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제자 중에서 자장과 자하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장은 공자의 제자들 중에서 학식이 풍부하고 외모가 뛰어났으며 언변이 좋아 매우 똑똑했습니다. 친구와의 사귐에 있어서도 ‘현명하다는 것은 현명한 사람 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포용해야 하므로 사귀지 못할 사람이 없다.’고 하여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여겼습니다. 그의 성격은 활달하고 진보적이었으며 훌륭한 제후를 섬겨 자기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어려운 일은 잘하지만 인자하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자장이 평소 권력에 대한 의지가 너무 강하고 허영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자하는 신중하고 현실적인 사람이었으며 사람을 사귀는 일에 대해서 ‘사귈만한 사람과는 사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사귀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는 학문을 하면서 문장의 의미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스승에게 묻는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자하는 지식을 얻어 자기 수양에 힘쓰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감이 부족하고 소극적이었습니다.
어느 날 자장이 공자에게 질문했습니다.
“선비는 어떻게 해야 통달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까?”
그러자 자장의 말에 도리어 공자가 반문했습니다.
“네가 생각하고 있는 통달의 경지란 무엇이냐?”
“제후를 섬겨 이름이 높아지거나 권세 있는 신하가 되어도 이름이 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자 공자는 자장의 허영심에 대한 지나침을 은근히 나무랐습니다.
“그것은 통달의 경지에 오른 것이 아니다. 진정한 통달이란 본성이 바르며 의를 좋아하고 말과 얼굴빛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알며 신중히 생각하고 남에게 항상 겸손해야한다. 그래서 자기가 섬기고자 하는 사람의 신하가 되어도 그릇되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자장의 곁에 있던 자하에게는 이렇게 타일렀습니다.
“자신의 수양을 본의로 하는 것이 군자가 되는 것이다. 지식을 얻는 일에만 급급 하는 소인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공자는 학문을 통해서만 통달의 경지에 오르려고 하는 자하의 성찰과 노력이 부족함을 말했습니다.
어느 날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지난번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자장과 자하의 학문을 비교하면 자장이 낫다는 말씀이신지요?”
그러자 공자는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말했습니다.
“아니다.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치미지 못하니 누가 더 뛰어나고 모라랄 것이 없이 똑같구나(過猶不及).”
자공은 스승인 공자의 말씀을 가슴깊이 새기면서 학문에 정진했습니다.
그는 훗날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여 노나라와 위나라의 재상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언변이 막힘이 없고 뛰어나자 스승인 공자보다 뛰어나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러자 자공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의 담을 놓고 비유를 하면 나의 담은 어깨 높이에 불과하며 스승님의 담은 너무 높아서 대문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그곳을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대문으로 들어온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이렇듯 과유불급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나치게 행동하면 부족함과 같음을 의미합니다. 모든 일은 어느 쪽이든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중용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우열을 가기키는 것이 아니고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공자는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가장 좋은 상태를 중용(中庸)이라고 했습니다. ‘너무 많아도 좋지 않다.’는 뜻으로 이를 경계하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