와서 돈 계산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냥 주시는 분입니다.
얼마 주고 얼마 받았다는 영수증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경제가 끼어들 공간이 없습니다.
1. 너희 모든 목마른 사람들아, 어서 물로 나오너라. 돈이 없는 사람도 오너라. 너희는 와서 사서 먹되,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지불하지 말고 포도주와 젖을 사거라.
2. 어찌하여 너희는 양식을 얻지도 못하면서 돈을 지불하며, 배부르게 하여 주지도 못하는데, 그것 때문에 수고하느냐? "들어라,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으며, 기름진 것으로 너희 마음이 즐거울 것이다.(사55:1,2)
탕자를 생각해 봅시다.
그는 도대체 그 가정에 유익을 준 일이 없었습니다.
못된 짓을 다 하다가 타지에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돼지 우리에서 돼지 밥을 훔쳐먹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꼼짝없이 굶어 죽게 생겨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뜻밖의 접대를 받은 것입니다.
탕자가 받은 대접은 일생을 헌신한 형이 여태껏 받아본 적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형이 한 말이 그것입니다.
내가 드렸으니 나에게 달라는 것입니다.
동생은 아버지께 그런 대접을 받을 만큼 드린 것이 없다는 고발입니다.
아버지의 대답은 우리가 서로 거래하는 사이냐고 형에게 질문하신 것입니다.
나에게 주었든지 아니든지 상관이 없다.
네 동생이니 주는 것이 아니냐고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형은 끝까지 주장한 것입니다.
준 사람에게만 달라는 것입니다.
돈을 줘야 짜장면을 주지!
그랜드 피아노를 기증해야 짭뽕을 주지!
하나님의 성전은 주고받는 시장이 아닙니다.
또 가짜 목자들은 주님의 계명을 종교적 이념으로 만든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며 선을 행하라는 것인데 그들은 정확하게 주님의 말씀을 사랑이 없는 냉정한 교리로 만든 것입니다.
그들이 앞장서서 그 일을 한 후에 종교적인 성취감에 젖어 있었던 것입니다.
잔인한 일입니다.
거기에 대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런데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하려고, 예수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를 보려고, 예수를 지켜 보고 있었다.
3. 예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4.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그들은 잠잠하였다.(막3:1-4)
가련한 사람에게 사랑을 보이라는 것이지 안식일에 종교 교리를 집행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목자들은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에 양들이란 배고프면 잡아먹을 식량 정도였습니다.
1.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2. "사람아, 너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규탄하여 예언하여라. 너는 그 목자들을 규탄하여 예언을 전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자기 자신만을 돌보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목자들이란 양 떼를 먹이는 사람들이 아니냐?
3. 그런데 너희는 살진 양을 잡아 기름진 것을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기는 하면서도, 양 떼를 먹이지는 않았다.
4. 너희는 약한 양들을 튼튼하게 키워 주지 않았으며, 병든 것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다리가 부러지고 상한 것을 싸매어 주지 않았으며, 흩어진 것을 모으지 않았으며, 잃어버린 것을 찾지 않았다. 오히려 너희는 양 떼를 강압과 폭력으로 다스렸다.(겔34:1-4)
실은 목자는 양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목자는 양 때문에 죽을 존재였습니다.
11. 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자기의 것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가 양들을 물어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14.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내 양을 알고, 내 양은 나를 안다.
15. 그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린다.(요10:11-15)
당시의 목자들은 목자에 대한 개념 정리가 완전히 잘못되어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목자들은 양을 잡아먹을 생각만 했습니다.
그렇게 당시의 양들에게는 목자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