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전생의 업보는 피하지 못한다 석존께서는 왕사성(王舍城)의 영취산(靈鷲山)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설법하고 계실 때의 일이었다. 석존께서 태어나신 카필라성에 많은 마을을 다스리고 있는 마카나마라고 하는 영주(領主)가 있었다. 그는 각 마을을 통치하는 방법으로 지사(知事)를 파견했다. 그런데 어느 마을의 지사가 갑자기 죽자 그 마을을 다스릴 자가 없었으므로 그 마을 사람들은 그의 집으로 찾아와서, “어젯밤에 지사가 갑자기 죽었습니다. 그 때문에 마을을 다스릴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튼 적당한 분을 임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진정했다. “지금 당장엔 사람을 선택하기 곤란한데.” 라고 마카나마는 대답하고 곁을 보니 마나바라고 하는 사나이가 서 있었다. “아아, 여기에 마나바가 있었군. 자네가 그 마을에 가서 잠시 마을을 다스려 보지 않겠나? 그 동안에 사람을 골라서 교체하도록 할 터이니,” 하고 임시로 지사에 임명했다. 갑자기 지사로 임명을 받은 그는 그 마을에 부임하자 법이 명하는 데 따라서 납세와 그 밖의 일을 엄중하게 감독해서 영주가 우려했던 것보다 상당히 능률을 올렸다. “마나바, 그대가 마을을 통치하고 나서 납세액이 매우 많아졌는데 그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곤란하다고 하지 않는가?” “저는 결코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다만 법에 따라 세금을 징수할 뿐입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좋아.” 영주는 다시 그 마을 사람들을 자택으로 불렀다. “마나바가 세금을 가혹하게 징수하는 것이 아닌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주는 마나바의 통치가 마땅한 것으로 알고 정식으로 그를 지사에 임명했다. 지사로 임명된 그는 법에 따라 평등하게 세금을 징수하고 결코 강압적인 일은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지사로서 그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되었다. 그는 독신이었기 때문에 중매하는 사람이 있어서 어느 바라문의 딸과 결혼을 했다. 결혼한 후 아들을 낳고 이어서 딸도 낳았다. 이 부부는 딸의 이름을 명월(明月)이라 짓고 몹시 사랑했다. 드디어 명월이 성장함에 따라 그 용모가 아름다워질 뿐만 아니라 총명함도 점점 더해서 재주와 미모를 갖춘 여자가 되어 마을 사람들도 부러워하게 되었다. 어버이와 아들, 딸 네 사람은 이와 같이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마을 사람들이 선망하는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영고성쇠(榮枯盛衰: 사물의 성함과 쇠함이 뒤바뀜)는 세상의 무상함이라 이 평화로운 가정에도 폭풍우가 닥쳐와서 그것을 파괴하고 말았다. 그것은 유명한 지사로서 존경을 받던 부친이 병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병으로 약값과 기타 비용이 많았기 때문에 아버지의 치료비로 세금을 모두 소비한 것이 그가 죽음과 동시에 폭로되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영주에게 가서, “마나바 지사가 병으로 죽었습니다.” 하고 보고했다. “그것 참 애석하군. 그런데 세금에는 지장이 없는가?” “금년 중의 세금은 이미 납부했으나 병으로 인해서 그 세금을 사용한 것 같으며 또한 마을 사람에게로 빚진 것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세금을 받은 것이 남아 있다면 그것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진 빚을 갚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실은 남은 돈이 한 푼도 없습니다. 다만 미망인과 일남 일녀가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 딸인 명월은 얼굴이 아름다운 뿐만 아니라 매우 영리하고 재주가 있는 여자랍니다.” “그러면 모친과 아들은 그대로 버려 두고 세금 대신으로 명월을 여기로 데려오도록 하라.” 마을 사람들은 영주의 말과 같이 미망인과 장남은 그 마을에서 추방하고 명월은 영주가 데려왔다. 그때에 이 영주에게는 노모가 계셨다. 노모는 매일 떡을 빚어 먹는 것과 많은 꽃을 꺾어 모으는 가지일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노모는 영주에게, “나도 나이가 많아서 매일 두 가지 일을 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이 명월을 식모로 했으면 좋겠다.” 고 말하고 그녀를 자기의 시중을 들게 했다. “명월아, 오늘은 네가 꽃을 꺾어 오렴, 나는 집에서 떡을 빚겠다.” 그녀는 노모의 명령에 따라 숲속에 가서 아름다운 꽃을 많이 꺾어서 화만(불전을 장엄하게 꾸미기 위해 만든 화관)을 만들었다. 노모는 그것을 영주에게 주었다. 영주는 그 화만을 보고, “어머니, 오늘 화만은 지금까지 볼 수 없던 훌륭한 것인데 역시 어머니께서 만든 것입니까?” “아니, 오늘은 내 대신 명월이가 만들었다. 나보다 눈이 밝기 때문에 이와 같이 멋진 화만을 만든 것이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명월을 동산 안에 살게 하고 매일 훌륭한 화만을 만들어 저에게 보내도록 시켜 주십시오.” 영주는 이와 같이 말하고 곧 그녀를 동산 안에 살게 하고 매일 화만을 만들어 가지고 올 것을 명령했다. 그녀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 주인의 마음에 들도록 아름다운 화만을 만들어 매일 그것을 가지고 가서 주인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영주는 명월이 화만을 만드는 데 매우 솜씨가 좋았기 때문에 그녀의 이름을 승만이라고 불렀다. 주인으로부터 승만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 그녀는 영주의 사무실에서 동산으로 돌아오는 중에 성 아래서 걸식하는 석존을 우연히 만났다. 석존의 얼굴을 보고 절한 그녀는 ‘나는 아직 이와 같이 높은 분에게 공양한 일이 없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가난하고 더욱이 천한 자로 태어났을 것이다. 만약 저 부처님이 내가 주인께서 얻어 갖고 있는 조그만 음식이라도 받아 주신다면 나는 공양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절을 했다. 석존은 그녀의 마음을 알고 불쌍히 여겨 그녀 앞으로 일부러 나아가 손에 든 바리때를 내밀며 “공양하고 싶으면 이 그릇에 넣어다오. 나는 기꺼이 받겠다.” 고 말했다. 그녀는 즐겨 음식물을 그릇 안에 넣고 석존의 발아래 예배하면서, “원하옵는데 이 조금밖에 안 되는 복업(福業)에 의해서 현재와 같은 신분을 일찍 버리고 큰 부귀의 신분이 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열심히 기원했다. 그리고는 석존과 헤어져 스스로 살고 있는 곳에 돌아오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옛 친구와 마주쳤다. 그 사람은 그녀의 모습이 몹시 변한 것을 보고,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 하고 물었다. 그녀는 다만 훌쩍훌쩍 울기만 하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왜 그와 같이 울고 있느냐?” “저는 현재 영주의 집에 하녀(下女)로 있습니다.” “그렇군. 손을 좀 보여다오. 수상(手相)을 보아 줄 테니.” 이와 같은 말을 해서 그녀는 손을 그 사람 앞에 내밀었다. 그 사람은 손금을 다 보고 나서, 여인의 손 가운데, 만구륜의 상(相)이 있으면, 천한 가정에서 태어나도 드디어는 왕비가 될 것이다. 여인의 손 안에, 성루각(城樓閣)의 상이 있으면 마침내 왕비가 될 것이다. 그 사람의 말과 그 목소리가 왕에게 들려, 천한 집에 태어났어도 드디어는 왕비가 될 것이다. 신세를 한탄하지 말고 하녀(下女)의 신분을 빨리 떠나면, 스스로 부귀한 몸이 되어 틀림없이 왕비가 될 것이다. 하고 노래했다. 이 아버지의 옛 친구의 예언을 들은 그녀는 후한 사례를 하고 동산으로 돌아왔다. 그 뒤에도 그녀는 드디어 닥쳐올 과보(果報)를 어린 가슴 속에 희망을 품고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화만을 만들어서 주인에게 보내면서 그날그날을 지냈다. 이와 같이 생활은 평온하였으나 마음속으로는 타오르는 듯한 불만을 느끼면서 그녀는 몇 개월 동안 동산 안에 하녀로서 무미건조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에 코오사라 국왕인 쇼오코오가 수렵하기 위해서 코끼리 • 말 • 수레 • 보병의 사병(四兵)을 이끌고 드디어 그곳에 왔다. 그때 어떻게 된 일인지 국왕이 탄 말이 무엇엔가 놀란 것처럼 함부로 미쳐 날뛰었다. 왕은 아무리 말을 제지해도 이를 억제할 수가 없었고 드디어 그 말은 왕을 태운 채 카필라성의 그녀가 있는 영주의 동산 안으로 달려왔다. 이 갑작스런 일에 놀란 그녀는 그 사람을 보니 쇼오코오 왕이므로, “임금님, 어떻게 여기를?” 하고 물었다. “이것은 그대의 동산인가?” “영주의 동산이옵니다.” 하고 그녀는 대답하면서 달리던 말을 나무에 매었다. “발을 씻을 물을 좀 갖다다오.” 하고 왕은 명했다. 그녀는 발을 씻을 때에는 따뜻한 물이 좋다고 생각하고 햇볕에 쬐인 깨끗한 물을 연(蓮)잎으로 길어 와서 바쳤다. “세수할 물을 좀 다오.” 하고 왕은 또 명령했다. 그녀는 세수하는 데는 냉수가 좋다고 생각하여 물을 휘저어 서늘하게 해서 왕이 계신 곳으로 갖고 갔다. 세수를 마친 왕은, “마실 물을 갖고 와라.” 하고 명했다. 맑고 서늘한 물이 가장 갈증을 잘 풀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깊은 우물의 물을 길어 와서 왕에게 드렸다. 다 마시고 난 왕은. “이 동산 안에는 세 가지 물이 있는가?” 하고 물었다. “세 가지 물이 없습니다. 모두 같은 물입니다.” “그대는 이 물을 어떻게 세 가지로 다르게 했나?” 이때 그녀는 그 방법에 대하여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왕은 임기응변과 재주가 뛰어난 여인이라고 느꼈다. “나는 몹시 피로하기 때문에 잠들게 발을 좀 문질러 주겠나.” 하고 말하고 왕은 그곳에 가로누었다. 그녀는 왕이 명령하는 대로 발을 문지르로 있는 동안에 왕은 깊은 잠에 빠졌다. 그때 그녀는, ‘이 왕은 국민드로부터 원한을 사고 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반항하는 자들이 여기에 찾아 와서 왕에게 위해를 가할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곧 동산의 문을 굳게 잠그고 말았다. 그런데 잠시 후 곧 생각했던 바와 같이 군사들이 물결처럼 몰려 와서 문을 두드렸다. “왕이 없느냐?” 하고 성에서 소리쳤다. 자기가 상상했던 바와 같았으므로 그녀는 놀라서 문을 한층 더 굳게 닫았다. 문 밖에서는 백 개의 우레가 한꺼번에 내리치듯 큰 소리로 무언가 부르짖는 소리가 일어났다. 이 큰 소리에 놀라 깨어나 왕은, “도대체 저 소란한 소리는 무엇인가?” 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누구인가는 알 수가 없사오나 저들은 임금을 찾고 계신 것입니다.” “저 문은 누가 닫았는가?” “이러한 일이 있을지도 몰라서 제가 문을 닫았습니다.” “잘 알아서 닫아 주었군, 감사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이 동산의 주인은 그대와 어떤 관계인가?” “뭐 혈족관계는 아닙니다. 다만 주인과 하녀와의 관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대의 용모로 보아서는 어딘지 모르게 고귀한 가문에서 태어난 것 같은데 영주의 딸이 아니었던가?” “......” “아무튼 그대는 주인에게 쇼오코오 대왕이 동산에 와 있다고 급히 보고해다오.” 그녀는 곧 왕이 말하는 대로 주인인 영주에게 가서 그 말을 전했다. 영주는 돌연한 일에 놀랐으나 재빨리 훌륭한 음식과 향을 갖추어 가족을 이끌고 동산으로 왔다. “대왕님, 어떻게 이와 같이 누추한 동산에 왕림하셨습니까? 소신으로서는 더없는 영광이옵니다.” 영주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듯 이와 같이 말했다. “그런데 이 여자는 그대의 친척인가?” “아닙니다. 하녀(下女)입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좋아. 그대는 이 여자를 나에게 맡기지 않겠냐?” “대왕님, 이 여자보다 용모와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많은데 무슨 까닭으로 저의 집 하녀를 데려가시겠다는 말씀이옵니까?” “아니, 이 여자는 내가 눈여겨볼 만한 데가 있어서 그렇게 바라는 것이다.” “보잘것없는 여자이옵니다. 그렇지만 원하시오면 이 여자를 데려가십시오.” 그래서 영주는 승만을 왕비로 할 것을 약속했다. 이 이야기를 곁에서 듣고 있던 그녀는 마음속으로 기뻐했다. 영주는 성 아래에 명령을 내려 도로를 청소하고 그녀를 아름답게 옷을 입혀 큰 코끼리에 태워 왕의 나라에 보내기로 했다. 왕은 그녀를 데리고 즉시 본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한편 왕의 어머니는 왕이 알지 못하는 타국의 천한 여자를 맞이해서 왕비로 삼고 귀국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애써 키운 보람도 없이 천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치욕이라고 크게 노했다. 왕의 어머니가 노여움과 근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왕궁에 도착한 왕은 곧 새 왕비를 동반하고 어머니가 계신 곳에 인사하러 갔다. 노여움으로 가득 찬 어머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보기 싫다. 당신은 곧 돌아가시오. 왕궁에 족보도 알 수 없는 여자를 맞이할 수는 없소.” 하고 냉정하게 말했다. 이와 같이 모욕을 당해도 그녀는 꾹 참고 노여움에 가득 찬 왕의 어머니의 발아래 절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이 왕의 어머니의 발에 닿을 때 왕의 어머니의 노여움도 사라졌고 그녀는 몸과 마음이 편안해져서 자연히 졸음이 와서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난 왕의 어머니는, ‘이 여자는 용모는 아름다우나 아음에 이 나라를 멸망하게 할 요부가 틀림없다.’ 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자 공포심마저 일어났다. 대왕의 총애를 한몸에 받은 그녀는 드디어 임신하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어느 대신의 아내도 또한 임신했다. 왕비는 산월이 되어 용모가 단정한 왕자를 분만했다. 왕은 왕족들을 모아 왕자의 명명식(命名式)을 거행했다. 그때 왕의 어머니는 여러 신하들을 향해, “나는 지난날 승만이 들어왔을 때 그녀는 용모가 아름답기는 하나 반드시 이 나라를 멸망해 버릴 요부일 것이라는 것을 그대들에게 몰래 이야기한 일이 있었으니 모두 기억하고 있는가?” 하고 물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한 여러 신하들은 왕비에게 그와 같이 상서롭지 못한 일을 이야기한 적이 있으므로 이 왕자의 이름을 악생(惡生)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부인과 같은 날에 임신한 어느 대신의 아내도 왕자가 태어난 날에 태어났다. 대신도 또한 아들을 위해 좋은 이름을 붙이려고 친지들을 모아서 의논했다. 그런데 이 아이는 태 안에 있을 동안에는 어머니를 괴롭히고 분만할 때에도 또한 어머니를 몹시 괴롭혔다고 해서 고모(苦母)라고 명명(命名)하게 되었다. 같은 날에 임신해서 같은 날에 태어난 두 아이는 하나는 악생 하나는 고모라고 하는 이름을 짓게 된 것은 무슨 인연이 아니냐 하고 자주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러한 이야기는 그 동안에 자연히 사라지고 뭔가 이상한 인연을 가진 왕자와 대신의 아들은 그뒤 무사히 성장했다. 그 뒤 어느 날의 일인데 악생 태자는 대신의 아들 고모를 데리고 사냥하러 나갔다. 그런데 태자가 타고 있는 말이 도중에 무엇엔가 놀라 갑자기 미쳐 날뛰어 드디어 카필라성 안의 석가족의 동산으로 달려들어갔다. 악생 태자가 동산에 말을 탄 채로 달려들어가는 것을 본 문지기는 그 일을 주인에게 보고 했다. 또한 주인은 곧 이 일을 다른 같은 종족에게 알렸다. 그러자 석가족의 여러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모르나, “악생을 죽이는 것은 바로 이때다.” 하고 격앙해서 무장을 갖추고 동산으로 향했다. 이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고 있던 어느 노인은, “그대들은 무장을 하고 어디에 가는 건가?” 하고 물었다. “악생 태자가 동산에 숨어 있는 것 같아서 죽이러 갑니다.” “그는 처음으로 온 손님이다. 그런 일은 하지 말고 오늘은 용서해 주는 것이 좋다.” 노인의 이와 같은 충고를 들은 혈기 왕성한 자들은 노인의 말을 따라 무장을 해제하고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그런데 태자가 인솔해 온 군사들은 태자의 뒤를 쫓아서 또한 동산 안에 들어와서는 매우 난폭한 행동을 했다. 그래서 문지기는 놀라서 그 일을 원주(園主)에게 알리자 원주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통지했다. 이에 석가족의 여러 사람들은 다시 무장하고 태자를 죽이려고 왔다. 동산 안에서 이 사태를 이야기 들은 왕자는 단 한 사람의 병졸을 탐정하기 위해 남겨 놓고 급히 본국으로 돌아왔다. 그 뒤에 석가족의 한 집단이 쳐들어왔다. 동산 안에 태자의 모습은 볼 수가 없고 또 한 사람의 병졸이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실망했으나 그 병졸을 붙잡아서, “하녀가 낳은 악생은 어디로 도망쳤나?” 하고 꾸짖어 물었다. “방금 본국에 돌아갔습니다.” 하고 그 병졸은 대답했다. 쳐들어온 여러 사람들은 매우 분하게 여기며, “만약 우리들이 악생을 포획했더라면 먼저 그 손을 찢고 다음에는 발을 찢고 그 다음에는 심장을 찔러서 죽였을 터인데 허탕이었군.” 하고 모두 악생을 욕하면서 악생이 있었다고 하는 땅을 무릅 깊이까지 파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흙을 갖다 묻기도 하고 또 악생이 기대었다는 벽을 모두 걷어 내고 진흙을 바르거나 그 밖에 물감이나 향료 등으로 동산 안 전체를 깨끗이 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병졸은 석가족의 여러 사람들이 물러가자 마자 곧 급히 본국으로 돌아왔다. “석가족들은 무어라고 하느냐?” 하고 태자가 물었다. 그 병졸은 묻는 대로 그 동산 안에서 석가족들이 하던 일과 태자를 비방하던 것들을 상세히 말했다. 이것을 듣고 있던 태자는 매우 분노해서 좌우에 있는 신하들을 향해서, “그대들은 잘 기억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만약 부왕이 돌아가신 후 내가 왕위에 오르는 날에는 반드시 석가족들을 모두 죽여서 이 원한과 모욕을 보복할 것이다.” 하고 알렸다. 그때 고모는 일어서서, “태자의 말씀과 같이 이 치욕은 보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고 태자의 생각에 찬성의 뜻을 표시했다. 태자는 그 뒤 역심을 품고 부왕을 해치려고 몰래 계획하고 대신들과 협의했다. 그런데도 또 한 사람인 쵸오교오라고 하는 대신만이 이에 찬성하지 않았다. “쵸오교오, 당신은 무슨 까닭으로 내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찬성하지 않는가?” “태자께서는 왜 부덕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부왕께서는 이미 노령이셔서 돌아가실 때가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부왕이 서거하신 후에 왕위에 오르셔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지금 부왕을 해쳐서 악명을 후세에 남기는 것은 안 됩니다. 소신이 우둔하다고 하더라도 이 일만은 인륜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찬성할 수 없사옵니다?” “아니, 당신의 말씀과 마찬가지다. 사실은 당신의 마음을 시험해 본 것뿐이며, 나에게 그와 같은 반역을 할 의사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 일은 도대체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러하옵니다.” 임금과 신하가 서로 마음속에 무엇인가를 비밀로 하면서 겉으로 이와 같이 해서 별 일 없이 지나갔다. 그 뒤 어느 날 쵸오교오 대신은 대왕과 단 두 사람이 영내의 각 마을을 산책하게 되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발걸음은 자연히 석존이 계시는 곳으로 향했다. 세상의 더러움을 떠나 조용하고 밝은 곳에 살고 계시는 석존의 모습을 보았을 때에 왕은 갑자기 불문에 몸을 던져 수행하고 싶은 마음이 솟아올랐다. 그래서 친절하게 석존께 절하고 마음먹었던 것을 말하고 입문(入門)하려고 했다. 석존은 곧 그 희망을 들어 주셨다. 이것을 곁에서 보고 있던 쵸오교오는 왕이 석존을 공경하고 석존께 우러러보는 마음이 생긴 것을 알고, ‘이것은 오히려 왕의 참된 마음에서 생긴 도(道)이다.’라고 생각하여 아예 그것을 제지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쵸오교오는 이때 대왕이 나아가야 할 도(道)는 분명해졌으나 현재의 나라 사정에 대하여 어떤 조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왕을 그곳에 두고 본국에 돌아왔다. 그리고는 태자를 향해, “당신은 왕위에 오르시렵니까?” 하고 물었다. “오래 전부터 내가 바라던 일은 아니다 왜 그와 같이 다시 묻는 것인가?” “그럼 왕위에 오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는 임금님의 생각을 태자에게 고하고 다시 신하들을 모아서 합의에 따라 태자를 국왕으로 함과 동시에 부왕의 아내인 교오오와 승만 두 부인을 향해, “부인들은 지금부터 노왕(老王)이 계신 곳에 가시는 것이 좋소.” 하고 충고했다. “쵸오교오, 왕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석존께서 계시는 묘광원(妙光園)에 계십니다.” 노왕이 있는 곳을 안 두 부인은 곧 걸어서 왕궁을 떠나 노왕을 찾아 출발했다. 한편 석존을 맞이해서 자기의 희망을 말하고 그 말을 들어 주어서 마음속으로 법열(法悅)을 느끼면서 문밖에 나와 보니 쵸오교오의 모습을 볼 수가 없어서 왕은 한 사람의 수도자에게, “대덕(大德), 나와 같이 온 사람은 어디에 갔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분은 벌써 돌아갔습니다” 이 대답을 들은 노왕은 걸어서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묘광원을 떠났는데 뜻밖에도 도중에서 승만과 교오오의 두 부인과 마주쳤다. “그대들은 걸어서 여기를 오는가?” “대왕, 우리들은 쵸오교오 대신의 술책에 넘어가 왕궁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래서 태자가 이미 왕위에 올랐습니다. 우리들은 노왕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래, 그것도 인연이지, 그럼 승만은 자신이 낳은 태자가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본국에 돌아가서 왕으로부터 녹(祿)을 받고 여생을 보내는 것이 좋다. 나는 교오오를 데리고 다시 묘광원으로 돌아가기로 하지.” 하고 왕은 교오오와 함께 승만과 이별하고 왕사성에 다다라 어느동산에서 두 사람은 잠시 동안 피로해서 쉬고 있었다. “교오오, 그대는 지금부터 성 안에 들어가서 마카다 나라의 아쟈타샤트우르 왕을 면회하고 코오사라 나라의 쇼오코오가 지금 성문 밖에 와서 대왕에게 면회를 하고 싶다고 말을 전해주게.” 하고 왕은 교오오에게 명령했다. 교오오 왕비는 곧 왕궁을 방문하고 그 사유를 아쟈타샤트우르왕에게 전했다. 아쟈타샤트우르 왕은 이 말을 듣고 놀라서, “쇼오코오 왕은 큰 나라의 왕으로 위세를 따를 자가 없는 나라의 주인인데 어떻게 나를 찾아오게 된 것입니까?” 하고 교오오에게 물었다. “대왕에게는 이제 한 사람의 신하도 없습니다. 대왕은 태자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지금 다만 조 혼자만이 따라왔을 뿐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제가 자리를 물러나서 나라를 쇼오코오 왕에게 바치겠습니다.” 하고 말하면서 아쟈타샤트우르 왕은 곧 뭇 신하들을 불러서 사정을 전하고 쇼오코오 왕을 맞이할 준비를 명했다. 여러 신하들은 북을 치고 피리를 불어서 성 아래 사람들에게 성곽을 깨끗이 하도록 했다. 그런데 오랜 동안 낯설은 여행을 며칠 동안 계속해서 여행을 하면서 먹을 것조차 충분히 먹을 수 없었던 대왕은 아쟈타샤트우르 왕의 영접을 기다릴 겨를도 없이 배고픔에 지쳐서 음식을 얻으려고 동안에서 나와 무밭에 들어갔다. 밖에는 한 사람의 백성이 밭을 갈고 있었다. “나는 배가 고픈데 뭐 먹을 것을 좀 줄 수 없소.” 하고 왕은 백성에게 부탁했다. 이 사람이 큰 나라의 왕이라는 것을 모르는 정직한 백성은 무 다섯 포기를 밭에서 뽑아서, “그럼 이것이라도 잡수십시오.” 하고 건네주었다. 왕은 배가 고픈 나머지 그 무의 잎과 뿌리를 모두 먹어 치우자 목이 말라서 냇가로 가서 물을 많이 먹어서 배가 아프기 시작했고 몸이 쇠약해졌다. 원래 있던 동산으로 돌아오려고 비틀비틀 걸어오다가 길 위에 수레바퀴 자국에 발이 빠져서 쓰러지는 순간에 진흙이 입에 들어가 호흡을 막았기 때문에 큰 나라의 왕으로 명성을 떨치던 대왕도 길바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 일을 모르는 아쟈타샤트우르 왕은 정중한 예의를 갖추어 교오오에게 안내해 오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이 원통하고 천만뜻밖의 일에 대하여, “아아! 큰일 났구나. 나는 또 악명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지난날에는 부왕을 죽이고 그 자리를 빼앗고 지금 또 야쿠쇼오 태자를 돕고 그의 아버지 쇼오코오를 노상에서 죽게 하다니.” 하고 마음속 깊이 괴로워했다. 아쟈타샤트우르 왕에게는 이 우연한 변사 사건이 명예에 관계되는 중대한 일이었다. “그대들은 기구한 재화를 당한 쇼오코오 대왕을 성대한 장례식을 거행하여 화장하도록 하자.” 하고 왕은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영구에 여러 가지 장식을 하여 쇼오코오 왕을 후히 장사 지냈다. 그의 이름이 사해에 떨치고 각 나라 왕 중에서도 영명한 임금으로 일컬어지던 대왕은 애인 승만 부인의 일을 생가하면서 추운 타향의 하늘 아래서 허무하게 붕어(崩御)하시어 타국의 흙으로 화해 버렸다. 아버지인 쇼오코오 왕을 추방한 태자 악생은 자기가 염원하던 왕위에 올라 생각대로 함부로 날뛰었다. 어느 날 여러 신하들과 아침에 화합했을 때 예외 사악한 신하인 고모는 악생 왕을 향해서, “대왕, 왕은 지난날 왕위에 오르면 우선 첫째로 모욕을 당한 저 석가족을 모두 죽이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아직 잊으시지는 않았겠지요.” 하고 갑자기 물었다. “무슨 일이건 한번 말한 일은 반드시 실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가?” “왕은 비로소 왕위에 오르신 것이기 때문에 옛 말을 잘 생각해내서 석가족을 죽이지 않으면 왕은 망언(妄言)을 하는 사람이 됩니다. 대왕 자신이 망언을 하면 나라를 다스릴 방도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명령을 내려서 사병에 무장을 시켜 종을 울리고 북을 쳐서 카필라성을 습격하여 석가족을 토벌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이 고모의 진언을 받아들여 왕은 칙령을 내리고 친히 통솔해서 출정했다. 마침 그때 석가모니께서는 두 나라 국경의 어느 큰 길가의 작은 나무 아래에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악생 왕은 멀리 석존께서 나무 아래 앉아 계신 것을 예배하고 그 허락을 받아, “세존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동산이나 숲속의 나무 아래에 앉지 않으시고 이와 같이 작은 나무 아래 앉아 계십니까?” 하고 물었다. “대왕, 나는 친족의 그늘에서 잠자는 것이 가장 시원하다. 나무의 크기와 가지에 잎이 있고 없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하고 석존은 대답했다. 왕은 석존의 말을 듣고, “카필라성의 석가족은 항상 나를 ‘하녀의 아들’이라고 경멸하고 있으나 이 경멸에 대한 나의 원한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괴로움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종족이고 부처님이 그것을 사랑하는 아들처럼 돌봐 주고 있기 때문에 부처님의 높은 덕에 대하여 살육의 칼을 빼어 들 수가 없어서 참고 오늘날까지 왔으나 뭔가 다른 방법에 의해서 이 원한을 갚을 방법이 없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고모는, “대왕, 부처는 항상 스스로 ‘나는 세상의 모든 욕망에서 벗어났다.’고 외치고 있는 것 같으데 욕망을 떠난 부처가 자기가 출생한 석가족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아직 부처가 진정으로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증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까닭에 대왕은 빨리 군사를 이끌고 석가족을 토벌하도록 결심하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권했다. 고모의 이 말에 왕은 마음을 다시 움직여서 또 다시 석가족을 토벌하기로 했다. 이미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을 미리 안 석존께서는, ‘석가족 사람들이 아직까지 해탈(解脫 : 속박에서 벗어남)하지 못하였는데 이제 악생 때문에 토벌되면 영구히 높은 법문(法門)을 들을 수가 없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시고 카필라성의 나무 동산(多根樹園)에 다다랐다. 석존께서 전도하시기 위해 동산에 오셨다는 것을 들은 나라 안의 사람들은 그 동산에 모여서 부처님의 설법을 배청(拜聽)했다. 이사람들은 모두 각기 깊은 설법에 젖고 각기 법열(法悅)로 가득차서 동산을 떠나갔다. 한편 악생의 군사들은 카필라성의 국경 가까이 진군해 왔다. 이 일을 안 부처님의 제자인 목건련은 석존의 곁으로 가서 이와 같이 말했다. “세존, 들리는 바에 의하면 악생 왕이 사병(四兵)을 이끌고 석가족을 토벌하기 위해 진격해 오고 있사오니 저는 스스로의 신의힘에 의해서 그 습격해 오는 군사를 다른 나라로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또한 신의 힘에 의해서 나라의 성을 철(鐵)로 변하게 하고 큰 철망을 그 위에 씌워 악생이 볼 수 없게 하면 적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공격해 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우리 국민의 위급을 구한다는 의미에서 저에게 신의 힘을 나타나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대가 위대한 신의 힘을 갖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석가족이 다른 나라로 인해서 죽음을 당하는 것은 석가족의 전생(前生)의 업보(業報)이므로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사물(事物)이 성숙하여 홍수와 같이 밀어닥칠 때에는 이를 금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비록 백겁(百劫)을 지나도 지어 낸 업(業)은 잊지 않고 인연을 맞이할 때에 반드시 그 과보(果報)를 받는다.” 하과 석존은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도리를 말씀하시고 목건련의 요청을 중지시켰다. 카필라성의 석가족은 악생 왕이 대군을 이끌고 공격해 온다는 것을 알고 크게 놀라 그것을 방어하기에 힘을 다했다. 그러나 방비(防備)가 충분하지 않을 때에 두 나라 군사는 충동하게 된 것이다. 석가족의 군대는 이미 불(佛)의 교화(敎化)에 의해서 모든 것을 애호하는 자비심이 짙었기 때문에 적군에 대해서도 이를 살해하지 않고 다만 몽둥이나 지팡이를 좌우로 흔들어 적병을 치거나 화살을 쏘더라도 사람을 죽이지 않고 말이나 코끼리의 복대(腹帶)만을 쏠 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철모를 떨어뜨리거나 안장이나 신발을 쏘아서 결코 직접 인명에 손상을 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악생의 군사는 이 싸움에서 고전하여 참패하고 물러갔다. 큰 승리를 가둔 석가족의 군사는 개선가를 부르며 성안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우리들은 악생 및 그 병졸들에게 상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 만약 이 규칙을 어기는 자는 석가족이 아니다.” 하고 권고했다. 적에게도 인자한 마음을 갖고 임하기로 정했다. 그것은 전혀 부처님의 감화에 의한 결과였다. 참패한 악생 왕은 석가족에게 칼을 드는 것에 대하여 일종의 공포감과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이 마음속에 싹트기도 했다. 그런데 예의 고모는, “대왕, 이 일전(一戰)에서 실패했다고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적국의 군사들은 부처님의 신자로 자비심이 풍부하여 모기나 파리같은 곤충도 죽이지 않을 정도이므로 사람에게는 결코 손상을 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결코 우리 군사에게는 최후의 승리를 안겨 줄 것입니다. 그와 같이 낙심하지 마시고 이제 한 번 더 용기를 내셔서 일전(一戰)을 불사(不辭)하시면서 초지를 관철하여 오랜 동안의 원한을 갚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권유했다. 그러나 왕은 이번에는 고모의 말을 듣지 않았다. “고모, 용감하고 건장한 석가족은 도저히 멸망할 수 없다.” “그렇게 약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큰 성이라도, 또 금성철벽(金城鐵壁)이라고 하더라도 수단과 방법을 다하면 깨뜨릴 수가 있습니다. 옛 사람들의 말을 따르면 다섯 가지의 반드시 이기는 술책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적을 속이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이러한 사술(詐術)을 써서 성 안에 들어가기로 합시다.” 그래서 고모가 건의한 정책에 따라 평화 회담을 주장하는 사신을 카필라성에 파견했다. 카필라성에서는 이 사신의 말을 중심으로 적국의 군사를 성안에 들어오게 하느냐 않느냐에 대하여 구수회의(鳩首會議)를 한 결과 다수결에 의하기로 했다. 그때 항상 불법의 파괴를 기도하고 부처님께 악의를 품고 있던 마왕(魔王)은 부처님의 교단을 파괴할 기회가 왔다고 석가족의 한 노인으로 변신(變身)해서 그 회의하는 가운데 나타나 스스로 성문을 열어 놓자는 주장을 역설하면서 그것이 좋을 것이다. 하고 말했다. 그래서 모두 이에 찬성했다. 이와 같이 악마에게 유혹된 석가족은 성문을 열고 악생의 군사가 들어오게 했다. 묘한 계책에 성공한 악생의 대군은, “천년 원한을 씻을 때는 지금이다. 마음대로 죽여라.” 하고 깃발을 날리며 징을 쳐서 천지를 진동시켰다. 그 무시무시한 소리는 땅에 울리고 곳곳마다 사람을 죽였다. 그래서 그 울부짖는 소리와 미친 듯이 날뛰는 소리가 뒤섞여 성 밖에까지 들리며 정말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일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와 같이 악생 왕은 가장 잔악한 짓을 다해서 석가족을 백성과 군사 칠만칠천 명을 죽이고 오백 명의 여자를 포로로 해서 코끼리가 이를 밟아 죽이도록 하고 다시 오백 명의 남자를 구덩이안에 머리만 내어 묻어 놓고 그 머리를 철퇴로 극악무도하게 학살했다. 이때 석존께서는 많은 제자를 데리고 잔악한 자취를 조상하려 오셨다.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아이는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큰 소리로 울었다. 석존께서는 모여 있는 제자 및 빈사 상태에 있는 아이들을 향해서 전생의 악업(惡業)의 보답으로 이러한 결과를 빚게 되었다는 것을 알기 쉽게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 악생 왕의 이러한 가장 잔인한 행위는 드디어 그 대가를 받아 칠 일을 경과하면 코오사라 나라를 파멸하고 악생 왕과 고모 두 사람은 살아 있는 몸 그대로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떨어져 모진 괴로움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셨다. 석존의 예언을 전해 들은 악생 왕은 갑자기 자기 몸이 마지막 갈 곳을 생각하게 돼서 깊은 우수에 잠기게 되었다. 그러자 고모는, “대왕은 무엇으로 근심에 싸여 계시옵니까?” “고모, 나는 어떻게 하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부처님의 말에 의하면 나도 당신도 함께 칠 일이 지나면 모진 불길에 타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빠진다고 하는데?”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염려되오면 뒷동산 연못 가운데 한 누각(樓閣)을 짓고 그곳에 살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악생 왕은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으므로 고모의 이야기를 받아들여서 곧 뒷동산의 연못 가운데 집을 짓고 그곳에 옮겨 살고 있었다. 하루, 이틀 지나자 문제의 칠 일도 지났다. 왕도 고모도 성으로 돌아오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 검은 구름이 나타났다. 한 부인이 이른바 햇볕의 구슬(珠)을 내자 그 검은 구름은 곧 어디론가 사라지고 새빨간 양이 나타나서 그 구슬을 비추었다. 그러자 그 구슬에서 불이 나서 맹렬하게 타오르고 연못 안의 누각(樓閣)을 태웠다. 왕과 고모는 놀라서 사나운 불길로부터 도망치려고 했으나 그 불은 두 사람의 뒤를 쫓아오는 듯 한층 더 심하게 타올랐다. 두 사람은 성문까지 도망쳐 갔으나 문이 있는 곳에 사람 아닌 신이 대문을 굳게 닫아 걸고 두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고모, 이젠 어쩔 수 없다. 나는 여기서 타죽는 것이다.” “대왕, 저도 별 수 없습니다. 아아!” 왕과 신 두 사람은 타오르는 불길 속에 차례로 그 몸이 닿아 괴로워 울부짖으면서 마침내 석존의 예언과 같이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지옥으로 떨어졌다. 이때 석존은, “죄악을 지은 업보로 이 세상에서 그 몸을 태울 뿐만 아니라, 내생에도 그 몸을 또 태워 악취(惡趣)를 내게 되는 것이다. 죄악을 지은 보답으로 이 세상에서 괴로움을 받을뿐더러, 내생에도 그 몸이 고통을 받아 악취(惡趣)를 내게 될 것이다.” 고 말씀하셨다. 〈근본일체유부비나야잡사 제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