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속사적 성경묵상 ● (셋째 해_10월 3일)
<시편 22편> “십자가에서 보여진 예수님의 믿음”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고 의뢰하였으므로 저희를 건지셨나이다. 저희가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치 아니하였나이다....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모친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오니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여호와여 멀리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경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주재심이로다. 세상의 모든 풍비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에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후손이 그를 봉사할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와서 그 공의를 장차 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시22:1-31)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행2:29-31)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
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12:2)
『시편 22편은 다윗이 고난을 당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을 호소한 탄원시인 동시에 장차 그리스도께서 당할 고난을 보여주는 예언이기도 합니다. 이 시는 원래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 전 사울과 그 추종 세력들로부터 온갖 핍박과 수난을 당하면서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과 고통을 노래하며 여호와께 구원을 호소한 애가입니다. 이 시의 전반부(1-21절)는 시인이 처한 고난의 상황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더불어 절박하게 구원을 호소하는 간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후반부(22-31절)에서는 분위기가 반전되어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을 구원하실 것을 확신하는 한편 장차 열방의 모든 민족도 여호와께 경배를 드리는 날이 도래하게 될 것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편에 기록된 다윗의 고난들에 대한 묘사는 사실상 과장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성경기록을 보면 다윗이 비록 많은 고난을 겪기는 했지만, 이 시에서처럼 물같이 쏟아지고 모든 뼈가 어그러졌으며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혀가 잇틀에 붙는 등의 묘사는 그가 실제로 겪었던 육체적인 고난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에 기록된 극한적인 고통에 대한 묘사들은 다윗 자신의 경험이 아니라 그가 고난을 당하는 중에 성령의 감동을 받아 장차 오실 ‘메시아’가 당할 고난과 그 고난 후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기록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다윗은 선지자인 것입니다(행2:30)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이 시편에 묘사된 대로 실제적으로 극도의 육체적인 고통을 겪으셨으며 사람들로부터 벌레처럼 여김을 받으며 조롱을 당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예수님이 겪은 가장 큰 고통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분리였습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며 영광을 함께 누리던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는 인류의 죄를 모두 뒤집어 쓴 세상에서 가장 큰 죄인의 신분으로 저주의 형벌을 받았던 것이며, 죄인들이 받아야 하는 저주 중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두려운 것은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라는 사실을 예수님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언적인 시는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절규와 탄식으로 시작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의 절규 속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절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부르는 모순이 발견됩니다. 나를 버리시는 분이 어떻게 나의 하나님의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 절망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부르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보여주었으며, 그런 예수님을 하나님께서는 다시 살리시고 만왕의 왕으로 높이셨습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은 우리 믿음의 선구자인 것입니다(히12:2).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절망적인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믿음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 오늘의 기도 ● “어렵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부르며 신뢰하는 믿음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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