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많이 듣다 보면,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기한 경험을 하는 때가 있다. 감상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연주를 듣고 되레 그 연주는 물론 그 연주자와 심지어 해당 곡조차 싫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카라얀의 마지막 녹음으로 알려진 그 유명한 브루크너 7번(DG)과
이무지치의 비발디 "사계" 가 그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카라얀의 브루크너 7번의 경우,처음 그 음반을
구입하여 들었을 때. 그 화려하고 아름다운 사운드에 넋이 나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이 연주를
군대에서 100일 휴가를 나와서 "음악이 너무나 배 고픈 상태"에서 다시 들었지만, 3악장까지도 채 듣지
못하고 스톱 버튼을 눌러버리고 말았고, 뭔가 이상한 기운이 나를 엄습했다. 이 사건은 한동안 내가
지독한 카라얀 안티가 되었던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군 제대 이후에도 1년 가까이 브루크너를
거의 듣지 않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지금이야 카라얀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좋은 연주는 좋다,
그렇지 않은 연주는 그렇지 않다라고 논할 수 있지만).
비발디 "사계" 연주에 있어서 절대강자로 군림해 온 "이 무지치"도 나에겐 마찬가지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
께서 퇴근하면 틀어 주시곤 하던 "사계"의 LP도 바로 그들의 연주였다(59년 아요와의 첫 녹음임). 유치원
다니던 어린 시절, 그 음악은 그저 좋았다. 그런데 중학교 시절부터인가, "사계" 가 지겹게 들리기 시작했다.
검증된 최고의 명연이라는 이 무지치의 연주에서 그런 걸 느꼈으니, 다른 연주는 생각해 볼 가치도 없다고까지
느꼈다. 어느 순간 나에게 있어 "사계"는 가장 싫어하는 음악 1순위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위험한 생각이란 것을 잘 알지만, "사계"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음악적인 안목이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가지고 있던 사계 음반들은 모두 중고장터에 팔려 나갔으며, 라디오를 듣다가도 "사계"가
나오면 채널을 돌려 버릴 정도로 그 곡에 대한 혐오감은 극에 달했다. 가장 유명하다는 "사계"가 이 정도인데,
그 때 당시의 내 생각으로는 비발디의 다른 음악들은 "들으나 마나" 였다. 더군다나 동시대에 활동했던(비발디
보다 약간 후배이기는 하지만) 바흐를 열심히 듣던 나에게, 체계적이고 정밀한 바흐에 비해 비발디는 단순하고
유치하게 들릴 뿐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나의 취향을 상당부분 많이 변화시켜 놓았다. 어느 날 나는 네이버 캐스트를 보다가, 비발디의
"화성의 영감"칼럼이 나오는 것을 보고 무심코 호기심이 생겨서 제공된 음원을 들어 보았다. 그런데 여태껏
가지고 있던 비발디에 대한 인상은 눈녹듯 사라졌다. 원전연주의 산뜻한 음향으로 듣는 비발디는 너무나
상큼하고 역동적이며 아름다웠다. 비발디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깨는 데는 네이버 캐스트에
제공된 음원 단 3분 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제야 내가 비발디를 그토록 하찮게 여겼던 이유가 나온 것이었다.
뭔가 느낌이 왔을까, 나는 당장 시드니 시내에 있는 CD shop으로 달려가 호그우드의 비발디 박스셋을 구입했다.
호그우드가 전해 주는 비발디는 참으로 상쾌했다.(여기엔 "사계"도 포함되어 있다.)
"이 무지치"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하기 이를 데 없는 의견이지만, 나의 선입견의 원인은 바로
"이 무지치"였다. 그들의 "사계"를 포함한 비발디 연주들의 권위성이 다른 연주를 들어보는 것조차 막고 있었다
이것 참;;인간은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가?? 수많은 바흐의 원전 연주들을 들어보고 헨델도 마찬가지
지만, 그 상태에서조차 나는 비발디에게만큼은 "이 무지치"라는 기준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기준이
내 머릿속에 부정적으로 형성되어 있으니, 비발디가 좋게 들릴 리가 있었겠는가?
이 원인을 알아낸 이상, 내게 "이 무지치"는 "굿바이"가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원전연주들의 상쾌하고 선명한
연주들에 익숙해진 이상, "이 무지치"같이 프레이징이 지나치게 길고 낭만적인 연주 스타일을 가진 단체는
더이상 나에게 메리트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비발디도 나에겐 매력있는 바로크 작곡가 중 한 사람이다.
물론 "이 무지치"의 연주에 여전히 감동을 받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벗어난다면 또다른 음악의
세계가 보인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번스타인의 말러는 말러리안들에게 절대 피해갈 수 없는 존재지만,
번스타인의 말러를 벗어나면 역시 너무나 많은 말러의 스펙트럼을 체험할 수 있는 것처럼.
첫댓글 아주 좋은 글이네요. 저도 가끔 그런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소위 "명곡"이라 불리우는 곡들은 너무 들어서 식상해져서 한동안 안듣다가 어느날 문득 라디오나 커피숍 같은데서 흘러나오는 것을 들어보면 또다시 귀를 기울이게 되는 그런 경험들 한두번씩은 있을거예요. 음악이 귀를 즐겁게 해주기는 하지만 때로는 편견 때문에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좋은 음악이란 그저 들어서 즐거우면 그게 좋은 음악이라 생각합니다. 너무 분석적이거나 혹은 권위적이거나 현학적이지 않게 음악을 듣는것.. 저는 그렇게 음악을 듣는 편입니다.
저 아직까지 감동받은연주를 다시 들을때에 그 감동을 고스란히 되받기가 힘들어서, 감동받았던 연주가 담긴 앨범은 구매하지만, 정작 세번이상은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감동을 받았던 연주인데, 감동을 다시 주지 않는다니...이건 배신이지요.ㅋㅋ
정말 배신 맞습니다.ㅋ 칼뵘의 부르크너 8번(DG)는 처음 들었을 때 엄청난 감동을 주었지만 정작 나중에 다시 들어보니 바로 구석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