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경상감영과 옥터
대구시 중구 서성로 16길 77
경상 감영은 조선 시대 경상도 지역의 행정 중심지이며 천주교인들에게는 신앙을 증언한 곳이자 순교한 순교지이다.
1815년 경상도 북부와 강원도 남부 지방에 을해박해가 일어나자,청송노래산,진보머루산,일월산곧은정, 우련밭에 있는 신자들이 붙잡혀 감영으로 이송되어 취조를 받았다.
그들 가운데 김윤덕 아가타막달래나는 장사〈杖死)하고, 최봉한프란치스코, 김시우 알렉시오, 서석봉 안드레아, 김흥금, 김장복, 안치룡 등은 경상 감영 옥에서 옥사〈獄死)하였으며, 살아남은 7명은 대구 관덕정에서 참수형을 당하였다.
또한 1827년 정해박해의 여파로 상주 잣골,상주 멍에목,상주 앵무동,봉화곰직이에 살던 신자들이 체포되어 경상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이들 가운데 박경화 바오로,김세박암브로시오,안군심 리카르도등은 옥사하였고, 남은 3명은 1839년 기해박해 때 대구 관덕정에서 참수형을 당하였다.
1860년 경신박해 때에도 서태순베드로를 비롯하여 10여 명의 신자들이,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이윤일요한과 이 알로이시오 곤자가, 서인순 시몬 등 많은 순교자들이 옥살이를한 곳이다.
을해박해 순교 200주년을 기념하여 2016년에 7인의 순교 복자 비를 세우고,축복식을 거행하였다.
경상감영 옥터
박해받던 교우들이 숨진 옥터
조선시대 대구에 설치된 경상감영은 행정 집행지였지만, 천주교인들의 순교지이기도 하다. 경북 도내 각지에서 박해를 받던 교우들은 교우촌에서 붙잡히면, 그 고장의 관아를 거쳐 경상감영으로 송치됐는데, 이곳에서 고문과 혹형을 견디지 못해 순교한 이가 적지 않았다. 경상감영의 옥사는 대구 읍성 ‘서아문’ 안의 옥골에 있었는데 그 위치는 대구시 서내동(西內洞) 8번지 그 일대이다. 오늘날 대안성당이 그 일대에 속한다.
1601년 대구에 설치된 경상감영은 죄인들을 잡아가두는 감옥을 설치하였는데, 이곳에서 천주교인들이 많은 고초를 겪고 옥사했다. 1815년 을해박해 때 경상도 동북부 지방인 청송, 진보, 영양, 봉화의 깊은 산골에서 체포된 33명 신자들이 경상감영으로 이송되어 와서 감사에게 문초를 받고 석방되거나 귀양가고, 끝까지 용감하게 신앙을 증거한 신자들은 20개월 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순교하였다. 그때 7명의 신자들은 감옥에서 옥사하고 7명의 신자들은 관덕정 형장에서 참수 치명하였다.
감옥에 갇혀서도 기쁨에 넘치는 평화누려
그 당시 신자들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불평 한 마디 없이 화목한 분위기를 이루었고, 낮에는 먹고 살기위해 짚신을 삼았고, 밤에는 공동기도를 바쳤다. 세상법으로 다스림을 받는 죄인들이었지만 항상 기쁨과 평화에 넘치는 모습을 지녀 대구 읍민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1827년 정해박해 때도 상주, 안동, 봉화 등지에서 처음 31명이 체포되어 혹독한 심문에도 끝까지 신앙을 증거한 6명의 신자들은 사형을 선고 받았다.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박경화 바오로, 김세박 암브로시오, 안군심 리카르도 등 3명이 옥사하였다. 나머지 박사의 안드레아, 김사건 안드레아, 이재행 안드레아 3명은 13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다가 1839년 4월 14일(음) 대구 관덕정 형장에서 참수치명 당하였다.
경상감영에서 옥사한 순교자
- 1815년 을해박해 경상감영 옥사자 : 7명
*김윤덕 아가다 막달레나: 1815년 5월(50세) / *최봉한 프란치스코: 1815년 5월(30세) / *서석봉 안드레아: 1815년 / *김시우 알렉시오: 1815년(34세) / 김흥금(세례명이 없어서 시복 추진 제외): 1815년 / 김장복(세례명이 없어서 시복 추진 제외, 김흥금 아들): 1815년(19세) / 안치룡(세례명이 없어서 시복 추진 제외): 1815년 (50세)
- 1827년 정해박해 경상감영 옥사 : 3명
*박경화 바오로: 1827년 9월 27일(71세) / *김세박 암브로시오: 1828년 10월 27일(74세) / *안군심 리카르도: 1835년
- 1866년 병인박해 : 2명
서인순 시몬: 1866년 / 송 이야기: 1866년
(* 표는 2007년 현재 시복 추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