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하게 차가워지는 공기에 코끝이 찡해지는 계절이 왔다. 이 차가운 공기가 무겁다고 느껴진다면 겨울 포구로 떠나보자. 겨울과 포구라. 이 얼마나 근사한 조화인가. 4계절 한 바퀴를 돌고 새로운 봄을 기다리며 한 박자 쉬어가는 지금, 수도권에서 대중교통으로도 찾아가기 수월한 인천 소래포구를 찾았다. 전철과 버스를 이용해 수도권 웬만한 곳에선 1~2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어린 연인들에게는 차 없이도 바다를 만날 수 있는 데이트 코스로, 가족들에게는 별 부담 없는 나들이 코스로, 주부들에게는 젓갈이며 싱싱한 수산물을 살 수 있는 쇼핑(?) 코스로 사랑받는 이유다. 이쯤 눈치 챘겠지만 소래포구는 수도권 최대의 재래어시장이다. [왼쪽] 인천과 수원을 잇던 협궤열차가 다니던 소래철교를 건너와 바라본 인천 풍경
행정구역을 소개한 김에 소래철교부터 살펴보자. 이곳은 인천 송동과 경기 수원을 잇던 수인선 협궤열차가 다니던 곳이다. 시속 60km로 뒤뚱거리며 달리던 협궤열차 철길은 그 폭이 채 1m도 되지 않는다. 덕분에 ‘꼬마열차’라는 귀여운 별명을 얻을 수 있었다. 이름이야 귀엽지만 이용객들은 마주 앉아 있으면 그 사이를 지나가기에도 불편해 고생깨나 했으리라.
일제강점기, 소금을 실어 나르기 위해 건설한 협궤열차는 광복 후에는 학생들의 통학 수단으로, 1980~90년대에는 낭만과 사랑을 싣고 달리던 이색 철차로 이름을 날리다 1994년 운행을 중단한다. 만성 적자가 큰 이유였다. 이후 홀로 수인선을 증명하던 소래철교는 안전을 이유로 철거될 뻔 했으나 ‘추억과 낭만’을 무기로 살아남았다. 소래포구를 찾는 이들이 원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말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자, 소래철교에 올라보자. 인천의 소래와 경기 시흥의 월곶을 잇는 소래철교는 약 126m 길이. 거뭇하게 시간 때 탄 나무 철로가 보는 재미를 더한다. 데이트나 나들이로 소래포구를 찾았다면 철교 위에서 바라보는 낙조를 기억해두자. 철교 위에서 소래포구 어시장 전경이 한 눈에 펼쳐진다. 오전 밀물 때를 맞춰 하나 둘씩 고깃배들이 들어선다. 이른 아침 좌판에서 만난 이곳 주민들이 “이따 11시 즈음 생새우 배가 들어온다”고 했다. 아직 시간은 이르지만 배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한 걸음에 포구 어시장으로 내려선다. 사람들 온기로 가득찬 겨울 포구의 다양한 표정 [왼쪽] 드디어 기다리던 배가 들어왔다. 배가 들어오자 조용하던 포구는 금방 시끄러워진다 12월 말 주인공은 때이른 주구미와 바닷장어. 주꾸미는 12월말부터 잡히기 시작해 봄에 가장 맛이 좋은 서해안 봄철 별미다
고깃배는 의외로 다양한 ‘짠것’들을 품고 돌아왔다. 고기를 채운 어선들이 들어오자 포구는 활력이 넘친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들며 금방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꽃게는 물론 주꾸미(지금부터 3월 봄까지 주꾸미철)며 장어, 복어까지 다양한 먹거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가끔 힘이 넘치는 것들은 과감하게 탈출을 감행하기도 한다. 금방 다시 잡히긴 하지만 날것의 기운이 싱그럽다. 찬바람을 녹이는 열기다. 날이 밝기 전까지만 해도 쓸쓸하다 못해 처량하기 짝이 없는 겨울 포구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은 서해 바다 어디쯤에선가 잡혀 온 짠것들이다.
[왼쪽] 배에서 내리자마자 즉석에서 벌어지는 좌판. 조용하던 포구가 갑작스럽게 부산스러워진다 [오른쪽] 소래포구 어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젓갈 판매점들이 몰려있다
어시장 바깥으로 자리한 노천상가에서 저렴하게 싱싱한 횟감을 맛볼 수 있다. 겨울 포구 여행의 '화룡점정'은 바로 이 맛이 아닐까 “소래에서 이제 꽃게는 끝물이에요. 지금부터 슬슬 주꾸미가 나기 시작하고 3월쯤 되면 제대로 된 놈을 맛볼 수 있어요. 주꾸미 시즌 즈음 봄꽃게 철이 다시 오지요. 7~8월 금어기 지나고 추석 지나 김장철에는 생새우, 그거 지나면서 물메기 아구 간재미 꽃게 장대 등이 많이 나기 시작해요.”
막 잡아온 ‘짠것’들을 두고 금새 좌판이 벌어진다. 오늘의 시세는 주꾸미 kg에 2만원, 꽃게는 1만5000원, 물메기는 4마리에 1만원, 꽃새우는 한말(4kg)에 1만원이다. 시세는 당일에도 차이가 나기도 한단다. 구경 실컷 했으니 이제 맛볼 차례다. 어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생물 말고도 젓갈을 파는 곳이 많다. 바깥쪽으로는 회나 매운탕, 바지락 칼국수, 생선구이 등을 맛볼 음식점이 빽빽하다. 간단하게 회 한점에 한잔하고 싶다면 어시장 옆 바다를 끼고 나란히 자리잡은 노천식당으로 향하자. 겨울 별미 굴이며 꼴두기회도 보인다. 2~3만원이면 회 한 접시 맛볼 수 있으니 이 정도면 훌륭한 겨울 여행이지 않을까.
여행정보 [교통] 자가운전 수도권→경인고속도로→서운분기점→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장수나들목→장승백이 사거리(남동구청 방면 우회전)→남동구청 사거리(소래 방면으로 좌회전)→소래포구 어시장 <서울시청 기준 1시간20분 소요>
대중교통 전철 1호선 개봉역 버스정류장에서 510번 버스 이용. <1시간20분 소요>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 버스정류장에서 1번이나 790번 버스 이용. <30분 소요> - 인천남동구청 문화홍보실 032-453-2140 - 소래포구 어시장 032-446-4124 - 어촌계 032-442-68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