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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에 대하여
이 홍사
*존재하는 모든 개체에는 괄호가 있다. 그 괄호를 인간들은 한계라 명명한다.
- 철학과를 나온 나 -
발길에 걷어차이는 달빛을 내려다보며 읍내 저잣거리를 휘적휘적 걸어 들어오다 말고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곤 혼잣소리로 뱉었다.
-괄호가 있다?
자신도 모르게 뱉어낸 말이 낯설었다. 다시 내 목소리가 맞나 확인이라도 하듯이 톤을 조금 높여 허공에 뱉어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괄호가 있다!
괄호? 문득 떠올린 화두였다. 속이 쓰린 새벽녘, 괄호의 의미가 마치 쓰린 내장을 훑어내는 새벽녘의 소주처럼 뇌리에 날카롭게 박히고 있었다. 어떤 개체이든 그것을 가두는 괄호가 있게 마련이겠지만 인간은 괄호의 크기를 한계라 명명하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끝도 없이 그 괄호의 벽에 어리석게도 머리를 들이박고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지금 나 역시 그 한계로 인해 괄호라는 화두를 떠올리고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고 급기야 나를 가두고 있으면서 보이지 않는 괄호의 크기에 대해서 조급할 정도로 궁금증이 일며 잠시 멍한 기분이 들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구두코앞에 흩어진 달빛에서 눈길을 거두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새벽 세 시에 가까운 시간, 가을이라는 계절이 생소하게 내려와 골목에 달빛처럼 켜켜이 쌓이고 있었다. 길게는 서너 달, 짧게는 매달 다녀가는 곳이지만 달빛처럼 스며들어 괄호란 화두로 바라보니 눈에 익은 풍경마저도, 그리고 가을이라는 계절마저도 생경스럽게 여겨졌다. 여름이라는 괄호를 빠져나와 가을이 설정한 괄호의 행간으로 꾸역꾸역 기어들어가는 벌레, 그 벌레가 된 느낌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괜히 밀어버렸나?
머리통의 곡선이 까칠한 느낌으로 고스란히 손바닥에 전달되었다. 머리카락이 없는 것이다. 머리를 이렇게 밀어버린 것은 훈련소 들어갈 적 외에는 처음이다. 지난 밤 기차를 타기 전, 역 앞 미용실에서 자동면도기로 밀어버렸다. 그리고 모자도 없이 기차에서 내린 것이다.
달빛너머를 기웃거렸다. 예외 없이 낮은 지붕의 집들이 오밀조밀 저희들끼리 둘러앉아 고만고만한 괄호를 형성하고 도둑고양이처럼 찾아든 까까머리에게 던지는 배타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지난 이십 년간, 인구가 반으로 줄었다는 것과 변한 것이라곤 마을 안길이 포장된 것 밖에 내세울 게 없는 읍내시장, 그 저잣거리가 자신에게 은근히 차가운 시선을 던지고 있다는 묘한 거리감을 느끼며 괄호 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읍내 거리의 모든 사물이 액자 속의 정물처럼 고요에 갇혀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지속되던 취객의 흥청거림도 언제부턴가 사라지고 심지어 이따금 들릴법한 개 짓는 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 움직이는 것이라곤 내가 이끌고 가는 문어대가리 같은 그림자와 이미 기우는 달무리를 따라 흘러가는 구름뿐이었다.
시장골목 깊숙이 들어가 어깻죽지에 묻은 달빛을 털었다. 그리고 ‘천하만물상’이라는 아크릴 간판 받침이 떨어져서 ‘천아마물사’가 되어버린 슬레이트지붕 위의 간판을 한동안 쳐다보았다.
천아마물사, 간판이 얹힌 지붕이 오늘따라 유난히 낮아보였다. 괄호를 화두로 던져놓은 눈에는 간판에도 어김없이 괄호가 드리워져 있었다. 괄호 속의 간판, 그게 어쩌면 아버지가 지닌 괄호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아버지의 나약한 괄호를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이 불끈 솟구치는 걸 가까스로 억누르며 처마그늘이 드리워진 목조 미닫이에 붙어 서서 안을 기웃거렸다.
작은 유리가 촘촘히 박힌 80년대식 목조미닫이 너머는 달빛마저 스미지 않고 기이하고 괴기감이 도는 어둠뿐이다. 어쩌면 누군가 부숴버리기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괄호는 스스로 허물어졌고 유리너머 어둠 속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을지 모른다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처럼 되더라도 그리 나쁠 거야 없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까까머리통을 쓰다듬으며 생각을 수정해서 중얼거렸다.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패륜이지
유리너머 어둠을 가볍게 두드렸다. 안에서는 기척이 없다. 조금 더 세게 문을 두드렸다. 역시다. 휴대폰을 눌러보았다. 2:44 아버지는 이미 죽었거나 깊은 잠에 빠지셨나 보다. 원래부터 어머니는 잠귀가 어둡다. 더구나 요즘은 극도로 피곤하실 것이고.
내가 경제의 가장자리로 밀려나자 어머니마저 아웃사이드로 따라 나선 것인가? 눈치를 보니 요즘은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지역의 농공단지에 생긴 의자공장에 나가시는 모양이다.
-입도 심심찮고 너그 아부지 벌이보다 낫다야.
약값이 더 드는 일을 왜 하느냐고 역경을 냈을 때 은근히 자랑을 빙자해서 핑계를 둘러대던 어머니가 문을 따준다는 기대하기 어렵다.
조금 더 크게 문을 흔들었다. 아버지가 깨고 어머니는 깨지 않을 만큼의 적정수준이 어디인가 가늠하기 힘들지만 조금 더 크게 문을 흔든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기척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문득 밀려드는 아득한 단절감을 느끼며 머리가 닿을 듯 낮은 처마를 빠져나와 건물 옆구리로 돌아갔다. 추적추적 달빛 묻은 발자국소리가 따랐다.
발자국소리를 돌려세우고 블록담의 그늘에 묻힌 함석 쪽문을 밀쳤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힘없이 스르르 열리는 문 안으로 들어가 달빛아래 멈추었다.
-빌어먹을 철학과는 나와 가지고.
지난번 내려왔을 적에 밥상머리에서 아버지가 불쑥 토해놓은 말이다. 그 말은 아버지의 목젖 아래서 삭고 또 삭아 가래처럼 누른 빛깔을 띤 듯했다. 아버지 말은 끝을 맺지 않았으므로 현재진행형으로 내 귀에 이명처럼 살아나는 것이다. 어쩌면 이 말은 언제까지 현재진행형으로 버티다가 퇴색될지 모르겠다. 내일 아침이면 또 숟가락 들기가 면구스러울 것이다. 밥상머리에서 어머니는 또 아버지와 나의 눈치를 번갈아보며 그놈의 ‘구조조정 때문’이라고 시대를 잘못 타고난 나를 두둔하느라 숟가락보다는 입이 바쁠 것이고 아버지는 그러는 어머니를 흘겨보며 연신 헛기침을 해댈 것이다. 꼭 그 말을 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눈치가 교차하는 불편하고 껄끄러운 밥상이 될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버지의 지론에 의하면 내 성적으로는 법대를 가든지 기계학을 전공했어야 했다. 법대를 갔더라면 사법시험은 어렵더라도 대입 때 읍내에 현수막이 걸릴 정도라면 최소한 법무사는 되었을 터이고 기계과를 나왔다면 선박회사에서 기계를 설계하거나, 하다못해 읍내로 들어오는 사차선 옆에 농기계대리점이라도 차렸을 거라는 것이다. 조합장 둘째가 지방대학 기계과를 나와서 조선회사에 취직을 하고 읍내입구에 농기계대리점과 수리 센터가 생기고 아버지의 천하만물상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현저히 줄어들자 기계학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하긴, 철학과를 지망하겠다고 하자 노발대발하시던 아버지였다. 천편일률적으로 똑 같은 공부를 하면 돋보이지 않는다는 희소성의 원칙을 들먹이며 철학과에서도 잘 하면 대학교수가 될 수 있다는 감언이설로 아버지를 설득시키는데 한나절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졸업하고 칠 년이 지나도록 철학이 밥을 낚아올 수 있는 장터를 찾지 못했다. 철학과 밥의 연결고리는 고사하고 철학이 뭔가? 라는 물음에 명확히 뱉어낼 아포리즘을 숙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자 또 한숨이 나왔다. 뱉던 한숨을 들이켜서 나를 다독였다. 감정관리를 방만하게 했다가는 머리를 깎는 선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결국 두개골이 터져 허연 뇌수가 분수처럼 솟구칠 거 같았다.
다시 가게로 통하는 쪽문을 밀었다. 이번에는 아버지의 잠에 방해가 될까 우려하며 조심스레 문을 밀쳤지만 문은 ‘끼루룩’ 갈매기 울음을 토해냈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가게 안에 똬리를 틀고 있던 어둠이 나를 덮쳤다. 어둠 속 어디선가 갈매기 한 마리가 날아들어 도둑고양이처럼 스며든 내 면상을 할퀼 것만 같았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서 어둠이 눈에 익을 때까지 한동안 서 있었다.
가게 안에 진열된 농기구와 팬벨트, 그리고 쌓아둔 시멘트포대가 어슴푸레 윤관을 드러내자 비로소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가 가볍게 들렸다.
잠에 관한 한 아버지는 권위적이다. 아무도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를 억누를 수 없다. 어떨 때 보면 아버지의 잠은 평화롭다. 베개에 머리만 닿았다 싶으면 금세 코고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심지어 어머니와 사소한 말로 다투다가도 잠이 든다. 잠이 들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다. 또한 잠귀는 얼마나 밝은지, 잠 든 아버지 옆에서 어머니가 아버지를 힐난하는 소리라도 하면 금세 코골기를 멈추고 어머니 말에 적절하게 대꾸를 하는 것이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번번이 ‘엇 뜨거워라. 잠귀는 밝아가지고.’ 중얼거리며 주먹을 쥐고 쥐어박는 시늉을 한다. 하여, 아버지의 권위적인 잠에 억눌린 어머니의 잠자리는 남루하고 옹색해 보일지경이다. 어머니의 잠자리는 언제나 방 한가운데 큰대자로 누운 아버지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모로 돌아누운 새우잠이다. 그것이 한평생 습관으로 굳어졌다.
가볍게 코를 고는 아버지의 잠에 금이 가지 않도록 발소리를 죽이고 아버지의 방문 앞을 지나 부엌을 건너가서 작은방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 목조미닫이도 열리면서 갈매기 울음을 토해냈다. 끼루룩.
낡은 집은 연신 갈매기 울음을 토해낸다. 왜 그럴까? 차라리 갈매기 날개가 돋는다면 어떨까? 집이 날아갈 수 있도록 건물 양쪽에 커다란 날개가 돋는다면 어떨까? 어느 날부터 조금씩 키워오던 갈매기의 하연 깃털이 갑자기 커지고 집은 날개로 무장한다. 그리고는 커다란 날개를 너울거리니 집이 조금씩 들린다. 땅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집이 허연 실뿌리를 드러내며 공중으로 부상한다. 그리고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싣고 집이 날아간다? 오늘처럼 뿌연 달밤에 끼룩끼룩 갈매기 울음소리를 내며 집이 날아간다? 그렇다. 오래된 집은 그렇게 날아가고픈 비상의 욕구를 잠재우지 못하고 연신 갈매기 울음소리를 토해내는지도 모른다.
목조미닫이를 잡고 날아가는 집을 상상하는 동안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갈매기 울음소리가 비집고 나왔다. 끼룩끼룩! 아서라 아버지의 잠에 충격이 갈라. 아버지의 잠을 생각하고 화들짝 놀라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문 옆에 붙은 스위치를 찾았다. 스위치는 이십 년이 넘게 그 자리에 붙어있었다. 중학을 다닐 때부터 줄곧 붙어있던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그 뿐이 아니다. 아버지로부터 대를 물려 쓰던 앉은뱅이책상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바람벽에 붙은 벽장문과 선반 위에 얹힌, 페이지마다 낙서가 가득한 교과서도 그대로 있었다. 조도가 낮은 형광등 불빛아래 보이는 것 중에 변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단지 변한 게 있다면 중학을 다닐 적에 휑하게 커 보이던 방이 이제 남루해보일 정도로 작아졌다는 나의 시선뿐이다.
성큼 방으로 들어가 앉은뱅이책상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책상은 어린 날 서툰 칼질에 상처를 받고 공책을 통과한 컴퍼스에 찍힌 흉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모든 사물은 세월이 지나면 어떤 형태로든 흉터를 갖게 되는 모양이다. 담배를 빼어 물고 내 가슴에 자리를 잡아가는 흉터에 대해 생각했다.
어머니는 당신의 명석한 아들이 잘못 타고난 시대의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 어머니 말마따나 ‘이놈의 시대’ 뱉어내기만 하는 이 놈의 시대가 아직은 아물지 않은 상처로 존재하지만 언젠가는 흉터가 될 것이다. 어머니가 모든 것을 시대 탓으로 돌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졸업도 하기 전에 취업을 했다. 대학입시 때처럼 읍내에 현수막은 걸리지 않았지만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큼 굵직한 그룹에 공채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연수 수당으로 몇 십만 원 받은 게 대망의 꿈을 안고 들어간 그 그룹에서 받은 급료의 전부였다. 수습을 위한 연수 삼 개월 중 한 달이 채 되기 전에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우리가 소속된 계열사를 해외로 옮긴다는 프로젝트가 나오면서 인간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벌써 칠 년 전의 일이지만 그 때 일들을 명확히 기억한다. 큰 그룹이라 원가절감에 대처하는 방법도 발 빨랐다. 구조조정에 들어가면 일 순위가 수습사원인 연수생이 되는 거야 당연하지만 그렇게 빨리 움직이리라곤 생각을 못했다. 원가절감이라는 타이틀로 해외 이주 프로젝트가 나오자 다음 날 바로 연수비가 지급되었다. 그룹 전체가 술렁거리던 날 연수원장 대신 인사처장이 직접 강단에 선 것이다. 듣고 있으면 분면 비보인데 아랫배가 유난히 부른 인사처장은 전혀 비보를 전하는 어투를 지니지 않았다. 오히려 낭보로 들릴 수 있는 달변을 지녔다.
그룹의 금융사정이 극도로 미약해졌다. 삼십대 일의 경쟁률을 치르고 입성한 인재 여러분을 놓기 아깝다. 하지만 당 그룹에서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여러분의 발목을 놓아주겠다. 패기를 가지고 더 어려워지기 전에 더 좋은 자리를 확보하라. 이곳은 결코 여러분과 같은 명석한 인재가 고집할만한 곳이 못 된다. 그렇더라도 당 그룹에서 언제든지 인재가 필요하다면 맨 먼저 수습사원인 여러분께 연락하고 허락해주신다면 기꺼이 모시겠다.
대략 그런 요지였다.
다시 모신다? 그 말을 하는 인사처장의 아랫배를 냅다 차고 싶은 충동을 느꼈었다. 뜬금없는 약속을 믿는 건 아니지만 철학과 밥줄을 연결하여 개점휴업상태로 삼 년이 지나자 그 그룹도 해체가 되어 버렸으니 어머니가 시대를 탓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젊은이여 벤처가 있다!
미친 새끼들! 벤처가 고용창출을 얼마나 하냐? 말단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이백 대 일에 가까운데.
나도 모르게 담배연기와 함께 짜증 섞인 목소리를 뱉어냈다. 그리고 내가 뱉어낸 담배연기와 함께 날아다니는 말의 파편을 휘휘 내저으며 재떨이가 될 만한 것을 찾기 위해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곳에는 잡동사니들로 가득했다. 미술시간에 쓰던 가위와 몽당연필, 콘크리트 못, 검정색 매직, 어디 것인지 모를 열쇠, 다리가 휜 컴퍼스, 클립, 조금 남은 잉크병, 그런 잡동사니들을 손버릇처럼 하나씩 만졌다. 손으로는 그런 것들을 만지고 있지만 지난 칠 년간의 궤적과 더불어 홧김에 삭발을 하고 느닷없이 끊은 기차표와 달빛처럼 스며든 귀향, 그리고 오늘 하루 뿌리고 온 발자국을 찬찬히 되짚었다.
이런 걸 두고 만감이 교차한다고 하는가? 어린 날 쓰던 책상 앞에 앉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책상위에 삭발한 머리통의 그림자가 비춰있기 때문일까? 실로 ‘만감이 교차한다.’고 생각했다.
만감이 교차한다? 교장선생님의 십팔번이었다. 중학교 다닐 적에 교장선생님은 단상에 오를 때마다 만감이 교차하지 않은 날이 없다. 전교생 중에서 누가 대외적으로 큰 상을 받아도 만감이 교차하고, 울타리 뒤에서 담배를 피우던 학생이 적발되어도 만감이 교차한다. 졸업식과 입학식. 광복절과 제헌절, 운동회와 소풍을 비롯하여 운동장 조회가 있는 날마다 만감이 교차되지 않는 날이 없었다. 운동장 조회가 있는 날이면 아이들은 교장선생님의 훌륭한 훈시보다 만감교차가 언제쯤 나올까 기다리는 것이다.
-만감이 교차할 때가 되었는데 왜 만감이 교차되지 않는 거지?
교장선생의 연설이 지루해지면 아이들은 그렇게 수군거리고 담임선생님들은 줄 사이를 돌아다니며 수군거리는 놈의 옆구리를 슬며시 찌르는 것이다. 녀석들은 운동장 조회를 두고 ‘만감교차’라고 칭할 정도였다. 월요일이면 아이들은 말했다.
야! 주번 오늘 만감교차 하는지 알아 봤어? 야 이 자식아! 오늘 비가 와서 만감교차 안 한 대.
뭐 이런 식이었다.
만감이 교차하던 아득한 그 시절에 나는 이 작은 방에서 수음을 배웠다. 아니 터득한 거였다. 새벽마다 발기인대회에 참석하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달래다가 터득한 거였다. 그런 날 새벽이면 더 크게 들려오는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에 숨을 죽이고 이불을 뒤집어쓰며 아버지가 빨리 죽었으면 하고 바랬다.
수음이 있던 날은 아버지와 함께하는 아침 밥상이 불편했다. 수음이 끝나면 허탈감과 함께 이름 모를 죄의식이 수반된다는 사실도 그때 터득했다. 왠지 아버지와 얼굴을 마주하기 면구스러웠고 빨리 고등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고 싶었다. 자괴감을 수반하지 않는, 좀 더 자유스러운 수음을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가서 자취를 하면 또 터득한 바가 있다. 굉장히 죄스럽고 자괴감을 갖는 그 짓거리를 혼자서 즐기는 줄 알았지만 친구 놈들 중에서 그 짓을 탐미하지 않는 놈이 없다는 사실을.
새벽 세 시에 가까운 시간, 어쩌다 수음을 기억의 표면으로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수음을 떠올리고 생각을 배꼽 아래로 끌어내렸기 때문일까? 불쑥 B의 말이 귀에서 찬찬히 풀어지고 있었다.
-병원에서 수상한 말을 하더라구....... 자기, 듣고 있는 거야? 의사가 조직검사를 해보자고 그러대!
B의 말이었다. 일주일 전 쯤. 병원을 다녀왔다며 전화로 일러준 말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병원은 굳이 일러주지 않아도 산부인과라는 것을 안다.
그 전화를 받을 적에 만화를 보고 있었다. 웃음을 빼어 물고 자취방에 엎디어 성인 삼국지. 뭐 그 따위 만화의 줄거리를 검색하고 있었다. 그 조직검사라는 B의 목소리에 갑자기 손목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전화기를 떨어뜨릴 뻔했다.
조직검사?
불길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그 말을 되뇌었지만 어느 부위의 조직검사인지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그 부위가 배꼽 밑이라는 걸 안다.
B를 만난 지 십이 년이 넘었다.
대학 이 학년 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찍었으니 올해로 꼭 십이 년이다. 머리를 올려주지 못했으니 아니라고 우겨도 할 말은 없지만 아직도 B는 나의 반쪽이라는 착각에는 변함이 없다. 참으로 가당찮은 B다. 이 학년을 마치고 군에 갔다 오는 동안에도 고무신을 거꾸로 신지 않았고 열댓 번 면회를 다녀가는 남다른 열녀기질을 보였으며 나보다 일 년 늦게 들어왔지만 먼저 졸업해서 예능학원 강사로 있으면서 후배들과 마시는 생맥주집의 계산서를 쥐고 카운터로 향했고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제 카드를 내 주머니에 슬쩍 찔러 넣어주는 조강지처의 면모를 보이던 B였다.
시간이란 색을 지닌 모든 것을 퇴색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 내가 국방부에서 배당받은 밥그릇을 씩씩하게 비우고 있을 때 처음으로 면회 와서 작고 발그레한 몸피를 열어주던 B에게 덥석 해버린 약속도 자꾸만 퇴색되고 스물둘 몸을 열어주며 부끄러움으로 발갛게 상기되던 B의 얼굴도 산부인과를 들락거리며 푸석하게 빛을 잃어갔다. 그리고 군복만 벗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던 내 의지마저도 영화평론가라는 별명아래 누렇게 시들어버린 것이다.
영화평론가?
B가 지어준 별명이다. 그 별명이 무색하지 않게 내 외장하드에는, 지운다고 지웠지만 거의 오백 편의 영화가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들을 거의 다 외고 있으니 영화평론가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력이란 이름으로 설정한 사각 링에서 코너로 몰려 코피가 터지면서 재취업 확률이 점점 묽어지자 인터넷의 공짜 영화를 외장하드에 다운받아 수시로 접하게 되었다. 현명하게도 실업자가 가장 싸게 시간을 죽이는 코드에 접속하게 된 것이다. 근사하게 얘기해서 영화를 통해 생의 본질과 직업의 연관성, 밥과 철학 그리고 영화 본질의 깊이와 작품성, 프로노와 피카소의 예술성과 대중성, 뭐 이런 따위를 사유하고 인식의 깊이를 짚느라 밤과 낮이 바뀔 무렵, 한낮에 걸려온 전화를 푸석한 목소리로 받으면 B는 영화평론가를 운운했다.
담뱃값이 올랐다. B가 영화평론가가 피울 담배를 사들고 컴컴한 자취방을 찾아오는 회수가 잦아지면서 그녀의 몸도 마음도 조금씩 퇴색되기 시작했다. 십이 년을 사귀다 보니 삼 년에 한 번 정도는 배가 불러온다. 이상할 것도 없다. 그건 무슨 법칙 같은 거였다. 처음에는 실수였다.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부분이다. 단지 밥을 구할 능력이 없음으로 인하여 축복이 될 수 없는 임신이었다. 제기랄. 그게 누구의 잘못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B의 자궁은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처럼 허허롭게 변했다.
첫 번째 수술에서 B는 밥은 구하지 못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애비가 되는 작자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었다. 당연한 수순처럼 그렇게 자궁을 비우고 술 한 잔 사 달라며 찾아와 지나간 소리로 일러준 통보형식이었다. 정말이지 마땅히 할 말이 없으므로 광분이라도 하는 척 해야만 했다. 실업은 뜻하지 않은 살인을 범한다. 어찌 들으면 철학적 아포리즘 같은 그 말을 곱씹으며 술을 마셔댔다. 그날 밤 광분을 빙자한 폭음은 나의 몫이고 술값은 고스란히 B의 몫이었다.
위로가 필요한건 B였지만 정작 그녀의 어깨를 다독여주기는커녕, 엉망으로 취해 B의 부축을 받으며 부근의 허름한 여관에 들었다. 잠자리에 들면서 스물일곱을 넘어서는 B의 얼굴에 드리워진 푸석한 바람을 보았던가, 어쩌면 그녀가 잉태한 건 바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일었다. 바람이라면 당연히 비워야하겠지만 영악하게 그 따위 일로 성가시지 않은 게 다행이라 여기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돌아보니 아주 비열한 놈이었다.
그 비릿한 경험을 두 번째로 했을 때 B는 서른이었다. 몸조리도 잊은 B는 자취방으로 찾아와 밤새워 처절하게 울었다. 울어도, 울어도 분이 풀리지 않는 B는 소주를 두 병이나 마시고 나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사나이답게 피하지 않고 서른 살의 처녀, 아니 새끼를 비운 어미가 지아비의 뺨을 향하는 손찌검에 고스란히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비분강개. B의 눈에는 저주가 가득했다. 무엇을 향한 저주였던 간에 그건 내 알 바가 아니고 단지 그 저주와 적개의 대상이 내가 아니길 간절히 빌고 있었다.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뺨을 친 B는 벌겋게 달아오른 나의 뺨을 어루만져주며 눈물 섞인 자조의 말을 뱉어냈다. 어쩌면 독설로 들릴지도 모를 말이었다.
-자기야! 자기 잘못이 아니야 정말 자기 잘못이 아니야. 이 망할 조곡에 대학을 반으로 줄여야 했던 거야. 아니면 취직을 못하는 자식은 이 년쯤 지나면 학력을 취소시키든가, 조국은 망하고 있다, 그치? 그래! 그 잘난 학위 고학력이 사람 잡는다 그치? 우리 사이도 빛이 바래고........
울분이었다. 참으로 지루한 잠복기를 거쳐 표출되는 울분이었다.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횡설수설하는 B의 입을 한 손으로 틀어막고 가볍게 보듬어 안았다. 참 고마웠다. 나에게 날릴 원망의 화살을 다를 과녁으로 겨냥하는 B가 참으로 복 받을 여자라고 생각하며 내 평생 B에게 목숨을 걸 거라고 다짐을 했다. 복 받을 여자는 고학력으로 인한 부영양화? 너무 많은 영양이 정체되어 있으면 썩는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꼬집고 싶었던 거였다.
언젠가 B와 마주앉아 그 문제를 들먹인 적이 있었다. 그 때가 아마 인터넷 쇼핑센터에 뛰어들었다가 그만 둔 직후였다. 물론 지난 칠 년간 영화평론만 한 게 아니다. 인터넷 판매와 중학생을 상대로 하는 학습지 방문교사도 했었다. 두 곳 다 여섯 달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 두었다. 이유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누구를 잘라내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일 한 만큼의 대가, 그 분배과정에서 분명히 조정이 필요했다. 어느 놈은 가만히 앉아서 벌어오는 놈의 수익 중 몇 할을 뜯어먹는 그 구조를 B에게 설명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B가 고학력으로 인한 부영양화를 들먹였다. 요지는 그거였다.
일자리가 없는 게 아니다. 일자리에 걸맞은 학력을 지닌 놈이 없는 세상이다. 아무리 미화시켜 말해도 환경미화원을 넘어서지 못하는 청소부 자리에 대졸이 응시하는 세상이다. 최종학력 중졸은 만나기 어려운 세상이다. 국회의원은 아무나 시켜도 할 수가 있지만 청소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최소한 직업을 구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듣고 보면 수긍이 마땅한 내가 너무 비약시키지 말라고, 죽어도 인터넷판매는 못하겠다고 버럭 소리를 질러 입을 막았기 때문일까? 그 때 막힌 말문을 자궁을 비우고 속 시원히 열어보이듯이 고학력 적조현상을 들먹이며 울분을 분출시켰다. 그리고 간절한 소망까지 덧붙였다.
-자기야! 청소부면 어떻고 경비원이면 어때? 우리가 못할 짓 너무 한다 그치? 내 꿈이 뭔지 알아? 올해같이 날씨 좋은 추석머리에 나비와 토끼, 꽃사슴이 그려진 폭신한 우리 아기를 폭 싸서 자기 고향에 가는 거야. 거기서 마중 나온 자기 엄마한테 애기를 안겨주는 거! 참 소박하지? 얼마나 소박하냐? 자기 담배 맛있어? 나도 한번 피워볼까?
울다가 지쳐 품에 안긴 B가 조용히, 띄엄띄엄 뱉어낸 말이었다. 들어보니 참 소박하긴 한데 어렵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지. 꼭 B가 아니더라도 그런 날이 오겠지만 무엇이 B로 하여금 이토록 조급하게 만들었을까를 헤아렸다. 자궁을 비운 그때가 B의 여동생 결혼과 맞물려 있었다.
어쨌거나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지말자고 배고픈 약속을 한 지가 겨우 몇 개월 지났는데 B의 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눈에 뜨게 수척해지던 B가 다시 병원을 찾은 것은 두어 달 전이지만 배꼽 아래쪽의 문제라 자세히 들은 바는 없다. 헌데, 지금 와서 조직검사라니, 웬일인지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가 없다.
고개를 저었다. 앉은뱅이책상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 바람에 손가락에 꽂혀있던 담뱃재가 책상위로 떨어졌다. 감정 관리를 방만하게 해서는 안 된다. 끝없이 다독여야 하는 게 불길한 쪽으로 치닫는 상상이다. 제때 다독거리지 못하고 더듬다가는 오줌보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급기야 그 팽창력을 이기지 못하고 찔끔거리거나 바짓가랑이에 싸 버리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불길한 상상도 분명 주물럭거린 커지는 항목이다.
어제 저녁에 B를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B는 수업을 마치고 병원에 들렀다가 맥향으로 오겠노라고 했다. 그 시간에 맞추어 맥향으로 가다가 발길을 돌린 것이다. 그리곤 하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B의 진찰결과가 궁금했지만 도저히 그 기분을 위장한 채 활짝 핀 얼굴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나라는 인간도 조금의 양심은 남아 역 앞 미용실에서 덥수룩한 머리를 왕창 밀어버리며 맥향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B를 잠깐 생각하고는 측은한 생각으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불 꺼진 내 자취방을 확인하고 휴대폰에 몇 개의 문자를 남기고 돌아갔을 것이다.
살다보면 참 웃기는 일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그런 시험에 떨어지다니, 그건 정말 말도 안 된다. 어떤 시험이건 책상에서 수성사인펜으로 치는 시험에는 떨어져본 적이 없는 나였다. 인터넷으로 시험 결과를 확인하고는 너무 어이가 없어 껄껄 웃었다. 집배직, 즉 우편배달부가 되는 시험에 떨어지다니 그건 말도 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어제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한 결과는 놀랍게도 엄연한 사실이었다. 달리 공부는 하지 않았고, 아무리 삼십 대 일의 경쟁이라지만 내 수험번호가 빠지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귀족적 쾌락이라고 했던가? 오히려 시험에 붙으면 어쩌나? 정말 우편배달부가 되는 건 아닌가하고 쾌락적인 갈등을 느꼈다. 그러다가 청소부 자리도 들먹였던 B가 있었는데 우편배달부면 어떤가. 일단 붙어놓고 우편배달부가 되던 우체국장이 되던 결정하자는 속셈으로 치른 시험인데 여지없이 떨어진 것이다. 결국 엔터키 한 번으로 귀족적 쾌락이 처참하게 거지의 고통쯤으로 일그러져 있더라는 얘기다. 그 시험에 응시한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 물론, B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에 위안을 느끼며 책상서랍의 매직 뚜껑을 열어 재떨이 삼아 담배를 껐다. 그리고 매직으로 책상위에 큼직한 괄호를 그렸다. 나에게도 분명히 괄호는 있다.
말라버린 줄 알았던 매직은 특유의 휘발유 냄새를 풍기며 의외로 진하고 큼직한 괄호를 책상위에 남겼다. 책상위의 그 괄호가 자신이 지니고 있는 괄호라 생각하며 그곳에 포함시킬 수 있는 단어들을 떠올렸다. 서른넷, 철학과, 구조조정으로 실직, 어머니와 의자공장, B의 자궁, 바람, 우편배달부, 우편배달부를 생각하다가 그 단어는 그곳에 포함시틸 수 없다는 생각으로 가위표를 크게 그렸다. 그때 바람벽에 걸린 삼십 년은 넘었을 괘종시계가 아직도 살아있음을 과시하는 듯 툰탁한 음을 세 번 울렸다.
이렇게 괄호를 그리는 순간에도 시간은 흐른다. 시간은 무엇일까? 시간을 생각하자 나의 두뇌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시간에 쫓기면서 시간을 쫓아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러나 퇴색의 길은 피할 수가 없다. 어렵사리 시간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퇴색시킨다는 답에 봉착한다. 이렇게 흘러가는 순간, 순간의 연결로 서른네 해를 살았다. 아니, 읽을 수는 없지만 이미 나에게 정해진 시간, 즉 나에게 주어진 괄호 안에서 순간의 연결, 이 째깍거림으로 괄호의 뒷벽을 향해 다가가고 있지 않는가? 그 괄호를 생각하며 한 치 어긋남도 없이 째깍거리는 바람벽의 시계를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잠시 치를 떨었다.
그 동안 참 많은 것들이 퇴색되어 왔는데 한 순간에 괄호의 끄트머리까지 간다면 어떤 빛깔이 보일까? 빛깔에 대해 명쾌한 답을 찾아내지 못하고 다시 담배를 물며 욕설을 뱉어냈다. 씨바 참! 죽겄네.
감정 관리를 하자. 서른넷, 잘 익은 나이라는 걸 안다. 그러나 잘 익은 나이란 그 나이에 걸맞은 짓거리를 할 적에 쓸 수 있는 말로 국한된다. 잘 익은 서른넷과 농익은 서른넷의 괄호는 어떤 차이를 지니고 있을까를 생각하며 괄호를 그렸다.
이번에 그린 괄호는 책상 위가 아니라 바람벽이었다. 벽에다 유성매직으로 커다란 괄호를 그린 것이다. 도배지에 낙서를 하면 안 된다는 집안의 기초질서를 망각한 채 오로지 괄호에만 집착하고 있었다. 서른넷의 괄호에 넣을 수 있는 것을 생각했다. B와 신혼여행, 아니 B를 버리고 D와의 결혼, 경제적 안정, 보장받는 직업, 승진, 어린 자식, 집 장만, 뭐 이런 따위를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제기랄, 나에게 해당되는 사항은 아무것도 없었다. 현재는 해당사항이 없지만 지금까지 오는 동안 당연히 따라오리라 믿었던 사항들이다. 나이는 익었지만 설익었거나 농익었다. 우편배달부 시험에 떨어지다니, 자꾸만 처지는 기분을 억제할 수 없는 오늘 같은 날, 잘 익은 서른넷에 들어갈 괄호는 여백으로 남겨두어야 할 것이다.
다른 괄호를 그렸다. B를 떠올리며 그린 괄호다. 거기에 들어갈 말을 생각해 보았다. 서른 둘 노처녀, 기다림, 언젠가는 당할 배신, 빈 자궁, 강사, 낙태경험까지 생각하다가 기어이 B의 배꼽아래 지녀야할 생산능력의 안위가 궁금해졌다. 물론 세월의 힘으로 퇴색된 의지로 하여 함께 살겠다는 각오마저도 묽어졌지만 병원에선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결과가 궁금해졌다. 결과가 나쁘다면 B는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
내 생각은 상당히 오래 B에게 머물고 있었다. 얼마나 더 기다림이란 동아줄을 잡고 팽팽히 버틸 것인가? 시간에 의해서 그 기다리겠다는 의지마저도 퇴색되어 제 풀에 지칠 것인가? 알 수 없다. 그게 언제가 될지. B에 관한한 모든 게 물음표로 끝나는 말뿐이다.
담배를 물고 바람벽에 다른 괄호를 그렸다. 어머니의 괄호다. 그 아래 아버지의 괄호도 그렸다. 그리고 그곳에 포함시킬 언어를 떠올리며 괄호를 그리기 시작했다. 천하만물상이라는 우리를 먹여 살린 괄호, 철학과라는 내가 배운 괄호, 실업과 구조조정의 괄호, 그리면 그릴수록 괄호의 의미는 확대되고 또 확대된 괄호가 겹쳐지고 급기야 바람벽 한쪽은 괄호로 가득 채워졌다. 잔뜩 그려놓고 보니 괄호들이 날아가고 있었다. 두 개씩 겹쳐진 괄호들은 흡사 갈매기의 날개였다. 아버지의 괄호와 어머니의 괄호가 맞물려 날고, 나의 괄호는 B의 괄호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너울거렸다. B의 얼굴을 떠올려보았지만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B의 얼굴 기억이 뿌옇다. 갑작스런 일이다.
-그렇군. B는 이미 괄호 밖으로 날아가고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도 날 수가 있겠군. 괄호 밖으로 날 수가.......
괄호 밖으로 날아버리는 상상을 하자 날아가는 것은 내가 아니라 괄호였다. 두 개씩 등을 맞대고 있는 괄호들이 나울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 드디어 날개를 단 것이다. 괄호가 날개를 단 것이 아니라 갈매기로 둔갑한 것이다. 너울너울 날기 시작하는데 뭔가 허전하다.
-그래! 갈매기 울음소리가 없었군. 끼룩끼룩? 끼룩끼룩!
목청을 조금 높여 담배연기와 함께 갈매기 울음소리를 뱉어보았다. 울음소리를 들었음인지 벽에 그려진 갈매기들은 더욱 세차게 너울거리는 것이었다.
-그래! 날아라. 끼룩끼룩!
날아가는 갈매기마냥 어깨까지 들썩이며 끼룩끼룩 갈매기 울음소리를 뱉어내며 더 많은 갈매기를 그려 넣었다. 끼룩끼룩 방안에는 갈매기의 너울거림과 울음소리로 가득했고 드디어 나도 괄호를 벗어나 갈매기를 따라 비상을 시도하고 있었다. 끼룩끼룩 비상의 순간, 누군가가 나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야! 이 자식아,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대가리는 왜 그 꼴이야?
-아, 아버지!
메리야스에 잠옷을 걸친 아버지는 형광등에 눈이 부셔서인지 잠이 덜 깨서 인지 눈을 잔뜩 찡그린 채 방안을 훑어보고 있었다. 갈매기 울음소리를 멈추었다. 비상하던 나는 방바닥에 추락했다.
-이 새끼 완전히 돌았구먼, 돌았어! 너 인마, 술 처먹었어?
-돌다니요? 아버지 전 돈 것이 아니고 술이 취한 것도 아닙니다. 괄호에 대해서 철학적인 분석을 하고 있는 겁니다. 시간은 결코 괄호 속에 머물지 않는다. 시간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퇴색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아버지 이게 철학이라고요 철학!
눈을 착 내리깔고 철학을 들먹였다.
-철학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이 자식이? 애비 앞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있는 놈이 안 돌았다면 어떤 놈이 돌았다는 거야? 담배나 빼. 이 자식아 담뱃값도 못하는 주제에.
-너무 무시하지 마시라구요. 괄호가 없어지고 날개를 달면 이까짓 담뱃값이 문제겠어요?
입술에 꽂힌 담배를 빼서 아버지의 어깨너머 철물점 바닥으로 휙 던졌는데 성질만은 여전한 아버지의 손길이 느닷없이 면상을 향해 날아왔다. 눈에 번갯불이 번쩍 거릴 때, 확인사살과도 같은 아버지의 일갈이 날아왔다.
-햐, 이 새끼 이거, 완전히 돌았구만, 돌았어, 야! 이 미친 자식아, 정신 차려라. 정신 차려! 대가리는 꼭 오입하러 내려온 중놈 대가리를 해가지고.
괄호를 지닌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내 빡빡머리 이마빡에도 괄호, 아니 열린 괄호, 등을 돌린 괄호, 갈매기를 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날아가는 갈매기를.
-아버지!
아버지께 뭐라고 설명해야 되는데 더듬더듬 말이 나오지 않는다. 설명을 해야 한다. 괄호에 대하여. 아니, 괄호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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