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스님이 회고하는 청화스님 이야기
스님의 토굴에는 참 많은 사람이 다녀갔다.
큰 절에서 스님의 토굴로 방문객을 모시고 가면서
나는 스님이 어떻게 사람들을 맞이하는가를 눈여겨보았다.
스승은 누구의 절도 그냥 받지 않으셨다.
함께 절을 하기도 하셨고 또는
무릎을 꿇고 앉아 합장을 한 채로 받고는 하셨다.
큰 스님으로서의 위엄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차라리 그에게는 초심자의 겸손함 같은 것이 엿보였다.
나는 스님에게 여쭈어 보았다.
"스님은 왜 다른 큰 스님들처럼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절을 받지 않으시는가요."
스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수행자에게 겸손을 빼면 무엇이 남겠는가."
스님은 더 말씀이 없으셨다.
'겸손', 나는 그 말을 그날 하루 종일 외고 다녔다.
스님에게 겸손은 수행자의 상징이었던 것만 같다.
그날 이후 나 역시 그 누구에게도 함부로 절을 받지 못했다.
스승의 공부를 따라갈 수는 없지만
겸손한 스승 앞에서 거만한 제자는 결코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스승의 부드러움과 자비는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생을 두고 계율의 정신을 실천해온 수행자의 당연한 모습이었다.
그런 스승 옆에서 나는 많이 변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변화는 마음과 같이 찾아오지 않았다.
스승을 쉽게 닮을 수는 없었지만
스승과의 만남이 내게는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스승이었지만
그가 지닌 높고도 부드러운 수행력은 나를 감화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스님을 처음 만나던 날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내 일생에서 가장 떨리던 만남의 순간이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낯선 세계를 찾아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위대한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더욱더 두려운 일인 것이다.
처음에 스승은 내게 그렇게 떨리고 두려운 존재였다.
처음 스승을 보았을 때 나는 넙죽 삼배를 올렸다.
추석 전 날인 그 날은 스님 역시 대중들과 더불어 송편을 빚고 계셨다.
스승은 입가에 미소를 띠시며 어떻게 왔냐고 물으셨다.
나는 머뭇거리다 출가를 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씀드렸다.
스님은 또 빙그레 웃으시며 왜 출가를 하려 하느냐고 물으셨다.
그것은 내가 기다렸던 질문이었다.
나는 출가 이전에 이미 출가에 대한 멋진 답변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은사가 될 스님이
내게 출가의 이유를 묻는다면 아주 멋진 대답을 그에게 던지고만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준비한 답변들은
노 수행자의 굵고도 짧은 질문 앞에서는
너무도 긴 장광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답변을 꺼내는 것이 오히려 결례일 것만 같았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답하지 않아도 스님은 다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의 빛이 쏟아지는 듯한 눈동자 앞에서는
아무런 말도 필요가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삼배를 마치고 고개를 들며 나는 처음으로 스승의 눈동자를 훔쳐보았다.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그 눈에서는 마치 굵은 빛의 입자들이 몽글몽글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내게 그런 사람의 눈동자는 처음이었다.
그 눈빛은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투시하고도 남을 만큼의 밝음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그 눈빛 앞에 내 전부가 드러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두렵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눈에서 쏟아지던 그 빛들이 한없이 부럽기도 했다.
나는 스승의 눈빛 앞에서 입만 닫은 것이 아니라 마음의 문까지도 닫고 싶었다.
혹시
내 마음 속의 순결하지 못한 생각의 흔적들이
그의 눈동자에 투영 될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먼 훗날 안 얘기지만 그 때 나의 우려는 절대 기우가 아니었다.
스승은 정말 나의 우려대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스승 앞에서는 나뿐만이 아니라
스승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조심들을 했던 것이다.
속이려고 해도 속일 수가 없는 그 앞에서는
차라리 입을 닫고 마음까지도 비워 버리는 것이 상책이었다.
언젠가 스승은 법상에서도 이런
우리들의 예감을 확실하게 하는 말씀을 하셨다.
"공부를 하는 수행자가
점쟁이만도 못해서야 어디 공부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능히 볼 수 있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이 일반 사람과 다른 점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조금 안다고 그것을 입 밖으로 발설한다면
그것은 또 점쟁이와 다를 바가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남이 능히 보지 못하는 것도 능히 보는 것이
공부인의 다른 점이라면 아는 것을 또한
말하지 않는 것도 공부인의 태도일 것입니다."
스승의 몽글몽글 빛이 쏟아지는 눈동자 앞에서
나는 정말 이 곳을 찾아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눈빛의 사람이라면
내가 스승이라고 부르며 믿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이렇게 형형하지만 자비심이 넘치는 눈빛의
수행자를 찾아온 나의 긴 여정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성전스님 #무주청화선사
첫댓글 수희찬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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