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조화(天地造化)가 이루는 야화(夜話) 백송(白松)
천석꾼 부자 백 진사…폐병 걸린 7대 독자와 시들어가는 백송 걱정에 한숨
그해 봄, 아들이 색주집을 드나들고 백송 가지마다 솔방울 달리는데…
백 진사는 새벽닭이 울 때까지 이 걱정 저 걱정으로 잠을 못 이뤘다. 그러다가 홑적삼만 걸친 채 밖으로 나와 구름 걷힌 하늘에 오랜만에 두둥실 떠오른 만월(보름달)을 쳐다보고 간청(懇請)했다.
“천지신명(天地神明)이시여, 소인(小人)을 데려가고 두 목숨을 살려주소서.”
천석(千石)꾼 부자(富者) 백 진사(進士)가 제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두 생명(生命)은 무엇인가? 하나는 7대 독자(獨子)인 아들 윤석이고, 다른 하나는 백송(白松)이다.
열일곱살 윤석이는 폐병(肺病)이 깊어 기침이 끊이질 않고, 밤이면 요강에 검붉은 피를 토(吐)한다. 파리한 얼굴에 두 눈은 쑥 들어가고 광대뼈는 솟아올랐다. 키는 삐죽하게 컸지만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했다. 아들이 둘만 있어도 이렇게 걱정하지 않으련만 윤석이는 7대(代) 독자(獨子), 대가 끊어질 판이다. 팔도강산(八道江山) 용하다는 의원(醫員)은 다 불러 탕제(湯劑)를 달여 먹여도 백약(百藥)이 무효(無效)다. 개소주에 진국을 시도 때도 없이 먹여도 윤석이는 바짝바짝 말라만 간다. 그렇게 열심히 하던 글공부도 접었다. 과거(科擧)가 대수인가, 사람이 살아야지.
뒤뜰 별당 앞에 우뚝 선 백송도 걱정거리다. 8대(代) 조부(祖父)께서 청나라 사신(使臣)으로 갔다가 화분(花盆)에 심은 흰 소나무를 가져와 손수 심은 것이다. 이후 매년(每年) 식재(植栽)한 삼월 닷샛날에는 백송(白松) 앞에 떡 벌어진 생일상(生日床)을 차렸다. 줄기가 새하얀 백송(白松)은 참으로 귀한 소나무인데, 이름값을 하느라 좀체 솔씨가 발아(發芽)하지 않아 손을 퍼트리지 않으니 더더욱 희귀(稀貴)하다.
8대 조부(祖父)는 문중(門中)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백송을 호적(戶籍)에 올렸다. 그런데 몇 년째 백송(白松)의 가지가 시들시들 마르고 봄에 솟아나는 솔순이 빈약하기 그지없다. 막걸리를 붓고 쇠고기를 썩혀 백송 옆에 묻어두고 별별 거름을 다 써도 백송은 갈수록 생기(生氣)를 잃어간다.
그해 봄, 수심(愁心)이 가득 찼던 백 진사(進士)의 얼굴이 펴지기 시작했다. 백송(白松) 가지마다 솔방울이 바글바글 달리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윤석이가 저잣거리 색주(色酒)집을 드나들며 여색(女色)에 탐닉(耽溺)했다는 소식(消息)도 들었다. 백 진사는 무릎을 탁 쳤다.
“그래, 봄이 왔어! 만물(萬物)이 소생하는 봄! 백송도 살아나고 우리 윤석이도 춘색(春色)에 물들었어.” 집사가 소문(所聞)을 수시(隨時)로 주워와 백 진사에게 귀띔했다. 윤석이가 빠진 색시는 한둘이 아니었다. 이 색주(色酒)집, 저 기생(妓生)집에서 이색시, 저기생 닥치는 대로 치마를 홀라당 벗겼다.
어느날 백 진사 사랑방에 노스님이 찾아왔다. 백 진사는 곡차(穀茶)를 주고받으며 이런 상황을 노스님에게 들뜬 목소리로 전했다. 차분히 듣고 난 노스님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드님과 백송이 봄 기운(氣運)을 맞은 게 아니라 가을 찬서리를 맞은 것입니다. 소나무가 솔방울을 많이 맺는 것은 자신이 죽기 전에 자손을 퍼뜨리려는 자연(自然)의 섭리(攝理)입니다. 마찬가지로 폐병(肺病)이 깊은 아드님이 여색에 몰두(沒頭) 하는 것도 제 생명(生命)이 꺼지며 자손(子孫)을 남기려는 인간의 종족본능(種族本能) 입니다.”
백 진사는 술잔을 연거푸 비우더니 고개를 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전생(前生)에 무슨 죄(罪)를 지었는가!” 무슨 악업(惡業)이 있는건가?.
노스님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 혹독(酷毒)한 춘궁기(春窮期)에 이웃들은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할 때 진사 어른은 백송에 진수성찬(珍羞盛饌) 생일상(生日床)을 차려주고, 대궐(大闕) 같은 집에 아드님 방이 있는데도 뒤뜰 백송 옆에 호화(豪華) 별당(別堂)을 또 지었지요.”
“여봐라~.” 백 진사의 고함(高喊)에 집사(執事)가 우르르 달려왔다.
“곳간을 열어 젖히고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집으로 오라 해라.” 모두 나누어... 주라. 그러나 너무 늦었다. 폭우(暴雨)에 천둥번개가 치던 밤, 백송은 벼락에 쓰러지고 피를 한 요강씩 토(吐)하던 7대 독자 윤석이도 이승을 떠나고 말았다.
이듬해 정월 대보름, 시름에 젖은 백 진사네 집은 그야말로 적막강산(寂寞江山)이다. 그때, 윤석이가 죽고 나자 말 없이 백 진사네 집을 나갔던 열아홉살 찬모(饌母)가 불알 달린 갓난아이를 안고 돌아왔다. 봄볕이 완연(完然)할 때 뒤뜰 남향받이 담 앞에 백송 한포기가 앙증맞게 올라왔다. 주야장천 누워 있던 백 진사도 기지개를 켰다.
※ 찬서리 내리던 추운 겨울이 가고 새봄이 옹겅가?. 백송도 푸르게 자라면서 찬모가 데려온 아들도 건강(健康)하게 자랐다. 관상(觀相)은 말할 것도 없고 몸매까지 점점 죽은 7대독자 윤석을 꼭 닮아 가고..아마도, 윤석이 환생(幻生)해서 8대독자가 생겨난기 아닌가 추측해 본다. 아니여 모두 글쟁이들의 말 장난이여. 이모든 것이... 우 문사(禹 文士) 글.
첫댓글 지금까지 야화를 100여회 정도 올렸습니다. 댓글 달아주신 회원님께 우선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수집한 자료 정리는 이런 과정을 거쳐 올려 드립니다.
자료 수집(농민신문 사랑방 야화) 후 출력을 한 후에, 느슨한 것은 조이고 과감하게 성인들의 뇌를 자극하는 문구로 수정한 후 적당하게 한문을 석습니다. 전체 문장중 2회이상은 반복되지 않게 하고 A4용지 2장 분량에 맞게 내용을 삭제 또는 추가하고 마지막에 제3자의 입장에서 간단한 평을 해봅니다. 오탈자 방지를 위해(특히 한자) 한번더 검토후 게재 합니다. 한컷 올리는데 약 1시간 정도 공부하는 노력이 소요 됩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자료 정리차 쉽니다..... 11월 부터 줄창 100여회를 주단위로 올립니다. 댓글을 많이 달아 주시면 힘이 하늘로 솟습니다. 많을 성원을 .... 아주 감사 합니다. 문사 우호기 배
생존보전을 위함은 동,식물 모두가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깨닦게 하네요
옛부터 전해내려오는 야화는 참으로 우리네 인생살이를 뒤돌아보게 하네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