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淸州)에 가면 무심천이라는 개천이 시내 한 가운데를 흐릅니다. 청주라는 이름이 참 단아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 지명에 그 개천이라고 무심천이란 이름이 너무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무심천은 청원군에서 발원하여 청주시를 동서로 가로질러 흐르다가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부산방면으로 가다가 청주/조치원 톨게이트 우측으로 흐르는 미호천과 합류를 합니다.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천(川)을 끼고 발달한 도시가 다 그렇듯이 무심천도 예외는 아닙니다.
다른 지역보다 일찍이 발전을 한 덕분에 지금은 오히려 밀집된 아파트로 불리는 근대화되고 계획화된 지역이라기보다는 고만 고만한 건물들이 밀집해 있거나 아니면 제방을 따라 들어선 재래시장이 있는 청주에서도 다소 낙후된 지역이지만 그래도 왁짝지껄한 시장사람들의 활기 넘치는 목소리는 한적한 시골의 활기찬 장날을 연상시킵니다.
그런데 그 무심천이 어쩌면 청주보다도 더 유명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름은 무심(無心)인데 세상사에 마냥 무심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선거철만 되면 무심천은 예외 없이 방송국 카메라 앵글을 피해가지 못하는가 하면 장마철이 되거나 기습성(奇襲性) 폭우라도 내리면 꼭 무심천에서 떠내려가는 승용차나 트럭이 화면에 박힙니다.
무심(無心)이란 말은 마음이 없다는 뜻입니다만 사전적 의미 보다는 불교에서 말하는 철학적 의미가 주로 무심 (無心)의 본래의 뜻으로 사용됩니다. 우리 마음은 거울과 같아서 오만가지 더러운 오물로 더렵혀 저 있는데 원래의 거울과 같은 투명한 마음을 무심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체의 잡념이 없는 그 텅 빈 마음속이 불생불멸(不生不滅) 즉 비춤(照)이 있는 마음을 말 합니다. 구름 속에서 찬란한 햇살이 빛나고 있습니다만 구름 때문에 우리가 광명을 보지 못하듯이 우리의 본래 모습은 무심하여 거울처럼 맑기만 한데 다만 먼지가 끼어 제대로 보지를 못 할 따름입니다.
아무 말 없이 흐르는 무심천, 이 지역 출신의 시인인 한 병호 님의 노래처럼,
무심천을 바라본다.
흐르는 물빛도
떠다니는 유람선도 없다.
하루 종일 바라봐도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왔다 구름처럼 흘러가는
바람의 빈 여울목
10년을 바라보아도
100년을 바라보아도
보이는 게 없다.
보이는 건 빈 하늘뿐이다.
어떤 이는
미라보 다리 밑에 흐르는 세느강을 생각한다지만
무심천은
이대로가 좋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대로가 좋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무심천, 아무것도 들리지도 않는 무심천,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무심천이 인간의 방종과 욕심에 화가 났나 봅니다. 그래서 트럭도 뒤엎고 승용차도 쓸어갑니다. 잔득 노(怒)한 강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트럭이랑 승용차를 보면서 이제 사람들도 조금은 무심해 지려는 노력을 하여야 된다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무심천이 맑고 깨끗한 고을인 청주(淸州)를 무심하게 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슴에 맺힌 원망도 눈물도 탐욕도 모두 모두 무심천에 녹이고 맑은 거울 같은 모습으로 10년이고 100년이고 그렇게 바람이 그물을 지나고 허공에 조각구름 사라지듯이 소리도 없고 흔적도 없고 걸림도 없고 시비도 없이 그렇게 무심하게 흘렀으면 좋겠습니다.
산 법
첫댓글 참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 무엇이 찾아왔다가 가도 아무 흔적도 남겨지지 않는 무심한 거울처럼 인간의 오욕 칠정도 그렇게 무심할 수 있다면. // 중국 선종의 6대 조사이신 혜능께서는 깨달음의 게송(偈頌)..." 본래 무일물이거늘 어디에서 티끌이 일어나랴 (...생략...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본래무일물 하처야진애))" 라고 하신 것도 생각나네요... 감사합니다. 꾸벅!
좋은 꼬리 잘 읽었습니다. 6조 말씀 와 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