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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고보서 1장 27절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7-경건한 자가 되게 하소서1
셰계적인 부흥사로 활동했던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내 루스 그레이엄(Ruth Graham)은 자신이 어떻게 해서 평생 성경을 공부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 이야기해 준 적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자란 그녀는 선교사이셨던 부모님이 매일 성경을 공부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것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식사를 하러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우리 아버지는 자리에 앉아 성경을 읽고 계셨다. 의료 선교사이셨던 아버지는 항상 정신없이 바쁘셨던 분인데도 아침 시간에는 항상 성경과 함께했다. 또 밤이면 일을 마치신 우리 어머니도 아버지와 똑같이 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우리 부모님의 관심과 헌신을 그 정도로 차지하는 것이라면, 나도 한번 탐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여러분에게서 이런 경건한 모습을 봅니까? 여러분이 갖는 경건한 생활이 자녀들의 인생에 얼마나 놀랍고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을 안다면 여러분들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결코 아까워하거나 소홀히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먹고 살기 위해 교회를 다니다가 먹고 살만하니까 교회를 떠나거나 아니면 그 다음부터 더큰 탐욕이 생겨서 오로지 돈을 위해 교회를 다니고,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는 그런 일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땅에서 받는 물질의 복을 최고의 복으로 여겨서 돈이 있으면 큰 소리치고 우쭐대지만 반대로 돈이 없으면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한숨을 쉬거나 하나님께 소리치면서 물질의 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돈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돈을 위해 기도하지 말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를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할 때 여러분들의 생각과 삶이 변화됩니다. 그 삶을 통해서는 영광을 받으실지라도 부자가 된 사람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일은 드뭅니다. 물론 간간히 부자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물론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일순위라면 많은 돈을 벌어서 하나님을 위해 드리는 기쁨은 분명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이 맞는 것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가난하게 실기를 원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다만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경건한 사람이 되는 복을 받는 것은 이 세상의 복을 받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물질을 함무로 사용하지는 마십시오. 작은 돈 하나라도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사용하십시오. 그 일이 어떤 일인지는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시간인 경건의 시간을 통해 배워가실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경건의 시간을 항상 가지십시오.
경건은 영광이나 거룩이라는 말만큼 많이 쓰이는 말은 아니지만 신구약 성경에 68번이나 쓰이는 단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룩이라는 말보다는 경건이라는 말을 더 설명하기 어려워합니다. 거룩은 구별되었다고 금방 표현할 수 있는데 경건은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경건하라고 하실 만큼 경건을 중요시여기십니다.
시편 4편 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하고 말씀하시는 데 이는 경건한 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에 가장 합당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다윗 역시 그런 경건한 길을 가기에 자신이 하나님을 부를 때 하나님께서 들으실 것을 확신하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이 진실로 경건하게 살고 싶어하신 다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와 영광을 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 없이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구하는 사람들을 만나주십니다. 간절히 찾는 사람들을 만나주십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예수님을 찾았던 수많은 병자들의 특징은 인간 의사의 힘으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혈루증 여인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하혈을 계속했기 때문에 그것을 고쳐보려고 많은 의사들을 찾아다니면서 치료를 받았지만 치료비만 들어갔을 뿐 나음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녀는 예수님 앞으로 가서 구하기만 하면 다 고쳐주신다는 말을 사람들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찾아갔고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댔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녀의 미음을 보시고 “여자여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거나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을 인식하고 예수님 앞으로 나가서 예수님을 구하면 예수님은 여러분들을 만나주시고 여러분들과 항상 함께 하시면서 진리를 가르치십니다. 그렇게 진리를 알게 되면 진리 가운데 살면서 진리를 행하게 됩니다. 그 사람이 바로 경건하게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믿음의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의 인생에 놀라운 변화를 허락해 주십니다.
여러분은 예배와 경건의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 많이 알게 되고 친밀해지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매일마다 경건의 시간을 구별하고 여러분들의 삶을 하나님께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또 그 뜻을 행하게 하실 것입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거룩하냐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주님의 피로 거룩해졌기 때문에 거룩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경건하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우선은 경건의 기준이 무엇인지 대답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것이 경건한 것인지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경건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보면 “어떤 것을 소중히 받들고자 하는 데가 있어 엄숙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의미로는 “종교적 헌신이나 영성을 포함한 미덕이다”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쉽게 말한다면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건강한 상태를 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건강한 많은 경건한 사람들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완벽했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 외에 완벽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건강했고 그로인해 사람들과의 관계도 역시 건강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언제나 건강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즉각적으로 반응했습니다. 그런 마음 때문에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00세때 얻은 아들이나 아내보다도 더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모세는 어떻습니까? 그는 애국심은 철저했지만 하나님은 몰랐습니다. 조상들로부터 들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자기 조국을 위해 일한다고 하다가 살인만 저지르고 도망쳤습니다. 그런 그를 40년이 지난 후에 하나님은 만나주셨고 모세와 남은 40년을 동행하시면서 모세가 하나님과 백성들을 위해 언제나 경건한 삶을 살도록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로인해 이스라엘에서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쓰임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다윗도 역시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어린 시절에 양치는 곳에서 만나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양떼를 지키느라 목숨을 걸 때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시고 지켜주셨습니다. 때가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사무엘 선지자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나라를 목양하는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다윗의 생애는 항상 경건했습니다. 그가 밧세바를 범한 일 외에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써 살았습니다. 그는 새벽부터 한 밤중까지 하나님을 구했고 하나님은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예레미야선지자는 어떻습니까? 어린 시절에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을 위하여 일하는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겼으며 자신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백성들을 향하여 계속해서 외쳤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에스라나 느헤미야, 이사야 선지자나 엘리야선지자, 그리고 엘리사 선지자도 역시 경건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셨으며 그들이 진리 가운데 행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침례 요한도 역시 경건했고 사도 바울도 역시 경건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하셨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었습니다.
교회의 역사 속에서도 경건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엉망진창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존 번연이나 어기스틴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만나주신 후에 그들의 삶을 경건하게 살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그 시대의 사람들 뿐 아니라 교회의 역사 가운데 큰 영적인 유익을 주게 하셨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하여 자기 스스로에게 자문을 했습니다. 그가 스스로 자문했던 내용은 이것입니다.
1. 항상 기도하는가?
2. 매순간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가?
3. 모든 경우에 감사하는가 ?
4. 욕심 내는 것은 없는가?
5. 두려워하는 일은 없는가?
6. 내 중심에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가?
7. 무슨 말이나 일을 하든지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가?
이렇게 일곱까지 질문을 해가면서 자신의 삶에서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했습니다. 경건에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 스스로 훈련하십시오. 디모데전서 4장 7-8절을 보면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경건이 왜 필요합니까? 앞에서 읽어드린 디모데전서 4장 7-8절 말씀대로 범사에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경건은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알리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다른 또 하나의 이유는 경건치 못한 사람들이 받게될 심판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만일 경건을 소홀히 여긴다면 그것은 여러분들이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일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유다서는 그런 자들에게 임할 화가 무엇인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유다서 1장 15절입니다.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경건하지 않은 자에게서 나오는 모든 행동들과 일들, 그리고 말들에게 대하여 심판하시고 정죄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경건하지 않음으로 인해 주를 거슬러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건은 긍정적으로는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 가능하게 하지만 경건을 버린 불경건한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대로 살기 때문에 그것이 죄악이 되고 심판의 이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경건하기를 구하며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시간을 정해서 드리고 물질을 구별해서 드리고 몸과 마음을 구별해서 드리십시오, 야고보서 1장 27절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정결하며, 더러움이 없는 경건을 가지시기를 원합니다. 또한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매일매일 조금씩 주님을 닮아가는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만나주시고 여러분들의 삶을 거룩하고 경건하게 이끌어 주시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