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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아라비아 광야 체험_영혼의 어두운 밤_사도 바울 맥잡기 06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설교, 강해, (2019. 5.12 S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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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사도 바울 맥잡기: 바울의 아라비아 광야 체험
성경말씀: 갈1:15-18
지난 시간: 하나님은 말씀, 이성, 양심, 섭리, 설교, 사람들, 성령님 일곱 가지를 통해 우리를 부르신다.
목적: 하나님의 영광, 우리는 죄들을 치우고 거기에 순응하는가? 주님을 신뢰하는가?
오늘: 사람의 회심, 곧바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가?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특별히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이 일은 고독의 시간이다. 고독의 시간이 있는가? < : 영혼의 어두운 밤>
광야에서의 사울
아라비아 광야, 기간: 3년으로 보는 견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다마스쿠스에 나타날 때까지
여하튼 그는 다마스쿠스에서 도망하여야 했다. 곧바로 돌아올 수 없었다.
아라비아 사막에서의 3년, 자세히 나와 있지 않다. 회심 이후 삶에서 가장 명확하지 않은 부분
아라비아 사막은 엄청 넓은데 그는 어디로 갔을까? 왜 갔을까? 무슨 일을 했을까? 다른 사도들처럼
왜 곧바로 주의 일을 하지 않았을까? 왜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가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을까?
왜 이 기간이 공백으로 남아 있는가? 아마도 묵상하고 생각하는 시간, 모두 우리의 추측이다.
아라비아라는 말은 조금 모호하게 쓰였다. 서부 아시아의 국가. 이곳은 유대의 동남쪽에 있었으며 남북으로
2,300킬로미터, 동서로 1,900킬로미터로 뻗어 있었다. 이곳의 북쪽 경계는 시리아, 동쪽 경계는
페르시아 만과 유프라테스 강, 남쪽 경계는 아라비아 해, 서쪽 경계는 홍해와 팔레스타인이었다.
아라비아는 보통 아라비아 데제르타, 펠릭스, 페트라이아의 세 지역으로 구분된다. I. 아라비아 데제르
타(Arabia Deserta) 광활한 모래 더미로 이루어진 지역. 이곳에는 식물이 거의 없었고 이곳의
서쪽으로는 길르앗이, 동쪽으로는 유프라테스 강이 있었으며 이 사막은 남쪽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II. 아라비아 페트라이아(Arabia Petraea) 가나안 땅 남부 지역. 이 말은 ‘돌 많은 아라비아’라는
뜻이며 이 지역의 수도는 페트라이다. 바로 이 지역에 가데스바네아, 그랄, 브엘세바, 바란, 아랏,
드단, 시내 산 반도와 미디안 땅이 들어 있다. 이 지역은 다른 아라비아에 비해 규모가 작지만 역사적으
로는 매우 중요하다. 족장 욥 역시 이 지역과 관련이 있고 모세는 호렙에서 불타는 가시덤불을 보았으며
엘리야는 조용한 가운데 들리는 작은 소리를 들었다. 바로 이 광대하고 무서운 광야에서 히브리 사람들
은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40년 동안 유랑 생활을 하였다.
III. 아라비아 펠릭스(Arabia Felix) 고대 아라비아 남서부와 남부의 비교적 비옥한 지역. 이곳은
오늘날의 예멘에 해당하는 곳으로 불모지인 아라비아 중부와 북부를 지칭하는 아라비아 데제르타
지역 또 로마 제국에 종속되어 있던 아라비아 북서부를 가리키는 아라비아 페트라이아 지역과 대조를
이루었다.
그의 목적: 그가 만난 예수님과 기독교는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 조용히 기도와 묵상 필요
온 세상으로 이것을 가져가야 할 책무, 쉬운 일이 아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
다소의 사울의 아라비아 광야 3년: 영혼의 어두운 밤
영혼의 어두운 밤(dark night of the soul), 청교도들이 즐겨 사용한 말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는 시간: 대개 고난과 고독의 시간, 그러나 끝에는 행복의 시간
성경의 인물들: 많은 경우 공적 사역을 하기 전에 심한 어려움, 눈물의 시간
모세의 경우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 생활, 아라비아
다윗의 고통의 시간: 베개에 눈물을 흘리던 시간(시56:1, 8)
엘리야 역시 광야 생활, 시내 산, 아라비아
예레미야: 백성을 향해 일생 동안 눈물을 흘림
마르티 루터의 고뇌의 시간
침례자 요한 역시 유대 광야, 영이 강하게 되었다.
우리 주님도 침례 이후 공생애 시작 전에 성령님의 인도로 광야에 들어가셨다(마4:1).
그래서 이 시간을 광야의 시간이라고 한다. 고독하게 하나님만 의지하는 시간 - 18 -
사역의 중간에도 찾아온다: 많은 성도들에게 찾아오는 영적인 우울증
심지어 스펄전 같은 위대한 목사에게도, 파이퍼에게도
어쩌면 욥에게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
사도 바울: 고후4:7-13
아라비아 결론
아마도 바울은 아라비아 광야 3년 기간에 하나님과의 대화, 자신의 일 계획, 무장
사실 다른 제자들은 3년 이상 주님의 지도를 받음
바울도 이런 기간 동안 주님의 공부했을 것이다.
그는 분명히 사도를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스스로 학문을 쌓고 기도, 묵상, 하나님과의 교제
그는 지금까지 오직 바리새파 교육, 이제는 새로운 길, 공부하고 준비하는 기간
이제 온 세상에서 배척을 받는 그리스도 선포, 이방인들의 사도
반즈의 말: 회심 이후 공적인 사역으로 가기 전의 이 준비 기간이 가장 중요하다.
1. 우리의 부르심이 하나님의 뜻인가?
2. 우리의 일생을 가장 값지게 쓸 수 있는 것인가? 인생은 짧다.
3. 시험과 유혹이 가장 적은 길인가?
4. 우리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바울은 유대교 랍비가 되기 위해 오랜 기간 준비,
그 이후에 그는 3년 동안 아라비아 생활, 지금 같으면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원 훈련,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을 많이 읽고 이해하여야 한다. 조직 신학, 실제로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을 그리 길지 않다.
그럼에도 잘 준비해야 한다.
5. 질이 좋은 사역을 해서 영원히 족적을 남겨야 한다.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사역을 하는 도중에
깊은 영성은 어두운 밤을 지나면서 형성된다, 김순성 교수
- 목회자들이여, 내면의 중심으로 들어가라 -
열심 있는 기도생활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영적 메마름과 공허함을 느낀 적이 없는가?
이전에 경험했던 기도의 즐거움이 사라지면서 마음의 혼란을 경험한 적이 없는가?
그로 인해 걱정과 조바심으로 번민한 적이 없는가?
목회자와 평신도를 막론하고 신자의 삶의 최상의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자신이 하나 되는 것이다.
우리의 전인격이 그리스도로 충만해지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의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그것을
간절히 사모하며 추구했다(빌3:7-14). 그의 모든 사역도 삶도 궁극적으로는 이 한 가지 목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보게 된다.
어떻게 하면 나의 전존재(마음, 뜻, 소원, 비전)가 주님(마음, 뜻, 소원, 비전)과 하나가 될 것인가?
깊은 영성이란 다름 아닌 주님과의 이 신비한 연합을 보다 깊게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전인격, 전 사역, 전 생애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목회자란 누구보다도 주님과 하나 됨을 깊이 경험한 자라야 하며, 목회란 성도들에게 이 깊은 영성에
이르도록 가르치고 훈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신비한 연합이 실제로 어떻게 가능한가? 본질적으로 어두움인 인간이 빛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며, 온갖 이기심, 탐욕, 거짓, 불의와 부정으로 더럽혀진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과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가? 하나님께 속한 영적인 것을 감지할 수 있는 영적 감각을 통해서이다. 그 감각을
통해 신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머리로 인식하고 영에 속한 것들을 가슴으로 느끼며 맛보고 즐거워한다.
처음 신앙에 입문하게 되면 누구나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맛보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 19 -
거듭난 심령에 하늘의 평안과 기쁨을 지각할 수 있는 영적 감각을 열어주셨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감각이 완전하지 않고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영에 속한 것들에 대한 인간의 감각적 인식능력에 한계가
있고 부패성과 이기심의 때가 묻어 있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어떻게 느낄 수 있는가? 엄마 품에서 나오는 달콤한 젖을 통해서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세계도 구도의 초기에는 하나님께서 일마다 때마다 달고 맛난 영의 젖으로 당신의 사랑을
느끼게 하고 영적생활에 재미와 즐거움을 누리게 한다. 엄밀히 말해서 이 단계에서는 하나님 자신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맛 때문에 영적인 일을 좋아하게 된다. 그 달콤한 맛 때문에 기도에 열심을
내고 교회봉사와 사역에 충성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열심과 충성 때문에 심령
속에 자만과 교만의 영이 싹트기 시작하고 그 충성과 열심이 도리어 교회 안에 문제를 가져온다.
목회 사역도 예외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역자들이 하나님 자신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역의 열매를
더 사랑하고 그것에 집착하고 있는가? 그 때문에 위로받고 그 때문에 기도하고 열심내면서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착각하고 있는가? 스스로 속지 말아야 한다. 이기심, 탐욕, 교만으로 얼룩진
불완전한 영적 감각에 기초한 하나님 사랑, 열심과 충성은 하나님 앞에는 어두움에 지나지 않는다.
어둠을 둘러쓴 영혼이 먼저 이 어둠을 떨쳐버리지 않으면 티 없이 맑은 하나님의 빛을 받아들일 수
없다. 빛과 어두움은 서로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때 묻고 불순물이 끼여 있는 영적감각을 정화시키기 위해 하나님은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과하게
하신다. 이 어두움은 죄로부터 오는 어두움이 아니다. 우리 영혼을 깨끗케 하고 강하게 하며 더 밝은
빛으로 인도하기 위해 하나님이 친히 주도하시는 ‘찬란한 어두움’이다. 어두운 밤은 우리 영혼이 메마름
과 황량함을 경험하는 때이다. 지금까지 나를 기쁘게 해주고 즐겁게 해주던 모든 감각적인 즐거움은
사라진다. 달콤한 젖에만 의지하여 엄마의 사랑을 느끼려는 갓난아이를 품에서 내려놓고 제 발로
걷게 하듯, 하나님은 그를 찾는데 있어 감각에 의존했던 자리에서 우리를 나오게 하신다. 어두운
밤은 내 뜻, 내 생각이 전혀 통하지 않는 실패의 밤이요,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고통의
밤이다. 이 밤에 하나님은 모든 위로, 심지어 이해까지도 박탈해 가신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나의
기도를 돕지 않는 것 같고 시간만 낭비할 뿐 영적으로 아무런 진전이 없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어두운 밤은 내 영혼의 무게중심이 나 자신에게서 하나님에게로 옮겨지는 은총의 밤이요, 내
영이 순수함과 정결에 이르는 축복의 밤이다. 이 메마른 밤에 하나님의 빛에 조명된 나의 벌거벗은
영적 실상을 보게 되며, 맑은 영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게 된다. 올바른 자아인식과 함께 참된
하나님 인식이 이 밤에 가능해지는 것이다. 입술로는 하나님 사랑을 노래했지만 실은 자기 입맛에
만족하며 그 맛에 집착해 왔던 거짓된 자아 그리고 하나님의 빛 앞에서 스스로의 무능과 비참을 비로소
보게 된다. 여기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의 덕이 시작되며 참된 이웃사랑이 시작된다. 인간의
개념, 사색, 추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영으로 하나님을 바로 깨닫게 된다.
5.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고 기다리라.
당신의 모든 생각을 한 곳으로 모으고 하나님의 얼굴을 고요히 바라보라. 복음송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보라>를 불러보라. 그리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 때가 이르면 메마른 기도의 나무에 새싹이
돋고 잎이 피고 열매를 수확하는 기적을 보게 될 것이다.
바울의 아라비아 광야 3년의 결과: 빌립보서의 경험(빌3:4-17)
https://youtu.be/kcln57lw5Rs?list=PL4P6SBDceLgGDqFLKf5n8FVQib6pveoO3
바울의 멘토 바나바와 바울의 안디옥 사역_사도 바울 맥잡기 07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설교, 강해, (2019. 5.19)
07 사도 바울 맥잡기: 바울의 멘토 바나바와 바울의 안디옥 사역
성경말씀: 행9:23-30
지난 시간: 바울의 아라비아 광야 체험, 3년, 영혼의 어두운 밤, 하나님을 아는 시간, 삶의 어느 시점
다마스쿠스 회심, 곧바로 예수님 선포(10:19-22). 사람들 당황함, 결국 아라비아 사막
그 뒤에 그는 다시 다마스쿠스로 갔다. 바구니를 타고 가는 수모(9:23-25)
고후11장, 바울의 고통, 역경(23-28), 그 뒤 다시 바구니 이야기(32-33).
아레다 왕, BC9년부터 AD40년까지 나바티아 왕국의 왕, 그의 딸 헤롯 안디바의 아내
그런데 안디바는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 침례자 요한의 반대, 참수형
이혼 소식을 접하고 안디바의 영토 공격 군대를 물리침, 그리고는 시리아까지 침범하여 다마스쿠스
장악 통치, 이때에 다소의 사울 회심, 그리고 도망해서 예루살렘으로 감
바울의 문제(26절), 예루살렘 그리스도인들: 사울의 회심 소식 들음, 그러나 그는 편파적인 바리새인
의심하고 있음, 당연하다: 하나님을 그렇게 심하게 대적하던 사람이 바뀔 수 있을까?
회심 후 다마스쿠스의 사울의 확실한 증거(9:22),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갔으면 성도들 흥분
어쩌면 광야에서의 3년으로 인해 더욱더 의심을 받게 됨. 그는 어디에 있었는가? 무엇을 했는가?
왜 예수님을 전파하다가 곧바로 사라졌는가? 3년 동안 안 보임, 믿음을 버렸는가?
바나바의 등장
그런데 이때에 중요 인물이 등장한다(27). 그를 보증함, 그래서 제자들이 그를 받아들인다.
예루살렘에서의 위험(29-30)
그리스말하는 사람들: 유대인 개종자 혹은 유대인으로 주로 그리스말하는 사람들
결국 그를 죽이려는 시도, 그래서 형제들이 의논해서 그를 다소로 보낸다.
다소에서 그가 무엇을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어린시절 교육받던 곳, 친구들이 있는 곳, 가족들이 있는 곳, 이교도 철학자들이 있는 곳
아마도 그는 자기 고향에서 역시 예수님을 전하는 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절 역시 그에게는 무명의 시기,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자기 고향에서는 인정을 못 받음
그의 천부적 재능은 빛을 내지 못했다. 많은 교육과 학식, 회시의 은혜, 아라비아 체험 등
사실 그는 다소가 아니라 이방인들의 전 세상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이렇게 기다리는 동안 드디어 은혜의 사역을 시작할 때가 왔다. 안디옥에서의 사역이 시작됨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때가 있다. 하나님이 높이실 때가 있다.
우리의 안디옥
시리아의 수도, 동쪽 세상에서는 가장 중요한 도시, 온 세상에서 로마 다음으로 중요한 도시
(로마, 알렉산드리아, 다소)
복음이 점점 확산되기 시작함(9:31),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이러는 가운데 드디어 가이사랴에서 이방인 고넬료가 처음으로 구원을 받음(10-11), 약 10년 기간
그러면서 드디어 복음이 안디옥으로 감(11:19-21)
안디옥에서 많은 사람들이 믿음,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볼 때 가장 중요한 곳,
그래서 그들은 바나바를 거기로 보냄(11:22)
수확할 밭이 너무 넓었으므로 도움 필요, 그래서 사울을 찾으러 다소로 감(11:25)
바나바의 판단에 이런 일을 감당하기에는 다소의 사울이 아니면 안 되었다.
그래서 직접 본인이 다소로 감, 열심히 사역함 그리스도인(11:26)
처음 10년 동안의 일 요약
1. 초기 기독교의 파급: 빠르지 않았다. 예루살렘을 떠나 안디옥까지 가는데 약 10년
다른 지역으로 가면서도 초점은 유대인 회당, 이방인이 아님, 가나안 땅, 언약 백성 중심
행11장: 베드로의 고넬료 회심 유대인들 분개, 베드로의 설명 이후에 깨달음(17-18)
2. 안디옥 사역을 보자. 거기에서 복음이 권능 있게 선포되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것은 마치 오순절 - 21 -
날 예루살렘 부흥과 비슷하였다. 사실 핍박 때문에 흩어진 제자들이 멀리 갔지만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말씀을 선포하였다(11:19). 키프로스와 구레네 사람들이 그리스말하는 자들에게 선포(20). 많은
변화
3. 교회 입장에서 보면 큰 변화. 팔레스타인 밖으로 전해야 한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사람들 말고 다른 사람들이 해야 한다.
태생이 히브리 사람들이 아닌 자들에게 전해야 한다.
그 결과 복음이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제자들이 드디어 느끼기 시작함: 유대인, 가나안을 벗어나야 한다. 모든 대륙의 모든 사람에게 가야
한다. 바로 이때에 기독교의 본질이 정립됨: 유대교 유대인 밖으로, 온 세상으로(행1:8)
그리스도인 등장
그 결과 사람들이 안디옥에서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함(11:26)
즉 기독교의 본질이 정립된 이후 그들의 명칭이 주어짐
그리스도인: 무엇하는 사람들인가, 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사람들
유대인들이 그렇게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나사렛 종파 사람들이라고 불렀다(행24;5).
제자들의 다수 갈릴리, 거기의 나사렛,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느냐?(요1;46)
무시하는 말
또한 유대인들은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리스도는 메시아
이런 좋은 호칭을 자기들이 경멸하는 대상에게 붙일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그렇게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사도행전을 보면 그들은 자기들을 형제, 제자, 믿는 자, 성도라고 불렀다.
그리스도인(행11:26; 26:28; 벧전4:16), 후자 2개를 보면 외부 사람들이 그렇게 부름
아마도 이방인들이 그들을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이들이 보기에 그들은 다른 유대인들하고 달랐다. 초기 기독교 시대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로
여겨짐, 그러나 자세히 보니 완전히 다름, 그래서 새 이름 필요
그리스도인: 로마 사람들이 그렇게 부름, 이들을 보니 대화 중에 그리스도가 많이 언급됨
편지에도 많이 나옴, 그들의 우두머리
이들의 주장: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고 묻히고 부활했다. 십자가는 치욕의 표현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모욕의 표현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 사용
즉 조롱과 경멸의 호칭이다. 그 당시 안디옥 사람들, 사람들을 핀잔주기 위해 이상한 이름 발명하곤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음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은 얼마나 적합한가? 모든 시대에 모든 곳에서 구원자 그리스도를 따른 사람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사람들, 그 이후 온 세상 모든 곳에서 가장 널리 통용되는 호칭
유대교와 관련된 호칭이 아니다. 지역적이지 않다. 어떤 민족 중심이 아니다. 지파/종족/언어/피부색/법/
습관, 남녀노소, 빈부귀천, 인종, 대륙, 언어 초월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
하나님의 섭리: 바울과 안디옥
1. 안디옥은 민족들 가운데 으뜸가는 도시
바빌론, 니느웨 명성 잃음, 콘스탄티노플 등장하지 않음, 파리, 런던 촌
그 당시 세상: 로마, 예루살렘,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에베소, 빌립보, 고린도, 아테네,
최고 도시 로마(예루살렘에서 멈), 누군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가장 큰 도시에서 파급하려 할 것이다.
안디옥은 위치(예루살렘에서), 부, 상업, 접근성, 다른 세상과의 교류, 인구, 모든 면에서 적합하였다.
그 도시의 다른 이름: ‘하나님의 섭리’
로마 이전에 그리스, 알렉산더 대제, 사후 왕국 분열, 북쪽 시리아(셀류시드), 남쪽 이집트(프톨레미)
북쪽 안디옥, 남쪽 알렉산드리아, 헬레니즘 문화, 유대인들이 많음, 로마 총독 거주
2. 그런데 기독교는 안디옥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온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22 -
이 일을 위해서는 유대교, 그리스 문화를 잘 아는 사람 필요, 다소의 사울이 가장 적합하였다.
그의 재능, 열정, 교육, 키프로스, 몰타, 로마, 아테네, 알렉산드리아
3. 바나바의 안디옥 초청이 없었다면 바울의 모든 재능 교육은 빛을 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한다.
바나바는 누구인가?
그는 키프로스 출신, 그리스 말하는 유대인 부모, 이름은 요세, 주님의 재림 고대, 물질 공동 소유(행
4:36-37), 위로의 아들, 기존 성경 권위자
바울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음, 열정적인 사람
특징: 행11;23, 24,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즐거워한다. 선한 사람, 성령님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결론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사람, 도시
그런데 시간이 걸린다.
우리도 올바른 신약 교회, 올바른 성경
시간이 걸린다. 바울과 같은 사람 필요. 그러나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되면 좋겠다.
https://youtu.be/h1Oe5K8fyWg?list=PL4P6SBDceLgGDqFLKf5n8FVQib6pveoO3
바울과 바나바 선교여행 파송의 역사적 의미_사도 바울 맥잡기 08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설교, 강해, (2019. 6.28)
08 사도 바울 맥잡기: 바울과 바나바 선교 여행 파송의 역사적 의미
성경말씀: 행13:1-3
행1:8, 10년 이상의 시간, 드디어 복음이 팔레스타인 밖으로, 중심지 안디옥(행11:22), 바나바, 다소의
사울을 데려옴(행11;24),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 호칭(11:26), 경멸과 조소의 대상, 말씀이 흥왕함
이러는 동안 유대와 예루살렘에 기근, 구호금, 바울과 바나바 파송(행11:27-30)
12장은 헤롯 왕(1)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다가 죽는 것을 보여 줌
여기의 헤롯은 아그립바 1세, 헤롯 대왕의 손자, 헤롯 대왕의 아들들: 아켈라오, 안디바, 빌립
BC 7년경에 그가 죽인 아들 아리스토뷸러스, 이 아그립바는 아리스토뷸러스의 아들, 행26장의 아그립바
(2세)의 아버지, 그의 영토는 지금의 이스라엘 전체와 비슷함, AD41-44 유대 통치
요한의 형제 야고보 순교(12:1-3)
베드로도 죽이려 하였으나 그는 천사에 의해 구출됨(5-19)
AD 44년경 가이사랴에서 연설(12;19, 스포츠 게임 장소), 하나님 대신 영광 차지하다가 죽음
(22-23), 결론: 즉 유대인 사도들 사역은 점점 힘을 잃고 이방인 사도들 사역은 힘을 얻음
12:24-25, 바울과 바나바 안디옥으로 돌아옴
행1:8을 이루기 위하여 드디어 이방인 선교 사역이 시작됨, 터닝 포인트
바울은 원래 이방인 사역을 위해 부르심을 받음(9:15; 22:17-21)
이방인들의 사도라는 데 대한 자부심(롬11:13; 엡3:8)
이제 예수님 승천 후 약 14년이 지났고 드디어 유대인 사도들도 예수님의 대위임의 말씀을 점차 이해하기
시작함(막16:15).
즉 민족, 언어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든 복음을 보내야 한다. 선교사 필요(롬10:14-15)
바울과 바나바의 이방인 선교 파송은 그들 각자의 삶에 큰 전환점, 교회사에서도 대단히 중요함
기독교가 무언인지를 잘 보여 주는 일, 세계 문명을 바꾸는 일 시작
당시 세상, 우상과 무지(살전1:9-10)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 구상, 완전히 새로운 것, 신선한 것, 세계적인 종교가 되는 일 시작
유대인 이방인 구분 없고 남녀노소 구분 없는 때가 옴,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갈3:27-28; 골
3:11)
장애물
1. 민족: 서로 다른 사람들, 경계에 의해 전혀 다른 언어, 문화, 관습, 교육, 관념
구약 시대 유대인들: 유대인 아니면 이방인
그리스 사람들: 그리스 사람들, 바바리안들(고전1:21-23)
2. 사회의 신분 계급 제도: 카스트 제도, 빈부, 유식 무식, 자유인과 종, 귀족과 평민
3. 인종, 피부 특 백인이냐, 유색 인종이냐? 고대로부터 문제
4. 종교, 모든 나라는 섬기는 신, 그 신이 강하면 나라가 강하다. 전쟁에서 이긴다.
어떻게 극복하는가?
1. 특권층이 자기 것을 버리고 자기를 낮춤으로써, 유대인들 이방인 개돼지 취급
그러나 베드로의 환상: 예수님은 이방인 고넬료에게 가라고 하심, 차별이 없다.
2. 수용하는 사람들 편에서
새로운 종교는 열등한 것, 그것을 어떻게 우리가 수용하겠느냐?(행17:18-21, 아테네)
그러니 로마 에베소, 안디옥 등에서는 얼마나 어려웠을까?
3. 유대인들에 대한 편견
유대인이 없는 데가 없었다. 나쁜 평가: 유대교, 편협하다는 인식, 증오의 대상
과학, 철학, 문하가, 예술이 없는 자들
이런 상태에서 유대에서 나온 사람들이 로마 등에 가서 유대인들의 신을 전한다고 하면 어떨까?
그 신이 창조자 하나님, 인간의 타락, 유대인인 예수님만이 구원자, 구원은 오직 믿음을 통해 은혜로- 24 -
돈 많은 부자 주인 종에게서 복음을 들어야 함, 왕은 신하에게서
유식한 자 무식한 자에게서, 부자는 가난한 자에게서, 제사장은 일반 신도에게서
공부 많이 한 미국 사람, 영국 사람 등이 피지 사람, 에스키모 인디안 원주민, 형제자매
그것도 십자가 복음, 십자가는 로마 제국의 가장 무서운 형틀
그리고 구원받으면 다 형제/자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대다수 선교사들,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교육, 병원, 법, 상식을 줌 훨씬 더 용이하다
복음의 진리들은 이것들을 다 무너뜨렸다.
1. 인류는 한 피에서 나왔다. 하나님 앞에서 한 부모를 가진 한 종족이다(행17:26).
기독교는 어떤 종교도 주지 않은 인간의 권리, 인간의 자유를 보여 주고 줌, 영혼의 자유
이것들이 없어서 과거의 여러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폭정이 이루어짐
그러나 기독교: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고귀한 존재
기독교는 인류의 창조자 하나님, 그분 앞에서 모두가 평등함을 가르침
2. 성경은 아담과 이브로부터 모든 사람이 나옴을 가르침
홍수 이후 노아의 세 아들로부터 모든 민족 나옴(창10:1, 31, 행17:26)
한 부모의 타락으로 인해 모든 사람은 전적으로 타락하여(롬3:23) 누구도 자기 힘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 그 결과 모두가 다 죽는다. 예외가 없다. 다른 종교는 죽는 이유를 못 줌
따라서 살 수 있는 방법도 제시함
여기에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인종의 차별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리고 그분의 타이틀 사람의 아들(영국인, 에티오피아인 한국인 아니다)
3. 한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의 구원자, 모든 사람을 위해 죽음을 맛보심(요일2:1-2)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충분하다. 남녀노소, 유대인 이방인 구분 없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방법으로 속죄를 얻는다.
4. 복음이 주는 소망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다. 사람의 불멸 모두에게 적용된다. 천국 지옥 마찬가지
사람의 어떤 특권이나 지위로 인해 천국과 지옥의 등급이 변하지 않는다.
5. 동일한 구원 방법
남녀노소 빈부귀천 동일함, 일단 동일한 바닥에서 시작한다. 죄인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된다. 선물로 주어진다. 무식 유식 상관없다(엡2:8-10).
6. 하나님은 인간에게 공평하게 모든 자산을 주셨다: 태양, 바다, 바람, 물, 공기
기독교 선교의 의미
이런 진리들의 특징은 세상의 다른 종교들이 주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이처럼 기독교 선교가들은 빈부귀천, 남녀노소 인종 불문 모든 민족에게 동일한 복음 선포
이것은 인류 역사에서 처음 나타난 일이다.
인류의 창조 이후 4000년이 지난 시점에서 신약 시대가 열리면서 드디어 이런 진리가 선포됨
그 결과 폭군들의 폭정이 무너지고 드디어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세우는 시스템 확립
그런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AD90년경부터 이미 제사장 체계 복원(계2:6의 니골라당)
AD 313년 밀라노 칙령, 기독교 공인, 이교도들의 문화 기독교 혼합
이후 로마 천주교 형성됨, 약 1000년의 중세 암흑시대
1517년 루터의 종교 개혁 그 이후 근대, 소유권, 자유, 인권
미국의 독립 운동, 독립 전쟁, 독립 헌법, 근대 시민 국가의 완성
그러나 여전히 천주교, 이슬람, 불교, 공산주의 등에 매여 한다.
진정한 의미의 그리스도인 아마 1억 정도, 지금 우리는 미디어 선교 매진, 마지막을 향해서
https://youtu.be/qMaFQu2RQmI?list=PL4P6SBDceLgGDqFLKf5n8FVQib6pveoO3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선교 여행 핵심_사도 바울 맥잡기 09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설교 강해, (2019. 6.30)
09 사도 바울 맥잡기: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선교 여행 핵심 포인트
성경말씀: 행13:1-12
행1:8, 10년 이상의 시간, 드디어 복음이 팔레스타인 밖으로, 중심지 시리아의 안디옥, 성령님께서
안디옥 교회에 명령하심: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구분해라(13:2). 드디어 교회가 안수하고 내보냄(파
송), 지난 시간 그 당시 선교 여행의 중요성, 어려움, 세상을 바꾸는 일이 시작됨
동일한 하나님, 동일한 구원자, 동일한 복움, 동일한 구원, 남녀노소 빈부격차 인종 상관 없음
안디옥 교회에 여러 리더들 중 바나바와 바울 선택
예수님의 복음 선포: 한적한 갈릴리 호수, 시골 세팅
그러나 사도행전의 복음 선포는 도시 세팅, 즉 15년 정도 지난 후 농촌에서 도시로 바뀜
사도행전에는 약 40개의 도시들, 안디옥에서 그 당시 전 세상으로 복음을 가져감
바울의 말: 롬15:19
13-14장에는 1차 선교 여행, 6-7개의 도시, 잊지 말라: 기록자는 누가이다. < >
1. 안디옥에서의 중요 결정(1-5)
사도행전은 사실 성령 행전이다. 성령님의 여러 사역: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 선교 사역
5명의 주요 인물; 바나바, 니게르 시므온 아프리카 출신, 구레네의 루기오, 마나엔: 사분 영주 헤롯
안디바의 친구, 바울, 이들은 대언자와 교사로 섬김(1), 성경 미완성, 아직 대언이 있었다.
대언은 주로 설교, 교사는 교리를 가르침
바울은 이미 이방인들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음(행9:15; 22:17-21), 바나바는 그의 동역자
바나바의 생질 마가를 데리고 감(12:12; 13;5), 요한 마가(John Mark), 아마도 베드로의 인도로
구원, 내 아들 마가(벧전5:13), 1차 선교 여행 지도 설명
2. 바보(13:6-12)
키프로스, 살라미, 그리고 바보에 도착함, 키프로스는 바나바의 고향, 바보는 키프로스의 수도, 서기오
바울 거주(분별 slTsms 사람), 거짓 대언자 바예수(6)
엘루마의 뜻은 마법사(6), 예수님의 비유: 알곡과 가라지(마13), 꼭 가라지가 있다.
바울의 파악: 엘루마는 마귀의 자식(13:10; 요8:44), 눈을 어둡게 함
서기오 바울에게 기적을 보여 주며 참 복음 선포(히2:4), 구원받음(12)
13:9의 놀라운 변화, 사울이 처음 바울로 표기됨, 아마 그의 이름은 사울 바울로스(유대 로마식 이름)
3. 버가(13:13)
밤빌리아의 버가, 마가는 여기서 돌아감, 무슨 이유인지 모른다. 고향 생각, 바울의 주도권, 유대인
마가는 이방인들의 구원 불편함, 새로운 지역에 대한 위험, 불안감, 여하튼 바울은 2차 여행을 가면서
마가를 데려가지 않음(행15:36), 바나바와 큰 다툼
그러나 후에 마가는 회개하고 바울을 돕는 사람이 됨(딤후4:11)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회개하고 돌아서면 된다.
4. 비시디아 안디옥(행13:14-52)
약 160킬로미터, 1000미터 고지, 그의 선교 여행지는 전략적 요충지,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곳
대개 유대인 회당에서 시작함(5, 14 등)
여기에는 그의 사도행전에서의 처음 설교가 기록됨
16-25절: 이스라엘 역사 회고(이집트 탈출, 가나안 생활, 사사 시대, 왕정 시대),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 메시아(23), 침례자 요한(24), 그는 예수님의 전령(25)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 뒤에 하나님이 계신다.
26-37: 복음 선포,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유대인 지도자들의 메시아 거부, 십자가 처형, 구약을 읽었는데 이해하지 못함(27)
십자가 처형은 이미 예언됨, 부활과 함께(시편 2편, 35절)
핵심(30): 하나님이 그분을 일으키셨다.- 26 -
복음 선포: 구원의 말씀(26), 기쁜 소식(32)
회당에서 선포하므로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구약 성경 인용 시2:7 그리스도의 부활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사55:3), 원래는 삼하7:12-17, 다윗 언약, 영존하는 언약, 메시아
언약, 썩음을 보지 않는다(시16:10)
적용(38-52), 복된 소식을 모두에게 선포(32), 개인적인 적용이 필요하다. 그물을 던진 다음 거두어서
고기를 건져야 한다.
유대인들: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다고 인정받지 못하는 일들이 많았다.
칭의: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 하나님께서 믿음을 가진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법적
행위, 이것은 그가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위치와 자격을 말한다.
유대인들의 개념(대하6:22-23)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다르다(롬4:1-8).
율법의 역할: 죄를 제거하지 못하고 보여 주며 정죄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 우리의 죄들 용서, 우리 계좌로 그리스도의 의 부여
이런 복음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말 그대로 기쁜 소식이었다.
바울의 경고(41, 합1:5)
하박국 당시의 믿지 못할 일: 하나님이 갈대아 사람들을 일으켜서 자신의 백성을 징계하는 도구로 쓰신다.
아무도 못 믿음, 그런데 이번에는 만대, 유대인들을 사용해서 이방인 구원
그 결과: 1. 이방인들이 다음 안식일에도 또 전해 달라(42), 유대인과 개종자들 가운데 신앙이 생김(43)
그런데 이방인들이 나가서 큰일을 함, 수많은 사람들(44), 유대인들의 시기 질투(45)
바울의 마지막 말(46), 사49:6 인용, 그래서 그는 이방인들에게로 나감
48절은 대단히 중요한 말씀, 전도와 선교를 하나님 편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미 정해진 자들이 있다. 하나님의 예지 예정을 통해(벧전1:1-2)
그런데 49절은 전도와 선교를 사람 편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롬10:14-15
“나는 예정되었나요?” 물을 필요가 없다. “대개 이미 정해진 것으로 착각”, 말씀을 듣고 구원받으면 예정된
것이다. 화가 난 유대인들의 선동, 핍박(50), 기쁨에 차서 이고니움으로 감(51-52)
5. 이고니움(행14:1-7)
역시 회당(1)
유대인들의 이방인 선동(2), 기적과 이적으로 말씀에 증거를 주심(3; 히2:4))
찬성파 반대파로 나뉨(4-5), 루스드라와 더베로 피신함
6. 루스드라(행14:8-20)
루스드라 갈라디아의 도시, 이고니움에서 약 30킬로미터 남서쪽
바울은 세 번 루스드라 방문, 2차 여행에서 디모데(행16:1-5), 3차 여행(행18:23)
먼저 앉은뱅이를 고침(8-10)
사람들의 반응(11-13), 신들이 내려왔다(11). 그리스 문화, 하나님의 아들들(창6), 주피터(바나바,
제우스), 신들의 우두머리, 머큐리(바울, 헤르메스), 신들의 전령, 희생물을 드리려 함(13), 이것이
그 당시의 무지한 백성들 상황
사도들의 반응(15), 목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과거에는 하나님이 버림받은 상태로 내버려둠(롬1:28), 그러면서도 은혜를 베풂
바울에게 돌을 던져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함, 조금 전에는 머큐리, 이제는 범죄자, 대중은 늘 선동에
약하다. 루스드라의 새 성도들, 도망가지 않고 그를 지킴, 그가 일어남, 아마도 디모데는 이것을
보고 회심(딤후3:10)
7. 더베 등(행14:20-26)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움, 비시디아 안디옥
가면서 한 일(22), 7년 환난 통과가 아니다.(*), 밤빌리아의 버가, 앗달리아, 안디옥
https://youtu.be/xuPU_gXAS0w?list=PL4P6SBDceLgGDqFLKf5n8FVQib6pveoO3
바울과 바나바와 사도들의 역사적인 예루살렘 회의_사도바울 맥잡기 10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설교, 강해, (2019. 7. 5)
10 사도 바울 맥잡기: 바울의 역사적 예루살렘 회의: 유대교 완전 탈출 독립 선언
성경말씀: 행14:23-15:21
지난 주: 바울과 바나바의 역사적인 1차 선교 여행, 온 세상을 바꿈
안디옥, 실루기아, 키프로스의 살라미, 바보, (앗달리아), 버가, 안디옥, 이고니움, 루스드라, 더베
밤빌리아와 갈라디아 지방의 여러 교회들, 현상: 유대인들의 반대, 이방인들의 환대
바울의 고난: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 고침, 안디옥과 이고니움에서 온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거의
죽게 됨, 선포 내용: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 되심, 오직 이분을 통한 칭의 선포(은혜로 믿음으로)
14:26-28, 안디옥 교회에 믿음의 문이 열린 것을 보고하고(14:27) 오랫동안 안디옥에 머묾
그런데 안디옥 교회에 문제가 생김, 유대주의자들의 침입, 복음의 방해꾼들: 꽉 막힌 사람들
이것은 AD 50년경, 이것이 오히려 유대교로부터 크리스천이 독립하는 기회가 되고 맒
안디옥 교회의 분쟁(1-5)
유대에서 온 자들의 주장(1): 이방인도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은 예루살렘 교회 소속, 그러나 거기서 공식 파견된 것은 아니다(15:24).
바리새인들과 연관(15:4), 유대주의자들은 성도들의 자유를 빼앗으려 하는 자들(갈2:4)
예루살렘 교회: 여전히 기존 틀을 벗지 못함, 은혜와 율법의 혼합
원래 유대인들은 율법 존중, 아직 로마서, 갈라디아서, 히브리서 등이 기록되지 않은 시기
예루살렘에는 제사장들의 큰 무리도 있음(행6:7), 구약 율법 실천하는 자들(행21:20-26)
이 시기는 변천기, 시간이 걸린다. 과거를 포기하는 것이 어렵다.
율법주의자들의 문제: 1. 은혜와 율법 혼합, 새 포도즙을 헌 부대에 부으려 한다.
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열어놓은 생명의 길을 가로막으려고 한다.
3. 예수님은 유대인 이방인 사이의 중간 분리벽을 치우셨는데 이것을 다시 쌓으려고 한다(엡
2:14-16). 4. 자기들도 지기 어려운 짐을 이방인들에게 지우려 한다(행15:10).
이들의 주장: 이방인은 먼저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 그 뒤에 구원이 있다. 즉 모세를 섬기고 그리스도를
섬겨야 한다.
1. 다른 복음(갈1:6-9)
지금도 더러 있다. “우리 교회에만 구원이 있다. 우리 그룹에만 있다. 우리 식으로만...”
구원은 교회나 그룹이나 목사에게 있지 않다. 그리스도에게만 있다.
2. 복음 선교 문제: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 여행 무의미,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였다. 안디옥 교인들은 당황하였다(15:24), 이 문제는 바울과 바나바
가 세운 교회들에도 악영향
3. 갈2:2,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예루살렘 리더들에게 올라감, 안디옥 교회 동의(15:2), 예루살렘
교회가 모교회이지만 모든 교회는 자치적으로 운영된다.
이방인 옹호 발언(6-18)
바울과 바나바와 몇 사람이 올라감(2)
약 4차례의 회의: 1. 공적 환영(4), 2. 바울과 주요 리더들의 사적 만남(갈2:2), 3.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을 듣는 공적 모임(15:5-6), 4. 공개 토론(6)
공개 토론에는 4명이 나서서 하나님이 여신 열린 문을 사람이 막지 말 것을 말함
1. 사도 베드로(6-11):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 이방인들에게 하신 4가지 일 알림
1.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자로 세우심(15:7), 원래 베드로는 유대인들의
사역자(행2 등), 그 뒤 사마리아 사람들(행8:14-17), 그 뒤 이방인 고넬료(10), 유대인들의
비난, 베드로의 해명(11), 이방인 고넬료는 율법 준수가 아니라 복음으로 믿음으로 구원받음(7)
2. 하나님께서 거듭난 이방인들에게도 성령님을 주심(15:8),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살피심, 이들이
구원받지 않았으면 성령님 수여 불가능
3. 하나님께서 이방인 유대인 구분을 없애심(9, 11), 예수님이 오셔서 이런 규정 철폐(롬3:9, 22; - 28 -
10:9-13), 그래서 유대인도 이방인처럼 주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11).
4. 이방인들에게서 멍에를 치워야 한다(10). 율법은 멍에이다. 속박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멍에를
치우셨다(갈5:1). 율법은 사람의 마음을 정화할 수 없다. 죄를 보여 줄 뿐이다. 하나님은 율법이
할 수 없는 것을 아들을 통해 하셨다(롬8:1-4).
2.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 여행 보고(단 한 절 12), 말씀에 신뢰를 주시려고 기적들을 행한 것 강조(히
2:2-4; 막16:20), 서기오 바울과 박수 엘루마, 루스드라의 앉은뱅이 고침, 돌에 맞아 거의 죽었다가
살아남 등
3. 교회의 수장 야고보의 결론(13-18): 예수님의 동생, 아마도 야고보서 저자, 부활 이후 신자가 됨
1. 베드로의 말에 동의함(14-15),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택한 백성이라고 함, 지금
하나님은 이방인 유대인으로 구성된 교회라는 한 백성을 불러내신다.
유대주의자들의 문제: 어떻게 이방인이 유대인과 한 백성이 될 수 있는가?
이들은 이스라엘의 과거 영광(모세)과 미래 영광(왕국)을 믿었다(사11-12, 35, 60). 그런데
이방인들이 어떻게 여기에 참여하는가?
지금 우리는 이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교회라는 신비의 기간이 있다.
초림과 재림 산봉우리 사이의 계곡(엡2-3장, 롬9-11장)
지금 시대는 유대인 이방인 할 것 없이 구원받으면 한 교회(갈3:28)
교회는 신비, 그러나 교회가 있다고 해서 이스라엘의 미래 영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2. 대언자들의 말도 여기에 동의한다(암9:11-12).
베드로, 바울, 바나바가 말한 것이 이 말씀의 성취가 아니다.
다만 아모스의 말씀은 그들의 증언과 일치한다.
판결(19-35)
성령님과 교회의 모든 리더들(28, 22)의 판결: 1. 구원에 대한 교리, 2. 성화에 대한 교리
1. 구원 교리: 이미 살펴본 대로 오직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엡2:8-10), 한 복음, 한 교회, 한 프로그램
구원 교리에는 수반되는 의무가 있다(약2:14-26). 구원의 삶(행위)이 나와야 한다.
2. 성화 교리: 이방인들은 세 가지 금지: 우상과 음행 그리고 피 먹는 것(20)
음식 문제는 어느 정도 중요함, 초기 그리스도인들 애찬, 여기서 피를 먹으면 유대인들 상처
지금은 어떤가? 한국은 선지 해장국 등, 나의 견해 문제없다(딤4:3), 양심의 자유 문제
3. 율법주의자들 수용, 이방인들 수용
4.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히 율법에서 벗어남 확증, 영원한 독립 선언
5. 그 결과: 1. 교회의 일치, 2. 구원받지 못한 유대인들에게 단일한 증거 제시, 3. 이방인 교회에
기쁨(30-31), 예루살렘에서 유다와 실라가 올라감, 2차 선교 여행에서 바울은 이 편지를 모든 교회들
에 전달함
무엇을 베우는가?
문제와 분열이 오히려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긍정적 변화를 이루려면 서로 문제를 공유하고 허심탄회하게 의논하는 일 필요
많은 경우 교회는 교리가 아니라 실행 문제로 분열된다.
사랑의 타협이 필요할 때가 있다.
항상 이 생각 “우리의 결정이 밖에 있는 잃어버린 자들에게 어떻게 단합된 메시지를 줄 것인가?
영혼의 자유 강조: 그러나 이것이 방종이 되면 안 된다.
성도들 간의 말다툼, 너무 유치한 경우도 있다. 다른 미성숙자에게 어떻게 비칠까? 생각해야 한다.
자기 자랑, 목사 숭배, 자기 교회 우수성 자랑
정동수 목사님 프로필
- 학 력 -
인하대학교 기계공학 학사(1982)
캐나다 뉴브런스윅 주립대 기계공학 석사(1984)
미국 매리랜드 주립대 기계공학 박사(1988)
미국 펜사콜라 신학대학원 석사(2001)
목사 안수(2001)
- 경 력 -
현,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1992-현재)현, 사랑침례교회 담임목사
http://www.cbck.org/html/ 사랑침례교회
http://cafe.daum.net/Jesus-bible 예수그리스도안에서(카페)
http://www.keepbible.com/ 킵바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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