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와집(凝窩集) 이원조(李源祚)생년1792년(정조 16)몰년1871년(고종 8)자주현(周賢)호응와(凝窩), 취송(鷲松), 나고(懶高), 호우(毫宇), 만귀산인(晩歸山人)본관성산(星山)초명영조(永祚)시호정헌(定憲)특기사항조승수(趙承洙), 정종로(鄭宗魯)의 문인. 유정문(柳鼎文), 유치명(柳致明) 등과 교유
凝窩先生文集卷之十八 / 碑 / 世子翊衛司副率。敬庵先生文公墓碑銘。
江陽有故徵士文公。隱居求志。篤學力行。朝廷再授官。竟不起以圽。學者稱敬庵先生。余嘗讀其遺集而敬慕之。又因其孫之請。題于墓道曰。嗟夫。世未嘗無學者。文炳則實慊。如先生者。卽無論造詣深淺。凡一言一行。皆孝之推也。况服膺而終身焉者。卽名庵之一敬字。卽此二者。其學可知。按狀先生諱東道字聖源。南平人。以三韓壁上功臣多省爲鼻祖。歷贊成事倬。左僕射翼。集賢學士敬靖公公裕。平章事忠肅公克謙。府院君惟弼。至諱瑾判書。始居陜川。孫諱軫。入本朝少監。子諱汝寧承文校理。校理後四世皆顯。至贈判官昶。先生之曾祖也。祖諱士英。考諱頊。妣光州金氏弘彥女。先生生於仁廟丙戌十二月二十八日。以肅廟己卯四月五日卒。享年五十四。先生生有異質。纔學字。已有向學之心。又性於孝。嘗負笈龍門寺。忽望雲心動。急歸侍。母夫人患腫劇。調治得痊。有氷鯉之感。十九稟于庭。因廢擧業。毅然以學問爲己任。不資師承。下帷穿榻。日慥慥不已。辛亥兩親遘癘。嘗糞血指。連丁二艱。治喪盡禮。朔望徒步省墓。風雨不廢。服闋後以荐過兩喪爲至恫。因加心制三年。制畢取蓼莪詩語自號伊蒿子。刻爲佩嘗置懷中。著北牖詩,哺烏吟。皆至誠所發也。時先生年過有室。有欲行媒者。先生辭曰私服尙不可娶。况今國哀未終。何忍借吉乎。聞者悚然。以是三十二始聘。構書室於德灘上。列植松竹。潛心墳典。蔬糲屢空不恤也。學徒坌集。誠心誘掖。遠近士友。莫不傾心推許。而辛一庵夢參。最爲麗澤相資之交。其論敬書可驗也。辛未以薦授厚陵參奉不就。己卯授世子翊衛司副率呈辭。未幾先生歿。歿之時。有雷雹之異云。是年十月。葬于郡西桂城負丁之原。後十六年甲午。士林躋享于龍淵院。有文集三卷行于世。配八溪鄭氏。副護軍光胤女。一女二男。女姜胄殷。男宇徵,宇政出後。宇徵子纘省,述省,宗省,夏省。宇政子致瑛。述省子鎰世,斗世。鎰世入爲纘省後。宗省子起世。夏省子維世。餘不盡錄。今來請文者。玄孫成八也。銘曰。
大羹玄酒之文。暮江虛舟之詩。眉翁賞其眞。息老歎其奇。此足以不朽公於來玆。然求公於詩文之外。孝爲本而敬爲基。百行之源。千聖之訣。有過必式。三尺之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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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암집 (敬庵集) 유교넷
조선 중기의 학자 문동도(文東道, 1646∼1699)의 시문집. 목활자본. 1834년(순조 34) 그의 후손인 유세(維世)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이병원(李秉遠)·이만부(李萬敷) 등의 서문과 정중원(鄭重元)의 발문이 있다.
책머리에 세계(世系)와 연보가 있고, 시 181수 이외 목록을로 제시한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소(疏)는 박인(朴絪)을 용연서원에 봉향하고 그의 학행을 들어 사액을 청한 글이다. 서(書)에는 민창도(閔昌道)·이세재(李世梓)·서경조(徐敬祖) 등 당시 고관들과 왕복한 것이 여러 편 있는데, 주로 진정(賑政) 등 정치에 관하여 토론한 것이다. 이밖에도 박호문(朴虎文) 등과 내왕한 것 중에는 예설, 태극설 및『주역』에 대한 논술이 있다. 잡저 중 「인물성동이설 人物性同異說」에서는 인성과 물성이 본성은 같으나 기질에 따라서 편전(偏全)의 차이가 있음을 설파하였다.
강상제(姜尙齊)가 찬(撰)한 행장에 의하면 공은 13세에 김익견(金益堅)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했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명에 순종하였다. 1691년(숙종 17) 도천(道薦)으로후릉참봉(厚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취임치 않았으며, 1699년에 다시 세자익위사부솔(世子翊衛司副率)로 징소(徵召)되었으나 또 병으로 사표를 올리고 이해 5월에 졸하니 향년이겨우 54세였다. 많은 저서가 있고 1714년에 무민당(无悶堂) 박선생(朴先生)을 봉안(奉安)한 용연서원(龍淵書院)에 추향(追享)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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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암문집 (敬庵文集) 민백
조선시대 때의 학자, 문동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34년에 간행한 시문집.
5권 3책. 목활자본. 1834년(순조 34) 그의 후손인 유세(維世)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이병원(李秉遠)·이만부(李萬敷) 등의 서문과 정중원(鄭重元)의 발문이 있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책머리에 세계(世系)와 연보가 있고 권1에 시 181수, 사(詞) 2편, 권2·3에 소 1편, 서(書) 94편, 권4에 서(序) 1편, 기 2편, 명 4편, 잡저 4편, 제문 6편, 축문 7편, 묘지 6편, 행장 3편, 권5는 부록으로 만장(輓章) 32수, 제문 8편, 행장·실기 각 1편, 축문 3편, 서(敍)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는 박인(朴絪)을 용연서원(龍淵書院)에 봉향하고 그의 학행을 들어 사액을 청한 글이다. 서(書)에는 민창도(閔昌道)·이세재(李世梓)·서경조(徐敬祖) 등 당시 고관들과 왕복한 것이 여러 편 있는데, 주로 진정(賑政) 등 정치에 관하여 토론한 것이다. 이밖에도 박호문(朴虎文) 등과 내왕한 것 중에는 예설, 태극설 및 『주역』에 대한 논술이 있다.
잡저 중 「인물성동이설(人物性同異說)」에서는 인성과 물성이 본성은 같으나 기질에 따라서 편전(偏全)의 차이가 있음을 설파하였다. 이 책은 유학사를 이해하는 데 참고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