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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하고 겸손한 그리스도 품성소유자의 선교사업
인간의 행복은 모든 영혼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참된 예의를 실천하는, 그 능력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행복을 얻도록 도와주는 것은, 찬란한 재능들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며, 다만 매일의 의무를 양심적으로, 수행하는 데서 얻어지는 것이다. 친절한 표정, 겸손한 정신, 만족한 기질, 흔들리지 않는 심지(心志:마음의 지조), 다른 사람들의 복리를 위한 성실한 관심 등, 이러한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인 생활에, 도움을 주는 요소들이다.
만약 예수님의 사랑이 마음에 가득 찬다면, 이 사랑은 생애를 통해서 나타날 것이다. 우리들은 자기의 주장을 고집하거나 완고하고, 이기적인 억지로써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무모한 결심을 나타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육체적인 건강은, 정신적인 건전성에 달려 있다.(2SM 237.1) 큰 위기가 이 세상에 다가오고 있다. 성경 말씀은 ‘로마’ ‘가톨릭교’가 또다시 그의 최상권을, 회복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소위 개신교 세계의 지조 없는 양보에 의해서, 박해의 불길이 다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위기에 처하여 우리들은 하나님의 진리와 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에만 능히 그날에 설 수 있다. 사람들은 저들 스스로 거룩한 성품의 참여자들이 될 때에, 비로소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우리들은 지금 성경을 읽고 연구함에 있어서, 인간의 지혜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 만약 우리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다면, 그분께서는 우리가 불법의 세력을 대항하도록 표준을 높여주실 것이다.(2SM 367.4)
그러나 세상이 하나님의 율법을 무효로 할 때에, 참으로 순종하는 의로운 자에게 어떠한 결과가 이를 것인가! 저들 역시도 악의 거센 물결에, 휩쓸리고 말 것인가! 허다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흑암의 왕의 깃발 아래,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들의, 충성심이 흔들리게 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단 한 영혼도, 실패하거나 타락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추종자들은 이 세상의 어떤 주권자보다도, 높으신 권위자에게 저들의 순종심을 보일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경멸하게 여길 때 많은 사람들은, 진리를 억압하고 진리에 대한 경외심을 잃게 되는 반면에, 충성된 자들은 보다 열렬한 정신을 가지고, 고상한 진리를 위로 높이 쳐들 것이다. 우리는 제멋대로, 가도록 방치되지 않았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그분께서는 우리의 갈 길을, 지시해 주실 것이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상고하고, 주님의 권고를 구해야 하며 우리의 뜻을, 주님의 뜻에 맡겨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2SM 368.2) 방탕과 이단과 배반이 세상에 채워질 때, 진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자들이 드리는 기도, 진지한 통회의 기도가 겸손한 가정들에게 있을 것이며, 하나님께 자행된 불명예의 누르는 무게를, 느끼는 많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생각이 너무 좁으며 판단이 어설픈데, 이는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비춰진, 모든 빛줄기를 마음에 품었으므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것이기 때문이다.(3SM 400.1)
사람들이 예수님을 쳐다보았을 때, 그분의 얼굴에서 거룩한 동정심, 그리고 그들이 감지할 수 있었던 바, 능력이 섞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분은 영적 생명의 분위기에, 싸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분의 태도는 친절하고 겸손한 반면에, 그분께서는 감추어 있으면서도 완전히 숨겨질 수 없는, 어떤 능력을 소유하고 있음을 사람들에게 느끼게 하였다.(YHH 263.3) 그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의 거룩한 약속을, 굳게 붙드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가능성[구원을 향한 기대와 혜택]이 있다.
그들 앞에는 진리의 넓은 평원과 능력의, 큰 자원(資源:성령의 모든 인도함)이 놓여 있다. 영광스러운 사물(賜物:하나님의 은혜)들이, 계시(啓示:깨우쳐 보여주게) 되어야 한다. 그들이 성경 가운데 있으리라고 생각조차 못한, 특권과 의무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겸손한 순종의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더욱 깨닫게 될 것이다.(YHH 351.5)
“불법의 비밀”은 처음에는 조금씩, 조금씩 비밀리에 그리고 조용히, 그리고 나중에는 세력이 커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자, 더욱 공공연하게 그의 기만적이요, 참람(僭濫:창조주를 대적하는 불법) 된 일을 진척(進陟:계획 된 일을 실행)시켰다. 이교의 관습은 거의 드러나지 않게 조금씩, 조금씩 그리스도교회 안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양보와 순응주의적(順應主義的:주께 순응하는) 정신은 교회가 이교 아래서, 견뎌낸 맹렬한 박해로 말미암아 한동안 방치(放置:그대로 흘러가게)되었었다.
그러나 이제 박해가 그치고, 그리스도교가 왕궁 안으로 들어가게 되자, 교회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도들의 겸손한 단순성을 버리고, 이교의 제사장이나 방백(方伯:봉건제후)들의 교만과, 허식(虛飾:허례허식)을 따르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율법을, 사람의 이론과 유전으로 대체시켰다. 4세기 초엽에 있었던 ‘콘스탄티누스’ 왕의 이름뿐인 개종은, 큰 기쁨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실상은 세상이 의(義:그리스도의 의가 아닌 사람도리)의 형식적인 탈을 쓰고, 교회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리하여 타락이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표면적(表面的:겉으로 보이는 것)으로는 이교가 정복 당한듯하였으나, 실상(實狀:실제상황)은 [이교의 기만으로 그들이] 승리자가 되었다. 이교의 정신이 온 교회를 지배하였다. 이교의 교리, 의식, 미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의 예배와 신앙에 혼합(混合:비진리가 섞이게)되었다.(GC 49.2) ‘갈마이어’[독일의 복음주의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은, 셋째 천사의 큰 외침에 관한 기별을 주장하였으며, 자기의 주장을 기사화하여 출판[제목-역사 비판적 벙법의 종말]하였다.(잠9:1 참조 - 지혜의 진리를 완전하게 세움)
그는 형제가 지금 말하고 있는 내용과, 비슷한 방법으로 교회를 비난하였다. 그는 교회 지도자들이 스스로 높이는 정신 때문에 모두 타락할 것이며, 다른 부류에 속하는 겸손한 사람들이 나와, 그 자리들을 차지하여 놀라운 일들을 행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 사람에게는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말들이 있었다.(2SM 64.3) 그러나 그의 겸손한 태도와 그의 성실성과 그의 열성과, 깊은 인상을 남겨 주는 호감은 자주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다. 그들은 처음에 너무나 경탄하게 되고 다음에는, 기쁨으로 감격하여져서 압도당하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들이 자기들의 집으로 가자고 강권하게 되면, 그 진리의 사자는 잃어버린 양떼를, 찾아가야 한다고 대답하였다. 사람들은 그가 혹시 천사가 아니었던가 하고 의심하기도 하였다.(GC 75.3) 극히 신중하고 겸손한 태도로 그러면서도 단호하고, 확고한 태도로 그는 일을 시작하였다.
그는 말하였다. “폭력으로 세워진 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너뜨리고 파괴해야 한다. 나는 미신적이거나 불신적인 사람들에 대하여, 폭력을 쓰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강요당해서는 안 된다. 신앙의 근본요소(根本要素:기본적인 조건과 필요)는 자유이다”(GC 189.2) 하나님의 자녀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들은 선교사로서 모든 계층의 사람들과 접촉해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거기에는 고상한 사람과 무례한 사람, 겸손한 사람과 교만한 사람, 믿음 있는 사람과 회의적인 사람, 교육받은 사람과 무식한 사람,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등이 있다. 그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동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친절과 동정을 요구하고 있다. 상호간의 접촉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은 연마(硏磨:갈고 닦아야)되고, 고상(高尙:높은 숭상을 받게)해져야 한다. 우리는 형제로서의 유대관계를 가지고 서로 의존하고, 다 함께 밀접히 결속되어 있다.(YHH 377.3)
그대의 사업에 있어서 여가 시간을 이용한, 교제에 있어서 생애의 모든 약속에 있어서, 그대가 이루는 모든 교제는 열렬하고, 겸손한 기도로 시작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그대는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실을, 나타내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영화롭게 해주실 것이다. 그대가 상심(傷心:마음이 상하게) 될 때 기도하라. 실망 중에 있을 때에는 입을 굳게 다물고,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 다른 사람들의 앞길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지 말고, 모든 것을 예수님께 아뢰라.
그대의 손을 뻗어 그분의, 자비와 긍휼의 도움을 구하라. 그대의 연약한 상태에서, 무한한 능력을 붙잡으라. 그대가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빛을 보고, 그분의 사랑 안에서 기뻐할 수 있도록, 겸손과 지혜와 용기와 믿음의 증진을 위하여 기도하라.(YHH 386.2) 도처(到處:여러 곳)에서 엄숙한 증거의 소리가 들렸고, 죄인들을 경고하고, 세상 사람들과 교인들에게 다 같이 장차(將次:미래에) 올, 진노(震怒:재앙과 심판)을 피하라는 경고가 주어졌다.
전도자들은 그리스도의 선구자(先驅者:선지자) ‘침례요한’처럼 나무뿌리에 도끼를 놓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권고하였다. 그들의 감동적인 호소는 일반 강단에서, 전해지는 평화와 안전을 보증하는 설교와는, 현저(顯著:확신이 드러나고 분명)한 대조(對照:대비)를 이루었다. 그리하여 복음을 전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 단순하고 직접적인 성경 말씀의 증언은, 성령의 능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졌고, 도저히 항거(抗拒:맞서서 대항)할 수 없는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신앙인이라고 공언하던 사람들이, 거짓된 안일(安逸:편안한)상태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타락, 속화(俗化:세속화), 불신, 자존심, 이기심들을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세상에 두었던 애정을, 하늘에 두게 되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셨으며, 그들은 부드럽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계14:7)다는 기별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였다.(GC 369.1) 일반 그리스도교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성경 말씀에 대한 애매하고 이상한 해석과, 종교적 신앙에 관한 여러 가지 모순된 이론은,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케 하며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의 큰 원수가 하는 소행[미혹하는 행동]이다. 그리스도교계의 여러 교회에 존재하는 불화와 분열은, 주로 좋아하는 이론을 지지하기 위하여, 성경을 곡해하는 일반적 습관에 기인(基因:근본원인이)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을 주의 깊이 연구하지 아니하고, 다만 새롭고 기이(奇異:기적적인 이상)한 것을 발견하기 위하여 연구한다.(GC 520.3) 성경상[성경말씀의 진리대로 순종한] 성화를 체험한 사람은, 겸손한 정신을 나타낼 것이다. 성결(聖潔:거룩하고 깨끗함)의 두려운 위엄(威嚴:지대하고 거룩하신 엄숙함)을 목격한 사람들은 ‘모세’처럼 무한하신 하나님의 순결하심과 완전하심에 비하여, 그들 자신의 무가치함[속절없고 가치 없음)을 깨닫게 된다.(GC 470.2)
나는 우리 신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조심스럽게, 그리고 신중하게 행하기를 바란다. 건강원칙에 일치되는 한도 내에서 의복의 습관을 따르라. 우리 자매들은 많은 사람들이 행하는 것같이, 이 시대에 알맞은 좋고도 질긴 감으로, 만든 옷을 입음으로 수수하게 입을 것이며, 의복문제로 정신을 지나치게 쓰지 말 것이다. 우리 자매들은, 단순하게 옷을 입어야 한다. 저들은 얌전하고 단정하게 겸손한 복장을 입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속사람을 장식한, 산 실증(實證:실제적 증명)을 세상에게 보여라.(CCh 180. 6)
[자매는 긴 머리와 몸에 달라붙지 않고, 쇄골과 팔 굽과 무릎이 보이지 않는, 치마 등의 정숙하고 아름다운 복장이 선지자의 권유사항이며, 형제는 머리를 짧게, 복장은 앞섶이 닫혀 있는 복장의 단정함이 좋다.- 안식일과 대중모임 등의 예배 시는 제사장의 예복을 참고하면 틀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불신자들에게 감화를 끼치기 위하여, 세상과 같이 옷을 입는다. 그러나 저들은 여기에서 슬픈 오류를 범하고 있다. 저들이 만일 참되고 구원하는 감화를 끼치기 원한다면, 저들은 저희가 공언하는 대로 살아야 할 것이요, 저희의 의로운 행위로 믿음을 보여줄 것이요,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과 사이에 있는 구별을, 명백히 해야 할 것이다.
말과 의복과 행동이, 하나님을 대표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때에 거룩한 감화가 그들의 사방 주위에 비칠 것이요, 불신자들까지라도 저들이 예수와 함께 거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무라도 저희의 감화로 진리를 대변하게 하기를 원한다면, 저희가 공언하는 대로 생애 함으로써, 겸손한 모본이신 분을 따라야 할 것이다.(CCh 182.5)
안식일을 지키는 젊은이들이, 쾌락을 좇고 있다. 나는 체험적 신앙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20명 중 한 사람도 안 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변화를 위한 욕망, 오락을 위한 욕망을 충족시켜 줄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붙잡고 있다. 그들이 비로소 깨닫고 그들의 지각이 일깨워져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빌3:8)고 마음에서 우러난 말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으면, 그들은 그리스도께 무가치하고 영생을 얻기에도 부족할 것이다.
젊은이들은 일반적으로, 무서운 기만에 빠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경건을 공언한다. 그들의 헌신하지 못한 생애는 그리스도인의 이름에 부끄러움이 되고, 그들의 모본은 다른 사람들에게 올무[덫의 무기]가 된다. 그들은 죄인에게 방해가 된다. 그들은 거의 모든 면에서, 불신자들보다 더 낫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순종하는 자들과 성실한 자들에게 주는, 용기와 약속은 물론이요 그 말씀의 경고와 권고와, 책망과 교정[바르게 고쳐나감]에 유의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약속은 모두 겸손한, 순종을 조건으로 주어진다. 오직 하나의 모본만이 젊은이들에게 주어져 있다. 그러나 그들의 생애를 어떻게, 그리스도의 생애와 비교해 보겠는가? 나는 도처에서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젊은 남녀들의, 경박한 행동을 목격할 때 놀라움을 느낀다. 그들의 사상에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의 정신은, 의미 없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그들의 대화는 다만 공허하고, 헛된 이야기뿐이다. 그들은 음악에 민감한, 귀를 가지고 있다.
사단은 마음을 흥분시키고 고무시키고 빼앗고, 매료시켜 그리스도를 바라지 않게 하기 위하여, 신체의 어느 기관을 흥분시킬 것인지 안다. 거룩한 지식 은혜 안에서의 성장을 위한 영혼의, 영적갈망은 결핍되어 가고 있다.(1T 496.1) 식욕의 만족으로 위를 남용하는 것이 교회가 겪는, 대부분의 시련 중 많은 근원이 된다. 부절제하고 불합리하게 먹고 일하는 자들은, 합당하지 않게 말하고 행동한다. 부절제한 사람은, 인내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
부절제하기 위하여, 술을 마실 필요는 없다. 부절제하게 먹고, 너무 자주 먹고, 너무 많이 먹고, 사치스럽고 불건전한 음식을 먹는 죄는, 소화기관의 건전한 기능을 파괴하고, 뇌에 영향을 미치며 판단력을 왜곡시키고, 합리적이고 침착하고 건전한 생각과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하여 이것이 교회의, 어려움 중 많은 근원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가납되는, 상태가 되어 그분의 소유인 몸과 마음으로, 그분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관심과 열성을 다하여, 그들의 식욕의 만족을 부정하고,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한다. 그리하면, 그들은 진리를 아름답고 분명한 그대로 깨달아, 그들의 생애에 실천하게 되고 현명하고 슬기롭고 솔직한 행동으로, 우리의 믿음의 원수들에게 진리의 사업을, 비난할 기회를 주지 않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육체적으로 최선의 건강상태에서 특별하고, 꾸준한 노력을 하기를 바라신다. 엄숙하고 중요한 사업이, 우리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육체와 마음의 건강이 이 사업을 위하여 필요하다. 그것은 건전한 신앙적 경험을 위하여, 그리스도인 생애의 발전과 거룩함의 향상을 위하여, 손과 발이 인간의 육체에 대한 것처럼 요긴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이 육체와 정신의 온갖 더러움에서, 스스로 깨끗케 하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이루기를 바라신다. 이 일에 무관심하고 스스로 핑계하면서, 그들 자신이 하도록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바를, 주님이 그들을 위하여 해주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든 자들은,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이, 주님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받을 때에 부족함이 드러날 것이다.(1T 618.3)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늘날 이렇게 영적으로, 눈먼 상태에 처하여 있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그들이 고침을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임을 나는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책망과 경고를 멸시하였다. 이 기다리고 깨어 있어야 할 시기에, 사단이 그들 위에 큰 능력을 행할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지근한 상태를, 참된 증인은 정죄한다. 이기적이고 교만하며 죄를 사랑하는 자들은, 항상 의혹의 공격을 당한다.
사단은 의심을 품도록 암시하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명백한 증언에 대하여, 반대하는 계획을 세울 능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믿지 않고 이의를 제기하며, 핑계하는 것이 덕이요 그들의 지성의 표라고 생각한다. 의심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그렇게 할 여지가 많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불신의 여지를, 모두 제거하도록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마음과 배우고자 하는 정신으로,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증거를 제시하시며, 모든 사람들은 증거의 중요성에서 결정하여야 한다.(3T 255.1)
하나님의 성령을 통하여 책망을 받는 자들은, 비천한 도구에 불과한 사람을 대항하여,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들을 멸망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말씀하신 분은, 잘못을 범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경고를 멸시하는 자들은 눈먼 가운데 방치되며, 스스로 기만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경고에 주의함으로 필요한 은혜를 얻기 위하여, 죄를 그들로부터 분리하는 일을 열렬하게 실천하는 이들은, 사랑 많으신 주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 안에, 거하시도록 마음의 문을 열게 될 것이다.
그대는 언제나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증언과 완전히 조화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3T 257.1) 현대진리를 전하는 교역자들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보내는, 엄숙한 기별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참된 증인의 증언은, 부드러운 기별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는 거의 옳다. 너희는 결코 받을 이유가 없는, 징벌과 견책을 받았다. 너희는 책망 받은 그 잘못과 죄에 대해 허물이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신다.(3T 257.2)
참된 증인은 그대가 진정으로 번영의 훌륭한 형편에, 처해 있다고 추측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대가, 모든 것이 결핍된 상태에 있다고 선포한다. 교역자들이 이론적인, 주제만 제시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들은 실제적인 주제들도, 제시하여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베푸신 실제적 교훈을, 연구하고 그 동일한 것을 자신과 백성들에게, 밀접하게 적용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께서 이 책망의 증언을 하셨으므로, 그분의 백성에 대한 그분의 부드러운 사랑이, 결핍되어 있다고 우리가 상상할 것인가?
오, 아니다! 인간을 죽음에서 구하시기 위하여, 돌아가신 그분은 거룩한 사랑으로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들을 책망하신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계3:19).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비로 그들에게, 보내신 기별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의무 태만, 잘못, 이기심, 교만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 언급되는 것을 참지 못한다.(3T 257.3)
하나님의 백성은 저들의 잘못을 깨닫고 열심히 회개하여, 저들로 하여금 그토록 통탄스러운 가난과 눈멂과, 곤고함과 두려운 기만 상태 가운데 빠지게 한, 죄들을 벗어 버려야만 한다. 나는 예리한 증언이 교회 안에 살아 있어야 함을 보았다. 이것만이 ‘라오디게아’에 보내는 기별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다. 잘못은 견책을 받아야 하며, 죄는 죄라고 불러져야 하며, 죄악에 대해서 즉시 결정적으로 대처함으로, 한 백성인 우리에게서 벗어버려져야 한다.(3T 260.1)
재림의 진리를 이해하고 그 진리를 전하는 일에, 헌신한 사람들은 소위 학문적인 면에서, 신학자들은 아니었다. 만일 신학자들이 열렬하고 경건하게, 성경을 연구하는 충실한 파수꾼들이었다면, 그들은 어둠의 시기를 반드시 깨달았을 것이었다.
예언은 그들에게 바야흐로, 일어날 사건을 알려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와 같은 위치에 서지 않았으므로, 기별은 보다 비천한 사람들에게 주어졌다. 예수님께서는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요12:35)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주신 빛을 거절하거나,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빛을, 찾는 일을 등한히 하는 자는, 암흑 가운데 버려진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고 말씀하신다.
전심(全心:온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고, 이미 주어진 빛을 열심히 탐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보다 큰 빛을 받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은 사람에게는 모든 진리 가운데로 그를 인도해 줄, 하늘의 광휘(光輝:아름다운 빛을 지닌 광채)를 지닌, 어떤 별[천사]들이 보냄을 입을 것이다.(GC 3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