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로스팅하기 바쁘네요. 매일은 아니어도 이틀에 한번은 하는 거 같아요. 저와 아내 사무실에 가져갈 드립용을 준비해야 하고, 집에서 먹을 드립용도 필요한데다가 에스프레소용도 만들어야 하거든요.
로스팅을 하기 위해선 먼저 생두 중에서 썩거나 벌레가 먹은, 상태가 안 좋은 놈들을 골라내야 하는데 이걸 '핸드 픽(hand pick)'이라 합니다. 제가 원래 근시여서 안경을 쓰는데다가 작년부터는 노안이 와서 이 핸드 픽하는 게 조금 힘듭니다. 그래서 하라, 마타리, 만델링 같이 불량생두 비율이 높은 원두는 기피대상입니다. ^^ 요 얘기는 다음 기회에 한번 하지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블로그 이름이 소위 '커피일기'인데 요즘 여행 쪽으로 넘 치우치는 거 같아서 가끔 방향을 틀어줘야 한다는 압박을 받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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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레소(espresso)는 영어의 express에 해당하는 이태리어입니다. 빨리 추출해서 먹는 커피라는 거죠. 좋은 에스프레소 기준에 몇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13~16g의 가늘게 분쇄한 원두를 9~10기압으로 가압한 88~95도의 물로 25초 내외 (이내가 아님)에 약 2온스(더블 또는 도피오로 불림)를 추출해야 한다는 겁니다. 드립커피는 내리는 시간이 최대 2분 30초 이내인데 이에 비하면 에스프레소 추출시간이 월등히 빠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아래는 미국 커피회사에서 사용되는 에스프레소의 추출공식입니다.
Temperature 200 degrees F. Pack 18 to 20 grams in a double basket.Tamp at 30 lbs slight knock, Shot time 25 seconds m/l
한 가지 에스프레소에 대한 흔한 오해는 진하기 때문에 카페인이 많이 함유되어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건데 오히려 반대입니다. 빠른 시간에 추출되고 게다가 적은 양을 마시므로 오히려 카페인양은 다른 방식의 커피보다 적습니다.
빠른 시간에 커피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압력이 가해져야 합니다. 이 압력을 가하는 방식에 두 가지가 있는데 압력펌프를 이용하는 방법과 물을 끓여 발생하는 증기압을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전자는 소위 에스프레소머신이라고 커피전문점에 가면 볼 수 있는 기계에 적용됩니다. 후자는 모카포트라는 특수설계된 커피포트 또는 염가형 에쏘기계에서 사용되는 방식이죠.
에스프레소가 별 거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세상 거의 모든 것들이 그렇듯이 만만한 게 아닙니다. 어떤 종의 커피생두를 어떻게 구워서 어떤 비율로 배합하느냐부터 분쇄정도, 탬핑 정도, 추출압력, 추출시간 등에 다양한 요소에 따라 맛이 달라집니다. 제대로 추출된 에스프레소에는 갈색 크레마(crema) 층이 생성되는데 소위 타이거 스킨(tiger skin)이라는 줄무늬가 보이고 설탕을 올려놓았을 때 4~5초 정도 가라앉지 않을 정도로 쫀쫀하고 두터워야 합니다.
요즘 에스프레소가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커피점에서 마시는 아메리카노라는 것도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서 묽게 한 것입니다. (미국사람들이 쓰다고 물을 부어 먹기 시작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아~무 이유 없어"는 아니고, 다양한 변형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아메리카노를 비롯하여, 카푸치노, 마끼아또, 라떼 등이 모두 에스프레소를 기본으로 만들어집니다. 단 맛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입맛에 잘 맞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프랑스나 이태리에서는 변형보다는 에스프레소 그 자체를 즐깁니다. 잘 만들어진 에스프레소에는 풍부한 향미와 함께 고소함과 달콤함이 느껴진다고 합니만, 그쪽 사람들이 그런 건 아마 습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별다방, 콩다방 같은 곳에서 알바들이 뽑아주는 형편없는 에스프레소보다는 훨씬 낫지만 제 경험 상 파리의 모든 카페에서 맛있는 에쏘를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걸로 보아 습관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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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추출 절차를 사진으로 기록해 보았습니다. 전 아직 이 방면에 초보입니다. 기계를 마련한지 몇달 되지 않았고, 그나마 실습과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혼자 사진 찍는다고 신경쓰느라 추출과정에 실수도 많았습니다.
먼저 기계를 켜고 그룹(group)에 포타필터(porta filter 나중에 설명)를 장착한 다음 헤드(head)에 장착합니다. 아래 사진에서 툭 튀어 나온 손잡이 같은 것이 그룹입니다. 보면 기계의 튀어나온 둥근 부분에 결합되어 있는데 그 튀어나온 부분을 헤드라고 합니다.
이렇게 기계를 켜자마자 장착해 놓는 이유는 그룹을 덥히기 위해서입니다. 그룹이 차가운 상태에서 원두를 담아 추출하면 추출온도가 떨어지겠죠. 그걸 방지하자는 겁니다. 처음 켜면 가찌아 클래식 같은 기계는 6분 정도 기계 예열시간이 필요한데 그때 그룹도 덥히는 겁니다.
원두를 분쇄합니다. 본격적으로 분쇄하기 전에 약간의 원두를 집어넣어 갈아내어 버립니다. 그 이유는 원두를 분쇄하고 나면 그 안에 커피가루가 남습니다. 그런데 다음 번 추출할 때 즈음에는 시간이 경과되어 이 가루들은 이미 산폐된 상태이기 쉽습니다. 이게 분해청소를 하기 전엔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원두 몇알 넣고 갈아주어 오래된 가루를 밀어 내보냅니다. 말하자면 약식으로 청소하는 거지요.
본격적으로 그라인딩에 들어갑니다. 에스프레소 용량은 1인분에 8그램입니다. 포터필터 에는1인용도 있지만 2인용으로 2인분을 추출하는 것이 더 좋은 에쏘를 뽑을 수 있다는 게 중론입니다. 아무래도1인용 분량을 사용할 때는 커피가루 층의 두께가 얇아져 9기압의 압력에 충분히 저항하지 못하고 빨리 추출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색이 플래쉬 때문에 밝게 나왔지만, 원두는 강하게, 보통 풀씨티(full city) 이상으로 배전되어 기름이 살짝 도는 원두가 사용됩니다. 배전강도는 미국 쪽이 유럽 쪽보다 더 강합니다. 그건 미국 쪽은 에쏘 그 자체보다는 라떼 등 variation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에쏘용 커피가루는 드립용보다 훨씬 미세하게 분쇄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미세하게 가는 게 좋은 건 아니고, 앞서 언급했던 '25초 추출'이 이루어지도록 감안해야 합니다.
분쇄된 원두를 담고 있습니다. 사진에서 처럼 그룹을 분쇄기에 직접 갖다대고 오른쪽에 튀어 나온 손잡이를 앞뒤로 움직여 가루를 받아내리는데 이때 그룹을 좌우로 돌려 가급적 골고루 떨어지게 합니다. 참고로 가루를 받는 부분을 도저(doser)라고 합니다.
가루를 담고 나면 탬핑(tamping)을 해야 합니다. 탬핑이란 가루를 다져주는 것을 얘기하는데 사진에서 처럼 탬퍼(tamper)라는 기구가 사용됩니다. 탬핑은 에쏘추출 기술 가운데 아주 중요한 기술입니다. 약하게 되면 추출시간이 너무 빨라질 우려가, 너무 강하면 너무 오래 걸릴 우려가 있습니다. 분쇄정도를 고려하여 적당한 힘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니 어렵지요...
다져진 모습입니다.
이제 그룹을 다시 기계에 장착하고 에쏘를 뽑기 시작합니다. 앞서서 몇번 언급되었지만 스위치를 켜고 나서 25초 동안 2온스가 추출되어야 합니다.
사진에서 보면 왼쪽보다 오른쪽이 적게 추출되고 있습니다. 이건 탬핑이 고르게 되지 못한 까닭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밖에 원두의 가스가 추출을 방해할 수도 있고, 수평이 맞지 않아도 좌우 추출속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추출된 에쏘입니다. 크레마 층이 꽤 두껍게 나왔습니다. 크레마 층의 두께는 원두의 신선도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로스팅한지 이틀밖에 안된 원두이니 신선하긴 하겠죠.
위에서본 크레마 상태입니다. 잔 거품방울이 보입니다. 이러면 안됩니다. ㅡ.ㅡ 크레마 거품은 곱고 부드러워 보여야 합니다. 추측컨데 가스빼기가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원두를 좀 더 숙성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타이거 스킨(tiger skin)도 보일똥 말똥이네요. ㅡ.ㅡ
그룹을 분리했습니다. 질퍽거리지 않고 뽀송합니다. 탬핑 세기가 고르진 못했어도 그럭저럭 괜챦았나 봅니다.
떨어져 나온 케잌(먹는 거 아닙니다. ㅎㅎ)의 모습입니다.
가정에서 에쏘를 즐기는 건 드립보다 번거롭습니다. 청소를 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추출 후 아무 것도 장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물을 내려 헤드의 가루들을 일차로 씻어줍니다. 물론 밑에 그릇을 받쳐주어야 겠지요.
2차로 솔을 물에 적셔서 헤드를 닦아주고...
마지막으로 키친타월로 마무리 해줍니다. 추출 후에는 매번 이렇게 해주고 주기적으로 헤드를 분해해서 청소해 주는 게 좋습니다.
그룹에 장착된 상태에서 본 포타필터입니다. 저 작은 구멍으로 커피가 추출되는 겁니다. 구멍이 막히지 않도록 씻어줄때 신경을 써주어야 합니다. 전 칫솔을 이용해서 구멍에 낀 가루를 빼주고 있습니다.
이외에 물받이 물통도 청소해 주어야 합니다. 오늘의 결론... 커피를 즐기려면 부지런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