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가 미친년 널뛰듯이 30도로 갔다가 7도로 돌아왔고 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어깨를 움츠리게 합니다. 먹는 시간 빼고 자기 때문에 글 쓰는 시간이 서너 시간 부족합니다. 5시간 일 해서 16.5를 찍었으니 선방했습니다. 새벽에 먹은 호평동 동태찌개가 코가 뻥 뚫리는 맛입니다. 나중에 한 번 다시 찾아갈 생각입니다. - 의미를 찾으려고 해도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찾지 못하는 허무함이 팽배한 4월입니다. 의미는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고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 발견되기에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 질문해야 합니다. 요새 제가 '몰입'과 '의미'에 꽂혀 있는 이유를 아시나요? 예주가 생각보다 지구력이 좋은 것 같아요. - 어려서부터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던 아이인데 벌써 15일을 다 채울 때까지 힘들다는 말을 안 하는 것 보면 신통방통합니다. 모르긴 해도 아토피로 괴로운 시간을 혼자 감내하면서 옹이가 박혔을 것입니다. 요즘 20대들과 비교하면 우리 예주는 어른 같은데 서슬 퍼런 세상에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게 아비는 심란할 뿐입니다. - 피카소는 내가 아는 미술인 중 가장 고생 안 하고 가장 멋지게 오래 살다(95세) 간 인물입니다. 그의 풀 내임은 또 얼마나 긴지 아십니까?(파불로 디에고 호세 프란시스코 데파울라 후안 네포무세노 마리아 데로스레메디오스 시프리아노 데라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루이스 피카소) 무려 56글자입니다. - 피카소는 회화-조각-판화-도예까지 손 재주가 뛰어났고 부친도 화가였어요. 아들을 위해 그림 그리기를 포기했다는 일화에 꽂혀 더 이상 에예공에게 미술 티칭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나서 살짝 겸연쩍어졌어요. 피카소가 현대미술의 거장이라고 불릴 만큼 회화에 재능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 필자는 피카소가 현대 미술의 거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시대의 아픔을 작품에 넣을 만큼 자기 색깔이 분명했고 좌빨 프레임을 두려워하지 않은 배짱이 그를 거장으로 만들었다고 봅니다. 물론 돈이 '대'를 키우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의 대표작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고발한 작품이에요. 1950년대 조국의 상황과 흡사한 스페인 내전을 참고하시라. - 예공! 마드리드 소피아 박물관에서 '게르니카'를 봤냐? 바르셀로나에서는 또 사진 찍혔어? 남사스럽게 생긴 남자 그림은 뭐다냐? 피카소 초기 작품인가? 공주야! 헤겔과 쇼펜하우어처럼 마티스와 피카소가 라이벌이었다는 걸 아니? 2024.4.16.tue.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