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9 - 브라티슬라바를 구경하고 정원을 지나 돌아와 공항으로 가다!
2022년 5월 9일 새벽에 잠이 깨어 호텔 방의 창으로 밖을 보니 마침 동이 터 오는지라 시시 각각으로
변하는 하늘을 보면서 여명(黎明) 을 온 몸으로 느끼고는 호텔을 나와 걸어서 시가지를 구경합니다.
아침 이른 시간인지 거리에는 차도 적고 사람들도 보이지 않으니 대통령궁 과 성 마르틴
성당 을 지나 미할라 문 Michalska Brina 을 들어서서 구시가지를 구경합니다.
어제 오후와 오늘 아침 합쳐서 하루도 안되는 기간에 이 도시를 거진 둘러보았으니 큰 도시는 아닌데
브라티슬라바성 은 11세기에 건립된후, 1811년 화재로 소실되어 폐허가 되었다가 1953년
재건되었으며.... 공산주의 시대에는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의 브라티슬라바 거처 이자
슬로바키아 국회의사당 으로 이용됐으며 현재는 브라티슬라바성 입구에 슬로바키아 국회가 있습니다.
성 마르틴 성당 은 1563-1830년에 복원된 고딕양식 성당으로 1563년 9월 8일 거행된
막시밀리안 2세의 대관식 이래로 헝가리 왕국의 대관식 이 열렸으니 높이
16m 의 첨탑 형태로 된 고딕 성당으로 베토벤의 장엄미사곡 이 처음 연주된 곳입니다.
슬로바키아 국립극장 은 1776년에 최초 건립되었으나, 1886년 빈 출신의 극장 전문 건축가 Fellner
와 Helmer가 오늘날의 모습으로 재건하였으니... 브라티슬라바 출신의 조각가 빅토르 틸그너가
만든 '가니메데스 (그리스신화의 술시중을 드는 소년)' 분수가 유명하며 2007년 도나우강의
부지에 신국립극장이 건립되면서...... 양 극장 모두에서 다양한 오페라, 발레, 연극 공연을 개최합니다.
슬라빈 묘지 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슬로바키아 서부에서 나치에 대항해 싸우다 전사한
6845명의 소비에트 군사들을 기리는 오벨리스크 (39.5m) 가 있는 공동
묘지로 국가 문화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전망 이 유명합니다.
이스트로폴리타나 대학교 건물은 1465년에 헝가리 왕 마차시 코르비누스가 세운 슬로바키아
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이며...... 현재는 음악 예술대학교의 일부로 사용 중이랍니다.
미할라 문 은 도시 요새의 5개 문 중에 단 하나 남은 문이니... 최초 기록은 14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14세기 전반에 고딕형식의 정사각형 탑이 있었고, 1511-1513년에는 육각형으로 더 높이 증축되었고
1753-1758년간 51미터 높이의 탑 정상에 대천사 미카엘 상 을 세우면서 현재의 형태가 완성 되었습니다.
레두타 음악홀 은 슬로바키아 교향악단의 전용 공연장으로, 1773년 마리아 테레지아의 명령으로
곡물 저장소로 지어졌다가 1919년 네오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었으며 이후 시립
음악학교 및 영화관으로 사용되다 1950년부터 오늘날까지 교향악단의 전용 연주장 으로 사용합니다.
에스테르곰 대주교 궁전 은 1781년 건립된 고전주의 건물로 현재 시청사로 사용 중인데, 1805년 나폴레옹
이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에 완승을 거둔 후, 이 궁전의 '거울의 방' 에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프레스부르크 조약이 체결되었으며 2층에는 17세기 영국산 벽걸이 융단 (테피스트리) 이 유명하답니다.
대통령궁 은 1762년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된 여름 궁전으로 현재는 대통령 집무실로 건물 뒤편에는 프랑스식
정원 이 가꾸어져 있어 산책 및 휴식을 할 수 있고, 브라티슬라바 출신의 음악가 훔멜의 동상이 있습니다.
데빈 성 은 도나우 강과 모라바 강의 합류지점에 위치한 군사적 요충지이자 교역의 중심지로,
현재는 석조 고딕 건축물의 폐허만이 남아있으나, 브라티슬라바 외곽의 조용한
강가 언덕에 있으니 주말에 자연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기 위해 가족 단위 로 찾는 장소입니다.
인지도 면에서 프라하와 빈, 그리고 부다페스트에 밀리지만 이곳의 구시가지도 예전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최근에는 관광객이 조금씩 늘고 있다는데, 다만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국경 지대인
페트르잘카(Petržalka) 는 소련식 아파트 천지인 매우 삭막한 공산 시절 동유럽식 풍경을 가진 곳 입니다.
브라티슬라바 구시가지와는 도나우강 너머로 분리되어 있는데 나치 독일의 괴뢰국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이 들어섰을 때에는 브라티슬라바에서 분리되어 나치 독일령 엥게라우 (Engerau) 로 불리었습니다.
시가지를 구경하고 돌아오다가 정원 을 보면서 문득 “동아일보에 이지윤 기자가 쓴 ‘K 정원에
반한 英(영) 찰스국왕, 韓(한) 작가 안아줬다” 라는 기사가 따오르니.... “포옹해도 될까요?”
22일 영국 런던 ‘첼시 플라워쇼’ 에서 정원 디자이너 황지해 씨(47) 는 자신이 제작한 정원을
함께 둘러본 찰스 3세 영국 국왕 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찰스 3세는 환하게 웃으며
따뜻한 포옹 으로 화답했다. 영국 왕실 인사들이 대중과 악수 이상 접촉을 하는 일은
흔치 않다. 찰스 3세의 등을 감싼 황 씨의 두 손은 고된 작업으로 마디마디 붕대 가 감겨 있었다.
찰스 3세는 세계 최대 정원 및 원예 박람회인 첼시 플라워쇼 개막일인 이날 경쟁 부문 작품중 황씨의
정원을 가장 먼저 둘러봤다. 지리산 약초 를 모티브로 한 ‘백만 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
(A Letter from a Million Years Past)’ 라는 제목의 정원이었다. 찰스 3세 국왕은 정원을
둘러본 뒤 ‘멋지다(brilliant)’, ‘경탄할 만하다 (marvellous)’ 라는 등 찬사를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황 씨는 23일 경쟁 부문인 ‘쇼 가든’ 에서 금상 을 수상했다. 그는 가로 10m, 세로 20m 땅에
모데미풀, 지리터리풀, 남바람꽃, 천삼 오미자 세뿔투구꽃 등 한국 약초를 3주 동안 심어
지리산 동남부 약초 군락을 재현 했다. 개울 흐르는 산비탈을 표현하고자 지형에
높낮이를 두고 돌 200t 이상을 썼다. 약초꾼들의 건조장을 본뜬 5m 높이 목조건물도 세웠다.
황씨의 정원은 지속가능성 및 환경과 공존 을 강조한 플라워쇼의 메시지 와 맞아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플라워쇼를 주최한 영국 왕립원예협회는 황씨의 작품에 대해 “토종 약초 1000종이 자라는 지리산 의
균형 잡인 생태계 와 토종식물 멸종을 막은 한국의 생태 복원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고 설명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정원이라기보다 풍경처럼 보인다. 바위, 개울, 한국 토종식물이 돋보인다” 고 평론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황 씨는 첼시 플라워쇼 에서 2011, 2012년 연속 1위 에 올라 한국
조경에 대한 관심을 세계에 불러일으켰다. 2012년 프랑스 동부 롱르소니에에 전남
순천만을 테마로 영구 보존되는 정원 ‘뻘: 순천만, 어머니의 손바느질’ 을 조성하기도 했다.
정원을 구경하다 보니 문득 한미 동맹 영웅 4만3808명 새기다 라는 기사가 떠오르는데...
비가 내리던 26일 오후 미국 워싱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 에 들어선 앤 임리
씨(67) 의 손에 하얀 장미꽃이 들려 있었다. 그는 둘레 130m, 높이 1m의 거대한
화강암에 새겨진 이름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다 한 이름 앞에 멈춰 섰다. ‘로버트 킹웰 임리.’
6·25전쟁에서 전사한 미군과 한국인 카투사(KATUSA) 4만3808명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의 벽
(Wall of Remembrance)’ 에서 앤 씨는 삼촌의 이름 과 마주했다. 그는 밝게 웃는 23세
청년의 모습이 담긴 낡은 삼촌 사진을 이름 옆에 뒀다. 그러곤 정성스럽게 연필로 탁본 을 떴다.
그러고는 걸어서 호텔에 도착해서는 샤워를 하고 식당으로 내려가서는 늦은 아침
을 먹는데.... 우리가 조금만 늦게 왔으면 식당이 문을 닫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는 호텔에 체크아웃을 하고는 기차나 버스 를 타도 되지만 역까지 10여분 이상을 걸어
가야 하는데다가 공항이 거리가 멀지 않은지라 리셉션에 택시 를 불러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고는 택시를 기다리면서 부탁하고는 호텔 로비 를 둘러보니.....
책장 이 참 고풍스러운데 여행 안내 책자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동안 숱한 호텔들을 다녔지만 여기만큼 다른 나라에 대한
여행 책자 가 많은 곳을 본 적은 없는지라.... 참 놀랍습니다.
더우기 여긴 19세기와 20세기에 세계가 산업혁명 으로 농업국가에서 공업
국가로 변하는 과정에 만들어진 숱한 기계 장치들 사진 이 흥미롭습니다.
10여분 이상을 로비에서 기다리니 리셉션에서 택시 가 도착했다고 말하기에
밖으로 나가니 택시는 아니고...... 그럼 자가용 영업 인지 모르겠습니다?
호텔을 출발한 승용차는 시가지를 벗어나더니 교외로 나가서는 무서운 속도 로 달리는데..... 드디어 공항
에 도착해 25유로 를 달래는데 50 유로 지폐를 내니 잔돈이 없다기에 그럼 카드로 결제 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운전한 차량이 택시가 아니다 보니 차 안에 카드 결제할 기구가 없지
싶은데..... 어디로 전화 를 하더니 허락이 떨어진 듯 내 카드를 자기 휴대폰 에
대고 결제를 하는데, 유로화가 아닌 원화로 결제을 하다 보니 환율 이 않좋게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