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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의 의미
마가복음 14:22~26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날 전날 밤에 제자들과 맞이한 유월절 명절 식사 도중에 성찬식을 제정하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찬식은 세례식과 더불어 주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거룩한 예식입니다. 오늘 새해를 맞이하여 첫 번째 성찬 예식을 거행하기에 앞서 성찬식이 제정된 절기적 배경과 성찬의 의미와 성찬 참여의 유익 그리고 성찬 참여의 자세와 및 성찬 참여자의 자격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주님이 제정하신 성찬식의 의미를 구약의 절기의 배경을 통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주님은 성찬식을 이스라엘의 오랜 절기인 유월절 저녁 식사 도중에 제정하셨습니다. 유월절의 음식인 구운 어린양의 고기와 누룩 없는 빵인 무교병과 쓴 나물과 쓴나물을 놓고 제자들과 식사하는 중에 성찬식을 세우셨습니다.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내 몸이라”고 하시고 식후에 잔을 나눠 마시게 하시고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듯 주님은 유월절의 음식들을 가지고 유월절의 명절의 상징들을 사용하여 성찬식을 새롭게 의미를 담아 제정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성찬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요?
먼저, 성찬식은 대속의 희생 제사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에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그들을 구출하려고 할 때에 애굽 땅에 여러 재앙을 내리시고 마지막에 내린 재앙이 장자를 치는 재앙을 내렸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집마다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인방과 문설주에 바르고 집안에 모여 그 어린양을 구워서 먹으라고 명하였습니다. 그 어린양의 고기는 다음날까지 계속 먹으면 안되고 그 날 다 먹어야 했습니다. 여기서 그 잡은 양의 피를 문인방과 문설주에 바르고 그 잡은 양의 고기를 그 밤에 다 먹고 다음날로 넘기지 말라 한 것은 그 고기가 일반 식사의 음식이 아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드린 제물이라는 점을 말해줍니다. 구약 시대 제사로 드린 제물은 일반적인 음식처럼 며칠씩 두고 먹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성별하여 드린 제물이기에 그 다음날에 남기면 안되고 남은 고기들은 다 태워서 없애야 했습니다. 이처럼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 피 흘려 그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르고 그 고기를 집안에서 먹는 유월절 명절은 일종의 제사였고 특별히 장자를 대신하여 그 어린양이 대속의 죽음을 죽은 속죄의 제사였습니다. 그 대속의 제사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얻은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 예수님께서 그 날 유월절 명절 저녁 식사의 성찬식을 통하여 자신의 살을 주시고 피를 주신 것 역시 자신을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내어주사 그 백성들의 대속의 제물로 자신을 주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5:7 말씀에서 이르기를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성찬 예식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와 살을 내어줌으로써 자기를 유월절의 어린양처럼 희생 제물로 바친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즉 성찬 예식 속에는 대속의 희생 제사를 통한 구원의 은혜, 곧 구약 성도들이 희생 제물의 대속적 죽음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죄사함받고 용납받은 구원의 은혜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성찬식 속에는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 되어 만찬에 참여하여 함께 식사를 나누는 교제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유월절 식사는 한 가정이나 이웃집 가정이 함께 모여 함께 잡아 대문에 피를 바른 후에 한 집 안에서 어린 양의 고기를 구워서 함께 먹습니다. 한 포도주를 마시고 누룩이 없는 질긴 빵인 한 무교병을 찢어 나눠 먹고 쓴나물을 한 그릇에서 나눠 먹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식사를 함께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서 그것은 서로 하나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유월절 만찬을 함께 참여함으로써 자신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 백성이라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한 어린양의 고기를 나눠먹고 한 포도주를 나눠 마시며 한 밥상 한 그릇에서 쓴 나물을 나눠 먹음으로써 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공동체로 자신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한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 자매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 유월절 식사의 의미입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께서도 유월절 명절에 무교병 떡을 찢어서 나눠주시면서 받아먹으라고 하시고 잔을 돌려 포도주를 함께 나눠 마신 것 역시 한 주 그리스도를 믿는 동일한 신앙인으로서 한 형제 자매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함께 먹고 마심으로써 한 주님께 속한 자요 한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고백함으로써 하나님과 교제하며 우리 주님과 교제하는 자라는 고백도 여기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나하고 함께 식사하는 것이 아니요 가족과 친척과 친구와 식사하는 것처럼, 주님의 살과 피를 의미하는 이 성찬에 함께 동참하여 그 떡을 먹고 그 잔을 마시는 행위는 우리가 주 예수님께 속하였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만 섬기는 한 피를 나눈 주님의 형제 자매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행위인 것입니다.
또한 성찬식에는 언약식의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 성찬식을 제정하실 때 하신 언약이라는 단어에서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인 마가복음 14:24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잔을 나누시면서 이르시기를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구약의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송아지의 피로써 맺은 성민 계약을 전제로 하신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24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시내산 앞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인 70장로들과 만나 제단을 쌓고 열두 기둥을 세우고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그 잡은 소의 피를 가지고 모세가 양푼에 담아 반은 제단에 뿌리고 백성들 앞에 언약서를 낭독하여 준행하겠다고 약속을 받은 후에 그 피의 반은 백성 곧 백성의 대표인 장로들에게 뿌리고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 피를 뿌려 확실하게 인친 언약이 시내산의 성민 언약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확실한 언약을 피로써 맺은 것입니다.
이처럼 이제 예수님은 모세보다 더 월등하고 고결한 언약 중보자로서 신약 성도들을 대표하는 열두 사도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피로써 성민 언약을 맺는 것입니다. 이렇듯 성찬식에는 모세보다 더 탁월하신 완전한 언약 중보자이신 예수님께서 구약의 소와 양과 같은 제물보다 더 완전하신 자기의 살과 피로써 인을 치시며 하나님과 새 이스라엘인 신약 성도들의 성민 언약을 맺으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 언약은 더 완전한 피로써 체결되었고 그 언약 중보자가 모세보다 더 완전한 중보자이시기 때문에, 이 언약은 결코 파기되지 않고 더 강력한 은혜와 능력으로 지켜질 것을 보증하신 계약인 것입니다. 그의 강한 십자가의 승리의 공로와 성령의 도우심과 인치심과 보증하심으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부르신 주의 백성들을 끝까지 구원의 그 날까지 지키시고 끝내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써 값주고 사신 주의 백성으로서 오직 한 하나님, 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 한 성령 하나님만을 믿고 자기의 전 존재를 하나님 한분만을 위하여 살겠다는 거룩한 하나님 백성이라는 결단과 각오를 보이는 행위입니다.
이렇듯 성찬식은 구약의 제사로서의 의미, 만찬으로서의 의미 언약식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복스러운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은 어떤 성격을 갖고 있습니까?
먼저 신앙 고백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자기의 생명의 몸을 주시고 생명의 피를 흘리셔서 나를 죄와 저주와 사망과 지옥 형벌에서 구원해주셨다는 것에 대하여 인정하고 주님을 나의 주님으로 인정한다는 신앙 고백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입술로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고 시인하는 것도 신앙 고백이지만, 이 성찬식에 참여하여 주님이 우리 각 사람에게 건네주시는 떡을 주님의 몸으로 받고 먹고 잔을 주님의 피로 받아 마시는 행위 자체가 곧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요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본래 성찬은 당시 제자들 눈앞에서 주님께서 베푸신 것입니다. 개인적이고 사적인 은밀한 곳에서 주님과 자기만의 관계에서 시연한 것이 아니요 다른 제자들도 다 있는 가운데 제정하신 예식으로서 공개적으로 교회 앞에서 행하도록 명하신 일입니다. 그래서 연세가 드셔서 예수님을 믿고 세상을 떠날 정도로 몸이 쇠약한 경우와 같이 예외적인 경우에만 목회자가 병상에 가서 성찬식을 집례할 수 있지만, 그런 예외가 아니라면 사적인 자리에서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공적이고 교회 공동체 전체의 자리에서 성찬식을 거행하는 이유는 그것이 신앙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 나는 주님을 나의 구주로, 나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믿는다는 신앙 고백의 의미로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것입니다.
또한 성찬에 참여하는 의미는 주님과 온전히 연합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나를 위하여 이루어졌으니만큼 나도 역시 주님의 죽으심에 동참한다는 것을 다짐하며 주님의 부활의 영광에도 동참할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성찬에 참여하여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가 주님을 위하여 고난당하는 것을 마다하고 회피한다면 그것은 성찬을 받는 의미를 저버린 행위인 것입니다. 참 교회와 그의 제자는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주님의 죽으심을 전파하면서 장차 주님의 부활의 그 영광에도 동참할 것을 믿고 소망과 인내로써 그리스도의 남긴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장차 주님과 함께 천국의 잔치에 참여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20 말씀에,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성찬을 두고서 ‘주의 만찬’이라고 사도가 부른 이유가 그런 까닭입니다. 그래서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주의 만찬, 주님께서 배설하신 모든 은혜의 기름진 축복의 잔치에 참여하는 것을 예표합니다.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은 장차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실 어린양 혼인 잔치로 비유된 천국의 행복에 대한 전조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도 오늘 본문 말씀 25절 말씀에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고 예고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행위는 장차 하나님과 우리 구주와 함께 구원받은 백성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영원한 가족 형제 자매로서 한 상에서 즐거이 먹고 마실 천국 잔치에 참여할 것을 미리 보여주는 행위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이렇게 성찬의 의미를 알고 참여하는 자들은 어떤 유익을 얻을까요?
주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성찬을 베푸시면서 행하신 행동이 바로 축복입니다. 마태복음 26장 26절 말씀에 보면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라고 하였으며, 이어지는 27절에서도 이르기를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를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찬을 이르는 명칭 중에 하나가 ‘축복의 떡, 축복의 잔’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성찬은 주님께서 특별히 축복하시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제정하신 예식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1:24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성찬은 성찬식에 참여한 주의 백성을 위하여 주님께서 중보자가 되어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그래서 성찬은 그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베풀어지는 축복의 자리입니다. 성찬을 통하여 우리의 죄가 사해집니다. 또 거룩함의 은혜, 성화의 은혜가 더해집니다. 또한 믿음이 더 견고해지는 은혜가 주어집니다.
또한 영육간의 생명과 충만한 힘을 얻게 됩니다. 요한복음 6장 35절, 51절, 53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 이렇게 일러주셨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이 모든 말씀은 주님의 살과 피를 내어주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축복을 가리키는데, 그것을 가장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성찬식입니다. 성찬식에서 주님은 자신의 살과 피 곧 자기 자신 전체를 우리에게 참된 양식과 음료로 주시어 우리를 영원히 살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가진 인간의 몸으로서 물을 마시고 음식을 먹고서 육체적인 생명을 보존하고 힘을 얻듯이, 주님을 믿음으로 먹고 마심으로써 우리의 영이 살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됨을 여기서 분명히 강조하여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놀라운 생명, 영생 곧 영원한 생명과 이 땅에서 주의 백성들이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에 누리는 필요한 힘과 은혜들까지도 포함하여 성찬식에 참여하는 주의 백성들에게 넘치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주님께서 명백하게 말씀하셨으므로, 성찬은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생명까지 아낌없이 주신 것이니 우리의 영혼의 구원만이 아니라 필요한 모든 은택들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시는 은혜의 방편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찬에 참여하는 자는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성찬을 받아야 할까요?
먼저,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떡을 가지사 자기의 몸이라고 하셨고, 잔을 가지고 자기의 피라고 말씀하셨으니, 비록 성찬이 상징성을 가질지라도 무게가 큰 상징임을 기억하면서, 이 잔과 떡을 지극히 거룩한 주님의 죽으심, 주님의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인정하고 순결한 믿음을 가지고 받아야 하겠습니다. 성찬을 단순히 빵 한 조각, 포도주 한 방울 정도로 알고 받는 자는 큰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이는 “받아 먹으라 너희를 위하여 주는 바 내 몸이라, 받아 마시라이는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바 내 언약의 피니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믿음으로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나를 위하여 생명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그 십자가의 희생을 생각하면서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 유황불이 끓는 불못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을 겪을 죄인 중의 괴수인 나를 위하여 그 험한 십자가에 매달려 수치와 고통과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내 대신 당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조건없는 그 사랑을 생각하면서 감격을 가지고 황공한 마음으로 성찬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받아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모든 죄 때문에 살을 찢고 피를 다 쏟으셨음을 기억하면서 죄에 넘어지는 자신을 미워하는 회개의 마음으로, 또한 다시 주님을 가슴아프게 하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로써 성찬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주님께 복종하며 주님을 위하여 살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받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날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주셨으니 이제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요 날 위하여 죽으신 주님을 위하여 살겠다는 새 결심을 가지고, 주님께 내 삶의 주인 자리를 내어드려 복종과 헌신의 마음으로 성찬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장차 들어갈 천국을 소망하면서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성찬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시어 우리를 하나님 백성으로 인쳐주셨으니,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이 성찬식을 다시 한번 참여하면서 지금 받아 먹고 마시는 주님의 살과 피가 나의 영혼을 살리고 내 삶을 힘차게 할 것을 믿고 세상의 풍랑과 고생과 시련 속에서도 저 천국의 영광과 행복을 바라보면서 영광스러운 기쁨을 가지고 성찬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누가 이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알다시피 이 고귀한 성찬 예식에 아무나 다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첫째로 반드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믿는 자만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성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연령이어야 합니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어린아이는 성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셋째로 세례를 받은 자만이 참석할 수 있으나, 진심으로 주 예수를 믿게 된 초신자라도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을지라도 이 복스러운 성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넷째로, 자신을 살핀 후에야 이 성찬을 참여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7절 이하에 보면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성찬식 참여자들에게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그 당시 고린도교회 안에 성찬식에 참여할 때에 부자 성도가 가난한 성도를 부끄럽게 하고 마음으로 차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자에게 대한 사도의 책망인 것입니다. 성찬식은 주님의 한 떡, 한 피에 동참하는 거룩한 하늘나라 형제애로써 서로 사랑함으로 참여하는 것인데, 인간적인 판단을 가지고 형제 자매를 판단한 것 자체가 합당한 태도가 아니기에 이것에 대하여 사도가 책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 자신을 판단하여 합당하지 못한 마음이 있다면 성찬을 받기 전에 진심으로 회개하고 성찬을 받기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해달라고 청합시다. 우리가 성찬을 받기에는 믿음이 너무 약하고 죄가 많고 부끄러움이 너무 크다고 느끼면서 오직 주님의 성찬의 은혜로써만 내 영혼이 살고 내 죄가 씻겨지고 나의 마음이 새로워질 수 있겠다는 간절함을 가진다면, 그것이 곧 성찬을 받을 만한 심령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주 예수를 진심으로 구주로 믿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주 예수를 진심으로 믿으십시오. 성찬의 의미를 설명해드렸는데, 그래도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받지 못하십시오. 그래도 마음에 꺼리끼는 죄가 있어서 이번에 받을 수 없다고 느끼시는 분이 있다면 다음으로 미루십시오. 그것이 진실한 태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리끼는 죄를 주님께 내어놓고 사죄의 은총을 사모하며 새 사람 되기를 바라면서 주님의 살과 피를 의지한다면, 낮아진 마음으로 성찬을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성찬의 풍성한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오늘 성찬식에 참여함을 통하여 주님과 깊은 연합을 이루고 그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와 부활의 영광에 깊이 연합되고 성도들과 깊은 사랑의 연합과 교제를 이루길 바랍니다. 그래서 천국의 백성으로 이 땅에서 더 온전한 성화를 이루면서 저 천국을 향하여 믿음의 길을 모두 힘차게 걸어가게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