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기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것을 체감한 자의 고백
김미옥 저,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를 읽고
왜 글을 쓰냐는, 아니 어떻게 그렇게 계속 글을 쓸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나는 항상 '절박함'을 든다. 인생의 낮은 점을 지나며 내 영혼이 차갑게 생기를 잃어가고 있을 때였다. 내게 따스한 기운을 불어넣어 준 것이 '읽기'였다. 그리고 끝내 주저앉지 않고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 준 것은, 저자 김미옥처럼, '글쓰기'였다. 글쓰기는 내게도 안식이자 도피처이자 탈출구였고, 나는 그로 인해 깊은 위로와 치유를 경험했다. 저자에게 글쓰기의 첫걸음은 '삶에 대한 열망'이었다. 나도 비슷하다. 표현을 달리 하자면, 내게 글쓰기의 첫걸음은 '미치지 않고 살아남기'였다고나 할까. 처한 환경과 맥락은 다를지라도, 읽기와 쓰기는 시공을 초월하여 저자 김미옥에게도, 그리고 독자 김영웅에게도 동일한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단 두 페이지의 '책머리에'만 읽고도 나는 읽기와 쓰기에 대한 믿음과 그것을 체감한 자의 고백이 백이십 퍼센트 공감이 되어 지인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이 책을 읽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타자의 상처와 여백을 어떻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겠냐마는 어쩐지 나는 이 책의 서두만 읽고도 저자를 알아버린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까 (물론 착각이겠지만).
결핍이 창조의 전신이라고 하면 경솔한 말일까.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은 한결같이 결핍을 머금고 있다. 그들은 그들만의 언어로 그들의 상처와 아픔을 노래하고 그 허한 여백을 넘치도록 채운다. 뿐만 아니다. 그 결핍과 충만의 방정식을 저마다의 삶의 맥락에서 체득한 자들에게 확성기가 되어 먼저는 공감을 그다음으로는 위로와 치유를 선물한다. 텍스트가 미처 담아내지 못하는 것들을 결국 텍스트가 전달하게 되는 이 놀라운 화학작용. 나는 이를 '신비'라고 부른다. 이 신비를 맛본 작가들의 글은 언제나 반갑다. 그리고 고맙다.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것 같아서, 그리고 아무나 할 수 있으나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의 소중함 앞으로 나를 다시 데려다주어서 말이다.
이 책은 여러 책들을 소개한다. 그러나 이 책을 단지 서평집으로만 읽을 수는 없다. 기계적 서평의 느낌은 전혀 나지 않는 동시에, 마치 읽지 않고 함부로 아는 척하는 경박함도 일절 없다. 그저 한 명의 독자로서, 그리고 한 명의 '제2의 저자'로서 작품의 객관적인 해석은 물론, 주관적인 통찰까지 리듬감 있는 문장력과 따뜻하고 배려 깊은 문체로 아우른다. 또 하나의 장르를 개척한 듯한 느낌도 든다. 서평과 칼럼과 에세이의 하이브리드랄까. 일독을 권한다. 특히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두 배로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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