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의 십종공덕
살생중죄 금일참회 투도중죄 금일참회
사음중죄 금일참회 망어중죄 금일참회
기어중죄 금일참회 양설중죄 금일참회
악구중죄 금일참회 탐애중죄 금일참회
진에중죄 금일참회 치암중죄 금일참회
참선도량과 참회도량으로 유명한 전라북도 부안군 월명암(月明庵)에는 월인(月印)큰스님이
계셨습니다. 평생을 참선수행에만 몰두하며 사신 스님은 1980년대 중반에 월명암의 선원이
완공되자 조실로 추대되었습니다.
스님은 월명암 선원의 첫 결제에 참여하기위해 찾아온 10명의 선객(禪客)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세속에서나 절집안에서나 알게 모르게 지은 악업(惡業)들을 소멸시키지 못한다면
어떻게 성불을 바라볼 수 있겠는가? 또 나옹스님의 발원문(發願文)을 조석으로 되새기며 우리의
간절한 마음을 다잡아나가는 것도 중요한 수행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여름 안거(安居)가 끝날 때까지
참선수행과 함께 십악참회(十惡懺悔)와 발원문 정신을 하도록 하자."
일반적으로 볼 때 선원에서는 참선정진만을 중요시하여 조석예불조차도 생략하고 죽비소리에
맞추어 3배의 절만을 올립니다. 따라서 십악참회와 발원문 정진을 하자는 조실스님의 말씀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행히 대중들은 반대하지 않았고,
그날부터 3개월 동안 월명암 대중들은 십악참회와 발원문을 외웠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3개월 동안 부안군 관내에서 단 한 건의 범죄도
발생하지 않아, 할 일이 없어진 경찰이 손을 놓고 지낸 것입니다. 이 소식이 방송을 타고 전국에
알려졌고, 그때 어떤 이가 말했습니다.
" 월명암에서 10며의 스님들이 석달 동안 참회정진을 하였다는데, 아마 그 덕분인가 봅니다."
그 말이 다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짐에 따라 한적했던 월명암을 찾는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첨선도량 월명암은 '참회도량'이라는 이름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참회와 발원을 하며
참선정진을 하던 어느 해, 대중스님들이 월인 조실스님께 의견을 보였습니다.
"이제부터는 참선수행만 하고 참회와 발원문 정진은 그만두면 좋겠습니다."
전국 대부분의 선원이 참선수행을 위주로 하고 있었으므로 조실스님도 억지로 강요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달 가량이 지나자 안타깝게도 사고가 터졌습니다. 서울에서 승합차를 타고 월명암을 찾아오던
신도들이 논산 근처에서 트럭과 충돌하여 한 명이 죽고 두 명이 크게 다친 것입니다.
그 소식을 접한 월인스님은 참회발원정신을 했던 첫 안거 때 부안에서 범죄가 사라졌던 일을
상기시키면서 다시 대중스님들을 설득했습니다.
"이 도량을 옹호하고 우리 승단을 돌보는 신장님의 가피력이 없다고 할 수가 없다. 또 우리가 참회발원
정진하는 바른 뜻이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보살행을 실천하고자 함에 있음을 잊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하자."
이에 대중스님들은 모두 조실스님의 말씀을 따랐고, 이후 월명암에서는 십악참회와 발원문 정진을
계속 행하고 있습니다.
' 살생중죄 금일참회'로 시작하여 '치암중죄 금일참회'로 끝나는 이 짧은 십악참회문이 여름 한철동안
부안군을 범죄없는 지역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대중스님들이 거부하여 참회정진을 멈추자
묘하게도 월명암과 직접 연결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일을 우연의 일치로 생각하는 이도 있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참회의 공덕입니다. 참회를 한 공덕은
'나'의 잘못만 녹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주위까지 맑혀줍니다. 반대로 참회를 거부하게 되면 '나'주위까지를
힘들게 만듭니다.
부처님께서는 <대승본생심지관경 大乘本生心地觀經>에서 참회의 십종공덕을 설하셨습니다.
1. 참회는 능히 번뇌煩惱의 땔감을 태우고
2. 참회는 능히 천상天上에 태어나게 하며
3. 참회는 능히 사선 四禪의 낙樂을 얻고
4. 참회는 능히 마니보주 摩尼寶珠를 내리게 하며
5. 참회는 능히 수명을 금강 金剛과 같이 늘이고
6. 참회는 능히 언제나 즐거운 상락궁 常樂宮에 들어가게 하며
7. 참회는 능히 삼계 三界의 감옥을 벗아나게 하고
8. 참회는 능히 보리 菩提의 꽃을 피우며
9. 참회는 능히 부처님의 대원경지 大圓鏡智를 보게하고
10. 참회는 능히 가장 좋은 보소 寶所에 이르게 한다.
또한 월인 조실스님의 2542년 부처님오신날에 다음과 같은 법문을 주셨습니다.
" 언제나 나는 참회하고 발원하는 마음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십의 나이에
내 소으로 빨래를 하고 생식 生食을 하며 사는 것도 나의 덧없는 일생을 참회하고 간절한 발원의 마음을
다잡아가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살아온 나날들과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을 때때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참회입니다.
돌아볼 줄 아는 사람에게는 헛된 마앗ㅇ의 끄나풀에 뒤엉켜 온갖 악업을 지어내는 흉한 모습이 보일것입니다.
진실로 참회합시다. 오늘날 세상이 살기 어려워진 것도 한때 정신을 못차리고
들떠 살았던 시절의 업보가 아닙니까? 보다 나은 내일을 원한다면 그만큼 어제를 참회하고 지금 발원을
해야 합니다.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모든 죄업을 참회하고 청정수행에 힘써
나와 남이 다 성불할 수 있도록 발원하는 데서 밝은 내일의 해가 떠오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처럼 참회를 하면 그토록 큰 공덕이 쌓이고 월인스님의 말씀처럼
오늘의 우리에게 정녕 필요한 것이 침화이거늘, 어찌 업보중쟁인 우리가
참회를 잊은 채 살 것입니까?
참회진언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출처 : 김현준 원장님의 불교신행총서
작성자 : 베가번스(선흥심)
추천 : 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