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일기30권, 연산 4년 7월 17일 신해 6번째기사 1498년 명 홍치(弘治) 11년
김일손이 밝힌 김종직 제자들의 명단
전교하기를,
"김종직의 제자를 끝까지 추궁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내가 그 사람됨을 알고자 하니, 모조리 써서 아뢰라."
하매, 윤필상 등이 아뢰기를,
"종직의 제자는 이미 김일손(金馹孫)의 사초에 모두 기록되어 일찍이 대내(大內)로 들어 갔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그 사초에 기록된 종직의 제자 신종호(申從濩) 등 약간 명도 과연 모두가 일손처럼 수업(受業)을 하였느냐, 그렇지 않는 자도 있느냐? 또 그의 말에 ‘나머지 사람도 오히려 많다.’ 하였는데, 누군가 물어보라."
하였다. 윤필상 등이 물으니, 일손이 대답하기를,
"신종호는 종직이 서울에 있을 적에 수업하였고, 조위(曺偉)는 종직의 처제(妻弟)로서 젊어서부터 수업하였고, 채수(蔡壽)·김전(金詮)·최보(崔漙)·신용개(申用漑)·권경유(權景𥙿)·이계맹(李繼孟)·이주(李胄)·이원(李黿)은 제술(製述)로 과차(科次)받았고, 정석견(鄭錫堅)·김심(金諶)·김흔(金訢)·표연말(表沿沫)·유호인(兪好仁)·정여창(鄭汝昌)도 역시 모두 수업하였는데, 어느 세월에 수업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이창신(李昌臣)은 홍문관 교리가 되었을 적에 종직이 응교(應敎)로 있었는데, 창신이 《사기(史記)》의 의심난 곳을 질문하였으며, 강백진(康伯珍)은 삼촌 조카로서 젊었을 적부터 수업하였고, 유순정(柳順汀)은 한문(韓文)082) 을 배웠고, 권오복(權五福)은 종직이 동지성균(同知成均) 시절에 관에 거접하였고, 박한주(朴漢柱)는 경상도(慶尙道) 유생(儒生)으로서 수업하였고, 김굉필(金宏弼)은 종직이 상(喪)을 만났을 때에 수업했습니다. 그 나머지도 오히려 많다고 한것은, 이승언(李承彦)·곽승화(郭承華)·장자건(莊姉健) 등입니다."
하였다.
[註 082] 한문(韓文) : 한유(韓愈)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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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56권, 연산 10년 10월 24일 신사 8번째기사 1504년 명 홍치(弘治) 17년
의금부에서 허반 등 무오년에 죄받은 사람들의 기록을 아뢰니, 즉시 집행하게 하다
의금부에서 무오년에 죄받은 사람들을 기록하여 아뢰니, 전교하기를,
"허반(許磐)은 부관(剖棺)하여 능지(凌遲)하고, 조위(曺偉)·표연말(表沿沫)·정여창(鄭汝昌)은 부관 참시(剖棺斬屍)하며, 최부(崔溥)·이원(李黿)은 참(斬)하라."
하였다. 이날 어두워서야 옥졸(獄卒)이 최부와 이원을 잡아오니, 초경에 형을 집행하고 이튿날 백관(百官)에게 효시(梟示)하였다. 또 전교하기를,
"임희재(任熙載)가 대나무를 그려 족자를 만들고 뜻을 부쳐 시를 썼으니, 이런 불초한 무리를 어디에 쓰겠는가. 그가 오기를 기다려 또한 대벽(大辟)에 처하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