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애 3:20)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애 3:21)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애 3: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애 3: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위에 인용한 예레미아 애가는 선지자 예레미아가 망해가는 자신의 조국을 보며 슬픔을 노래한 것입니다. 이런 예레미아 애가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이 사람, 조울증인가?' 싶을 정도로 극도의 슬픔 가운데서 소망을 내비치기도 합니다. 또 하나님의 진노를 얘기하다가 아주 갑자기 하나님의 긍휼을 얘기합니다. 진지하게 예레미아 애가를 읽어보신 분들은 아마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대체로 극단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듯 보입니다. 자신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가감 없이 하나님께 직접 듣다 보니,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비쳤을 것입니다. 뭔가 극단적이고, 감정이 격양되어 있고, 오늘 죽을 것 같이 하다가도 내일은 소망을 얘기하고...
그런 그들을 계속해서 붙잡아 준 것은 하나님의 긍휼이었을 겁니다.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보이지 않았다면 자신의 민족을 향해 쓴뿌리만 남은 고약한 성품의 소유자들로 변질될 수 있었을테니까요.
(애 3: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특별히 위의 구절을 보면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가 생각납니다. 예수님은 그 무엇보다 공평치 못했던 십자가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눅 23:34/킹흠)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분의 옷을 나누어 제비를 뽑고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저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한 것이 맞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인류가 만든 가장 잔인한 형틀, 십자가에 못 박고 그분의 마지막 기도에는 아랑곳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그 옷이나 가져가려고 하나님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 자리에서 제비를 뽑고 있습니다. 이들은 미친 것입니까, 아니면 단순히 잔인한 인간들입니까? 저 같았으면 '하나님, 이들을 다 지옥으로 보내주십시오!'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진노해야 할 순간에도 예수님은 긍휼을 보이셨습니다.
그 이유는?
글쎄요, 제가 예수님의 이 마지막 기도의 뜻을 다 알지는 못하겠지만 첫째는 주님이 긍휼이 많으신 분이라서 그랬을 것이고 또 지금 2,000년이 지난 후의 시점에서 볼 때 그들은 정말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몰랐던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위에 언급한 애가의 구절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애 3:20)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애 3:21)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애 3: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 나라, 교회, 내 가정, 내 상황, 내 환경을 바라보면 많이 낙심됩니다. 이러다가 부흥은 커녕 망하지나 않을까 진심으로 우려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신 십자가상의 기도와 예레미아의 애가가 우리에게 큰 소망을 가져다줍니다.
(애 3: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는 지도 모르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에게도 긍휼을 베푸신 그 하나님의 긍휼은, 자고나면 아침에 다시 새로워져 있습니다. 방전되지 않고 다시 100%가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긍휼을 조금씩, 조금씩 깎아 먹어서 언젠가는 하나님께서도 '더 이상은 못 참아!' 하실 때 끝나는 게 아니라, 마치 내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또 새로워져 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로 인해 우리가 진멸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러한 긍휼로 인해 우리도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합 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할렐루야! 우리의 모습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긍휼과 은혜로 인해, 이 한반도에 언제 부흥이 시작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 때를 바라보며 저를 준비합니다. 이 글을 읽는 형제자매 여러분 모두, 저와 함께 이 꿈을 꿉시다! 상황과 환경이 아니라 긍휼과 은혜의 주님을 바라보며 부흥의 때에 귀하신 주님께 쓰임 받기 위해 준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할렐루야!