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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꿈을 가져라
2025년 9월 7일 / 잠 29:18 /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현대어 /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이들은 얼마나 복되랴. NIV / Where there is no revelation, the people cast off restraint; but blessed is he who keeps the law.)
현대어 성경에서는 ‘꿈이 없는 백성’이라고 번역되어 있고, 흠정역'(KJV)에서는 이 구절이 '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비전이 없으면 백성들은 멸망한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희망이 없고, 비전이 없고, 목표가 없고, 푯대가 없고, 꿈이 없는 사람은 제멋대로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살다가 죽는다는 말이다. 국민이나 개인 그리고 가정도 꿈이 있어야 한다. 사람다운 사람은 언제나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지고 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노력한다. 믿음의 사람은 꿈이 있는 한 어떠한 어려움도 견디어 낼 수가 있다. 그러기에 꿈이 있는 사람은 강인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방자(放恣)히 행하다’라는 말은 ‘벌거숭이가 되다’, ‘멸망하다’, ‘사라지다’라는 뜻이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가지고 있는 건강, 물질, 시간, 자유까지 포함된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백성들은 타락하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묵시’는 일반적으로 선지자들을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 여기에서 묵시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해석할 선지자가 없고, 하나님의 귀한 지혜를 가르칠 레위인이나 제사장이 없어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져 버림을 가리키는 말이다.
큰 소망이 큰 사람을 만든다. 인생에서 소망을 가지고 성실히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다. 소망이란 몸속에 흐르는 피와 같아서 우리를 살아 숨 쉬게 한다. 인간관계에서도 누군가에게 소망을 갖는다는 것은 상대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단테의 신곡(La Divina Commedia)에서 지옥문에 쓰여 있는 글귀가 있다. ‘이 문으로 들어가는 모든 자들은 소망을 버리라’ 소망이 없다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늘 밝은 내일을 그리며 살아가야 한다. 희망적인 소망을 품은 사람이 큰 사람을 만든다. 큰 그릇에는 많은 물이 담기듯이 소망을 크게 품을수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어 값진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이 시대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공허함과 방황하고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품고 살아가는 의인들의 삶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과 도전이 된다. 그들은 누구이며, 어떤 꿈을 꾸며, 그 꿈을 어떻게 이뤄나갔을까?
1. 하나님의 꿈: 소명으로서의 꿈
인간은 누구나 꿈을 꾸며 살아간다. 그러나 세상의 꿈과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세상의 꿈이 주로 개인의 성공, 명예, 부와 같은 욕망에서 시작된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 그리고 타인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단순히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는 이주가 아니었다. 이는 아브라함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고,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인해 복을 받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었다(창 12:1-4).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안정된 삶을 버리고 미래를 알 수 없는 길을 떠나는 것은 ‘미친 짓’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늘 순종했고, 믿음으로 그 명령을 따라갔다.
히 11:8 /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고향을 떠나 약속해 준 먼 땅으로 가라고 지시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채 고향을 떠났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때때로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고, 우리의 능력을 넘어선다. 그것은 단순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이웃을 섬기며, 깨어진 세상을 회복시키기 위한 거룩한 소명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이 꿈을 받아 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이 참된 의미와 목적을 찾게 된다. 예수님도 공생애 초기에서부터 믿음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것을 당부하셨다(마 6:33-34).
2.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품고 살아가는 의인에게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을 배우자
1. 깊은 영적 통찰력과 분별력을 가지자(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있는 야곱과 꿈이 없는 에서).
그들은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 비록 실수는 있을지언정 세상이 추구하는 헛된 가치에 현혹되지 않고, 영원한 가치를 향해 나아간다. 마치 요셉이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품고 온갖 시련 속에서도 애굽의 총리가 되어 민족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된 것처럼 말이다.
2. 자기희생적인 사랑과 헌신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항상 나 또는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고, 공동체를 살리는 데 큰 목적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품은 의인들은 한 알의 밀처럼 자신의 안락함이나 이익을 내려놓고, 기꺼이 섬기고 희생하였다. 이에 우리도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에 마태복음 20:20-28(막 10:35-45)을 보면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 평범하게 가지고 있는 꿈과 예수님이 수정해 주신 꿈이 비교되어 쓰여 있다. 물론 이 말씀은 오늘을 사는 나와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다.
마 20:20-18 / [으뜸이 되고자 하거든 종이 되라] 그때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아들들과 함께 예수께 와서 절을 하며 청을 드렸다. 21) ‘무엇을 원하느냐?’ 예수께서 물으시자 그 부인이 대답하였다. ‘주님의 나라가 서거든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주십시오.’ 22) 그러자 예수께서 그 부인에게 ‘네가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하는 말이냐?’하고 말씀하신 뒤에 야고보와 요한을 향하여 다시 ‘너희는 내가 마시게 될 그 무서운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예, 저희는 마실 수 있습니다.’ 23)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너희도 정녕 내 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편과 내 왼편 자리에 누가 앉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은 내 권한이 아니다.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내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 24) 다른 열 제자들은 이 말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게 분개하였다. 25) 그리자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이방인이 왕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백성을 내리누른다. 26) 그러나 너희들은 그렇게 하지 말라.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만일 너희가 으뜸이 되기를 원하거든 반드시 종처럼 섬기는 사람이 되라. 28)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의 죄값을 치르기 위하여 목숨을 내주려고 온 것이다.’
3.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인내를 가져야 한다(롬 5:1-11).
롬 5:1-11 / [그리스도를 통한 화해]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자라는 인정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참다운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가장 높은 특권을 가진 자리에 오르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실 모든 계획이 실제로 이루어져 나가는 것을 확신과 기쁨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어떤 어려운 문제와 곤경에 처했을 때도 그것들이 가져다 줄 좋은 결과를 생각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시련은 오히려 우리에게 인내를 배우게 하고 4) 인내는 강인함을 길러 주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희망과 믿음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것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5) 그렇게 되면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모든 일이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극진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고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가슴속에 채워 주시는 까닭에 우리는 이 따뜻한 사랑을 어디서나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6) 우리가 피할 길 없는 궁지에 빠져 있던 바로 그때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당신에게는 아무 쓸모도 없는 우리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7) 설령 우리가 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죽는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입니다. 8) 그런데도 죄인인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대신 죽어 하나님의 그 깊은 사랑을 우리에게 보이셨습니다. 9) 그리스도께서 죄인인 우리를 위해서도 이렇게 피흘려 주셨으니 우리를 죄 없다고 선언하신 지금에 와서는 얼마나 더 많은 놀라운 일을 해주시겠습니까?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장차 올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10)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였을 때도 그 아들의 죽음으로 하나님께로 되돌아오게 하셨으니 우리가 하나님의 친구가 되고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는 지금에야 얼마나 더 큰 복이 우리를 위해 준비되어 있겠습니까! 11)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를 하나님의 친구로 만들어 주려고 우리 죄를 대신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덕분입니다.
▶ 사실 이 로마서 5장 서두의 말씀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하나니’라는 말씀으로 유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느끼는 곤고함을 환난이라 여기고 그것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인내하면 신앙과 삶이 연단이 되고, 그 연단의 과정을 거쳐 자기가 바라는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소망에 대하여 오해가 있으면 안 된다. 사람들은 자기 육신의 문제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기도하는 신앙의 틀 안에서 소망으로 본다. 육신의 곤고함을 이기고 어려운 일들을 해결 받기 위하여 예수님을 찾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소망을 보면 그 곤고함을 이길 힘과 삶을 육신의 삶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하나님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의 모든 소망이 하나님께 있다고 여긴다. 자기 육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기적을 통해 해결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되기를 기다리는 것을 소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신앙의 목적이 예수님이나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바라는 대로 자기 삶의 문제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 아니다. 그것을 위하여 하나님을 믿고, 그 해결의 답이 예수님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소망이라고 여기지만 안타깝게도 하나님은 사람들의 문제나 해결해 주려고 사람들이 믿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니다.
■ 이해를 도웁고자 이런 비유를 든다. 사람이 차를 샀다. 그리고는 세차도 하고 기름도 넣고 정비도 한다. 왜 그렇게 할까? 그것은 자기가 차를 산 목적을 위함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이동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차를 산다. 자기가 가고 싶을 때 편안하게 가기 위해서 또 빠르게 가기 위해서 차를 산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기름을 넣고 그 목적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도록 세차도 하고 정비도 한다. 그런데 차에 기름 넣어주고 세차해주고 정비해 주려는 목적으로 차를 사는 사람을 본적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것은 사람을 먹이고 입히시기 위함이 아니다. 목적도 없이 육신을 만드신 것이 아니다. 사람이 육신의 한계 안에서 자기 생각을 이루지 못하여 겪는 곤고함으로 인하여 신음하고 어려워서 하나님을 찾으면 그것을 해결해 주시는 재미를 느끼시기 위해 사람을 만드신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마 6:25-32 / 그러므로 내가 전정으로 말한다. 먹고 마시고 입고 하는 것으로 염려하지 말라. 너희는 이미 생명과 몸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먹고 마시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지 않느냐? 26) 공중의 새들을 보라. 새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어들이거나 양식을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으나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기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희는 새들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느냐? 27) 너희가 걱정한다고 해서 그 걱정이 너희 목숨을 한 순간이라도 연장시킬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는 왜 의복 때문에 걱정하느냐? 들의 백합화를 보라! 백합화는 수고도 길쌈도 하지 않으나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왕도 그 꽃만큼 아름답게 옷을 입지는 못하였다. 30) 믿음이 적은 자들아!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꽃들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잘 돌보아주시는데 하물며 너희야 더 잘 돌보아주시지 않겠느냐? 31) 그러므로 음식과 의복을 쌓아 두려고 걱정하지 말라. 32) 왜 그런 것에 마음을 쏟고 자랑을 늘어놓는 이방인처럼 되려고 하느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가 염려하며 걱정하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책임을 져 주실 것이니 너희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마 6:33-34 / 만일 너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룰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일을 어떻게 실천할까 고민하면서 그분을 생활의 중심에 모시고 살면 그분은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을 더불어 주실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너희의 내일 일도 돌보아주실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의 것으로 족하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아신다고 하시며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무엇이 필요한지 아시고 때를 따라 공급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따라서 육신을 가진 인생으로 겪는 문제에 매몰되어서 그것을 해결하는 것에 인생의 본질을 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오히려 그런 안목은 육신이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을 환난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더 보자.
마 6:19-24 / 이 땅위에 재물을 쌓아두지 말라. 땅에서는 좀이 먹어 없어지거나 도둑을 맞기 쉽다. 20) 그러므로 그것들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서는 그 가치를 잃어버리는 일도 없고 도둑이 들어와 훔쳐 갈 염려도 없다. 21)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22)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깨끗하면 네 온몸이 밝을 것이고 23) 네 눈이 악한 생각과 욕망으로 흐려져 있다면 너는 심한 어둠 속에서 헤매게 될 것이다. 그 어둠을 어찌 이루 다 말하랴! 24) 아무도 하나님과 돈이라는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 한편을 미워하며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한 편을 극진히 위하며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모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목전에서 이스라엘에게 당부하였다.
신 8:1-6 /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명하는 모든 계명을 그대로 지켜 행하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이 살아남아서 번성하게 되고 여호와께서 여러분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 그것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2)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난 40년 동안 저 광야에서 여러분을 인도해 주신 그 여정을 모두 돌아보십시오. 그 목적은 여러분의 고집을 꺾어 겸손하게 낮추어 놓는 한편, 여러분이 과연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것인지 아닌지 여러분의 마음을 시험하여 알아보시려는데에 있었습니다. 3) 주께서 여러분의 고집을 꺾으실 때에 여러분을 굶주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여러분도 몰랐고 여러분의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주께서 여러분에게 먹여 주셨습니다. 그 목적은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주께서 여러분에게 가르치시려는 데에 있었습니다. 4) 지난 40년 동안 여러분의 옷이 해진 일이 없었고 여러분의 발도 부르튼 일이 없었습니다. 5) 여러분이 이 사실에서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모가 자식을 옳게 가르치듯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가르치셨다는 사실입니다. 6) 그러므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르쳐 주시는 길로만 걸어가면서 주님을 경외함으로써 주님의 명령을 지키십시오.
▶ 여기에서 한 마디 질문을 던지고 넘어가려고 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에덴동산과 같은 것인가? 아니면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잃어버린 하나님께서 주셨던 하나님의 형상인가? 이에 대하여 40년 동안 광야의 생활을 하였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가 신명기 8:1-6에 이어서 신명기 8:7-20에서 이렇게 당부했다. 모세의 당부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당부이다.
신 8:7-20 / [선물로 주시는 가나안 복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이제 여러분을 아름다운 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땅에서든 들녘에서든 산지에서든 똑같이 깊은 곳에서 샘물과 시냇물들이 솟아날 것입니다. 8) 그곳은 밀과 보리가 자라고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가 열고 올리브 기름과 꿀이 나는 땅입니다. 9) 그 땅에서는 먹는데에도 부족한 것이 없고 어느 것 하나 아쉬운 것이 없습니다. 그 땅의 돌에는 철이 들어 있고 어느 산에서나 구리를 캘 수 있습니다. 10) 여러분은 거기서 풍족하게 먹고 행복해지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그 아름다운 땅을 보며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11)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전하는 주님의 명령과 계명과 규정들을 정확하게 지킴으로써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잠시도 잊지 않도록 하십시오. 12) 여러분이 배불리 먹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행복하게 살며 13) 소 떼와 양 떼도 불어나고 은과 금도 많아지고 여러분의 모든 재산이 많아질 때에 14) 여러분은 절대로 교만해지지 마십시오. 바로 그때에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지 마십시오. 주께서는 여러분을 애굽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15) 저 끝없이 넓고 위험한 광야에서 여러분을 인도해 주셨고 불뱀과 전갈이 우글거리는 물 한 방울 없이 메마른 곳에서 여러분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주께서는 여러분에게 단단한 바위에서 물을 먹여 주시고 16) 광야에서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조상들도 모르던 만나를 먹여 주셨습니다. 주께서는 여러분의 고집을 꺾고 여러분에게 순종하는 마음이 있는가를 시험하시려고 굶주리고 목마른 고생길로 인도하셨으나 이것은 나중에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7) 여러분은 평안해지더라도 ‘이 모든 재산은 내 손으로 일해서 모았고 내가 잘나서 부유하게 되었다.’ 하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18) 오히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능력을 주셔서 그 모든 재산을 얻었다는 것을 아십시오. 주께서 여러분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지키기 위하여 그렇게 부강하게 해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으십시오. 19)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고 다른 신들을 따라다니며 그것들을 섬기고 경배한다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멸망하리라는 것을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단언합니다. 20) 여러분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 순종하지 않으면 주께서 이미 여러분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과 똑같이 여러분도 멸망할 것입니다.
위의 말씀을 더 이해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4장에서 시험받으신 내용을 보자.
마 4:1-11 / 침례를 받으신 후에 예수께서는 성령께 이끌려 광야로 나가 마귀의 유혹을 받으셨다. 2) 예수께서는 사십 일 동안이나 금식을 한 뒤였으므로 몹시 시장하셨다. 3) 그때 마귀가 와서 돌을 떡이 되게 해보라고 유혹하며 ‘그렇게 하면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증명될 게 아니오?’ 하고 말하였다. 4)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은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가르친다.” 5) 그러자 마귀는 예수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지붕 위에 세워 놓고 6) 말하였다. “뛰어내리시오. 그래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시오. ‘주께서 네가 어디를 가든지 주님의 천사를 보내 보호하게 하시니 그들이 두 손으로 너를 꽉 붙잡으리라. 혹시나 돌부리에라도 채이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리라’는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소?” 7)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도 성경에 있다.” 8) 마귀는 다시 예수를 이끌고 아주 높은 산으로 올라가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며 9) ‘만일 내게 무릎을 꿇고 경배한다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10) 그때 예수께서 “사단아 물러가라. 성경에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그분만을 섬기라’고 이르지 않았느냐?" 하고 대답하셨다. 11) 그러자 마귀는 떠나가고 천사들이 와서 예수께 시중을 들었다.
크리스천의 DNA는 지옥으로 가는 길이 넓고 그 문도 커서 쉬운 길을 택한 많은 사람이 다 그리로 들어갈지라도, 비록 길은 좁고 그 문도 작아서 그리로 찾아드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도 생명의 길이기에 좁은 길로 가는 것이다(마 7:13, 눅 13:24).
예수님을 소망으로 두는 사람들도 그러해야 한다. 인생의 곤고함을 이기려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소망하기에, 예수님과 같은 생명이 자기 생명과 삶의 본성이 되었기에 그렇게 살 수밖에 없기에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인내이다. 그 인내가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삶의 소망인 사람만의 본성이다.
손흥민처럼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축구할 때 숨이 차지 않겠는가? 좋아하기에 더 많이 뛸 것이기에 더 숨이 찬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숨이 차지 않고 축구하기를 바라는 것을 소망이라 하겠는가? 숨이 차더라도 축구를 하는 것이 소망이다.
그와 같이 이 육신의 삶에 속한 모든 곤고함과 사람들이 환난으로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소망 안에서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 마음이 크리스천의 인내이고, 그 인내를 가졌다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소망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본성이 같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보이신 것이 인생의 존재 이유와 목적임을 아는 것이다.
♬ 이를 보완 설명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가 즐겨부르는 찬송가 492장 가사를 보자.
❶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항상 찬송 부르다가 날이 저물어 오라 하시면 영광 중에 나아가리
후렴 : 열린 천국문 내가 들어가 세상 짐을 내려놓고 빛난 면류관 받아 쓰고서 주와 함께 다스리리
❷ 눈물 골짜기 더듬으면서 나의 갈길 다 간 후에 주의 품 안에 내가 안기어 영원토록 살리로다
❸ 나의 가는 길 멀고 험하며 산은 높고 골은 깊어 곤한 나의 몸 쉴 곳 없어도 복된 날이 밝아 오리
❹ 한숨 가시고 죽음 없는 날 사모하며 기다리니 내가 그리던 주를 뵈올 때 나의 기쁨 넘치리라
3.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발견하고 이루는 길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발견하고, 그 꿈을 품은 의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몇 가지를 제시한다.
1.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힘써야 한다.
창세기 28장에 나오는 야곱처럼 기도와 말씀 묵상을 통해 하나님과 깊이 소통할 때,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연결되고, 그분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귀가 열리게 된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마음을 주는지, 무엇에 대해 눈물을 흘리게 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자.
2. 우리가 가진 은사와 재능을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고유한 은사와 재능을 주셨다. 이 은사들은 단순히 우리 개인의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데 사용되도록 주어진 도구이다. 당신이 가장 잘하고,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그것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과 이웃을 섬길 수 있을지 고민하자.
3. 작은 순종부터 시작해야 한다.
큰 꿈이라고 해서 거창한 시작을 기다릴 필요는 없다.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마음의 감동, 작은 부르심에 순종할 때, 그 작은 순종이 모여 큰 꿈을 향한 길을 열어준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보다 ‘하나님께서 내게 무엇을 원하실까?’라는 질문에 집중해야 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꿈이 있다. 그 꿈은 우리를 이 땅에서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으로 인도할 것이다. 때로는 그 꿈이 거창하게 느껴지고, 때로는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잊지마시라. 우리의 능력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어가신다는 사실을 말이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품고, 그 꿈을 향해 믿음으로 나아가는 의인들이 되자. 그리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
결 론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이루는 길은 누구를 막론하고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난과 시련, 때로는 사람들의 오해와 비난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의인들은 그 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확신하기에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굳건히 나아갔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에 즉위한 것은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때로부터 무려 22년 그리고 유다의 왕으로 즉위한 때로부터 7년 6개월이 지난 때였다(삼하 5:4-5). 그 사이 다윗은 숱한 시련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파기된 듯한 상황에까지 놓이기도 했다. 때로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말씀도 하셨지만,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 심지어 사울 왕을 통해서도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확신시켜 주셨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다윗은 끌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게 되었고,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이처럼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린 것은 모두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였다. 즉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하여금 신정 왕국의 왕으로서 합당한 지도자적 소양(素養-평소에 닦아 놓은 교양)과 신앙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 오랜 세월 동안 그를 연단하셨던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연단된 뒤에 온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33년간 통치하며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대한 국가를 건설하는 터전을 놓았다.
행 13:22 / 그리고 그를 물러나게 하신 뒤에는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 그가 내 뜻에 복종하기 때문이다.’하고 칭찬하셨다(삼상 13:14, 시 89:20).
욥도 정금과 같이 되기 위하여 많은 연단을 겪었다.
욥 23:10-12 /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11)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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