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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사슴을 타고 도망치는 위소보와 쌍아 홍 교주와 부인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이 어린애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니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 다. 홍 교주는 말했다. [네가 지금 한 말이 정말인지 거짓인지 천천히 알아보겠다. 만약 거짓 말을 했다면 잘 알고 있겠지?] 위소보는 말했다. [예. 교주와 부인께서 어떻게 처벌하시든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절 대로 속하를 반두타나 수두타, 육고헌 등에게는 넘기지 마십시오. 이번 에....이번에 그들은 교묘한 계책으로 청나라 군사로 하여금 신룡도를 폭격하도록 하여 적지 않은 형제 자매들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속하가 볼 때 육고헌은 교주가 되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운남에 있을 때 들은 얘기인데 자기는 선복을 영원히 누리고 싶지도 않으며 수명이 하늘처럼 길기를 바라지도 않고 그저 오십 년만 더 살면 만족한다나 요.] 육고헌은 노해 부르짖었다. [그대는....그대는....] 그는 위소보의 등을 후려쳐왔다. 무근 도인이 한 걸음 쓱 나서며 손을 뻗어 일 장을 후려쳤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육고헌은 충격을 받고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무근 도인은 호통을 내질렀다. [육고헌, 감히 교주님 앞에서 사람을 해치려 하는가?] 육고헌은 창백한 안색으로 허리를 굽혔다. [교주께선 용서해 주십시오. 속하는 저 녀석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듣 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예의에 어긋나는 짓을 했습니다.] 홍 교주는 코웃음을 치더니 위소보에게 말했다. [그대는 우선 내려가 있게.] 그는 다시 무근 도인에게 말했다. [그대는 친히 그를 돌보며 다른 사람이 해치지 못하도록 하게. 그러나 그가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하게. 그리고 그와 말을 하지 말게. 저 애는 잔꾀가 많기 때문에 반드시 주의해야 할 것일세.] 무근 도인은 허리를 굽히고 대답했다. 며칠 동안 위소보는 밤낮 무근 도인과 한 선실에서 묵으며 매일 해가 오른쪽에서 떠올라 왼쪽 뱃전 너 머로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타고 있는 배는 북으로 가고 있었다. 그는 시랑과 수군이 달려와 자기를 구해 주기를 바랐지만 나중 에는 그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내가 이번에 지걸인 거짓말을 교주와 부인은 구할 정도 믿고 있다. 하 지만 내가 군사를 이끌고 신룡도를 뒤죽박죽으로 폭격한 것은 결국 죄 를 면할 수 없다. 다행히 그 동과처럼 생긴 동그란 놈이 떠내려와 나를 속였지만 그것은 교주가 생각해 낸 계책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대 노해서 뚱뚱이와 나를 함께 죽여 한 솥에 삶아 소보동과탕(小寶冬瓜湯) 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이 배가 북쪽으로 나가는데 혹시 요동으로 가는 것이 아닐까?) 그는 무근 도인에게 몇 번이나 물었으나 무근 도인은 언제나 똑같은 대 답을 했다. [모르네. 교주께서 자네와는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네.] 그는 위소보가 선실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외소 보는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방이라는 계집애는 분명 이 배 안에 있는데 내 곁으로 와서 이 답답한 마음을 풀어 줄 생각도 하지 않는군.) 이번에 사로잡힌 것이 방이에게 유혹당했기 때문임을 상기한 그는 속으 로 생각했다. (이번에 이 위험에서 벗어난 후에 방이라는 계집애를 다시 상대한다면 나는 위씨 성을 갈겠다. 두 번이나 속았는데 어찌 세 번씩 속을까 보 냐?) 그러나 방이의 아리따운 용모와 부드럽고 온순한 태도를 상기하자 가슴 이 쿵쿵 뛰어 금방 생각을 고쳤다. (성이 위씨가 아니면 그만이지. 나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지 않는 가? 나의 성이 무엇인지 그 누가 알겠느냐 말이다.) 배는 계속해서 북쪽으로 나아갔으며 날은 점점 추워졌다. 무근도인은 내력이 심후해서 벌로 추위를 타지 않았으나 위소보는 몸이 떨릴 지경 이었고 이빨이 마주쳐서 따다닥, 하는 소리가 났다. 다시 며칠이 지나 자 북풍이 불고 하늘이 음울해지더니 갑자기 큰 눈이 내렸다. 위소보는 부르짖었다. [이제 얼어 죽게 생겼구나!]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색액도 형님이 나에게 초피로 만든 포자(袍子)를 주었는데 중군장에 놔두고 가져오지 않았구나. 아, 진작 방이라는 계집애가 나를 속일 줄 을 알았다면 초피로 만든 포자를 입고 그녀를 안았을 텐데.... 그렇게 했다면 이 배 안에서 얼어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얼음 으로 변한 백룡사라, 생각만 해도 끔찍하구나.) 배는 야밤에도 나아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쨍그랑, 쨍, 하는 소리가 들 려왔다. 위소보는 자세히 귀를 기울이고 들어 보았다. 그제서야 위소보 는 배가 바닷속의 조각난 얼음들과 부딪치는 소리인 것을 알고 깜짝 놀 라 부르짖었다. [아이쿠! 야단났다! 이 배가 바다 한복판에서 얼어붙으면 어떡하지?] 무근 도인은 말했다. [바닷물은 짜서 얼음이 얼지 않아. 우리는 곧 언덕에 닿게 될 것이네.] [요동에 도달했소?] 무근 도인은 흥, 하고 코웃음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선실의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시야는 온통 희뿌옇기만 한데 바다 위엔 온통 떠다니는 얼음조각뿐이었다. 얼음 위에는 하얀 눈 이 쌓여 있었다. 아스라히 육지가 보였다. 이 날 밤 전선은 언덕가에 이르러 닻을 내렸다. 보기에 이튿날 아침이면 작은 배를 타고 뭍에 오 를 것 같았다. 이 날 밤 위소보는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홍 교주가 도대체 자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홍 교주는 자기의 말을 믿는 것도 같고 믿지 않는 것도 같았다. 빙천설지(水天雪 地)로 온 목적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꿈속 에서 방이가 자기 곁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대뜸 그녀를 끌어 안았는데 어렴풋이 그녀가 말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터무니없는 짓은 하지 말아요.] 위소보는 말했다. [이 죽일 마누라야! 나는 터무니없는 짓을 해야 되겠다.] 방이가 자기 품속에서 몇 번 몸을 비틀었다. 그는 잠결에 품속의 그 사 람이 나직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상공, 우리 빨리 가요.] 아무래도 쌍아의 음성 같았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대뜸 정신을 차렸 다. 품속에는 확실히 부드러운 몸뚱이가 안겨져 있었다. 어둠 속이라 누구인지 잘 보이지 않아 속으로 생각했다. (쌍아냐, 방이냐, 아니면 홍 부인이냐?)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누구든 입을 맞추고 보자. 우선 재미좀 보자구.) 그는 품속의 사람을 끌어당겨 입을 맞추려고 했다. 그 사람은 나직이 소리내어 웃으며 고개를 돌려 피했다. 그 웃음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는데 바로 쌍아였다. 위소보는 놀람과 기쁨에 얽혀 그녀의 귓가에 입을 대고 나직이 물었다. [쌍아. 그대가 어떻게 왔지?] 쌍아는 말했다. [우리 빨리 가요. 천천히 얘기해 드릴게요.] [나는 얼어 죽겠소. 그대는 빨리 이불 속으로 들어와 나의 몸을 좀 따 뜻하게 해주구려.] [상공은 장난이 심해요. 지금이 어느 때인지 생각해 보세요.] 위소보는 그녀를 꼭 껴안고 물었타. [어디로 도망을 친단 말이오?] [우리는 배 뒤로 빠져나가서 작은 배를 저어 뭍으로 오르도록 해요. 그 들은 우리를 발견해도 뒤쫓아오지는 못할 거예요.] 위소보는 크게 기뻐 나직이 부르짖었다. [묘책이군. 묘책이야! 아! 그 도사는 어떻게 되었소?] [내가 몰래 선실로 들어와 그의 혈도를 짚었어요.] 두 사람은 살그머니 선실에서 빠져나갔다. 차가운 바람이 지나가자 위 소보는 전신이 얼어붙을 것 같아 재빨리 몸을 돌려 선실 안으로 들어가 무근 도인의 몸에 걸친 도포를 벗겨서 뒤집어썼다. 이때는 검은 구름이 하늘에 가득해 별도 달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커다란 눈송이만 펄펄 내 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배 뒤로 가서 귀를 기울였으나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배는 이미 닻을 내리고 키잡이도 선실로 들어가 잠이 든 것 같 았다. 쌍아는 위소보외 손을 잡고 살금살금 배 뒤로 다가가며 나직이 말했다. [내가 먼저 내려갈 테니 그댁는 따라오세요.] 그녀는 가볍게 배 뒤에 묶여 있는 소정으로 내려섰다. 위소보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두침침해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즉시 눈을 감고 뛰어 내리니 쌍아는 두 손을 들어 그의 등과 엉덩이를 받쳐들고 소정 한가운 데서 조그만 원을 그려 떨어지는 기세를 해소시킨 후에 그를 내려놓았 다. 홀연 선실에서 호통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바로 홍 교주의 목소리였다. 위소보와 쌍아는 깜짝 놀라 소정의 밑바닥 에 웅크리고 앉아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탁, 하는 소리가 나고 선 실 창문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쌍아는 홍 교주가 불을 켜서 살피려 한다는 것을 짐작하고 재빨리 소정에 놓여 있는 나무로 된 노를 힘껏 저었다. 두 번을 저었을 때 홍 교주는 이미 큰소리로 호통을 치며 물었 다. [게 누구냐? 꼼짝마라!] 소정이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소정을 매어 놓은 밧줄을 풀지 않았던 것이다. 위소보는 재빨리 손으로 밧줄을 풀려고 했 으나 손에 와닿는 것은 차가운 쇠사슬이었다. 이때 전선에서 및 사람이 부르짖고 있었다. [백룡사가 보이지 않는다.] [그 녀석이 어디로 도망쳤지? 빨리 쫓아라! 빨리, 빨리.] 위소보는 신발목에서 비수를 꺼내서 힘주어 내리쳤다. 창, 하는 소리와 함께 쇠사슬은 잘려지고 소정은 즉시 앞으로 나아갔다. 그 소리가 울려 퍼지자 홍 교주, 홍 부인, 반두타, 육고헌 등이 차례로 배 뒤로 달려왔 다. 희뿌연 눈과 얼음의 빛을 빌어 소정이 이미 큰 배에서 수 장 정도 떨어져 나가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홍 교주는 손을 뻗더니 배에서 한 조각 나무를 뜯어내 힘주어 소정 쪽 으로 던졌다. 그의 내공이 강하기는 했으나 나무는 너무 가벼워 소정과 두 자 정도 떨어진 곳까지 날아오더니 곽,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닷속으 로 떨어졌다. 처음에 육고헌과 반두타 등은 교주의 뜻을 몰라 함부로 암기를 던지지 못했다. 혹시 백룡사가 상처를 입으면 오히려 벌을 받게 될까봐 염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교주가 뱃전에서 뜯어 낸 나무조각을 던지자 그제서야 그의 마음을 헤아리고 몸에 지니고 있던 암기롤 꺼내 던졌다. 그러나 잠시 지체하는 사이에 소정은 다시 앞으로 이 장 정도 나아갔기 때문에 보통의 가늘고 작은 암기들은 소정이 있는 곳에 미치 지 못했다. 여러 사람들이 수전(袖箭), 독침 등을 던졌으나 모두 바다 로 떨어졌다. 수두타는 말했다. [저 녀석이 교활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진 작 한 칼에 죽여 버려야 했습니다. 그를 살려 둔다는 것은 스스로 번거 로움을 자초하는 것이죠.] 홍 교주는 그렇지 않아도 분노가 극도로 차 있었는데 수두타가 그와 같 이 비꼬는 말을 하자 자기를 비웃는 것 같아 왼손을 뻗어 수두타의 뒷 덜미를 잡고 외쳤다. [빨리 가서 그를 잡아 오너라.] 왼손으로 수두타를 허공으로 들어올렸다. 이어 오른손으로 그의엉덩이 를 철썩, 치며 호통쳤다. [빨리 가!] 앞으로 번쩍 내던지니 수두타의 살코기로 빚어 만든 공 같은 몸뚱이가 곧장 소정이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쌍아는 힘주어 노를 저었다. 위소 보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아이쿠! 야단났다. 사람 포탄이 떨어진다.] 그 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수두타는 바닷 속으로 떨어졌다. 그가 바닷속으로 떨어진 곳은 소정과 몇 척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수두타는 와락 몸을 솟구치며 왼손으로 소정의 가장자리 를 잡았다. 쌍아는 노를 들어 힘주어 그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수두타 는 고통을 참고 흥, 하는 소리와 함께 오른손을 재차 뻗어 소정을 잡았 다. 쌍아는 크게 당황하여 힘주어 다시 노를 내리쳤다. 팍, 하는 소리 와 함께 노가 두 토막으로 부러졌다. 이렇게 되자 소정은 대뜸 바다에 서 맴돌게 되었다. 수두타는 어지러움을 느끼고 고개를 한차례 흔들어댔다. 위소보는 비수 를 꺼내서 사정없이 내리찍어 그의 오른손 네 손가락을 모조리 잘라버 렸다. 수두타는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오른손을 놓고 말았다. 그러자 그의 몸뚱이가 물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기 시작했다. 그는 큰소리로 비명을 질러 댔다. 쌍아는 남은 한 자루의 노를 힘주어 저었다. 소정은 다시 언덕쪽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잠시 더 저으니 큰 배와는 꽤 멀어졌고 큰 배에서는 뒤쫓아 잡을 수 없었다. 큰 배에는 한 척의 소정밖에 없었던 것이다. 홍 교주 일행의 무공은 높았지만 이 뼈를 에는 듯한 추운 날씨에 감히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쳐 쫓아오지는 못했다. 더구나 헤엄을 쳐서 소정 을 뒤따라 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위소보는 소정에 놓여 있는 한 조각의 나무 판대기를 가지고 배젓는 것 을 도왔다. 큰 배 위에서 사람들이 노하여 부르짖는 소리와 욕하는 소 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그러나 북풍은 끝내 그 소리를 집어삼키고 말았 다. 위소보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천지신명께 감사드립니다. 끝내 도망쳐 나오게 되었군요.] 두 사람은 반 시진을 저은 후에야 겨우 언덕에 도달할 수 있었다. 쌍아 는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바닷물은 무릎 있는 곳까지 찼다. 그녀는 소 정의 뱃머리에 걸려 있는 반 토막의 쇠사슬을 잡고 소정을 언덕 쪽으로 잡아당기며 말했다. [됐어요.] 위소보는 몸을 훌쩍 날려 언덕 위에 올라서며 말했다. [대성공이다.] 쌍아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서며 헤헤, 웃었다. [상공, 쓸데없는 장난은 하지 마세요. 우리는 빨리 가야 해요. 홍 교주 일당이 뒤쫓아오면 안 돼요.] 위소보는 깜짝 놀라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여기는 어떤 곳이지?] 사방을 둘러봐도 하얀 눈이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 더군다나 어둠 속 이라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쌍아는 말했다. [이곳은 정말 어딘지 모르겠군요. 상공, 우리는 어느 쪽으로 도망가야 옳을까요?] 위소보는 추워서 벌벌 떨며 욕을 했다. [제에미! 방이라는 죽일 계집애가 우리를 이 눈 덮인 곳에서 얼어 죽게 만들었구나.] [우리 어서 가요. 움직이면 몸이 따뜻해질 거예요.]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눈 덮인 땅을 걸어갔다. 눈은 이미 한 자 정도나 쌓여 있어 무릎까지 빠져 걷기가 무척 힘들었다. 위소보는 길을 걷는 것이 고생스러웠으나 홍 교주는 신통력이 높아서 반드시 뒤쫓아 뭍으로 올라올 거라고 생각했다. 발자욱이 남게 되었으니 어디로 도망을 치겠 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은 도망칠 수 있어도 십중팔구 추격을 당할 것 같아 머뭇거리지 않고 길을 재촉했다. 그는 쌍아에게 어떻게 그를 구했는지 물었다. 위소보가 방이를 발견하고 혼이 나간 사람처럼 달려가 이야기를 나누려 고 하자 쌍아는 소정을 타고 뒤를 따랐다. 그가 붙잡히자 눈치 빠른 쌍 아는 즉시 뱃머리로 숨어 들었다. 이 한 척의 전선은 홍 교주 등이 청 나라 군사로부터 빼앗은 것인데 키잡이와 사공들은 모두 청나라 병사였 다. 그녀가 입고 있는 것은 효기영 관병의 복장이라 관병 속에 섞이자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녀는 전선이 언덕에 거의 다 이르자 야 음을 틈타 위소보를 구한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난 위소보는 그녀의 총 명함을 칭찬했다. [방이라는 그 죽일 계집애는 언제나 나를 속이고 해치려고 드는데, 쌍 아라는 착한 보배는 언제나 나의 목숨을 구해 주는군. 나는 방이 대신 그대를 내 마누라로 삼아야겠어.] 쌍아는 깜짝 놀라 그의 손을 놓고 재빨리 물러서며 말했다. [저는 그대의 하녀에 불과해요.] [내가 그대와 같은 나이 어린 하녀를 둔 것은 전생에 열일곱 개나 스물 여덟 개의 목탁을 모두 두드려 부수고 스물한 권의 사십이장경을 모두 뒤적여 닳아버렸기 때문에 이승에서 이런 복덩어리를 얻게 된 모양이 오.] 쌍아는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상공께서는 참 재미 있어요.] 두 사람은 날이 밝을 때까지 걸어 해변가에서는 꽤 멀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눈 덮인 땅 위에 두 줄기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나있고 멀리까 지 뻗쳐 있었다. 앞을 바라보니 평원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홍 교주 등이 조만간 뒤따라올 것 같았다. 위소보는 속으로 걱정을 하며 말했다. [우리들이 열흘 낮 열흘 밤을 두고 걸어도 그들에게 잡히고 말것 같 소.] 쌍아는 오른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에 숲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숲속으로 들어가요. 그러면 홍 교 주가 우리를 쉽게 찾지 못할 거예요.] [숲이라면 좋겠으나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두 사람은 눈으로 뒤덮인 언덕 쪽을 향해서 걸음을 재빠르게 옮겨 놓았 다. 약 한 시진 정도 걸어서 가까이 다가가 보니 대평원에서 솟아오른 조그만 산등성이였고 숲이 아니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저 언덕 뒤쪽으로 가 봅시다. 몸을 숨길 만한 곳이 있을지 모르오.] 그는 지쳐서 숨을 헐떡이고 걸음을 옮겨 놓는 것도 매우 힘들었다. 다 시 반 시진을 걸어서 조그만 언덕 뒤에 이르렀다. 그쪽 역시 희뿌연 평 원만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보기에 백설로 뒤덮여 있는 바다와 같아 숨을 만한 곳이 없었다. 위소보는 피곤하고 배가 고파서 눈 위에 쓰러 지며 말했다. [쌍아, 그대가 나를 껴안고 입맞춤해 주지 않으면 더 이상 걸음을 옮겨 놓을 기운이 없구려.] 쌍아는 얼굴을 붉히며 망설였다. 갑자기 등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 가 들렸다.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렸다. 일곱, 여덟 마리의 커다란 사슴 들이 언덕 뒤쪽에서 돌아나오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는 기뻐했다. [배가 고파서 죽겠소. 그대는 저 사슴을 잡을 방법이 없겠소? 죽여서 사슴 고기를 구워 먹도록 합시다.] 쌍아는 말했다. [제가 시험해볼게요.] 그녀는 갑자기 몸을 날려 몇 마리 큰 사슴을 향해 날아갔다. 그런데 매 화록(梅花鹿)의 네 다리는 무척 길어 뛰어가는 것이 나는 것 같아 순식 간에 수십 장 밖으로 달려가 더 쫓을 수가 없었다. 쌍아는 고개를 흔들 며 말했다. [뒤쫓아 잡을 수가 없어요.] 이곳의 매화록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쌍아가 걸음을 멈추자 다시 고개를 돌리고 바라보았다. 위소보는 말했다. [우리들이 땅바닥에 쓰러져 죽은 척해 봅시다. 사슴이 가까이 다가올지 도 모르니.] 쌍아는 웃었다. [좋아요. 시험해 보지요.] 그녀는 눈 위에 비스듬히 누웠다. 위소보는 말했다. [나는 이미 죽었소. 나의 마누라 착한 쌍아도 역시 죽었소. 우리 두 사 람은 이미 땅 속에 묻혀서 다시 움직일 수 없게 되었소. 나와 쌍아는 여덟 명의 아들과 아흡 명의 딸을 낳았소. 그들은 모두 무덤 앞에서 울 고 있으며 큰소리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부르고 있소....] 쌍아는 키득키득 웃으며 조그만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말했다. [누가 그대의 그처럼 많은 아들 딸을 낳아준대요?] [좋아. 여덟 명의 아들과 아홉 명의 딸이 많다면 아들 셋에 딸 셋만 낳 기로 하지.] 쌍아는 웃었다. [싫어요....] 몇 마리의 매화록이 천천히 두 사람 곁으로 다가왔다. 동물 가운데 사 슴의 지능은 낮은 편에 속해 개, 말, 여우 등에게 미치지 못한다. 속담 에도 우둔하기가 사슴이나 돼지 같다는 말이 있다. 몇 마리의 매화록은 고개를 숙여 위소보와 쌍아의 얼굴에 입을 갖다 대고 냄새를 맡아 보고 몇 번 핥아 보기도 했다. 위소보는 외쳤다. [올라타자! 적청항룡(狄靑降龍)이다!] 위소보는 훌쩍 몸을 날려 사슴의 등에 올라타고 두 손으로 사슴의 뿔을 단단히 움켜잡았다. 쌍아 역시 날렵하게 한 마리의 매화록등에 올라탔 다. 사슴들은 깜짝 놀라서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쌍아는 부르짖었다. [빨리 비수로 사슴을 죽이세요.] 위소보는 말했다. [서두를 것 없소. 사슴을 타고 멀리 도망칩시다. 그러면 홍 교주는 뒤 쫓아오지 못할 것이오.] [정말 그렇네요. 하지만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요.] 그녀는 두 마리 사슴이 한 마리는 동쪽으로 달아나고 한 마리는 서쪽으 로 달려갈까봐 겁이 났다. 그렇게 되면 큰일이 아닌가! 다행히 매화록 은 떼 지어 살기를 좋아하여 여덟 마리의 큰 사슴은 한데 모여 달려갔 다. 잠시 달리자 다시 일곱, 여덟 마리의 커다란 사슴이 달려와 합쳤 다. 매화록은 키가 크고 다리가 길어 달리는 속도가 준마에 못지않았 다. 그러나 등에 타고 있으려니 심하게 흔들렸다. 한 떼의 사슴들은 서북쪽을 향해 단숨에 수십 리를 달려가더니 그제서 야 걸음을 늦추었다. 등에 사람을 태운 두 마리의 사슴은 껑충껑충 뛰 었다. 두 사람을 떨궈뜨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위소보와 쌍아는 사슴의 뿔을 꼭 잡았다. 위소보는 외쳤다. [사슴의 등에서 일단 내려가면 올라타기 쉽지 않을 것이오. 우리들은 멀리 도망치면 칠수록 좋소. 이것이 바로 사내대장부의 한 마디가 나오 면 살아 있는 사슴이 뒤따라오기 힘들다는 것이지.] 두 사람은 배가 고파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눈이 가물가물했으나 여전히 사슴의 목을 껴안고 사슴의 뿔을 잡은 채 끝없이 펼쳐져 있는 설원을 달려갔다. 두 사람은 사슴때가 일각이라도 더 달리면 그만큼 홍 교주와 멀어지는 것이며 눈 덮인 땅 위에 두 사람의 발자국도 남기지 않게 된 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해질 무렵이 되자 사슴떼는 숲속으로 들어갔 다. 위소보는 말했다. [되었소. 내려오시오.] 그는 비수를 뽑아 타고 있던 숫사슴의 목을 찔렀다. 그 사슴은 몇 걸음 달려가더니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쌍아는 말했다. [한 마리의 사슴이면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거예요. 제가 타고 온 사슴 은 죽이지 말도록 해요.] 그녀는 사슴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위소보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전신의 뼈마디가 모조리 흩어지는 것 같아 땅바닥에 누워 한참 동안 숨 을 헐떡였다. 한참 후에야 그는 숫사슴의 목에 입을 대고 따뜻한 피를 마시고 소리쳤다. [쌍아, 그대도 마셔 봐.] 사슴 피를 어느 정도 마시자 정신이 번쩍 들었고 몸에 뜨거운 기운이 감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쌍아는 사슴의 피를 마시고 비수로 사슴 의 다리를 잘랐다. 마른 나믓가지들을 주워 불을 피운 후 사슴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녀는 말했다. [사슴아, 네가 우리의 목숨을 구해 주었는데도 우리는 너를 구워 먹으 니 정말 미안하구나.] 두 사람은 사슴 다리를 구워 먹자 더욱 기운이 나고 신이 났다. 위소보 는 말했다. [쌍아, 나와 그대가 이 숲속에서 한 쌍의 사냥꾼 지아비와 마누라가 되 어 살면서 북경에 돌아가지 말도록 합시다.] 쌍아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상공께서 어디를 가시든지 뒤따르며 시중을 들겠어요. 그대가 북경으 로 돌아가 큰 벼슬아치가 되어도 좋아요. 저는 언제나 그대의 작은 하 녀예요.] 위소보는 불빛 아래 드러난 그녀의 발그레하니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웃었다. [그럼 우리는 이제 혼례를 올려야 할 것이 아니겠소?] 쌍아는 어머, 하더니 훌쩍 몸을 날려 머리 위의 소나무 위로 올라서며 웃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두 사람은 모닥불 옆에 응크린 채 하룻밤을 잤다. 이튿날 잠이 깨자 쌍 아는 다시 사슴고기를 구웠다. 두 사람은 배불리 먹었다. 위소보의 모 자는 어제 낮에 사슴을 타고 달릴 때 떨어뜨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쌍 아는 사슴의 가죽을 벗겨서 모자를 만들어 주었다. 위소보는 말했다. [어제 우리가 사슴을 타고 하루를 달려왔으니 홍 교주 일행은 좀처럼 우리를 찾기 힘들 것이오. 하지만 아직도 위험하오. 가장 좋은 것은 매 화록을 타고 북쪽으로 사흘이고 나흘이고 달려가는 것이오. 그러면 위 소보 교주와 쌍아 부인은 영원히 선복을 누리게 될 것이고 수명이 하늘 처럼 길게 될 것이오.] 쌍아는 웃었다. [뭐가 쌍아 부인이에요? 정말 듣기 거북하네요. 사슴을 타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아요. 저기 보세요. 사슴떼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잖아요.] 과연 이십여 마리의 커다란 사슴과 조그만 사슴들이 동쪽에서 눈을 밟 으며 이쪽으로 달려와 목을 길게 빼고 나무의 부드러운 잎들을 먹었다. 사슴들은 두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쌍아는 말했다. [저 사슴들 정말 착하기 이를 데 없군요. 그들의 생명을 더 다치게 하 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어제 잡은 이 한 마리 사슴으로 우리들은 열흘 을 먹고도 남을 거예요.] 쌍아는 죽은 사슴의 몸에서 커다랗게 몇 조각의 살코기를 잘라낸 후 그 것을 사슴 가죽으로 만든 끈으로 묶어서 각자 등에 짊어졌다. 그들은 천천히 사슴떼에게로 다가갔다. 위소보는 손을 뻗쳐 한 마리의 커다란 사슴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그 사슴이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핥는 것이 아닌가? 위소보는 말했다. [어쭈! 이 사슴은 나를 좋아하는군!] 쌍아는 킥, 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먼저 올라타세요.] 두 사람은 다시 사슴 등에 올라탔다. 두 마리의 사슴은 놀라 앞으로 달 려갔다. 두 사람은 사슴의 뿔을 잡고 방향을 조종했다. 곧장 북쪽으로 나아가게 해서 홍 교주와 될 수 있으면 멀어지도록 했다. 위소보는 이 미 사슴을 타는 것이 어렵지 않은 것을 깨닫고 두 시진 정도 타고 나서 곧 쌍아와 함께 땅바닥에 내려서 사슴들이 제멋대로 가도록 내버려 두 었다. 이같이 십여 일 동안 사슴을 타고 달렸다. 사슴떼들을 만나지 못 하면 천천히 걷기도 했고 배가 고프면 사슴고기를 구워 먹었다. 두 사람이 입고 있던 옷은 이미 숲속의 가시나무에 걸려 찢어지고 해져 걸레 조각처럼 되었다. 두 사람은 쌍아가 새로 만든 사슴 가죽으로 만 든 옷과 바지를 입었고 신발도 사슴 가죽으로 만들어 신었다. 어느 날 숲속에서 벗어나자 갑자기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참을 가니 커다란 강가에 도달했다. 강물이 거세게 흘러가고 있었다. 두 사 람은 밀림에서 십여 일을 보내다가 갑자기 이 같은 큰 강을 만나니 가 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강을 따라 북쪽으로 몇 시진쯤 가자 몸에 사슴 가죽을 걸친 세 사내를 만났다. 그들은 손에 곡괭이와 철차(鐵叉)를 들고 있는데 사냥꾼 같았 다. 위소보는 오랜만에 사람들을 보니 기뻐서 재빨리 앞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세 분 형님은 어디로 가십니까?] 사십여 세쯤 돼 보이는 사내가 말했다. [우리들은 모란강(牡丹江)으로 장 보러 가오. 그대들은 어디로 가오?] 그의 중국어는 무척 생경했다. 위소보는 말했다. [아이쿠! 모란강이 저쪽으로 가는 것인가요? 우리가 길을 잘못 들었군 요. 그럼 세 분 형님을 따라가는 것이 제일 낫겠군요.] 위소보는 세 사람과 함께 길을 가며 자꾸 말을 걸었다. 세 사람은 통고 사(通古斯) 사람으로 사냥을 하고 인삼은 판매하였다. 종종 모란강으로 장을 보러 갔으며 한인들과 거래하기 때문에 한어를 할 줄 알았다. 모 란강에 이르니 꽤 큰 고을에 장이 서고 있었다. 위소보는 몸에 한 묶음 의 은표들을 줄곧 지니고 있었다. 그는 세 명의 통고사 사람을 술집으 로 데리고 가 술을 대접했다. 갑자기 옆의 탁자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 려 왔다. [자네의 이 인삼은 물론 훌륭한 것이지. 지난 달 호마이와집산에서 내 려온 사람을 보니까....] 위소보와 쌍아는 호마이와집산이라는 말을 듣고 흠칫해서 말하는 사람 을 바라보았다. 두 늙은이가 잎사귀가 달린 인삼을 들고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위소보은 한 덩이의 은자를 꺼내 주모에게 주며 술과 고기를 더 가져오라고 분부하고 한 쟁반의 쇠고기와 두 근의 백주를 옆의 두 노인에게 갖다 주도록 했다. 두 명의 늙은 심마니들은 이상하게 생각했 다. 나이 어린 사냥꾼같은 위소보가 왜 호의를 보이는지 몰라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위소보는 그쪽으로 다가가 술을 몇 잔 따라 주고 두세 마디 나누는 사이에 호마이와집산의 소재지를 알아낼 수 있있다. 이곳 에서북으로 이, 삼천 리 올라가면 호마이와집산이 있다는 것이었다. 두 늙은 심마니들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위소보는 쌍아에게 지도에 있는 다른 산천 이름도 들먹이도록 했다. 두 명의 늙은 심마니들은 자세히 알려 주었는데 그 멀고 가까움은 지도에 씌어져 있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술과 밥을 배불리 먹고는 통고사 사 람과 심마니에게 작별을 고했다. (녹정산은 이곳에서 몇 천리가 떨어져 있구나. 한가한 몸이니 가서 보 물을 캐오는 것도 괜찮겠다.) 그는 보물을 캐는 것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여전히 홍 교주와 수두타 패거리와 만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홍 교주 등은 남쪽에 있으니 다시 북쪽으로 이, 삼천 리를 올라가면 홍 교주는 그를 잡지 못할 것 같았 다. (내가 쌍아와 팔 년이고 십 년을 기다린다면 홍 교주는 반드시 죽고 말 겠지. 제기랄 그가 정말, 수명이 하늘처럼 길겠어?) 그는 피혁점으로 가서 훌륭한 담비가죽으로 만든 옷을 두 벌 사서 쌍아 와 나누어 입었다. 혹시나 홍 교주에게 추적을 당하게 될까봐 초피옷 밖에는 여전히 거친 사슴 가죽으로 만든 옷을 걸쳤다. 얼굴에는 석탄 가루를 칠해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도록 했다. 그들은 한 대의 커다란 수레를 빌어 북쪽으로 향했다. 수레 속에서 쌍아와 이야기를 나누며 가 끔 크게 성공했다는 말을 들먹이니 무척 재미있었다. 수레를 타고 이십 여 일을 가는 동안 북으로 갈수록 날씨는 점점 추워졌다. 길은 얼음으 로 덮여 있고 눈까지 내려서 큰 수레는 통행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다시 마필로 바꿔 탔는데 나중에는 마필도 타고 갈 수 없었다. 그들은 밀림의 설원에서는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위소보는 보물을 찾겠다는 것은 구실이고 피난을 하려는 뜻이 있어서 험악한 산이나 물을 만나고 사방에 아무도 없으면 마음이 더 놓였다. 쌍아의 기억력은 무척 좋아 지도에 그려져 있는 방향을 따라 천천히 북쪽으로 나아갔다. 사냥꾼이 나 심마니들을 만나면 그 지방의 이름을 알아보았다. 지도에 네 가지 빛깔로 그려져 있는 여덟 개의 조그만 원이 바로 녹정산이 위치한 곳인 데 그곳은 두 커다란 강이 합류한 곳이다. 두 사람은 녹정산이 이곳에 서 별로 멀지 않다고 느꼈다. 두 사람은 커다란 소나무숲을 손을 잡고 걸어갔다. 별안간 동북쪽에서 탕,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바로 화기를 쏘는 소리였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아이쿠! 야단났다! 홍 교주가 쫓아온 모양이오.] 그는 쌍아의 손을 잡고 잡초 더미 속에 몸을 숨겼다. 조금 후 십여 명 이 울부짖고 호통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점점 다가오더니 곧 이어 말발굽소리가 들렸다. 위소보가 두려워한 것은 바로 홍 교주가 쫓아와서 그를 잡아 힘줄을 뽑 고 가죽을 벗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리를 들어 보니 홍 교주와는 관 계가 없어서 약간 안심이 되어 고개를 내밀고 살폈다. 십여 명의 통고 사 사냥꾼들이 미친 듯 부르짖으며 달려가고 있었다. 곧이어 탕탕탕, 하는 소리가 잇따라 울리고 몇 명의 사냥꾼들이 땅바닥에 쓰러져 죽어 갔으며 몸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위소보는 쌍아의 손을 잡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외국 귀신들의 화창이다.) 말발굽 소리가 나고 칠, 팔 명의 말을 탄 사람들이 달려왔다. 말을 탄 사람들은 노란 수염에 파란 눈을 지닌 외국 관병이었다. 하나같이 체구 가 우람했고 표정이 흉악했는데 어떤 사람은 화창을 들고 어떤 사람은 구부러진 만도를 마구 휘둘러댔다. 그들은 삽시간에 통고사 사냥꾼들은 모조리 쳐죽였다. 외국 관병들은 껄껄 웃더니 말에서 뛰어내려 사냥꾼 들의 몸에서 물건들을 뒤적여 몇 장의 초피와 은빛 여우가죽을 가져가 며 좋아했다. 위소보와 쌍아는 말발굽 소리가 멀어지자 잡초 속에서 걸 어나와 사냥꾼을 살펴보니 한 사람도 살아 있는 사람이 없었다. 죽은 사람은 눈에 공포의 빛을 띄우고 있었다. 위소보는 나직이 말했다. [이 외국놈들은 강도였군.] 쌍아는 말했다. [강도들보다 더 흉악하네요. 물건을 빼앗고도 사람까지 죽였으니.] 위소보는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말했다. [어째서 외국 강도가 날뛰지? 설마 하니 오삼계가 이미 반란을 일으킨 것일까?] 그는 오삼계가 나찰국과 연맹하여 운남에서 출병하면 나찰국은 북으로 공격해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갑자기 이렇게 많은 외국인을 보게 되자 혹시 십여 일 동안에 오삼계가 이미 반란을 일으킨 게 아닐 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삼계 휘하에 병마가 많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소현자가 걱정되었다. 쌍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사냥꾼들은 너무 불쌍하군요. 집에서는 부모와 처자들이 그들이 돌 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위소보는 갑자기 말했다. [나는 소황제를 만나러 가야겠소.] 쌍아는 크게 의아하여 물었다. [소황제를 만나려구요?] [그렇소.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켰다면 소황제는 많은 일을 나와 상의해 야 할 것이오. 우리는 북경으로 돌아갑시다.] |
첫댓글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